자유기고가이 진 구 경산시와 접한 청도군의 최대 과제는 인구감소를 막고, 장기적으로 인구 증가를 이루는 것이다. 군수 이하 모든 공무원은 물론 군의원, 지역 유지들이 모두 나서 방안을 찾지만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1980년 8만 5,550명이던 청도군 인구는 2000년 5만 2,655명으로 줄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0년 4만 2,852으로 줄었고, 2021년 12월 기준 41,891명으로 1년 만에 961명 더 줄었다. 대구에 접하고 대학이 많아 30여년 간 계속 인구가 증가해, 인구 감소에는 별 걱정이 없었던 우리 경산시도 결국 지방 인구감소의 서리를 피해가지 못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면 경산시의 2021년 10월 인구는 268,431명이었는데, 2022년 4월에는 267,583명으로 불과 6개월 만에 무려 848명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지방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경북 몇 개 지자체는 소멸을 대비할 정도이다. 지방 인구감소란 발등의 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와세다대학 경제학 박사 이노우에 도모히로 교수는 고마자와 대학에서 인공지능과 경제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분배]에서 그는 지방에서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화를 역전시켜 지방 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한 가지는 아직은 미래의 꿈 같은 일로, 가상현실(VR)이 고도로 발달하여, 공간을 넘어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장점이 많을 경우가 되면 지방 인구가 증가한다고 한다. 복잡하고 자연을 느낄 수도 없는 도시에 굳이 살지 않아도 가상현실로 회의나 보고 등이 직접 만나는 것보다 편하다면, 공해에 찌든 도시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이노우에 교수 전공 분야 주장이지만 아직은 막연하고 실감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노우에 교수가 주장하는 현실적인 지방 인구 증가를 위한 다른 하나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기본소득 지급>이다. 그는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비인 55만원(이노우에 교수가 일본에서 지급하자는 금액을 우리나라에서 현실화 했을 때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매월 지급한다면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에는 최저생계가 어려울지 몰라도 지방은 부족하지만 최저생계가 가능한 금액이기 때문에 확실한 인구분산 정책이 된다고 한다. 4인 가족을 예로 들어보자! 이 가족은 매월 220만 원 기본소득을 지급 받게 된다. 서울, 경기와 달리 지방은 월세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더라도 50만원 정도면 가능하고, 나머지 170만원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최저생계비는 된다. 여기에 부부가 시간제 노동으로 100만 원씩만 보탠다면 이 가정의 수입은 420만 원이 되어 살아갈 만하다. 그러나 수도권은 지방과 같은 크기의 주거공간을 구하면, 월 100만 원은 훌쩍 넘는다. 여기에 지방 두 배가 넘는 식재료비, 교통비까지 더한다면 수도권 시민들이 느끼는 55만원 기본소득의 가치는 지방의 1/3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방 이전이 충분히 고려된다고 한다. 공무원의 월급으로 비교하면 쉽다. 수도권 공무원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빠듯하지만 지방 공무원은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여기에 주택(APT 포함) 가격까지 비교한다면 수도권 살이는 고난 할 뿐이다. 그런데 지방에서 기본소득을 받으며 일정 수입만 더한다면 오히려 안정되고 상대적으로 평안한 삶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여기에다 이노우에 교수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승수효과까지 더해지면 지방으로 인구분산 효과는 더 커진다. 지역화폐 승수효과란, 매달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최근 지급되는 지역화폐로 지급되면 지방산업의 승수효과로 일자리가 늘어나 지방에서도 젊은이들을 잡아들 수 있게 된다. 즉, 수도권으로 돈이 올라가는 대기업 제품이 아닌 지방에서 치킨 한 마리를 더 사 먹는다면 치킨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치킨무, 튀김 기름, 포장지 회사, 닭 키우는 사람 등 모두가 판매가 늘어나는 승수효과가 생기는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 또~ 걱정한다. 부자들은 자기 걱정만 하는데, 자산 50억 이하 사람들은 나라부터 걱정한다. 줄 돈이 있느냐고요? 나라 망하지 않느냐고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기본소득은 말로만 하던 천부인권의 현실적 실현인데, 국민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한다. 또한 지급능력도 있어, 지금 당장 55만원은 어렵지만 '전국민 매월 30만원 지급은 증세없이 가능하다(LAB2050)'라며 근거 자료도 제시한다. 지면 관계로 실현 가능성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기본소득은 지방 인구감소의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나 완전한 기본소득 시행은 중앙정부의 역할이니 의견을 모으면 되고, 지방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고 일자리야!
수필가김 미 숙 “엄마 출근 준비 다 했어요?” 나는 매일 아침 엄마한테 출근 준비 다 했냐고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내려오란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고 있는 엄마와 나는 출근 시간이 같다. 팔십이 코앞인 엄마는 세금과 의료 보험을 떼는 공무원으로 일을 한다. 아침마다 직장인처럼 옷을 갖춰 입고 얼굴 단장도 예쁘게 하고 나온다.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가는 길에 엄마의 직장이 있다. 매일 만나서 출근하는 우릴 보고 자매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엄마는 학교에서 일을 한다. 학교에 도착한 엄마가 하는 일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청소하는 일이다. 오전에 몇 시간 청소하는 일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할머니 역할도 한다.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는가 하면, 쓰레기를 줍거나 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팬이다. 가끔 아이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도 받는다. 수십 년 전 초겨울, 마흔아홉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와 어린 오 남매가 걱정되었던지 아버지는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심장이 멎은 뒤에도 눈을 뜨고 계셔서 엄마가 아버지의 뜬눈을 손으로 덮어드렸다. 엄마는 해방둥이였다. 광복이 되던 해에 태어나서 6.25가 터지던 해에 초등학교 입학만 하고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동네까지 침공함으로써 엄마는 학교와 멀어졌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만나 혼배를 올린 후 자식을 낳아 키우느라 애당초 엄마의 삶은 없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후 엄마의 삶은 엄동설한의 하루하루였다. 겨울의 한 복판에 서서 옴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고 아버지와 오 남매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았다. 까막눈이었던 엄마에게 세상은 버티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인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잃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 놓고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우리 오 남매를 굶기지 않기 위해서 동분서주 움직였다. 더군다나 글자를 모르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판과 식당이 전부였다. 남자도 힘든 아파트 공사판에서 무거운 벽돌을 등에 메고 날라야 했고 생선을 이고 길거리를 기웃거렸다. 엄마는 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참고 또 참으면서 묵묵히 일을 했다. 삶은 고단한 계단이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우리 오 남매는 엄마의 억척같은 삶을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땟거리가 없어서 굶는 날이 허다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에 한 번도 절망을 품지 않았다. 엄마는 오로지 희망을 붙들고 살았다. 그렇게 살았던 엄마 얼굴은 늘 맑은 날이었다. 흐린 날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한 명씩 결혼을 했다. 아무것도 못해준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딸 넷을 결혼시킬 때까지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딸들에게 엄마 품에서 잘 떠나간다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낙천적이어서 가능했다. 막내인 남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딸 넷을 시집보낼 때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눈물이었다. 혼자서 오 남매를 다 키워 떠나보냈으니 숙제를 다 끝냈다는 행복한 눈물이었다. 엄마는 어느 날 학교에서 일하다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에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 옛날 6.25가 터져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쉬움을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달랬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그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엄마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구사에서 칸 공책 여러 권을 사 오셨다. 거기에 글자를 써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 이름과 동생들, 손자 손녀 이름을 노트 맨 윗자리에 적어서 드렸다. 일주일 걸려서 노트 한 권을 빽빽하게 그려 오셨다. 나는 노트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였다. 엄마는 다른 노트를 내밀며 또 적어 달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주변의 꽃과 나무와 사물의 이름을 적었다. 또 일주일이 걸렸다. 비뚤비뚤 쓴 글자는 지렁이가 굴러가는 것 같았고 새가 날아가는 그림을 그려왔다. 엄마는 수십 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았다. 글공부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자를 쓰는 손에 힘이 가해져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방금 읽었던 글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엄마는 오전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오후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해 드시고는 또 글자를 그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텔레비전도 끈 채 읽고 쓰고 반복했다. 그러구러 여러 날이 지났다.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이 읽었던 동화책을 달라고 하셨다. 한 권씩 한 권씩 가져가신 동화책은 엄마의 집에서 또 다른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매일 동화책을 읽고 글자를 따라 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눈을 떴다. 내가 심봉사처럼 눈을 떴어.”하시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흐르는 이슬방울이 엄마의 눈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모습에 나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껏 아픈 곳 없이 옆에 있는 것만도 감사한데 동화책까지 줄줄 읽으면서 즐거워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매일 아침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를 들으면서 나는 엄마와 행복한 출근길을 맞는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은 평소의 일상을 놓고 심신의 휴식을 위하여 타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말한다. 여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가지 조건을 점검하여야 한다. 첫째 건강이다. 여행은 대부분 많은 걷기를 필요로 한다. 역사유적지든 경승지이든 무엇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걷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을 위해서는 적당히 걸을 수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경비문제이다. 여행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비용차이가 있지만 일단 여행을 위해서는 일정한 여행비용이 필요하다. 여행에 지출하는 비용은 그것을 지출하지 않고, 돈으로 갖고 있는 것 보다 여행을 하면서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다 전문적으로 얘기하면 여행의 잉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여행비보다 여행으로 얻는 만족도가 여행비로 지출한 돈의 효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여행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 더 필요한 조건을 들라면, 좋은 동반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우선 여행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고, 함께해서 서로가 기쁨이 커지는 동반자가 있으면 좋다. 그런 여행은 훨씬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해당 여행지를 잘 아는 동반자가 있으면 더욱 좋다. 역사유적지나 경승지의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조건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전문 해설자 수준의 능력을 가진 여행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여행의 가치를 월등하게 높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행에서도 통하는 얘기다. 필자는 오래 전 몽골 여행을 하면서 역사전문가와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자요, 이름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대학의 역사 교수였다. 몽골과 우리나라 고대사에 능통한 지식을 가진 그는 몽골의 역사적 유적지에 관해서 세세한 스토리를 잘 설명해 주었다. 다니는 곳곳의 유적지마다 그의 탁월한 역사해설은 여행을 통한 지적 욕구를 높여 주었고, 알고 보는 여행이 되어 여행 자체의 품격을 높혔다. 여행은 아는 만큼 여행을 즐겁게 하고 가치를 높인다. 삶의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성찰을 위해 간간히 챙기는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에 큰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름있는 여행을 다녀온 후 인생이 바뀐 경우도 가끔 있다. 인간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의 삶을 관리하고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만물이 결실하며 단풍잎이 아름다운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삶의 행복을 享受하는데 특별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계절이 가져다 주는 의미와 여행지의 신선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살필 수 있는 가을 여행은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여행을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해내곤 했다. 더러는 여행을 인생의 도락으로 즐긴 사람들도 있다. 공자는 천하를 철환하며 보고 느낀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며 사람들을 가르쳤고, 많은 학자나 문인들은 여행을 통해서 사유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사고와 철학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도도 했다. 경제학자 아담스미스는 가정교사를 하던 백작집의 아들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한 후, 불후의 경제학 고전 <국부론,1776>을 썼고, 근대경제학의 창건자 알프레드 마샬은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고 체험한 지식을 토대로 명저 <경제학 원리>를 저술했다. 우리나라 수필의 효시가 된 연암 박지원은 중국을 여행한 후 <열하일기>라는 명저를 쓰기도 했다. 여행은 살아있는 지식을 체득하는 삶의 현장이며, 사고와 지식의 훈련장이다. 많은 사상가나 문인들은 여행을 인생 도락과 사유의 기회로 삼았다. 즐겁게 여유있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많은 것을 얻게 하는 행복의 체험장이다. 어디든지 마음 가는 곳을 부담 없이 다니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고, 이름난 맛집을 찾아 남이 해주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즐기는 여행은 견도락과 식도락은 인생의 멋과 여유를 즐기는 슬기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기분전환을 위해 가볍게 떠나는 가을 여행은 국내 여행이 해외여행 이상으로 여행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사정이 되어 해외의 이 름난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의 여행도 이에 못지 않는 여행의 효과를 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멋진 계절이기에 국내에서 가을을 즐기기 위한 여행은 코로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행복의 실현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삼천리 금수강산이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명산 청해의 보고이다. 대국들인 중국이나 미국 등 외국의 가을이 장엄하고 기괴한 풍치라면, 한국의 가을은 손끝에 잡히는 정감이 있는 가을이다. 하늘이 푸르고 높으며, 산이 아름답고 바다가 정겨운 한국의 가을여행은 우리 국민들과 정서적으로 길들여져 편안하고 안락하다. 우리나라 가을 여행은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적인 여행이다. 큰 나라 거대한 자연을 느끼는 세계의 경승지는 그들 나름의 문화요, 자연이다. 미국도 중국도 유럽도 호주도 대자연의 위용과 절경을 느낄 수는 있지만, 우리의 가슴과 품에 안기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여행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에서 즐기는 가을여행은 우리만이 느끼는 독특한 문화와 자연을 향수하는 행복경제 여행이다. 우리나라의 가을 여행은 따뜻한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호흡하는 안락감이 있어 평안과 행복을 준다. 사람의 정서와 문화는 오랜 시간 조상 대대로 지켜온 터전에서 살아오면서 생활 속에 은은하게 몸에 익혀진 것이다. 그래서 문화는 자기만의 독특함이 생명이다. 우리나라의 가을 여행은 일상에 생기를 새롭게 불어넣는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의 여행은 대부분의 여행지 문화가가 비슷하다. 숙박 시설, 음식문화 등 생활문화가 비슷하고, 교통수단이 편리하며, 곳곳의 생활패턴이 우리의 일상과 편안하게 길들여진 곳이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먹거리에 장벽이 없고, 삶이 길들여진 애국심과 함께 하는 특별한 만족감이 있다. 국내 여행은 수용이 쉬운 새로운 체험이며, 일상의 삶과 무리 없이 호흡하는 여행이다. 가을에 떠나는 국내 여행은 인생의 의미를 질적으로 새길 수 있는 유익하고 가성비 높은 행복경제를 실현하는 경제적 선택이다.
경산시의회권중석 의원 안녕하십니까? 경산시의회 권중석 의원입니다. 본 의원은 광범위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우리 경산시의 현실에 걸맞는 신청사 건립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시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옥산지구·사동지구·서부지구·백천지구·하양지구등 약 400만㎡ 규모의 택지개발을 완료하였으며, 현재 약 170만㎡의 대임 공공주택지구를 조성중에 있어 개발중인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대구 경북의 대표 지자체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우리시는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도시의 개발, 문화·상업·관광 등 생활 여건의 성장으로 시민의 행정수요가 계속하여 팽창하고 있으나 준공된 지 약 40년된 시청사는 시설 노후화와 업무공간 및 주차공간의 부족으로 민원인 불편과 청내 근무하는 700여 공직자들의 행정서비스 저하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제8대 의회에서 여러 의원들이 신청사 건립의 필요성에 대하여 수차례 언급하였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실정입니다. 현 청사는 인구 6만에 불과하던 1988년에 준공되었으며 2022년 현재 28만, 2030년 34만, 2040년 42만으로 지속적인 인구증가가 예측되는 우리시 행정수요와 재정규모 확대에 따른 수 많은 시민들의 요구를 담당하기엔 너무나 부족하고 협소한 실정입니다. 또한, 부족한 청사 업무공간으로 공원녹지과 및 체육진흥과는 실내체육관에 배치되어 있으며, 2013년도에 구.아이리스웨딩홀을 리모델링하여 업무중인 별관, 현재 많은 예산을 들여 증축중인 별관은 민원인이 본관과 별관을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기에 시민불편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본 의원은 다양한 행정수요와 대규모 도시개발 및 인구증가 등을 고려해 볼 때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경산이 미래선도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신청사 건립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신청사 건립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 수립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 시작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지 장담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신청사 건립은 민원 불편 해소와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 및 효율적인 업무 수행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 의원은 확신하며, 다시 한번 경산시 신청사 건립을 위한 장기적인 방안 마련을 촉구하면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인향교 제21회 기로연 장면 지난 10월 29일(토) 10시부터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9(교촌리)에 소재한 자인향교(慈仁鄕校) 명륜당(明倫堂) 뜰에서 제21회 기로연(耆老宴)을 개최하였다. 기로연 행사장에는 삼성현 다예원(회장 손병숙) 회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차(韓茶)와 다식(茶食)을 준비해 대접하였으며 경산향교와 경주이씨 종친회에서 보내온 축하 화환이 놓아져 있었다. 경산시가 후원하고 자인향교에서 주관한 이번 행사는 자인, 용성, 남산, 진량에 거주하는 유림과 기관, 단체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사회자의 개회에 이어 국민의례, 상읍례(相揖禮), 문묘배향, 내빈소개, 이희문 전교 인사, 류한상 자인면장의 축사에 이어 향연이 펼쳐졌다. 향연은 먼저 노래자랑이 열렸는데 각 지역 대표가 출연하여 열띤 경쟁을 벌였으며 1, 2, 3등을 차지한 인사에 대하여는 푸짐한 상품이 수여되었고 참가상도 주어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향연 시간에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시루떡, 돼지고기 수육과 도토리묵 등 푸짐한 음식이 제공되어 서로 술잔을 권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쇠고기국과 갖은 반찬으로 맛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자인, 용성, 남산면 대항 윷놀이가 벌어졌다. 멍석을 깔아놓고 각 팀의 선수가 윷가락을 던지면 환호성을 질러대는 응원전도 볼만한 풍경이었다. 윷놀이 결과 용성면이 3연패의 영광을 거머쥐었으며 자인, 남산면이 각각 2, 3등을 차지하였다. 윷놀이가 끝나고 흥겨운 반주에 맞추어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졌는데 모두 젊은이의 기분으로 돌아가 각자 마지막 끼를 발휘하며 마음껏 온몸을 흔들어대었다. 마지막 순서로 천기찬 성균관 전의의 행운권추첨으로 많은 참석 인사에게 다양한 선물이 주어졌다. 기로연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든 참석자에게 이희문 전교가 마련한 기념 타월을 배부하였다. 조선시대의 기로연은 1394년(태조 3) 한양 천도 후 태조 자신이 60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것이 처음이었다. 기로연은 매년 상사(上巳)와 중양(重陽)에 보제루(普濟樓)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이 잔치에는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 출신 관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종친으로 70세에 2품 이상인 자, 정1품관, 경연 당상관들을 위하여 훈련원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영회(耆英會)라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들 잔치에는 임금이 술과 1등급 풍악을 내렸다. 태조는 잔치 비용 마련을 위하여 토지, 노비, 염분(鹽盆) 등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 잔치는 예조판서가 주관, 준비하였고, 왕명을 받은 승지가 특별히 파견되어 감독하였다. 기로연에 참석한 문신들은 먼저 편을 갈라 투호(投壺) 놀이를 한 뒤, 진 편에서 술잔을 높이 들어 이긴 편에 건네주면 이긴 편에서는 읍(揖)을 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데, 이때 풍악을 울려 술을 권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잔치를 열어 크게 풍악을 울리고 잔을 권하여 모두 취한 뒤에 파하였고, 날이 저물어야 서로 부축하고 나왔다. 태조, 숙종, 영조, 고종과 같이 나이 많은 임금은 직접 이 잔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오는 경로효친사상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경로잔치 형태로 진행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삶 속에서 경로효친이라는 유교 사상을 전승·함양해 소중한 전통이 이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인향교는 명종 17년(1562)에 경주부윤 이정(李楨)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4년(1612)에 도천산 아래에 옮겼으며 영조 4년(1728)에 현 위치에 다시 이건(移建)하였다. 1900년부터 1924년까지 대성전과 명륜당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부터 교육 기능이 쇠퇴하여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자인향교에는 외삼문인 모성루(慕聖樓)가 서 있는데 팔작지붕에 3문으로 이루어진 2층 누각이며 2층에는 마루를 깔아놓았다. 향교 입구에 대·소인을 막론하고 모두 말(馬)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明倫堂)이 서 있고 그 앞마당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향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교실이라 하겠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측면 2칸의 이익공, 다포계 건물로 맞배지붕에 골 기와를 얹었다. 명륜(明倫)이란 말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동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 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기숙사와 같은 건물이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강학 공간이라 한다. 명륜당 동편에는 관리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 뒤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내삼문이 서 있고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은 전면 3칸, 측면 2.5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자인향교는 외삼문인 모성루,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전학후묘 형태이다. 대성전 동편 모퉁이에는 문묘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서 있고 대성전 전면 좌측에 전사청(典祀廳)과 제기고(祭器庫)를 겸한 3칸의 건물이 서 있다. 자인향교에서는 음력 2월 상정(上丁)일과 8월 상정(上丁)일에 각각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있다. 석전대제의 시초는 후한 명제 때이고, 당나라 태종 때는 중국 전역에 문묘(文廟)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성종 때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종 때는 전국에 학교를 세우고 공자를 모시게 하였다. 충렬왕 때 국자감(國子監)을 성균관(成均館)으로 바꾸고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향교의 건립은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기인하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234개의 향교가 설립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 안에는 중앙에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의 위폐가 봉안되어있으며 그 양옆에 연국복성공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의 위폐가 봉안되어있다. 동쪽 벽과 서쪽 벽에 주희, 정호 등 송조 2현과 홍유후 설총, 문성공 안유, 문경공 김굉필, 문정공 조광조, 문순공 이황, 문성공 이이, 문원공 김장생,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준길, 문창후 최치원, 문충공 정몽주, 문헌공 정여창, 문원공 이언적, 문정공 김인후, 문간공 성혼, 문열공 조헌, 문정공 송시열, 문순공 박세채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폐를 봉안하였다.
주택관리공단 영천야사4관리소는 10월 28일 디지털 취약계층인 노인층 입주민들 위해 소비자 보호 단체인 (사)경북소비자공익네트워크의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나날이 복잡다란해지는 경제 사회 속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디지털 기기사용방법, 기만적마케팅,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등을 교육하여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여 입주민들의 권익증진에 기여했다.
자유기고가이 진 구“나는 일본 쪽에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제안했다.”(미국 정부 자료. 1962.10.29.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발언)일본이 저렇게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한국은 당연하게 독도는 한국 땅이라 말하니, 무인도이고 돌섬인 독도를 폭파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어떠한가? 라는 의미이다.만약 '양극단의 끝을 잡고 그 가운데가 중립이다'라고 잘못 생각한다면 독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같이 공유하든지 폭파하는 것이 중립이 될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서로 극단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몰라서 매국한다!>라는 속담의 전형으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가 <중립>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쪽의 가치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어, 나의 선택이 일방에 유리한 또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는 역사적으로 또는 국제법으로 보더라도 분명한 우리의 영토이며, 실효 지배도 우리가 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혼란스러울 것 없는 확실한 우리 땅이다.결론적으로, 독도 소유권에 대한 <중립> 의견은 ‘완전한 한국 영토’이다. 이처럼 중립이란 양극단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 100% 일방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중립이 된다. 마치 주차선을 잘~ 지켜 주차한 차를 주행하던 차가 접촉사고를 냈다면 사고 낸 차가 과실 100%라고 결정하는 것이 정확한 중립적 판단이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어쭙잖은 중립을 내세워 이미 주차한 차도 10~30%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얼마나 치우친 부정한 판단인가? 오늘 새삼스럽게 중립을 말하는 이유는 2022년 우리 사회가 중립을 빙자하거나 또는 가장하여 정의와 불의를 혼란스럽게 하고, 진실과 거짓을 바꾸어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비단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가 아니고 함께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립의 착각이 타국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면 더욱 바로잡아야 하며,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인 일제 식민시대 일이라면 좌우 이념을 떠나 온 국민이 함께 적극 대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말이다. <조선족은 능력이 없어 역사 발전이 없고(정체성이론),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야 발전한다.(타율성이론) 그래서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한반도를 다스렸던 조상이 같은 일본이(일선동조론) 한반도를 다스리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라는 것이 식민사관이다.정진석 위원장 말은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을 정확히 대변하며, 이완용이 나라를 일제에 넘기며 한 변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니 국힘당 내에서도 한탄이 나온다. 차기 당대표 여론조사 8주 연속 1위인 유승민 전 의원은 “이게 우리 당 비대위원장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박한 발언이다.”라며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고, 이명박 정권 2인자였던 이재오 국힘당 상임고문은 “역사 공부는 오히려 정진석 위원장이 해야 한다. 조선이 일시적으로 썩었다고 일본이 처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한다. 이외 검사외전 원작자 김웅 의원 등 많은 건강한 보수 인사들이 정진석 위원장 발언에 한탄하고 있다. 세계의 우파, 보수는 주로 민족에 뿌리를 두고, 애국과 희생을 아이콘으로 생각하고 실천한다. 즉, 미국, 영국의 공화당은 물론 일본의 보수 자민당도 자국의 이익과 일본 본토 민족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철저하다. 유독 우리나라의 보수, 우파만 타민족에 의존하려 하고, 조국애가 없다. 심지어 있는 역사도 왜곡하여 타민족과 타국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며 우리 스스로를 비하한다. 이런 극우가 항상 외치는 말이 있다.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어처구니없는 중립을 가장한 망언이다.바른 중립적 판단이란독립운동가와 친일 매국행위자의 중립자 역할이 '살기 위해 일제에 순응한 자'로 결론짓는 것은 엄청난 무지다. 살기 위해 순응한 자들은 한 목숨 다 바쳐 독립운동 한 사람들께 죄송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하며, 친일 매국행위자들은 처벌 받는 것이 옳바른 중립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내부 권력 싸움이나 당파싸움 중에도 외침에는 하나 되어 맞섰다. 오로지 단 한 번 을사오적 등 매국 국가세력에 의해 식민시대를 맞았을 뿐이다. 이런 근대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며, 진보와 보수 이념 대립이 아무리 극심해도 <중립>을 왜곡하여 식민역사를 매국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은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그것은 진보 보수 이념보다 앞선 국가 자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이대ㆍ자유문예등단ㆍ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뜰작가협회 회원ㆍ동해 남부시 동인 활동쑥부쟁이꽃숨겨도 숨겨도 감출 수 없는 마음속속들이 빼앗아 간쑥부쟁이꽃 피어논둑 밭둑이 젖는다새파란 하늘에선녀의 옷깃 같은 꽃청초하게 꽃 피어순정을 산산히 깨뜨린다기다릴 사이 없이 옆에 왔다가돌아보면 저만큼 걸어가는 뒷모습애틋하고 절절한 가을날의 고백해맑은 얼굴로 설레게 했어요분홍 저고리에 풀색 치마 입고걷다가 지치면업어 주고 싶은 마음들녘에 서 있는 사랑 이야기행복하세요행복하세요
이 다 은(사)한국국보문인협회 산악회장제33호 동인문집 '내 마음의 슾' 자문위원 이국땅에서 2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엄마를 만난 딸의 첫 마디가 황당했다. “엄마 가까이 오지 마”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고 했는데 무엇이 우리 모녀의 행복을 갈라놓는가? 1979년 10월 13일 새벽 7시 포항기독병원에서 첫 딸을 출산했다. 남편은 포항종합제철(포스코) 안전 주임으로 근무할 때다. 병원에서는 꽃다발과 축하금 50만 원을 주면서 병원비도 받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효녀 짓을 한 딸이다. 포항에서 대구로 올라와 남편은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다. 여러 날 집에 돌아오지 않던 어느 날 이상한 꿈에서 깨어났다. 무덤 안에 있는 관 속에 사람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내가 남편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백옥같은 하얀 천이 덮이더니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도 생생하고 남편은 부재중인 터라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다시 눕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무릎을 꿇고 이 무슨 뜻인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00 씨 댁입니까? 낯선 남자로부터 신원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마세요. 김00 씨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를 두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넜다. 나는 5남매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 남편마저 적금통장 하나 없이 떠나 보내고 외로움과 가난을 친구처럼 삼고 살았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딸이 떠나는 날 공항까지 가지도 못하고 동대구 역에서 이별했다. 남편의 빈자리를 지켜 주던 딸마저 떠나니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서러움에 참았던 눈물이 발목에 뚝뚝 떨어졌다. 사회 초년생이 지인도 없는 이국땅에 빈손으로 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엄마이기에 겪어야 할 서러움의 보상이었다. 딸이 미국으로 떠난 지 20년 만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얄궂은 운명이 찾아왔다. 코로나가 확산 되면서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헤어디자이너인 사위의 미용실도 결국은 문을 닫게 되었다. 코로나가 장기전을 벌이자 그동안도 여러 번이나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던 딸이 이때를 빌미 삼아 적극적으로 사위를 설득시켰다. 다행히 코로나 상황 중에 미국 체류자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항공권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데 가속도가 붙었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기적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하더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인천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집 앞에 내리는 딸의 첫 마디 “엄마 가까이 오지 마” 엄마를 홀로 두고 떠났던 딸이 돌아오는 날은 내 생애 최고의 기쁜 날인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달려가서 딸을 부둥켜안고 실컷 울고도 싶고 기뻐 춤도 추고 싶은 심정인데 그런 엄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팔을 벌리며 다가가는 엄마를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니 청천벽력 같았다. 딸은 무거운 케리어를 끌고 혼자 집으로 들어가고 드라마 같은 한 장면을 보내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위가 공항에서부터 따로 격리되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실려 갔기에 더욱 맥이 풀렸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코로나로 인한 정부방침에 대한 야속함을 삭이고 있는데 갑자기 생기 나는 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빨리 사위 데리러 가 응?” 사위가 올 수 있대? “응- 말 잘해서 집에 올 수 있게 되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어디서 그렇게 생겼는지 야 하며 벌떡 일어나 자동차 열쇠를 빙빙 돌리며 급히 차를 몰고 주소지를 향했다. 그곳은 청주에 있는 어느 교육연수원이었다. 두 시간을 달려가니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청주호가 손짓했다. 자연을 좋아하여 혼자서도 여행을 즐기던 내게 오늘은 청주호의 아름다움도 내 마음을 낚아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헤어진 딸과 사위가 새로 마련한 집에서 함께 자가격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두 주만 지나면 사랑하는 내 딸을 부둥켜안고 20년 동안의 회포를 풀며 실컷 울어라도 보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 해 준 건물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낀 경비원 두 명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사위는 큰 가방 두 개를 앞에 두고 한 개는 둘러맨 채 초췌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말을 아끼면서 두 시간 만에 보건소에 도착했다. 입국 24시간 내의 항체검사 결과 사위와 딸,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자가격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두 주간은 2년보다 더 길었다.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망가뜨리며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아직도 꼬리를 완전 내리지 않았지만, 딸이 고국에 돌아와 그림 같은 단풍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된 것이 벌써 2년이지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를 찾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누구 딸이야? 엄마 딸” 서로 쳐다보며 미소짓고 손잡고 다니는 지금이 참 좋다. 어떤 날은 앞서 걷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꿈인지 생시인지 감격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이 촉촉해지기도 한다. 이제 딸을 마음껏 안을 수 있어 좋다. 음성만 들어도 내 딸이기에 그냥 좋다. 코로나가 막아놓은 어두운 장벽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소소한 행복이 찾아왔다. 하나님! 이 행복 오래오래 지켜 주소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계절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을이 주는 의미는 크다. 왜 그럴까 하고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가을은 다른 계절과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니 혹은 철학의 계절이니 하고 얘기하는 것도 가을이 갖고 있는 계절의 특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이 생명을 싹 틔우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그것을 뜨거운 열기와 습도로 성장시키는 계절이다. 가을은 여름이 키운 생명들을 잘 여물게 하여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결실은 중요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인생도 끝이 좋아야 한다. 사계절의 아름다움도 그마다 특성을 갖고 있지만, 가을은 계절의 왕이라고 할 만큼 풍요로운 결실과 생명의 본질을 알게 하는 가르침이 있는 멋진 계절이다. 특히 삼천리 금수강산이 화려하게 단풍들고, 들판에 곡식들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따가운 가을 햇빛에 익어가는 한국의 가을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가을보다도 멋지고 아름답다. 가을을 일러 사람들은 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한다. 높은 하늘과 긴 태양이 말을 살찌게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가을은 여름이 키운 식물들을 맑은 하늘의 햇빛과 따가운 열기로 만물을 살찌우고 결실을 맺도록 한다. 식물들을 열과 습기로 키우는 여름은 적절한 습도와 열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름이 하늘아래 낮게 위치하여 수시로 비를 내려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충분한 열기와 수분을 제공한다. 그래서 여름 하늘은 낮고 자주 구름이 끼며 습도가 높다. 지구촌에 만물이 생존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필요한 식물들을 키우기 위한 자연의 섭리이다. 먹이사슬의 구조상,식물을 먹이로 하는 대상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위해서도 식물은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해야 한다. 식물은 자연의 질서 상, 땅과 하늘의 도움으로 수많은 동물들에게 먹이 감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체계상 식물은 동물보다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식물의 존재는 생물의 존재 조건에 필요한 산소와 각종 영양소를 풍요롭게 제공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다양한 식물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축복이다. 그런 식물들이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대부분의 나라 가을에는 대부분 결실을 맺는다. 벼가 익으며, 과일도 익고, 나무는 한 해의 삶의 과업을 다하기 위해 열매를 맺고 익히며, 다음해를 위하여 잎새를 떨구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만 앙상하게 남겨, 춥고 긴 겨울을 견딘다. 그것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려는 나무의 지혜이다. 계절수가 잎을 떨구지 않고 겨울을 견디려고 한다면 그 나무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충족치 못해서 다음해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오색으로 단풍든 산야의 나무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한없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것은 알고 보면 나무가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잎새를 단풍지우고 낙엽으로 만들어 떨구는 것은, 나무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가을의 선물이기도 하다. 잎이 지지 않는 계절 수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곡식이 익고, 과수나무의 열매가 충실한 과실을 맺는 가을, 그리고 오색찬란한 단풍잎이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가을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삶의 이치를 깊이 알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자 철학의 계절이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고도 한다. 봄은 계절의 빛깔이 여성처럼 곱다. 봄은 연약함으로 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발시킨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으로 어린 생명들을 땅속에서 솟아나게 하고, 앙상한 나무가지에서 새싹이 돋아 나게 한다. 생명의 기지개를 피우는 봄은 아지랑이처럼 곱게 피어나는 여성의 계절이다. 일찍이 시인 괴테는 “여성적인 것이 즉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고 했다. 그러나 가을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조절하며, 강렬한 기상으로 과실을 영글게 하고, 냉정한 기운으로 단풍과 낙엽을 만들어 자연의 법칙을 지키게 하는 준엄함을 보여준다. 가을은 머물러야 할 것과 갈 것을 결정짓게 한다. 생명의 오감의 법칙을 알게 하고, 그 법칙에 따라 보낼 것은 보내고, 머물 것은 머물게 함으로써 세상이 배우고 깨닫게 한다. 가을은 계절의 법칙을 통해서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철학의 계절이며 남자의 계절이다. 가을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인생에 깨달음을 가장 깊숙하게 알게 한다. 생존을 위하여 무엇이 소중하며, 무엇이 버려야 하고, 취해야 하는지 생존을 위한 알맹이와 껍데기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가을은 허망한 망상들을 낙엽처럼 버려야 함을 알게 하고, 인생의 과실이 무엇인지를 알게도 한다. 계절의 현상들을 통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어느 계절 보다 처절히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가을은 화려한 듯 하면서도 엄중하고, 아름다움 속에서도 냉정함을 알게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인생의 행복을 절감케 하는 계절이다. 가을에 느끼는 인간의 행복은 진실의 체득에서 나온다. 물질과 사유를 조화롭게 관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행복은 현실속에서 실현되는 행복경제에 의하여 바람직스럽게 구현된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충실하게 노력해온 사람들에게 행복은 그 노력 분 만큼 실현된다. 가을은 성실한 삶이 보장해주는 삶의 보답을 알게 한다. 인생은 노력하고 깨닫는 만큼에 상응하는 축복과 결실이 자연속의 가을처럼 인생에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경제란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는 실증적이고도 구체적인 행복의 실현이다. 실용적 가치에 의하여 바르게 추구해온 현실적 과실, 즉 경제와 행복이 함께 조화되어야 바람직한 행복실현이 가능함을 말한다. 행복경제의 실현은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는 실질적이고도 실증적이며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가을이 행복한 삶 속에 있으며, 성실하게 잘 관리 된 부와 행복의 균형적인 모습이다. 가을과 행복경제는 잘 어우러진 모습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 삶의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좋은 협력자이다. 모두가 이 멋진 가을의 의미를 알고 행복한 가을의 삶을 누리는 슬기롭고 축복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용성초등학교 전경 올해, 2022년은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용성초등학교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을 당한 지 10년이 지난 1921년 9월 7일 4년제 공립보통학교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그다음 해인 1922년 4월 24일 남자 147명, 여자 6명, 모두 153명을 맞아 개교하였다. 1927년 6년제로 학년 연장 인가로 1928년 4월 1일 6학년으로 편성하였다. 1939년 일제에 의해 용성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41년도에 용성국민학교로 다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56년 3월 23일 송림분교를 설치하였으며 1957년 4월 7일 매남 4리에 구룡분교를 설치하였다. 1963년 3월 7일 송림분교가 송림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88년 3월 1일 다시 본교의 분교장으로 편입하였다. 1992년 3월 1일 구룡분교 폐교와 1992년 9월 1일 송림분교 폐교로 각각 본교에 통합하였다. 육동의 용천리 소재 용강국민학교가 1935년 4월 17일 간이학교로 개교하였는데 1995년 2월 28일 본교에 통폐합하였다. 1996년 3월 1일 전국의 초등학교 교명 변경에 따라 용성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개교 이래 100년의 성상(星霜) 동안 8,25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로 발돋움하였다. 교정에 자라고 있는 10여 그루의 노거수(老巨樹)가 긴긴 세월의 무게를 지켜오고 있다. 그간 용성초등학교가 민족 초등교육의 요람으로 지역사회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큰 집의 주춧돌이 되고 기둥과 중방, 대들보가 될 거목으로 자랄 수 있었던 데에는 용성인의 집념과 힘겨운 삶, 그리고 역사적인 소명이 그 단초(端初)가 되어 왔다. 용성면은 경산에서도 오지(奧地)로 알려졌으나 그 속에 용성초등학교를 거쳐 나온 동문들은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경향 각지에서 용성인의 위상 제고와 모교를 빛낸 인물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박주현(전 국회의원) 동문, 윤영탁(전 국회의원) 동문,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김일생(전 병무청장) 동문, 김정달(전 경산군수) 동문, 박재찬(전 경산군수) 동문, 김상권(전 대구중부경찰서장) 동문, 최희욱(전 경산시장) 동문, 강채규(전 고령군수) 동문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 외에도 군, 관, 정, 재, 학, 의료, 언론, 사법, 문화계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교를 빛낸 인물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이니 용성은 인물의 고장이요, 용성인의 자랑이라 하겠다. 용성면의 내력을 살펴보면 본래 삼한시대 노사화(奴斯火) 구역이었으며 이후 자인현의 상동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도에 자인현의 상동면과 하동면, 청도군 일위면 석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경산시에 편입되었다. 관할구역은 당리 외 19개 리이며, 동쪽은 청도군 운문면, 남은 청도군 금천면, 서는 남산면과 자인면, 북은 진량읍과 영천시 대창면에 접하고 있다. 이처럼 용성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곧 용성의 전역에 분포되어있는 지석묘(支石墓)가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있는 고죽리의 28기 고인돌은 약 150여 평에 달하는 평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줄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용성은 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장이며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수십에 달하고 있다. 용성의 주산이 용산(龍山)인데 이를 용산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부에 자리 잡은 퇴뫼식 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의 성곽으로 알려져 있다. 용산의 높이는 435.6 미터로 높지는 않으나 이산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용의 전설은 전국의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으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산을 명명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용성은 산자수명한 자연과 순후(淳厚)한 인심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수려한 자연환경, 맑은 물과 공기로 인하여 향후 쾌적한 근교 전원 주거 지역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이처럼 청정지역이며 신령한 용산과 또 다른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전해오는 구룡산(九龍山), 금박산(金泊山)의 정기가 한자리에 모인 평지에 용성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용성초등학교가 위치한 당리(堂里)는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의 상류에서 세 갈래의 물길 사이에 넓은 평야와 언덕으로 형성되어있다. 경산시 용성면 원효로 1405에 자리 잡은 용성초등학교는 현재 대지 11,532㎡, 체육장 5,979㎡, 합계 17,511㎡에 교직원실, 보통교실, 과학실, 컴퓨터실, 보건실, 어학실, 도서관, 유치원, 대강당, 종합학습실, 식당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 99,967㎡의 학교림을 보유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아동들이 선생님과 함께 꿈과 끼를 가꾸는 맞춤형 행복 배움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눈높이 교육으로 꿈이 있는 학교, 보람을 느끼는 교단을 만들어 남다른 생각, 배려하는 행동, 꿈을 가꾸는 용성인을 기르기 위해 교직원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교육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는 해마다 모교의 발전기금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운동장 옆에는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물이라 할 만큼 넓은 학교 숲이 자리 잡고 있다. 교목인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왕버들, 소나무, 팽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등 수많은 노거수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1950년대 용성초등학교 전경 용성초등학교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한해의 졸업생이 100명에서 250여 명으로 학년별 2학급에서 5학급까지 편성되었으나 그동안 산업화의 추세에 따라 젊은 층의 도시진출로 인하여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1970년대 이후 아동 수가 격감하였다. 그러나 용성을 빛나게 한 인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 8천여 명의 총 동문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거나 경향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선후배가 서로 밀고 당기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 이는 용성인의 자랑이요 보배라 하겠다.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선후배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에 젖어보며 지나간 10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가을하늘 높으고 바람 맑은 모교 교정에 모인 선후배는 어린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이다. 그 자리는 지나간 100년의 전통 위에 다시 오는 새로운 100년의 맹아를 틔울 씨앗을 뿌리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올해에 개최하는 총동창회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모교 교정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조형물을 건립하며 개교 100년사 발간, 모교 발전기금과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축하 한마당을 마련한다. 이처럼 뜻깊은 자리에 선후배 동문은 물론 지역사회 유력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시어 뜨거운 호응을 기대해 본다. 2022년 11월 5일(토) 10시 30분부터 용성농악단의 식전 축하공연이 펼쳐지며 이어서 총동창회 주관으로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기념식은 방송인 이상훈 MC의 사회로 진행하는데 허성근 총동창회장의 기념사, 이숙현 학교장의 경축사에 이어 국회의원, 경산교육장, 경산시장, 경산시의회 의장, 경상북도의회 의장, 전 총동창회장 등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며 교직원과 모교 재학생도 함께 참여한다. 그동안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공헌한 동문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며 재학생에게는 장학금과 체육복을 전달한다. 모교 재학생 대표가 축시를 낭송하고 재학생과 경산시립합창단의 협연으로 가야금 병창, 축가 등의 공연이 펼쳐지며 교가 제창, 시루떡 케이크 절단과 기념비 조형물제막이 이어진다. 오후 2시부터 축하 한마당이 펼쳐지는데 스타 온 주니어 예술단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된다. 개교 100주년 기념음악회 초대 가수로 구나운, 김동아, 나미애가 출연하며 총동창회 기수별 노래자랑, 동창생이 아닌 다문화가정, 기업인, 며느리 등의 노래자랑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행운권 추첨이 끝나면 오후 5시경이 될 것이다.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모교와 총동창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뜻깊은 행사와 다채로운 축하 한마당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허성근 총동창회 회장과 김상연 사무국장, 그리고 집행부 동문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며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또 선후배 모든 동문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드린다. 용성초등학교 제34회 松河 全命秀.
이진구(자유기고가) 추석을 전후하여 경산시와 경계한 대구 수성구청과 관할 동사무소에 많은 문의 전화와 항의성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경산시는 시민들에게 20만 원씩 준다는데 우리는 왜 주지 않느냐?” 라는 내용이다. 경산시가 외국인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경산시민께 1인당 재난지원금 20만원을 지불하고 있으니 옆 지자체 시민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가 산출한 올해 2022년 6~7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구매비용은 전통시장 평균 243,273원, 마트 평균 307,430원이니, 부부 지원금 40만 원 만으로도 추석 차례상은 넉넉히 차렸을 것이고, 모든 시민이 특별한 보너스로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경산자치신문에 글 쓴지 10여 년이 넘었지만, 보수당 단체장을 칭찬하는 글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지면까지 빌려 칭찬할만한 일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미래 지향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추석 전에 이렇게 전 시민께 지원금을 지불한 지자체는 경산시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첫 칭찬이 다소 쑥스럽지만 지원금을 받은 경산시민 한 사람으로 행복함을 전하고 미래 희망의 메시지에 고마움을 전한다. 매년 10월 둘째 주 이맘때가 되면, 미국 알래스카주 전체가 축제에 빠진다. 모든 주민께 지급되는 알래스카형 기본소득 '영구기금 배당금'이 지급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1인당 1000~2000달러 우리 돈으로 140만 원~280만 원씩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주민께 나누어 주는데, 4인 가족이면 460만 원~1120만 원이 되니 경제가 살아나고 축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소득 지급은 1980년부터 시작되어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영구기금 배당금)은 1년 최저생활비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이니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서민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어서 기본소득 지급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알래스카주는 미국 전체 50개 주 중에서 상위 1%와 하위 1%의 소득편차가 가장 적어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소득 하위그룹의 평균소득이 50개 주 중 가장 높다는 것이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 지급을 말하면 ‘사람 잡는 반풍수’ 학자나 교수들은 ‘기본소득은 좌익 빨갱이들의 주장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을 주 헌법에 명시하고 시행한 주지사는 완고한 우파이자 철저한 자본주의 실천 정치가인 제이 스터너 해먼드(Jay Sterner Hammond이다. “알래스카 원전에서 나오는 수익을 주 정부 소유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주민께 고르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그의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이 돈을 주 정부가 가져가면 공공 부분을 강화하는 사회주의형이 되니, 공화당원인 본인은 시장주의 원칙에 따라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기본소득 주장자들은 가장 강력한 보수 시장주의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세계 최고 갑부들이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 불평등을 조금 줄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가장 자본주의적 정책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본소득을 40년 째 시행되도록 기반을 제공한‘제이 해먼드’는 알래스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파 주지사로 앞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경산시의 재난지원금이 알래스카 기본소득과는 다르지만, 시장과 시의회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약 500억 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본소득 같이 모든 시민께 동등하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실천한 것에서 희망을 본다. 경산시장과 시의원이 보수의 가치를 실천하며 시민께 희망을 전하는 시기에, 소속당 국민의힘은‘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이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은 부자와 서민의 소득, 재산 격차가 상상보다 훨씬 더 심해지는 극심한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1% 부자들과 1% 대기업에‘횡재세’등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95% 서민을 위한 공공복지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불과 100여 개의 초부자 대기업과 전 국민 중 1% 내외의 초부자에게 세금을 연간 13조원이나 깍아주려 하면서도, 95% 국민을 위한 고작 6500억원의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없애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그나마 어려운 95% 국민이 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의 10%를 지원해주고, 전통시장, 골목상권 등 중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주던 것이 지역화폐이다. 이런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대다수 국민보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숨은 공약의 구체적인 실행안이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두 정책 중 경산시의 기본소득형‘재난지원금’지급이 미래지향적 보수 정책이어서 시민께 희망을 주고 있다면, 정부와 국민의힘에 의해 진행되는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은 보수 정책도 아니며 정의롭지도 못하며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진보는 물론,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보수도 곳곳에 있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모아 누가 뭐라 해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 삶의 질 높이기에 주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 한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단행한 경산시장과 시의원들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재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그리움마음이 빈듯하여뜰앞에 나왔더니별도 달도 먼저 알고풀잎에서 기다린다구름 한장 손에 들고달빛 불을 밝혀시 한 소절 올려놓고그대인 듯 바라본다
김미숙 별이 빛나는 밤 친구들이 메밀꽃 축제에 가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 걸려서 강원도 봉평에 도착했다. 일을 마치고 출발한터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버스는 한적한 시골에 우리를 부려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정이 넘어서 숙소에 도착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었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은 시골 어느 들판 한가운데 있는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였다. 어둠이 세상을 삼킨 듯 암흑이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하수가 눈부셨다. 흩뿌려놓은 메밀꽃 같았다. 은하수에 둘러싸인 별빛은 머리 위 눈앞에서 마구마구 쏟아졌다. 잠자는 숲 속 미녀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호두까기 인형처럼 발레를 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별빛이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에 골 깊은 계곡이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백천동이었다. 비취색 강물에서 황갈색 열목어가 노닐었고 잣나무 향이 은은하게 번졌던 곳이었다. 거기서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터전을 이루었으며 어머니가 태어났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도시로 떠난 후에도 두 분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계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 때면 나는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밤엔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저녁밥을 먹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녔고 밤늦게까지 매미가 노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밥상 앞에 앉을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고 기다리셨다. “임자 얼른 들어오게.” 할머니가 밥상 앞에 앉으면 그제야 우리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된장찌개 호박잎 찐 게 전부였지만 할아버지의 자상함 때문에 행복한 밥상이었다. 할아버지는 가끔 지게를 메고 이 십리 되는 오일장에 가셔서 장을 봐 오셨다. 그 속에는 일주일 먹을 반찬이며 손녀가 먹을 간식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멍석을 깐 마당 한 복판에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할아버지는 밤하늘의 별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어떤 날은 동화책에서 본 견우와 직녀, 왕자와 거지, 성냥팔이 소녀는 단골손님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도 달랐다. 봄에는 전갈자리 사자자리 여름엔 거문고자리와 견우와 직녀가 보였으며 가을엔 물고기자리와 고래자리가 겨울엔 쌍둥이와 오리온 자리였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곳의 별빛은 장관이었다. 어떤 때는 한 가지 색으로 보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엔 투명하게 비추기도 하였다. 은하수에 가린 별빛은 흐릿한 그리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보이기도 했다. 자연의 이치에 별들도 알아서 변화되어 갔다. 도시로 나온 후로는 별빛을 바라볼 여유도 별을 헤아리는 것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고개 들고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느 해 여름휴가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지라 빈 집터만이 반겨주었다. 마당에는 풀이 내 키만큼 자랐고 가로등이 없는 시골은 어둠이 빨리 몰려왔다. 저 멀리 개 짓는 소리만 들렸고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려왔지만 두 분이 없는 빈 집터는 허전함만 가득했다. 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한참 꿈속을 헤매다 눈을 떴다. 산속은 짙은 어둠만이 깔려 있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라디오를 켰다. 도시에서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룬다고 야단법석인데 그곳은 너무 추워서 잠들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따뜻했던 두 분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자정이 넘어서 차 안에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그동안 잃었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 왔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동화 속 이야기며 세월의 나이테 속에서 잊고 있던 은하수를 찾았다. 화려한 무늬를 뽐내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빛과 은하수가 내 가슴에 펌프질을 해 대었다. 하늘의 별빛과 은하수를 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올랐고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도 생각났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는 지금쯤 엄마를 찾았을까. 드넓은 우주의 어느 별자리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을까. 소녀는 엄마와 칠면조 요리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동화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쯤 어느 별이 되어 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별빛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동화 속에서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을 잃어버린 동안 우리 삶도 그만큼 팍팍하고 온기를 잃어왔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메밀꽃 축제가 한창인 봉평에서 하늘 높이 떠 있는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다. 은하수의 별빛 속에서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웠고 동화 속 인물들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마음 설레게 하던 밤하늘의 별빛과 은하수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듯 행복했다. 우주에 떠 있는 별이 빛나던 은하수는 봉평의 하늘에서도 함초롬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문학은 무엇이며 그것은 행복경제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을까? 문학을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그 의미의 범위와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 할 수가 있지만, 대체로 그 의미를 풀어보면, 문자에 의한 예술작품,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일기, 기행문, 전기문 등을 통해서 글자로 인간의 생각이나 감성을 표현해 내는 진·선·미 등의 가치추구 행위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곧 인간다움을 찾는 행위이다. 인간다움을 찾는 행위는 진정한 행복을 찾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문학은 사람이 언어를 표현 매체로 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고, 이를 통한 자아의 발견과 바람직스러운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글을 통한 교육이자, 지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문학을 곧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해 감에 따라 문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학문과는 달리 문자로 인간의 내면세계의 가치를 표현해 내는 작품 활동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도리나 가치를 표현하는 작품행위이다. 자유나, 정의, 사랑, 희망 등과 옳고 그름의 가치를 추구하고, 작가가 추구하는 어떤 특정의 가치나 주장들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작품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학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창작활동이다. 글을 통해서 작품을 통해서 사회와 시대를 고발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를 세워나가는 활동이다. 문학은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해나가는 작품 속에서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어도 한다. 동서양의 고전들은 대부분 문학을 통해서 인간성의 부활을 시도했었다. 동서양의 많은 작품들은 문학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관조하고, 인간다움을 다양한 형태로 추구해나간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로렌스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치는 무리한 배금주의 사상을 비판한다. 삶에서 순수한 열정이 특출했던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상업자본주의 본질을 들어 전쟁과 무역과 해적”은 삼위일체라고 갈파하기도 했다. 괴테는 상업 또는 상업유통으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부의 축적에 중점으로 두고, 그것을 기초로 하는 사회의 상부구조와 문화의 발전을 기대한 것이다. “전쟁과 무역과 해적이 삼위일체”라고 한 것은 상업자본의 생리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과 <젊은 상인에의 충고>에서 기업가정신 또는 자본주의 정신을 잘 갈파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후일 막스 웨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빛나는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프랭클린이 든 기업가의 덕성은 부유해지기 위한 덕성 13가지로 표현되는데 섭생, 침묵, 규율,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근면과 절약이 가장 강조되었고, 웨버가 보는 기업가는 이러한 금욕적 윤리에 기초하여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작품<닥터 지바고>에서 문학을 통한 시베리아 동토의 얼어붙은 휴머니즘을 고발했다. 그는 볼쉐비키들이 저지른 전쟁으로 무참히 희생되는 인간의 사랑과 문학 그리고 가족의 별리를 그렸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요소들이 전쟁과 총포 속에서 눈발처럼 사라지는 소련사회를 고발 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인류애와 전쟁의 무용함,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고발했다. 이렇게 보면, 문학은 인간성을 개발하고 또한 인간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소명을 갖고 있다. 문화경제학의 창시자 존 러스킨은 참다운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서 생명력과 인간다움을 귀하게 평가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은 단순한 부가 행복의 지표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사람다움 즉, 사랑, 정의, 평등, 의리, 협동, 용서, 인내, 관용, 지조, 겸손 등의 가치가 중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문학은 인간다움의 추구를 통해서 인간의 행복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휴머니즘 추구행위이다. 한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문학적 경제학”과 “과학적 경제학”이 논제에 오른 적이 있는데 이는 경제학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 한 셈이다. 문학적 경제학은 말로 하는 경제학이고, 과학적 경제학은 수리와 과학으로 하는 경제학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으나, 보다 본질적으로 분석한다면, 문학경제학은 경제 현상을 규범적 가치와 철학적 가치에서 분석하는 경제학이고, 과학경제학은 경제현상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경제학의 한 분석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경제현상을 나누어 이해한다면 문학적 경제학은 경제현상의 당위적 과제들을 분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작품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언어적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특정의 작품 속에 내재하는 특정의 가치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성격과 가치 등을 통해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표현해 낸다.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작품속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저자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비추거나 그려 가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다움의 실현을 통한 인간의 궁극적 가치인 행복의 추구이다.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통한 특징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한 인간성찰과 인간성의 발견이다. 이를테면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은 여성의 인권해방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잠재된 인간본성과 기만을 탐구하고, 인간의 진실을 확립한 문학적 성찰중의 하나이다. 아일랜드 문학가인 버나드 쇼는 작품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다함께 비판하며 경제학의 중요성은 인간성을 복원하는 인간관계를 통한 사회적 발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랑으로 결합된 인생을 정상적으로 사는 과정에서 정직함을 알고, 귀하게 생각하며 그것을 통한 삶의 행복을 찾아내는 사회로의 복원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참다운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진실을 찾는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인간의 가치 이를테면, 권력, 명예, 돈과 부 등에 대한 인식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과감히 배격하는 용기 있는 행동도 문학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려낸다. 그렇게 보면 문학은 인간이 바르게 살고,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며 그렇게 살아서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탐구활동이기도 하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인생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문학은 인생의 길잡이이며, 행복의 안내자인 셈이다. 문학과 행복경제는 인생에서 참된 행복을 향수하기 위하여 문학적 성찰과 이해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꼭히 모든 사람이 전문적인 문학인은 아닐지라도 문학이 추구하는 세계를 알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에서 적절하게 활용하고, 그 가치과 철학을 중심으로 일상을 살면 인간의 행복의 파이는 커질 수가 있다고 본다. 문학의 대·소작들이 밝히는 인간성찰의 모습들을 잘 습득하여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좋다. 행복경제는 행복을 실현하는 최선의 경제적 선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경제적 선택만이 아닌 문학적 가치의 선택도 포함시켜야 만이 진정한 행복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문학은 인간행복을 바르게 실현하는 길잡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행복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분야이다. 인생의 중요가치들이 문학을 통해서 잘 표현되고 또한 명쾌하게 다듬어 진다는 사실은 문학적 바탕이 행복을 위한 경제적 선택을 최적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우주_정석현경북 경산중앙대학 연영과 졸업경산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영남문학 등단영남문학작가회 회장남천 둔치를 걸으며 정석현빗방울 나르던 구름군데군데 징검다리를 만들어가을바람 타고 구름다리 건너훨훨 날아보는 남천 둔치가을바람을 가슴에 안고 힘차게 걸어 보자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초가을 색깔로 그림을 그리고젊음은 희망찬 걸음걸이로 내일을 그리며중년은 건강을 위한 체력을 단련하는 그림을 그리며노년은 알쏭달쏭한 빛깔로마음에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힘차게 걷는 노라면그림 속에 실체와 무형의 아름다움을마음속에서 뇌로 회전하는 생각은최고의 장수비결은 약보다 식보가 낫고식보다 행보가 낫다는 허준 선생의 말을 되새기며멋있는 걸음걸이로 건강한 풍경에 초점을 맞춰본다.젊었을 때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려보며그 순간들이 남천 둔치에 아롱거린다.살아온 지난날의 희,노.애.락.을 반추하며앞으로 더욱 건강한 생활을 보람되게 살고자남천 둔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그윽한 가을 향기에 취해내 마음속에 멋진 가을 그림을 그려본다.
환경부와 환경보전협회가 주최하고, (사)경북소비자공익네트워크와 경산시가 함께 주관하는 “2022년 비점오염관리를 위한 지역 거버넌스 구축·운영” 사업을 실시했다. 22일 실시된 이 사업은 비점 오염 저감을 위한 우리동네 농약병 수거활동 통해 지역농민들에게 비점오염 저감을 통한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의 중요성을 알렸다. 신경순 회장은“비점오염 저감을 위한 사업을 통해 지역 농민들이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에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홍보 활동을 실시하겠다”고 전했다.
김 미 경 생의 마지막 창이 창공을 향하여 열렸나 보다. 불쑥 날아오른 콘도르 한 마리가 빙빙 선회하기 시작한다. 대신 작별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낯선 길을 헤맬 영혼을 위해 마중이라도 나온 것일까. 콘도르는 마지막 손을 흔들듯 선회하면서 하늘 높이 오르더니 마침표 같은 소실점만 남긴 채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정말 하늘로 올라가셨나 보다. 막 시토가 끝난 엄마의 무덤은 울다 만 자식들의 눈두덩처럼 아직도 붉다. 모두들 갑자기 나타난 콘도르를 올려다보느라 하늘에다 눈동자를 붙박았다. 오늘따라 청명한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높고도 멀다. 저마다 못다 한 작별의 말들이 많은지, 콘도르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인 하늘에서 눈을 거두지 못한다. 콘도르는 잉카의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 담긴 독수리의 일종이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 어찌 보면 지상의 모든 어머니들도 영웅이지 않을까. 한 생명을 잉태하고 또 그 생명을 죽을 산고를 다해 낳아 기르고, 마지막 자신이 숨 가두는 순간까지 자식들 걱정만 하다가는 존재가 바로 엄마다. 약하지만 가장 강한 존재가 엄마인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콘도르가 안내하는 듯싶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이 년여 시간 동안 엄마는 마지막 생의 고비를 넘느라 안간힘을 쓰셨다. 대장암 3기에 발견된 암 덩이는 떼어내도 달라붙는 깜부기처럼 끝까지 생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두 달 가량은 거의 병원에서 보냈다. 마지막 길이 될 줄도 모르고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병상 밑에 놓여있는 신발만 하염없이 내려다보셨다. 더 이상 퇴원이 힘들다는 의사의 통보를 듣자, 엄마의 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딸인 내가 마지막 모험을 시도했다. 암환자들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재택 호스피스를 신청하고 무작정 집으로 모셨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던 열이 가장 큰 걱정이었으나, 집에 돌아온 엄마는 오히려 심적 안정을 되찾았다. 날이 갈수록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쌀을 갈아낸 미음을 매일 끓였다. 그나마도 쌀을 갈아서 뻑뻑한 쌀 물만 받은 뒤 쌀은 한 줌 겨우 넣은 뜨물 같은 미음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바로 구토와 화장실을 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우리는 무엇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의 창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서도 먼 산 바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이 최고다. 집에 오길 잘했어.’ 혼잣말처럼 자꾸 되뇌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늘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잦아졌다. 세 시간 간격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도 삼십 분에서 한 시간으로, 거의 한 시간마다 화장실 가서 한 시간을 머무는 셈이었다. 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저귀를 사용하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질색을 하셨다. 아마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기어 나오는 엄마의 두 눈은 뿌연 안개가 서려 있었다. 엄마의 창은 언제나 ‘맑음’일 줄 알았다. 자식들을 바라다보는 두 눈은 유리처럼 맑아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훤히 보였다. 멀리서도 자식들이 행여나 별일 없는지 엄마의 창은 늘 열려 있었다. 삶에 지친 자식들은 수시로 그 창으로 뛰어갔고, 그 창을 다시 나올 때면 겨처럼 묻은 상처들도 말끔히 닦여 나왔다. 그런 엄마의 창이 점점 닫혀져가고 있다. 다행히 하던 일을 접고 쉬는 내가 엄마 곁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그동안 사업에 매달려 사느라 친정 부모님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명절조차도 친정에 들르지를 못했다. 시집이 종가라 차례가 끝나기 바쁘게 일터로 뛰어가야 했고, 오히려 그런 딸을 돕기 위해 엄마는 매장으로 뛰어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명절에는 주변 식당도 문을 닫기에 종일 굶을 딸자식을 위해 직원들 식사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시곤 했다. 이제야 여유를 갖고 돌아다보니 엄마는 벌써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유독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집에서 사십 일을 더 머무셨다. 떠나시던 날은 종일 미동도 없었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문득 미국과 군대에 가있는 두 아들이 떠올랐다. 폰을 통해 손자들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자, 거짓말처럼 ‘응’ 소리가 엄마의 가슴에서 울려나왔다. 그것은 육신의 터널을 뚫고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온 엄마의 마지막 신음 소리였다. 피붙이를 향한 엄마의 창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열려 있었던 게다. 그리운 음성을 모두 들은 후에야 엄마의 창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엄마의 안식처를 절에서 관리하는 납골묘로 정했다. 금오산 자락 끝에 있는 절이다. 절에서는 칠 일마다 일곱 번의 재를 지낸다. 재를 지내러 갈 때마다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혹시 오늘도 보이려나. 마지막 재를 지내는 날, 거짓말처럼 콘도르는 또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났다. 훨훨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면서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이렇게 훨훨 날아다니잖니. 그래, 그래 너희들도 잘 지내.’ 라고 하듯이. 사실 콘도르가 아닌 그냥 독수리였을 테다. 설사 독수리면 또 어떤가. 어미 잃은 자식들 눈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마지막 작별인사처럼 보였다. 요즘도 엄마가 생각날 때면 종종 절로 달려간다. 까만 묘비석이 엄마의 눈동자처럼 반짝반짝 우리를 반긴다. 육신은 비록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엄마의 창은 여전히 열려있나 보다. 묘비 앞에서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돌아서는 발길은 또 훨씬 가벼워진다. 그래, 이제 엄마의 창은 벌써 저 높은 하늘에서 말간 별빛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명절이 가지는 행복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이며,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지출하는 소비와 금전의 지출은 경제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생동감 있게 하고, 구체화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한가위는 농업사회를 살아오던 선조들이 정성스레 가꾼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대명절이다. 한가위는 嘉俳(가배)라는 신라시대의 이두식 표현인 한 가운데 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한가위를 추석으로 일컬으며, 설과 함께 우리나라의 2대 명절로 생각한다. 명절은 글자 그대로 이름 있는 좋은 날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명절에는 삶의 현장에서 하던 일상을 멈추고,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나 중심가정으로 모여 함께 안부를 나누고, 즐기는 기쁜 날이다. 명절은 피를 나눈 가족과 형제들이 모여서 삶의 기쁨을 확인하고 사람다움을 찾는 날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뿌리를 알아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은혜입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와 보답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옛 부터 “孝는 百行之本” 이라고 했다. 조상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백가지 행동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행동의 기본이 됨을 말한다.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날이다. 추석은 특별히 온 가족이 한 해의 풍년 농사에 감사하며, 하늘과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기도 하다. 조상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사는 마음 자세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기본적인 자세이자 도리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대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3천만 명이 넘는 민족의 대이동을 한다. 조상을 존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그해 지은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 진실한 마음을 담아 차례를 올린다.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묘소를 찾으며 참배도 한다. 이러한 행사를 하는 한가위는 민족의 범사회적 도덕재무장이며, 정서의 대대적인 훈련기간이기도 하다. 사람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의미 깊은 의식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추석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풍요한 추수를 하게 해준 하늘 님과 조상,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과 소중한 친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심성을 다지고 확인하는 행복의 실천 장이다.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자리이며, 사람다움을 느끼고 배우는 가족공동체 교육의 자리이다. 함께 좋은 음식을 만들고, 제례 일을 같이 하며, 서로간의 존재에 감사하며,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행복을 나누는 자리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하늘의 법칙을 배우는 자리이다. 그것은 명절이 주는 행복경제학이다. 경제원칙에 의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행복경제의 자리이다. 좋은 마음과 좋은 일을 위해서 귀한 돈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은 왜 애써 돈을 버는가? 소중한 일에 쓰기 위함이다. 일찍이 천재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사람들은 왜 돈을 보유하고자 하는 질문에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를 든바 있다. 돈은 무엇보다도 우선 거래적, 예비적 동기에 의하여 벌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용처에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쓰는 일, 즉 경제행위는 필요한 욕구를 실현하는 행위이니 즐거운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소정의 돈을 쓰는 행위는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다. 적당한 소비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나 모두 미덕이 되는 일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명절에 쓰는 돈은 미덕이며, 애민을 실천하는 행복실현 행위이다. 추석에는 각자가 귀한 돈으로 명절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돈으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표현한다.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나누는 명절은 행복의 실천장이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국 돈은 합당한 필요에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잘 벌어야 하고, 또한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한다. 잘 번 돈과 잘 쓰여 진 돈은 세상을 밝게 하는 묘약이다. 평소에 잘 쓰여진 돈과 같이 추석 명절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적절히 쓰여 진 명절지출은 사람다움을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는 적당한 소정의 명절비를 드리는 것은 도덕심을 키우고 서로에게 행복의 파이를 높인다. 조부모나 어른들은 꽃보다 귀한 손주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명절 용돈을 주는데 이는 서로에게 사랑과 소중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명절 용돈을 주는 조부모도 기쁘고, 받는 손주들도 행복한 윈윈의 행복경제이다. 옛 부터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다. 현대는 시장 자본주의 사회이다. 돈의 소중함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모두가 슬기롭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서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명절을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돈의 지출이 필요하다. 명절날의 가족 간의 금전의 나눔은 돈의 미학이며, 행복을 위한 슬기이다. 서로 간에 적당한 돈을 지출하는 명절비는 행복경제학이며, 효율적인 행복의 실천행위이다. 돈에는 무절제한 낭비도 금물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것도 문제이다. 그것은 반행복경제이며, 비능률의 경제학이다. 좋은 일에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돈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묘약이며, 삶의 효율이자 합리적인 행위이다. 효율과 합리를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녀야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끈질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는 건재하다. 한가위는 '팔월의 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한가위에서 ‘한’은 “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음력으로는 가을을 상징하는 달이 7,8,9월이다. 이 석 달 가운데 8월은 중간이고, 15일은 그것의 중앙에 위치한다. 그래서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한 가운데임을 의미한다. 하늘이 높고 푸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한가위는 분명 하늘이 내린 축복된 날이다. 축복된 날은 축복을 받은 만큼 합당한 경제적 지출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산업은 농업이고,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조건이다. 현대와 같은 농사를 위한 인위적인 시설 설비가 빈약하던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천기 즉 하늘의 뜻이다. 농사절기에 가장 좋은 한가위는 하늘의 뜻에 따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의 계절 가을에 있다. 농업사회에서 한해를 풍년으로 농사짓는 일보다 더 농심을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한가위는 풍요이자, 감사이자, 기쁨의 상징이다. 물질적인 풍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은 그 만큼 행복실현의 가능성을 높인다. 옛 부터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시장자본주의가 시대적 가치가 되고 있는 오늘날, 적절한 돈의 사용과 나눔을 실천하는 한가위는 행복실현의 날이다. 한가위 명절에는 돈보다 몇 백배 귀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인연이 있는 소중한 이웃을 위하여 멋진 행복 경제를 실천하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가위 명절이 주는 중요한 의미를 새기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지난 8월 10일 경산 실내체육관에서 ‘제28회 경북여성농민한마당’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경북의 여성 농민들이 모여 사기진작과 문화 및 교류를 위한 화합의 자리이다. 경상북도가 후원하고 지역 정치인뿐 아니라 유관기관 단체까지 참가하여 축하하는 말 그대로 경북 여성 농민들의 잔치 자리이다. 이 잔치 자리에 고춧가루를 끼얹는 일이 발생하였다. 윤두현 국회의원을 대신하여 참석한 부인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의 격려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지역기초의원, 도의원들이 함께 자리를 떴다. 남의 잔치 자리에서 격려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대한민국 정치가 얼마나 썩어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선거 때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그렇게 목에 핏대를 올리고서는 당선만 되면 유권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이 작금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말로는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권력을 쥐고 나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수십 명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허위사실 유포라며 역으로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하고 있다. 유권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협박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다. 게다가 당선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기초의원, 도의원들은 지난 5월 땡볕에 외친 말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임기가 시작되고 채 두 달이 되기 전에 권력의 눈치를 보며 시민을 외면하는 것.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기는 한가 의구심이 든다. 반드시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사과해야만 끝맺을 수 있는 사안이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권력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할 일꾼을 뽑은 것이지 그 배우자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유권자와 가장 밀착해서 일할 사람을 뽑았지, 국회의원 배우자의 눈치를 보는 간신배를 뽑은 적이 없다. 반드시 사과하라 진보당 경산시위원회는 이 문제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엄중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약속을 할 때까지 여성 농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22년 9월 2일 진보당 경산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