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용성초등학교 전경 올해, 2022년은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용성초등학교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을 당한 지 10년이 지난 1921년 9월 7일 4년제 공립보통학교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그다음 해인 1922년 4월 24일 남자 147명, 여자 6명, 모두 153명을 맞아 개교하였다. 1927년 6년제로 학년 연장 인가로 1928년 4월 1일 6학년으로 편성하였다. 1939년 일제에 의해 용성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41년도에 용성국민학교로 다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56년 3월 23일 송림분교를 설치하였으며 1957년 4월 7일 매남 4리에 구룡분교를 설치하였다. 1963년 3월 7일 송림분교가 송림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88년 3월 1일 다시 본교의 분교장으로 편입하였다. 1992년 3월 1일 구룡분교 폐교와 1992년 9월 1일 송림분교 폐교로 각각 본교에 통합하였다. 육동의 용천리 소재 용강국민학교가 1935년 4월 17일 간이학교로 개교하였는데 1995년 2월 28일 본교에 통폐합하였다. 1996년 3월 1일 전국의 초등학교 교명 변경에 따라 용성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개교 이래 100년의 성상(星霜) 동안 8,25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로 발돋움하였다. 교정에 자라고 있는 10여 그루의 노거수(老巨樹)가 긴긴 세월의 무게를 지켜오고 있다. 그간 용성초등학교가 민족 초등교육의 요람으로 지역사회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큰 집의 주춧돌이 되고 기둥과 중방, 대들보가 될 거목으로 자랄 수 있었던 데에는 용성인의 집념과 힘겨운 삶, 그리고 역사적인 소명이 그 단초(端初)가 되어 왔다. 용성면은 경산에서도 오지(奧地)로 알려졌으나 그 속에 용성초등학교를 거쳐 나온 동문들은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경향 각지에서 용성인의 위상 제고와 모교를 빛낸 인물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박주현(전 국회의원) 동문, 윤영탁(전 국회의원) 동문,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김일생(전 병무청장) 동문, 김정달(전 경산군수) 동문, 박재찬(전 경산군수) 동문, 김상권(전 대구중부경찰서장) 동문, 최희욱(전 경산시장) 동문, 강채규(전 고령군수) 동문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 외에도 군, 관, 정, 재, 학, 의료, 언론, 사법, 문화계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교를 빛낸 인물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이니 용성은 인물의 고장이요, 용성인의 자랑이라 하겠다. 용성면의 내력을 살펴보면 본래 삼한시대 노사화(奴斯火) 구역이었으며 이후 자인현의 상동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도에 자인현의 상동면과 하동면, 청도군 일위면 석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경산시에 편입되었다. 관할구역은 당리 외 19개 리이며, 동쪽은 청도군 운문면, 남은 청도군 금천면, 서는 남산면과 자인면, 북은 진량읍과 영천시 대창면에 접하고 있다. 이처럼 용성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곧 용성의 전역에 분포되어있는 지석묘(支石墓)가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있는 고죽리의 28기 고인돌은 약 150여 평에 달하는 평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줄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용성은 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장이며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수십에 달하고 있다. 용성의 주산이 용산(龍山)인데 이를 용산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부에 자리 잡은 퇴뫼식 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의 성곽으로 알려져 있다. 용산의 높이는 435.6 미터로 높지는 않으나 이산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용의 전설은 전국의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으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산을 명명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용성은 산자수명한 자연과 순후(淳厚)한 인심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수려한 자연환경, 맑은 물과 공기로 인하여 향후 쾌적한 근교 전원 주거 지역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이처럼 청정지역이며 신령한 용산과 또 다른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전해오는 구룡산(九龍山), 금박산(金泊山)의 정기가 한자리에 모인 평지에 용성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용성초등학교가 위치한 당리(堂里)는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의 상류에서 세 갈래의 물길 사이에 넓은 평야와 언덕으로 형성되어있다. 경산시 용성면 원효로 1405에 자리 잡은 용성초등학교는 현재 대지 11,532㎡, 체육장 5,979㎡, 합계 17,511㎡에 교직원실, 보통교실, 과학실, 컴퓨터실, 보건실, 어학실, 도서관, 유치원, 대강당, 종합학습실, 식당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 99,967㎡의 학교림을 보유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아동들이 선생님과 함께 꿈과 끼를 가꾸는 맞춤형 행복 배움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눈높이 교육으로 꿈이 있는 학교, 보람을 느끼는 교단을 만들어 남다른 생각, 배려하는 행동, 꿈을 가꾸는 용성인을 기르기 위해 교직원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교육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는 해마다 모교의 발전기금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운동장 옆에는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물이라 할 만큼 넓은 학교 숲이 자리 잡고 있다. 교목인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왕버들, 소나무, 팽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등 수많은 노거수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1950년대 용성초등학교 전경 용성초등학교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한해의 졸업생이 100명에서 250여 명으로 학년별 2학급에서 5학급까지 편성되었으나 그동안 산업화의 추세에 따라 젊은 층의 도시진출로 인하여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1970년대 이후 아동 수가 격감하였다. 그러나 용성을 빛나게 한 인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 8천여 명의 총 동문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거나 경향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선후배가 서로 밀고 당기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 이는 용성인의 자랑이요 보배라 하겠다.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선후배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에 젖어보며 지나간 10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가을하늘 높으고 바람 맑은 모교 교정에 모인 선후배는 어린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이다. 그 자리는 지나간 100년의 전통 위에 다시 오는 새로운 100년의 맹아를 틔울 씨앗을 뿌리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올해에 개최하는 총동창회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모교 교정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조형물을 건립하며 개교 100년사 발간, 모교 발전기금과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축하 한마당을 마련한다. 이처럼 뜻깊은 자리에 선후배 동문은 물론 지역사회 유력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시어 뜨거운 호응을 기대해 본다. 2022년 11월 5일(토) 10시 30분부터 용성농악단의 식전 축하공연이 펼쳐지며 이어서 총동창회 주관으로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기념식은 방송인 이상훈 MC의 사회로 진행하는데 허성근 총동창회장의 기념사, 이숙현 학교장의 경축사에 이어 국회의원, 경산교육장, 경산시장, 경산시의회 의장, 경상북도의회 의장, 전 총동창회장 등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며 교직원과 모교 재학생도 함께 참여한다. 그동안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공헌한 동문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며 재학생에게는 장학금과 체육복을 전달한다. 모교 재학생 대표가 축시를 낭송하고 재학생과 경산시립합창단의 협연으로 가야금 병창, 축가 등의 공연이 펼쳐지며 교가 제창, 시루떡 케이크 절단과 기념비 조형물제막이 이어진다. 오후 2시부터 축하 한마당이 펼쳐지는데 스타 온 주니어 예술단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된다. 개교 100주년 기념음악회 초대 가수로 구나운, 김동아, 나미애가 출연하며 총동창회 기수별 노래자랑, 동창생이 아닌 다문화가정, 기업인, 며느리 등의 노래자랑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행운권 추첨이 끝나면 오후 5시경이 될 것이다. 용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모교와 총동창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뜻깊은 행사와 다채로운 축하 한마당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허성근 총동창회 회장과 김상연 사무국장, 그리고 집행부 동문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며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또 선후배 모든 동문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드린다. 용성초등학교 제34회 松河 全命秀.
이진구(자유기고가) 추석을 전후하여 경산시와 경계한 대구 수성구청과 관할 동사무소에 많은 문의 전화와 항의성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경산시는 시민들에게 20만 원씩 준다는데 우리는 왜 주지 않느냐?” 라는 내용이다. 경산시가 외국인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경산시민께 1인당 재난지원금 20만원을 지불하고 있으니 옆 지자체 시민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가 산출한 올해 2022년 6~7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구매비용은 전통시장 평균 243,273원, 마트 평균 307,430원이니, 부부 지원금 40만 원 만으로도 추석 차례상은 넉넉히 차렸을 것이고, 모든 시민이 특별한 보너스로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경산자치신문에 글 쓴지 10여 년이 넘었지만, 보수당 단체장을 칭찬하는 글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지면까지 빌려 칭찬할만한 일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미래 지향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추석 전에 이렇게 전 시민께 지원금을 지불한 지자체는 경산시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첫 칭찬이 다소 쑥스럽지만 지원금을 받은 경산시민 한 사람으로 행복함을 전하고 미래 희망의 메시지에 고마움을 전한다. 매년 10월 둘째 주 이맘때가 되면, 미국 알래스카주 전체가 축제에 빠진다. 모든 주민께 지급되는 알래스카형 기본소득 '영구기금 배당금'이 지급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1인당 1000~2000달러 우리 돈으로 140만 원~280만 원씩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주민께 나누어 주는데, 4인 가족이면 460만 원~1120만 원이 되니 경제가 살아나고 축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소득 지급은 1980년부터 시작되어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영구기금 배당금)은 1년 최저생활비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이니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서민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어서 기본소득 지급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알래스카주는 미국 전체 50개 주 중에서 상위 1%와 하위 1%의 소득편차가 가장 적어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소득 하위그룹의 평균소득이 50개 주 중 가장 높다는 것이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 지급을 말하면 ‘사람 잡는 반풍수’ 학자나 교수들은 ‘기본소득은 좌익 빨갱이들의 주장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을 주 헌법에 명시하고 시행한 주지사는 완고한 우파이자 철저한 자본주의 실천 정치가인 제이 스터너 해먼드(Jay Sterner Hammond이다. “알래스카 원전에서 나오는 수익을 주 정부 소유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주민께 고르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그의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이 돈을 주 정부가 가져가면 공공 부분을 강화하는 사회주의형이 되니, 공화당원인 본인은 시장주의 원칙에 따라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기본소득 주장자들은 가장 강력한 보수 시장주의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세계 최고 갑부들이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 불평등을 조금 줄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가장 자본주의적 정책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본소득을 40년 째 시행되도록 기반을 제공한‘제이 해먼드’는 알래스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파 주지사로 앞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경산시의 재난지원금이 알래스카 기본소득과는 다르지만, 시장과 시의회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약 500억 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본소득 같이 모든 시민께 동등하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실천한 것에서 희망을 본다. 경산시장과 시의원이 보수의 가치를 실천하며 시민께 희망을 전하는 시기에, 소속당 국민의힘은‘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이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은 부자와 서민의 소득, 재산 격차가 상상보다 훨씬 더 심해지는 극심한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1% 부자들과 1% 대기업에‘횡재세’등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95% 서민을 위한 공공복지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불과 100여 개의 초부자 대기업과 전 국민 중 1% 내외의 초부자에게 세금을 연간 13조원이나 깍아주려 하면서도, 95% 국민을 위한 고작 6500억원의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없애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그나마 어려운 95% 국민이 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의 10%를 지원해주고, 전통시장, 골목상권 등 중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주던 것이 지역화폐이다. 이런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대다수 국민보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숨은 공약의 구체적인 실행안이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두 정책 중 경산시의 기본소득형‘재난지원금’지급이 미래지향적 보수 정책이어서 시민께 희망을 주고 있다면, 정부와 국민의힘에 의해 진행되는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은 보수 정책도 아니며 정의롭지도 못하며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진보는 물론,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보수도 곳곳에 있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모아 누가 뭐라 해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 삶의 질 높이기에 주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 한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단행한 경산시장과 시의원들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재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그리움마음이 빈듯하여뜰앞에 나왔더니별도 달도 먼저 알고풀잎에서 기다린다구름 한장 손에 들고달빛 불을 밝혀시 한 소절 올려놓고그대인 듯 바라본다
김미숙 별이 빛나는 밤 친구들이 메밀꽃 축제에 가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 걸려서 강원도 봉평에 도착했다. 일을 마치고 출발한터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버스는 한적한 시골에 우리를 부려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정이 넘어서 숙소에 도착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었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은 시골 어느 들판 한가운데 있는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였다. 어둠이 세상을 삼킨 듯 암흑이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하수가 눈부셨다. 흩뿌려놓은 메밀꽃 같았다. 은하수에 둘러싸인 별빛은 머리 위 눈앞에서 마구마구 쏟아졌다. 잠자는 숲 속 미녀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호두까기 인형처럼 발레를 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별빛이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에 골 깊은 계곡이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백천동이었다. 비취색 강물에서 황갈색 열목어가 노닐었고 잣나무 향이 은은하게 번졌던 곳이었다. 거기서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터전을 이루었으며 어머니가 태어났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도시로 떠난 후에도 두 분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계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 때면 나는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밤엔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저녁밥을 먹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녔고 밤늦게까지 매미가 노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밥상 앞에 앉을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고 기다리셨다. “임자 얼른 들어오게.” 할머니가 밥상 앞에 앉으면 그제야 우리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된장찌개 호박잎 찐 게 전부였지만 할아버지의 자상함 때문에 행복한 밥상이었다. 할아버지는 가끔 지게를 메고 이 십리 되는 오일장에 가셔서 장을 봐 오셨다. 그 속에는 일주일 먹을 반찬이며 손녀가 먹을 간식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멍석을 깐 마당 한 복판에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할아버지는 밤하늘의 별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어떤 날은 동화책에서 본 견우와 직녀, 왕자와 거지, 성냥팔이 소녀는 단골손님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도 달랐다. 봄에는 전갈자리 사자자리 여름엔 거문고자리와 견우와 직녀가 보였으며 가을엔 물고기자리와 고래자리가 겨울엔 쌍둥이와 오리온 자리였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곳의 별빛은 장관이었다. 어떤 때는 한 가지 색으로 보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엔 투명하게 비추기도 하였다. 은하수에 가린 별빛은 흐릿한 그리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보이기도 했다. 자연의 이치에 별들도 알아서 변화되어 갔다. 도시로 나온 후로는 별빛을 바라볼 여유도 별을 헤아리는 것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고개 들고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느 해 여름휴가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지라 빈 집터만이 반겨주었다. 마당에는 풀이 내 키만큼 자랐고 가로등이 없는 시골은 어둠이 빨리 몰려왔다. 저 멀리 개 짓는 소리만 들렸고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려왔지만 두 분이 없는 빈 집터는 허전함만 가득했다. 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한참 꿈속을 헤매다 눈을 떴다. 산속은 짙은 어둠만이 깔려 있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라디오를 켰다. 도시에서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룬다고 야단법석인데 그곳은 너무 추워서 잠들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따뜻했던 두 분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자정이 넘어서 차 안에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그동안 잃었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 왔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동화 속 이야기며 세월의 나이테 속에서 잊고 있던 은하수를 찾았다. 화려한 무늬를 뽐내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빛과 은하수가 내 가슴에 펌프질을 해 대었다. 하늘의 별빛과 은하수를 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올랐고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도 생각났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는 지금쯤 엄마를 찾았을까. 드넓은 우주의 어느 별자리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을까. 소녀는 엄마와 칠면조 요리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동화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쯤 어느 별이 되어 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별빛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동화 속에서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을 잃어버린 동안 우리 삶도 그만큼 팍팍하고 온기를 잃어왔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메밀꽃 축제가 한창인 봉평에서 하늘 높이 떠 있는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다. 은하수의 별빛 속에서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웠고 동화 속 인물들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마음 설레게 하던 밤하늘의 별빛과 은하수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듯 행복했다. 우주에 떠 있는 별이 빛나던 은하수는 봉평의 하늘에서도 함초롬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문학은 무엇이며 그것은 행복경제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을까? 문학을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그 의미의 범위와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 할 수가 있지만, 대체로 그 의미를 풀어보면, 문자에 의한 예술작품,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일기, 기행문, 전기문 등을 통해서 글자로 인간의 생각이나 감성을 표현해 내는 진·선·미 등의 가치추구 행위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곧 인간다움을 찾는 행위이다. 인간다움을 찾는 행위는 진정한 행복을 찾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문학은 사람이 언어를 표현 매체로 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고, 이를 통한 자아의 발견과 바람직스러운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글을 통한 교육이자, 지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문학을 곧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해 감에 따라 문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학문과는 달리 문자로 인간의 내면세계의 가치를 표현해 내는 작품 활동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도리나 가치를 표현하는 작품행위이다. 자유나, 정의, 사랑, 희망 등과 옳고 그름의 가치를 추구하고, 작가가 추구하는 어떤 특정의 가치나 주장들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작품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학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창작활동이다. 글을 통해서 작품을 통해서 사회와 시대를 고발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를 세워나가는 활동이다. 문학은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해나가는 작품 속에서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어도 한다. 동서양의 고전들은 대부분 문학을 통해서 인간성의 부활을 시도했었다. 동서양의 많은 작품들은 문학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관조하고, 인간다움을 다양한 형태로 추구해나간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로렌스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치는 무리한 배금주의 사상을 비판한다. 삶에서 순수한 열정이 특출했던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상업자본주의 본질을 들어 전쟁과 무역과 해적”은 삼위일체라고 갈파하기도 했다. 괴테는 상업 또는 상업유통으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부의 축적에 중점으로 두고, 그것을 기초로 하는 사회의 상부구조와 문화의 발전을 기대한 것이다. “전쟁과 무역과 해적이 삼위일체”라고 한 것은 상업자본의 생리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과 <젊은 상인에의 충고>에서 기업가정신 또는 자본주의 정신을 잘 갈파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후일 막스 웨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빛나는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프랭클린이 든 기업가의 덕성은 부유해지기 위한 덕성 13가지로 표현되는데 섭생, 침묵, 규율,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근면과 절약이 가장 강조되었고, 웨버가 보는 기업가는 이러한 금욕적 윤리에 기초하여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작품<닥터 지바고>에서 문학을 통한 시베리아 동토의 얼어붙은 휴머니즘을 고발했다. 그는 볼쉐비키들이 저지른 전쟁으로 무참히 희생되는 인간의 사랑과 문학 그리고 가족의 별리를 그렸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요소들이 전쟁과 총포 속에서 눈발처럼 사라지는 소련사회를 고발 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인류애와 전쟁의 무용함,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고발했다. 이렇게 보면, 문학은 인간성을 개발하고 또한 인간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소명을 갖고 있다. 문화경제학의 창시자 존 러스킨은 참다운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서 생명력과 인간다움을 귀하게 평가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은 단순한 부가 행복의 지표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사람다움 즉, 사랑, 정의, 평등, 의리, 협동, 용서, 인내, 관용, 지조, 겸손 등의 가치가 중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문학은 인간다움의 추구를 통해서 인간의 행복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휴머니즘 추구행위이다. 한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문학적 경제학”과 “과학적 경제학”이 논제에 오른 적이 있는데 이는 경제학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 한 셈이다. 문학적 경제학은 말로 하는 경제학이고, 과학적 경제학은 수리와 과학으로 하는 경제학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으나, 보다 본질적으로 분석한다면, 문학경제학은 경제 현상을 규범적 가치와 철학적 가치에서 분석하는 경제학이고, 과학경제학은 경제현상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경제학의 한 분석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경제현상을 나누어 이해한다면 문학적 경제학은 경제현상의 당위적 과제들을 분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작품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언어적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특정의 작품 속에 내재하는 특정의 가치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성격과 가치 등을 통해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표현해 낸다.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작품속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저자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비추거나 그려 가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다움의 실현을 통한 인간의 궁극적 가치인 행복의 추구이다.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통한 특징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한 인간성찰과 인간성의 발견이다. 이를테면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은 여성의 인권해방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잠재된 인간본성과 기만을 탐구하고, 인간의 진실을 확립한 문학적 성찰중의 하나이다. 아일랜드 문학가인 버나드 쇼는 작품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다함께 비판하며 경제학의 중요성은 인간성을 복원하는 인간관계를 통한 사회적 발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랑으로 결합된 인생을 정상적으로 사는 과정에서 정직함을 알고, 귀하게 생각하며 그것을 통한 삶의 행복을 찾아내는 사회로의 복원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문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참다운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진실을 찾는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인간의 가치 이를테면, 권력, 명예, 돈과 부 등에 대한 인식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과감히 배격하는 용기 있는 행동도 문학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려낸다. 그렇게 보면 문학은 인간이 바르게 살고,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며 그렇게 살아서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탐구활동이기도 하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인생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문학은 인생의 길잡이이며, 행복의 안내자인 셈이다. 문학과 행복경제는 인생에서 참된 행복을 향수하기 위하여 문학적 성찰과 이해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꼭히 모든 사람이 전문적인 문학인은 아닐지라도 문학이 추구하는 세계를 알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에서 적절하게 활용하고, 그 가치과 철학을 중심으로 일상을 살면 인간의 행복의 파이는 커질 수가 있다고 본다. 문학의 대·소작들이 밝히는 인간성찰의 모습들을 잘 습득하여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좋다. 행복경제는 행복을 실현하는 최선의 경제적 선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경제적 선택만이 아닌 문학적 가치의 선택도 포함시켜야 만이 진정한 행복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문학은 인간행복을 바르게 실현하는 길잡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행복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분야이다. 인생의 중요가치들이 문학을 통해서 잘 표현되고 또한 명쾌하게 다듬어 진다는 사실은 문학적 바탕이 행복을 위한 경제적 선택을 최적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우주_정석현경북 경산중앙대학 연영과 졸업경산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영남문학 등단영남문학작가회 회장남천 둔치를 걸으며 정석현빗방울 나르던 구름군데군데 징검다리를 만들어가을바람 타고 구름다리 건너훨훨 날아보는 남천 둔치가을바람을 가슴에 안고 힘차게 걸어 보자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초가을 색깔로 그림을 그리고젊음은 희망찬 걸음걸이로 내일을 그리며중년은 건강을 위한 체력을 단련하는 그림을 그리며노년은 알쏭달쏭한 빛깔로마음에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힘차게 걷는 노라면그림 속에 실체와 무형의 아름다움을마음속에서 뇌로 회전하는 생각은최고의 장수비결은 약보다 식보가 낫고식보다 행보가 낫다는 허준 선생의 말을 되새기며멋있는 걸음걸이로 건강한 풍경에 초점을 맞춰본다.젊었을 때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려보며그 순간들이 남천 둔치에 아롱거린다.살아온 지난날의 희,노.애.락.을 반추하며앞으로 더욱 건강한 생활을 보람되게 살고자남천 둔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그윽한 가을 향기에 취해내 마음속에 멋진 가을 그림을 그려본다.
환경부와 환경보전협회가 주최하고, (사)경북소비자공익네트워크와 경산시가 함께 주관하는 “2022년 비점오염관리를 위한 지역 거버넌스 구축·운영” 사업을 실시했다. 22일 실시된 이 사업은 비점 오염 저감을 위한 우리동네 농약병 수거활동 통해 지역농민들에게 비점오염 저감을 통한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의 중요성을 알렸다. 신경순 회장은“비점오염 저감을 위한 사업을 통해 지역 농민들이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에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홍보 활동을 실시하겠다”고 전했다.
김 미 경 생의 마지막 창이 창공을 향하여 열렸나 보다. 불쑥 날아오른 콘도르 한 마리가 빙빙 선회하기 시작한다. 대신 작별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낯선 길을 헤맬 영혼을 위해 마중이라도 나온 것일까. 콘도르는 마지막 손을 흔들듯 선회하면서 하늘 높이 오르더니 마침표 같은 소실점만 남긴 채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정말 하늘로 올라가셨나 보다. 막 시토가 끝난 엄마의 무덤은 울다 만 자식들의 눈두덩처럼 아직도 붉다. 모두들 갑자기 나타난 콘도르를 올려다보느라 하늘에다 눈동자를 붙박았다. 오늘따라 청명한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높고도 멀다. 저마다 못다 한 작별의 말들이 많은지, 콘도르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인 하늘에서 눈을 거두지 못한다. 콘도르는 잉카의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 담긴 독수리의 일종이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 어찌 보면 지상의 모든 어머니들도 영웅이지 않을까. 한 생명을 잉태하고 또 그 생명을 죽을 산고를 다해 낳아 기르고, 마지막 자신이 숨 가두는 순간까지 자식들 걱정만 하다가는 존재가 바로 엄마다. 약하지만 가장 강한 존재가 엄마인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콘도르가 안내하는 듯싶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이 년여 시간 동안 엄마는 마지막 생의 고비를 넘느라 안간힘을 쓰셨다. 대장암 3기에 발견된 암 덩이는 떼어내도 달라붙는 깜부기처럼 끝까지 생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두 달 가량은 거의 병원에서 보냈다. 마지막 길이 될 줄도 모르고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병상 밑에 놓여있는 신발만 하염없이 내려다보셨다. 더 이상 퇴원이 힘들다는 의사의 통보를 듣자, 엄마의 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딸인 내가 마지막 모험을 시도했다. 암환자들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재택 호스피스를 신청하고 무작정 집으로 모셨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던 열이 가장 큰 걱정이었으나, 집에 돌아온 엄마는 오히려 심적 안정을 되찾았다. 날이 갈수록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쌀을 갈아낸 미음을 매일 끓였다. 그나마도 쌀을 갈아서 뻑뻑한 쌀 물만 받은 뒤 쌀은 한 줌 겨우 넣은 뜨물 같은 미음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바로 구토와 화장실을 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우리는 무엇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의 창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서도 먼 산 바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이 최고다. 집에 오길 잘했어.’ 혼잣말처럼 자꾸 되뇌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늘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잦아졌다. 세 시간 간격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도 삼십 분에서 한 시간으로, 거의 한 시간마다 화장실 가서 한 시간을 머무는 셈이었다. 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저귀를 사용하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질색을 하셨다. 아마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기어 나오는 엄마의 두 눈은 뿌연 안개가 서려 있었다. 엄마의 창은 언제나 ‘맑음’일 줄 알았다. 자식들을 바라다보는 두 눈은 유리처럼 맑아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훤히 보였다. 멀리서도 자식들이 행여나 별일 없는지 엄마의 창은 늘 열려 있었다. 삶에 지친 자식들은 수시로 그 창으로 뛰어갔고, 그 창을 다시 나올 때면 겨처럼 묻은 상처들도 말끔히 닦여 나왔다. 그런 엄마의 창이 점점 닫혀져가고 있다. 다행히 하던 일을 접고 쉬는 내가 엄마 곁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그동안 사업에 매달려 사느라 친정 부모님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명절조차도 친정에 들르지를 못했다. 시집이 종가라 차례가 끝나기 바쁘게 일터로 뛰어가야 했고, 오히려 그런 딸을 돕기 위해 엄마는 매장으로 뛰어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명절에는 주변 식당도 문을 닫기에 종일 굶을 딸자식을 위해 직원들 식사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시곤 했다. 이제야 여유를 갖고 돌아다보니 엄마는 벌써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유독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집에서 사십 일을 더 머무셨다. 떠나시던 날은 종일 미동도 없었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문득 미국과 군대에 가있는 두 아들이 떠올랐다. 폰을 통해 손자들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자, 거짓말처럼 ‘응’ 소리가 엄마의 가슴에서 울려나왔다. 그것은 육신의 터널을 뚫고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온 엄마의 마지막 신음 소리였다. 피붙이를 향한 엄마의 창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열려 있었던 게다. 그리운 음성을 모두 들은 후에야 엄마의 창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엄마의 안식처를 절에서 관리하는 납골묘로 정했다. 금오산 자락 끝에 있는 절이다. 절에서는 칠 일마다 일곱 번의 재를 지낸다. 재를 지내러 갈 때마다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혹시 오늘도 보이려나. 마지막 재를 지내는 날, 거짓말처럼 콘도르는 또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났다. 훨훨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면서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이렇게 훨훨 날아다니잖니. 그래, 그래 너희들도 잘 지내.’ 라고 하듯이. 사실 콘도르가 아닌 그냥 독수리였을 테다. 설사 독수리면 또 어떤가. 어미 잃은 자식들 눈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마지막 작별인사처럼 보였다. 요즘도 엄마가 생각날 때면 종종 절로 달려간다. 까만 묘비석이 엄마의 눈동자처럼 반짝반짝 우리를 반긴다. 육신은 비록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엄마의 창은 여전히 열려있나 보다. 묘비 앞에서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돌아서는 발길은 또 훨씬 가벼워진다. 그래, 이제 엄마의 창은 벌써 저 높은 하늘에서 말간 별빛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명절이 가지는 행복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이며,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지출하는 소비와 금전의 지출은 경제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생동감 있게 하고, 구체화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한가위는 농업사회를 살아오던 선조들이 정성스레 가꾼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대명절이다. 한가위는 嘉俳(가배)라는 신라시대의 이두식 표현인 한 가운데 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한가위를 추석으로 일컬으며, 설과 함께 우리나라의 2대 명절로 생각한다. 명절은 글자 그대로 이름 있는 좋은 날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명절에는 삶의 현장에서 하던 일상을 멈추고,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나 중심가정으로 모여 함께 안부를 나누고, 즐기는 기쁜 날이다. 명절은 피를 나눈 가족과 형제들이 모여서 삶의 기쁨을 확인하고 사람다움을 찾는 날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뿌리를 알아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은혜입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와 보답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옛 부터 “孝는 百行之本” 이라고 했다. 조상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백가지 행동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행동의 기본이 됨을 말한다.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날이다. 추석은 특별히 온 가족이 한 해의 풍년 농사에 감사하며, 하늘과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기도 하다. 조상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사는 마음 자세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기본적인 자세이자 도리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대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3천만 명이 넘는 민족의 대이동을 한다. 조상을 존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그해 지은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 진실한 마음을 담아 차례를 올린다.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묘소를 찾으며 참배도 한다. 이러한 행사를 하는 한가위는 민족의 범사회적 도덕재무장이며, 정서의 대대적인 훈련기간이기도 하다. 사람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의미 깊은 의식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추석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풍요한 추수를 하게 해준 하늘 님과 조상,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과 소중한 친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심성을 다지고 확인하는 행복의 실천 장이다.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자리이며, 사람다움을 느끼고 배우는 가족공동체 교육의 자리이다. 함께 좋은 음식을 만들고, 제례 일을 같이 하며, 서로간의 존재에 감사하며,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행복을 나누는 자리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하늘의 법칙을 배우는 자리이다. 그것은 명절이 주는 행복경제학이다. 경제원칙에 의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행복경제의 자리이다. 좋은 마음과 좋은 일을 위해서 귀한 돈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은 왜 애써 돈을 버는가? 소중한 일에 쓰기 위함이다. 일찍이 천재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사람들은 왜 돈을 보유하고자 하는 질문에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를 든바 있다. 돈은 무엇보다도 우선 거래적, 예비적 동기에 의하여 벌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용처에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쓰는 일, 즉 경제행위는 필요한 욕구를 실현하는 행위이니 즐거운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소정의 돈을 쓰는 행위는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다. 적당한 소비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나 모두 미덕이 되는 일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명절에 쓰는 돈은 미덕이며, 애민을 실천하는 행복실현 행위이다. 추석에는 각자가 귀한 돈으로 명절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돈으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표현한다.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나누는 명절은 행복의 실천장이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국 돈은 합당한 필요에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잘 벌어야 하고, 또한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한다. 잘 번 돈과 잘 쓰여 진 돈은 세상을 밝게 하는 묘약이다. 평소에 잘 쓰여진 돈과 같이 추석 명절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적절히 쓰여 진 명절지출은 사람다움을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는 적당한 소정의 명절비를 드리는 것은 도덕심을 키우고 서로에게 행복의 파이를 높인다. 조부모나 어른들은 꽃보다 귀한 손주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명절 용돈을 주는데 이는 서로에게 사랑과 소중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명절 용돈을 주는 조부모도 기쁘고, 받는 손주들도 행복한 윈윈의 행복경제이다. 옛 부터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다. 현대는 시장 자본주의 사회이다. 돈의 소중함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모두가 슬기롭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서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명절을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돈의 지출이 필요하다. 명절날의 가족 간의 금전의 나눔은 돈의 미학이며, 행복을 위한 슬기이다. 서로 간에 적당한 돈을 지출하는 명절비는 행복경제학이며, 효율적인 행복의 실천행위이다. 돈에는 무절제한 낭비도 금물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것도 문제이다. 그것은 반행복경제이며, 비능률의 경제학이다. 좋은 일에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돈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묘약이며, 삶의 효율이자 합리적인 행위이다. 효율과 합리를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녀야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끈질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는 건재하다. 한가위는 '팔월의 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한가위에서 ‘한’은 “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음력으로는 가을을 상징하는 달이 7,8,9월이다. 이 석 달 가운데 8월은 중간이고, 15일은 그것의 중앙에 위치한다. 그래서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한 가운데임을 의미한다. 하늘이 높고 푸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한가위는 분명 하늘이 내린 축복된 날이다. 축복된 날은 축복을 받은 만큼 합당한 경제적 지출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산업은 농업이고,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조건이다. 현대와 같은 농사를 위한 인위적인 시설 설비가 빈약하던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천기 즉 하늘의 뜻이다. 농사절기에 가장 좋은 한가위는 하늘의 뜻에 따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의 계절 가을에 있다. 농업사회에서 한해를 풍년으로 농사짓는 일보다 더 농심을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한가위는 풍요이자, 감사이자, 기쁨의 상징이다. 물질적인 풍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은 그 만큼 행복실현의 가능성을 높인다. 옛 부터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시장자본주의가 시대적 가치가 되고 있는 오늘날, 적절한 돈의 사용과 나눔을 실천하는 한가위는 행복실현의 날이다. 한가위 명절에는 돈보다 몇 백배 귀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인연이 있는 소중한 이웃을 위하여 멋진 행복 경제를 실천하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가위 명절이 주는 중요한 의미를 새기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지난 8월 10일 경산 실내체육관에서 ‘제28회 경북여성농민한마당’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경북의 여성 농민들이 모여 사기진작과 문화 및 교류를 위한 화합의 자리이다. 경상북도가 후원하고 지역 정치인뿐 아니라 유관기관 단체까지 참가하여 축하하는 말 그대로 경북 여성 농민들의 잔치 자리이다. 이 잔치 자리에 고춧가루를 끼얹는 일이 발생하였다. 윤두현 국회의원을 대신하여 참석한 부인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의 격려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지역기초의원, 도의원들이 함께 자리를 떴다. 남의 잔치 자리에서 격려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대한민국 정치가 얼마나 썩어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선거 때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그렇게 목에 핏대를 올리고서는 당선만 되면 유권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이 작금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말로는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권력을 쥐고 나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수십 명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허위사실 유포라며 역으로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하고 있다. 유권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협박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다. 게다가 당선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기초의원, 도의원들은 지난 5월 땡볕에 외친 말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임기가 시작되고 채 두 달이 되기 전에 권력의 눈치를 보며 시민을 외면하는 것.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기는 한가 의구심이 든다. 반드시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사과해야만 끝맺을 수 있는 사안이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권력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할 일꾼을 뽑은 것이지 그 배우자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유권자와 가장 밀착해서 일할 사람을 뽑았지, 국회의원 배우자의 눈치를 보는 간신배를 뽑은 적이 없다. 반드시 사과하라 진보당 경산시위원회는 이 문제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엄중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약속을 할 때까지 여성 농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22년 9월 2일 진보당 경산시위원회
장 사 현- 경북 봉화 출생.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저서 『수필문학 총서』 , 『자서전 쓰기의 정석』 외 다수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우수도서 심의위원주요 문학세미나 발제위원, 각종 문학공모전 심사위원- 대통령기장, 정부표창, 한국문인 수필문학상 본상, 봉화군예술인상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부회장 대구문협, 영축문학 이사- 영남대학교 문학예술과정 책임교수,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장민족의 웅대한 기상이 살아 숨 쉬는 발해마을* 장사현저 광활한 태초의 땅을 수복하고중원을 호령하던 해동성국 발해암흑의 광야에서 붉은 피를 새기며30성상을 휘달리며 찬란한 새벽을열어주신 태조 대조영 황제선조의 웅대한 기상을 천고千古에세세토록 남기려고 남하南下 이후,몽고군을 격퇴한 태금취太金就대장군보라!천하의 길지吉地에 터를 잡아5천년 역사 중에 민족의 자존을보존하게 한 태순금太舜琴 선생가가호호家家戶戶 명패에 새겨진봉황은 날개를 펴고거리의 깃발은 동북공정에 맞서맹렬猛烈히 휘날리고 있다.*경북 경산에 있는 태씨 집성촌
이 재 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천석꾼 면장님 따님하도 이뻐 너무 이뻐열아홉에 꽃가마 타고 오셨네.열일곱 식구에 큰 능금밭 많은 논밭능금꽃이 피고지고 일흔다섯번허리에 찬 곶간열쇠도 닳았네한평생 눈문과 희생과 헌신으로베풀고만 살아오신 나의 어머님이제는 만인의 어머니가 되시어조용히 누워만 계신다낙엽이 지고지고 꽃이 다시 피어도긴긴 하루를 천정말 쳐다 보신다다음 세상에는 하늘에별이 되시고 달이 되소서불효자는 밤마다 쳐다 볼래요
김 미 숙 큰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졌을 때였다. 일 년을 더 공부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굳이 도시로 고집했다. 급기야 인터넷을 통하여 방을 얻어놨으니 짐만 옮겨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할 수 없이 옷 보따리와 이불을 챙겨서 아이가 얻어 놓은 방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원룸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랐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번잡한 거리에 자리 잡은 것도 모자라 네 식구가 발을 다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두 평 남짓 될까. 책상과 의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일인용 침대는 책상 한 귀퉁이 밑으로 반쯤 들어가 있었다. 아들이 침대에 누웠더니 몸의 반이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한 면이 창문으로 된 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다. 삼월이 시작되었건만 방 안은 온통 냉기로 가득했다. 8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원룸은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칼바람 추위에 따뜻하게 해줄 히터도 없었다. 끼니가 더 문제였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웠다. 뭐든지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음식 한 가지도 맛을 음미하였고 모양과 색깔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학원 시간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찾아 먹고 설거지와 청소며 옷가지도 알아서 했다. 여태 부모 무릎 밑에 있다가 갑자기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장구치고 북도 쳐야한다니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었다.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지만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도 이런 마음 이였을까. 여고를 졸업한 나는 도시로 나와서 회사에 취직 했다. 처음에는 한 달 쯤 지났을 때 가까운 곳에 단칸방을 얻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렸더니 곧장 기차를 타고 달려오셨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오셨다. 두 평 남짓한 방은 다리도 못 뻗고 새우잠을 자야겠다고 하셨다. 내 방이 생겨서 신이 난 나와 달리 어머니는 이렇게 작은 방은 처음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큰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어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홑청에 솜을 넣어 만든 이불이었다. 딸이 취직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동안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건만 방이 너무 작아서 이불은 다 펴지도 못하고 반은 접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동생들에게 일찍 어머니 품을 내 준 나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그날만큼은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니 팔을 베고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살다보면 더 큰방을 갖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독이셨다. 그건 아마 어머니의 소원일 수도 있었고 맏딸인 나의 앞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 년 사글세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시 그 방을 재계약했다. 전세로 옮기고 싶었지만 적금 탈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좁은 내 방으로 들어가면 적막강산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갈 곳은 오로지 두 평 남짓한 내 방 뿐이었으니까. 가족과 다 함께 살 때는 늘 꿈꾸었던 나의 방이었다. 네 명의 동생들과 한 방에서 지지고 볶고 싸울 때면 온전한 자유를 누리길 얼마나 바랐던가.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막상 내 방을 갖고 나니 동생들이 그립고 부모님이 애타게 보고 싶었다. 어느 초겨울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썰렁한 방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얼른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연탄을 피웠다. 깔아놓은 이불을 덮고 잠시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는 들렸다. 딸 시집보냈다며 떡을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줌마는 덜컥 겁이 났다. 바로 119를 불렀고 달려온 소방대원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내 입과 코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나의 첫 방을 떠났다. 2년 부었던 적금을 탔고 좀 더 넓은 방을 구했다. 두 칸짜리 방이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옮겼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보다 짐이 두 배 정도 늘었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한 명씩 순서대로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니 옛날 나의 첫 방이 너무 궁금하였다. 찾아가 보았더니 도로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에게나 첫 방은 잊지 못할 공간일 것이다.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딜 때처럼 첫 방은 설렘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신의 첫 방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환 학생과 인턴으로 갈 때는 몇 달 동안 비워 두었던 방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을 거쳐야 하겠지만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두 평 남짓한 그 방은 잊지 못하리라.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인간의 행복은 문화와 경제라는 두 가지 개념에 의해서 잘 실현되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인 삶과 풍요한 경제는 구체적인 행복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또한 삶의 중심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애기할 때, 행복의 내면에는 문화라는 개념이 항시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을 말한다. 문화의 享受는 행복의 수준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인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의식체계인 문화를 가미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의식체계는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삶의 편리성과 합리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문화의 추구형태를 분석해 보면, 문화는 眞·善·美 그리고 聖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이 같은 인류적 가치들이 보다 고차적인 욕구인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도덕과 인간본성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조화롭게 투영되는 모습을 인류역사는 높이 평가해 왔다. 그래서 인류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富의 추구와 기나긴 문화가치의 추구가 함께 유지되어 온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은 그 시대의 가치와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해 온 값진 결과들이며, 이를 통해 행복실현의 이상을 성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행복을 실현함에 있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문화적 욕구와 그 지향성이 특별하다는 점이다. 이성적 판단으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참된 행복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통해서 얻은 결과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문화적 가치를 실현하고 추구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행복감을 성취해 나간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예술품이며 지적자산인 문화유산들은 모두가 문화적 욕구를 추구해온 인간의 삶의 모습들이다. 어느 시대나 인간은 행복실현의 절대적인 부분을 문화적 욕구의 실현으로 채워왔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소득이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는 증가하며, 문화적 욕구의 실현은 고차적인 행복을 향수하는 삶의 모습과 직결된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소득증가와 늘어나는 레저시간을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데 할애하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소득과 여가가 늘어나면, 품위 있는 미술전시회나 음악회를 즐기고 싶어 하고, 문학적 행사나 고급 레져 프로그램을 향수할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행복실현의 절대적인 비중이 문화와 관련된 부분임은 이미 실증되고 있다. 이제 문화는 인간생활의 일상이 되어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인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도 문화적 컨셉이나 컨텐츠는 필수 부분이 되었다. 문화적 감각이 경제와 행복의 질과 수준을 결정한다. 또한 문화적 감각이 한 나라의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문화는 모든 산업과 개인적인 삶의 성패를 결정지우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상품에 문화적 부분이 체화 되어야 하며, 기업은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다. 개인의 삶에도 문화적인 소양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모든 상품의 생산이나 소비에도 문화적 요소는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문화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취업이나 사회생활에도 문화적 자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점점 더 높아가고 있는데 그 결정적인 요인은 한국의 문화수준이 가져온 결과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스포츠 속에서의 예술성과 BTS의 세계적인 인기, 국산영화의 세계영화계 속의 위상강화, IT를 비롯한 문화적 소양과 기술로 무장된 한국의 반도체 및 전자기술 수준에는 문화강국 코리아의 수월성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고, 그것이 21세기 어드반스드 코리아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21세기를 맞이하여 한국인들이 가진 문화적 수월성이 국제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선도해가고, 그것이 한국의 부와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 문화는 이제 개인 행복실현의 필수분야가 되었고, 국가사회는 문화적 컨텐츠를 여하히 관리 발전시키느냐가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는 이제 경제와 대립되는 개념에서 경제와 공생·협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에도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문화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적 경쟁력은 그 자체가 국가적 경쟁력과 직결되고, 산업 및 경제적 경쟁력과도 연결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상품을 선택할 때도 디자인을 중요시 한다. 상품선택의 중요 요인으로 스마트한 디자인을 들고 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하게 일하고, 스마트한 문화를 즐기는 스마트문화 세대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폰이 아닌 종합 개인 생활문화의 소통장이 되고 있다. 문화 소통을 하며, 음악과 미술, 스포츠, 게임을 즐기며 쇼핑과 비즈니스를 함께 한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복합생활문화의 실현장이다. 종합적인 생활문화를 즐기면서 일도 하고, 인생의 궁극적 가치인 행복을 실현해 나간다. 그들은 문화를 소비하며 창출하는 문화와 경제가 공생하는 시대에 지금 살고 있다. 인류발전의 역사적 과정을 보면, 인류는 자연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문화 친화적인 모습으로 생활양식이 변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문화는 경제와 공존하는 형태로 바뀌어 왔다. 본래 문화는 인간의 정서나 감정에 바탕을 두며, 경제는 인간의 합리성과 실증성에 근거하지만, 이제 문화와 경제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등장한 공공경제학이 문화를 경제학의 영역에 들어오게 했다. 인간의 삶의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는 문화와 인간의 삶의 물량적 측면을 다루는 경제학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가 발전하던 시대에 문화도 발전했다. 오늘날 시장자본주의가 세계화를 선도하는 상황에서 문화는 경제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는 도저히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1세기는 지구촌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문화생활을 향수하는 고급문화소비 시대이다. 따라서 문화와 경제를 고려하지 않는 행복은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21세기이다. 보편적인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문화적 행복경제 실현을 위한 국가사회의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산소방서 소방교김 풍 민 코로나19가 빠르게 재확산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방역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휴가철인 만큼 다중이용업소 이용객 증가는 막기 어려워 이로 인한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시기이다. 지난 4월, 서울의 고시원과 제주도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업소에서 왜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자주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영업주 및 이용자의 안전관리 의식·능력 부족에 있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2,082건 중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862건으로 41.4%를 차지한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다중이용업주는 물론, 그 종업원도 소방안전교육(2년 이내 1회 이상)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하지만 종업원 안전교육이 미흡하고, 이용객 또한 안전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 둘째, 소방시설·피난시설 작동 불량으로 인한 급격한 연소 확대다. 사망자가 발생한 다수의 화재에서 스프링클러·경보설비 작동 불량사항이 발견되고 있고 영세사업자인 경우 대부분 화재안전시설 투자에 미온적이다. 셋째, 유흥주점·단란주점·노래방·고시원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좁은 공간 내 다수의 구획된 실이 있고, 내부통로는 좁고 복잡하다. 또한 실내장식을 위해 도료 등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질식 위험이 높다. 그렇다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불나면 대피먼저’가 최우선이다. 물론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고 119신고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할 행동은 안전한 장소로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다. 안전한 대피방법은 ① 불길 속을 통과할 때, 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② 자세는 최대한 낮춰 이동한다. ③최대한 외부나 옥상으로 나가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만약 출구가 없다면 연기가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을 적셔 문틈을 옷 등으로 막고 휴대폰으로 신고하거나 창문을 통해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추가로, 평소에 건물의 비상구 및 주요 비상계단 코너 등 피난 시설 인근에 물건이 적치되어 있는지 수시로 확인 후 제거하면서 안전 관리에 힘쓴다면 유사시 대피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휴가철 다중이용업소 방문 전, 반드시 안전수칙과 유사시 행동 요령을 숙지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휴가가 되었으면 한다.
소우주 정 석 현ㆍ경북 경산ㆍ중앙대학 연영과 졸업ㆍ경산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ㆍ영남문학 등단ㆍ영남문학작가회 회장생각할 줄 알고사랑해주는 것도 알며해롭게 하는 것도 알아 살아 있는가 보다 기쁨과 슬픔 고마움과 미움을 가르치며감동을 주는 가슴이 있어더러는 우리의 지배를 받는 척하지만 크게는 우리를 지배하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헤아릴 수 없이 간직한 오묘한 그대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도 예쁜 꽃들의 웃음도그리고 기어코 떠나보내는 이별의 슬픔도그대로부터 기인한 것임에 그 위대함에 주눅 든 채 순종하게 만드는 그대산을 보며 높은 가슴 배우고바다를 보며 넓은 마음 배우고하늘을 보며 끌없는 베풂을 배우며가슬러 오르지 않는 물을 보며순리를 배우라고 골고루 만들어 놓았지만우리는 그대 세상이 궁금하여 달을 따러 가고 별을 가지러 가고공기를 오염시키고 바람 길을 막고그대 심장의 기름을 퍼내고 물길을 틀어 놓았지그래서 순리를 거역한 죄 벌로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온 세상에 뿌려자구에서 수천만 명을 떠나보내고그 위력으로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나 보다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그대키워 놓은 생명체는 기어이 다시 거두어 가고인간이 저지른 죄는 여과 없이 벌하는 유아독존그러나 그대의 말 없는 계시에 따라 어울려 사는 세상이 좋아지금은 나의 시간을 주셨기에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가 활짝 웃는 꽃이 되었다가포롱포롱 날아가는 새가 되어보네그대는모든 걸 탄생시켰다가언젠가는 되가져가는 부메랑인 것을
송학 김시종ㆍ제6회 송암문학상 수상ㆍ<영남문학> 영남문학 신인상 수필 등단ㆍ제50회 민족통일 문예대전공모전에 대구광역시 협의회 회장 상 수상ㆍ<한국경찰문학>발전 유공 수상ㆍ시집[봄의지열](1958년) 50여 수년 전 일이다. 남과 북이 이념과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냉전이 심각할 때다. 젊은 시절 문학과 영화 예술에 심취되어 서울 충무로와 사대문 안을 배회할 무렵 서울 인구는 6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대구에는 80만 명이 살았다. 서울시청 서편에는 조선호텔과 반도 아케이드(arcade)가 있었으며, 건너편에는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물산 본사 건물이 있었다. 유명시장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이 있었지만, 외국 관광객이 찾은 곳은 고려민예사와 반도 아케이드였다. 그곳에는 귀중품과 한국 제품을 홍보하는 장소로 외국인이 많이 찾은 관광지이기도 했다. 왕십리 방향에 워커힐 호텔이 있었으나 그 일대에는 농민들의 농경으로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를 듯 진동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충무로에는 영화인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단역 배우라도 출현키 위해 경쟁이 치열하였고, 300원짜리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는 시절이기도 했다. 정부는 청계천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고가도로 공사를 위해 전철 레일을 걷어내는 시기였다. 사대문 안쪽에는 미도 백화점과 화신 백화점이 유일하였다. 비록 휴전협정은 되었지만, 군사 분계선에는 피아간에 총성이 그치지 않았고 무장 공비 침투가 빈번히 출몰했었다. 정부에서는 경제 개발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차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다. 당시 국내에 미군이 칠만여 명이 주둔할 때 도시와 농촌에서는 미군을 상대로 먹고살기 위해 가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주한미군은 토요일이 되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미화를 뿌리며 일본 여성으로부터 위안받으며 군 복무를 할 시기였다. 5.16 쿠데타 후 군사 정부는 공직 사회에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사람을 추출하여 국토건설단에 편입시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혁명 정부는 과감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그 시절은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고, 섬유공장이나 월부 책장사며 신문 배달 등으로 생업과 학업을 이어 간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부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백화점이나 수예점에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인형에 고무 제품으로 만든 손가락 크기의 고무신을 납품했다. 특히 미군이 거쳐 간 아시아 지역에는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생아가 많았다. 미국의 선교단체에서는 동남아나 한국의 사생아를 돕기위한 운동이 활발하였다. 맨입으로 모금하기보다는 소형 장식품인 인형 신발을 선물로 주면서 선교 할동에 도움이 되겠다고 선교사와 계약을 한 바 있었다. 본보기를 배편으로 미국에 보냈으나 현지 도착 때는 제품의 색상이 변질하여 파기 환송되었던 사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무에서 나오는 아이나 성분이 분출되어 제품이 변색하고 말았다. 경험 부족으로 인한 사업 실패작이 되었다. 다양한 직업으로 전전해 보았지만 모두 신통치 못했다. 어느 날 임자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 아이도 있고 하니 올바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요”라는 말을 듣고 어떤 직업이 좋을까 싶어 고심하고 있을 때 임자가 무심코 던진말이 “당신사주에는 권세가 들어있으니 순사라도 하면 밥술 걱정은 안하여도 되니 순경 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했다.” 듣고 보니 귀가 쫑긋해졌다. 30세가 되어 공무원으로 응시하기에는 늦었지만 주경야독하면서 도전해 보았다. 그 시대는 신체검사에 합격하자면 체중 55kg, 신장165cm가 되어야만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행이 합격통지서를 받고 경북경찰학교에 입교하여 6주간 교육을 이수 후 조건부 순경으로 배명받아 임지로 떠났다. 당시만 하여도 시골의 읍 소재지에는 좀도둑과 폭력배가 득실 했다. 나는 제복을 입고 밤낮으로 범죄 예방과 교통정리도 하고 주민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치안 유지에 열중하였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주민과 지방 유지들로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다. 파출소에 김 순경이 부임한 후로 좀도둑과 폭력배가 없어졌댜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이 자자하였다. 당시 경찰관의 정년퇴직은 50세이었다. 늦은 나이에 경찰에 입문하였지만, 범법자 검거, 병역 기피자, 인명구조, 첩보 수집, 기소 중지자 검거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비록 늦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였지만, 청년기에 문학에 심취되어 다양한 책을 다독과 정독한 것이 공무 집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분기별로 업무 실적 평가를 하여 우수한 직원에 대한 표창이 있어 표창도 많이 받았다. 새마을 사업 유공자로 지사 표창도 받았고, 범죄 검거 유공에 대한 치안 본부장 또는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 표창과 주민들로부터 감사장 등 많은 표창을 받았다. 사복 근무를 할 때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검거 송치 등으로 중앙정보부에서 건국 후 처음 실행한 우수 대공 요원으로 선발되어 산업 시찰하는 영광도 누렸다. 70년대에는 남북이 냉전과 긴장 상태에서 남파 간첩색출을 위해 동해안 2개면에 파견 근무할 때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편입된 울진군에 상주하면서 월북자나 남파 간첩 색출에 몰두하며 국가 안보에 이바지한 공적도 많았다. 내가 공직 생활하는 동안 신념처럼 새기며 가슴에 간직한 좌우명이 있었다. 生爲組國生死爲民族死 (사는 것도 조국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민족을 위해 죽는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대과大過 없이 모범 경찰관으로 정년퇴임을 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하여 배려와 관용의 마음을 갖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의 마음이 평온해져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음 또한 사실이다. 질병과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인간의 마음가짐이 건강과 질병을 좌우한다고 한다. 스스로의 마음이 선하고 관용적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잘 다스려 나감으로써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상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는다. 기쁨과 평안은 생체 에너지의 과용을 줄이고, 노화와 질병을 막아 행복의 파이를 키우는 마음의 묘약이다. 남을 시기하거나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은 스스로가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감소시켜,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경제를 잃게 된다. 의학자들은 질투심과 이기심이 많은 사람은 크고 작은 질병에 잘 걸리게 되며, 반대로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병에도 잘 안 걸리며, 또한 병에 걸려도 잘 낫는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긍정의 에너지를 소생시켜 스스로를 건강하게 함으로서 행복 엔돌핀을 증가시킨다. 남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남에게는 물론,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사랑과 자비의 묘약이며, 마음의 행복경제를 실천하는 하는 하늘의 길이다. 한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질 높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소득수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진복지국가 또는 행복국가는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만큼 마음의 건강상태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천 달러(2020년 기준 2,860달러)가 채 안 되는 남부아시아의 히말라야산맥의 산악국가 부탄은 국민총행복의 국가목표를 마음에서 찾고 있다. 국민 75%가 대승불교인 라마교를 믿으며, 힌두교, 이슬람교 등 대부분이 종교를 갖고 있으며, 문맹률 66.6%이지만 행복지수가 높다. 세계 일등 행복국가로 일컬어지는 부탄인들은 자연과 함께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한 삶으로 생각한다. 건강한 마음상태로 상호 배려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의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볼 수가 있다. 복지국가 또는 행복국가라고 하는 나라들은 도덕성이 높고, 인간관계에서 배려심이 높은 나라들이다. 흔히들 지구상의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일컬어지는 북유럽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나라들은 대부분 국민들의 마음상태가 안정되어 있고, 환경과 사회질서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다. 마음이 정제되고 인성들이 조화롭게 성숙된 나라들로 알려져 있다. 설사 그 나라의 국민소득수준이 높고, 경제적인 부가 선진국 수준이 될지라도, 국민의 마음 수준이 저급하고, 사회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나라라면, 그 나라를 과연 진정한 선진복지국가라고 인정하기가 힘들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인 수준에서는 최고수준의 국가들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도의가 살아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권에 대한 존중도가 높은 도덕국가라면 그 나라는 마음이 풍요한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악한 이기주의와 반양심적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라면, 그 나라는 소득수준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에 생명존중과 인권의 가치가 제대로 녹아있지 못한 군사강국의 정치지도자나, 미개한 의식수준으로의 세계평화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일삼는 국가지도자는 지구촌 행복의 파괴자임에 분명하며, 그는 정치적 위상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영혼이 병든 하급인물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국가나 개인은 마음이 병들고 인류에 대한 이상을 상실한 자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은 국민들의 마음바닥에 인간애적인 휴머니즘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은 올바른 마음의 길을 잃고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일찍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몬 쿠즈네츠와 아더 루이스도 경제가 잘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올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불리어졌던 폴 사뮤엘슨 MIT대학의 교수도 그의 명저 『마음으로부터 경제학』에서 인간의 사랑, 경제행위의 동기 등 마음이 경제적인 부의 형성에 중요함을 강조했었다. 인간의 올바른 마음가짐은 개인의 심신건강은 물론 한 국가의 경제발전과 그 나라의 참다운 번영에 기초가 된다. 국가사회나 개인의 행복실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마음도 수련과 노력의 산물이다. 마음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하여 상당부분 변화되고 형성될 수 있는 자유선택의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 마음이 소심하고 옹졸했던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크나큰 마음의 그릇으로 거듭난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많이 알아 왔다. 어떤 후천적인 교육 또는 자각에 의하여 고매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격체로 거듭난 위인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릇이 어떤 모양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도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종교적 가르침으로 마음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는 우리가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성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마음, 불교나 유교에 가르침을 따른 자비심과 공경의 마음은 모두가 후천적인 마음의 수련에서 얻는 행복의 길 찾기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음은 당연지사이다. 마음같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이 개개인의 맘에 들지 않는 수도 있고, 자식을 키우는 일,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양하다보니 세상의 일들도 나의 뜻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마음의 세계는 다양한 사상을 만들고 상이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마음의 체계적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사상이나 이념은 삶의 태도나 사고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때로는 사상의 대립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삶의 행, 불행을 만들기도 한다. 마음은 이 모든 갈등과 행·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요술사이다. 마음의 그릇은 세상에 평화와 사랑을 주고, 자신에게는 행복을 안겨주는 신이 인간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잘 관리하는 마음의 경제학은 또 하나의 소중한 행복경제학이다.
경산시는 5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평생교육 유관기관 및 실무관계자, 시민대표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제2차 경산시 평생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수립을 위한‘ 비전- 전략도출 심층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은 지난 5월 12일 개최된 '제1차 워크숍' 이후 6월 17일까지 시민, 평생교육 이해관계자, 공무원 등 총 1,260여 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비전-전략-세부추진계획을 도출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워크숍은 평생학습 추진현황, 시민 요구조사 결과 및 시사점 공유, 시민이 주도하는 평생학습도시 구축을 위한 사업도출, 평생교육기관 간 협력방안, 대학연계 사업, 학습공간 등 경산시 평생학습 활성화 방안을 위한 토론과 대화로 진행되어 참석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특히, 비전 도출을 위해 심층워크숍은 참여한 관계자 모두가 열린토론으로 ▲배움의 즐거움이 축제가 되는 행복학습도시 경산 ▲배움이 이어지는 대학도시 경산 ▲삼성현의 정신으로 평생학습 꽃 피우는 축복도시 경산 ▲삼성현의 얼을 이어받은 젊음과 희망의 참 학습도시 경산 ▲삼성현의 정신과 문화로 꽃피는 평생학습도시 경산 등 총 5개의 비전이 도출됐다. 도출된 비전은 팀별로 그 이유와 스토리텔링 및 투표를 거쳐 '삼성현의 정신으로 평생학습 꽃피우는 축복도시 경산'이 최종 비전으로 선정되어, 향후 워딩작업 등을 거쳐 경산시 평생교육 대표 비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또한, 워크숍에 참석한 권○○ 씨는 “평생학습을 위해 자발적인 참여가 처음”이라면서 “우리 시의 평생학습 방향을 결정하는 워크숍에 참여하여 제안과 토론으로 비전과 전략과제를 도출하는 과정이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평생학습과 관계자는 “충분한 노력과 시간, 참여를 통한 '비전 만들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주 중요한 투자다.”라며, “경산시의 평생교육 비전을 위해 여러분들이 주신 좋은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시민이 주도하고 디자인하는 평생학습도시 경산을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12월까지 추진되는 이번 용역을 통해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평생학습기회 확대, 읍면동 학습관 활성화, 대학연계 사업 추진 등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지속가능한 시민중심 학습도시 운영을 위한 연차별·단계별 실행지침을 도출할 계획이다.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사)경북소비자공익네트워크(회장 신경순)가 주관하는 2022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에너지낭비 Zero! 탄소배출 Zero!”를 위한 에너지 절약 홍보캠페인을 전개했다. 청도 운문댐 하류보 유원지에서 8일(금) 실시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은 일반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쉽고 간편하게 실천 할 수 있도록 홍보용 포스터를 배부했다. 이번 캠페인은 기후 위기에 따른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전파하면서 에너지 절약의 당위성을 알리고 경북 도민의 에너지 절약 문화 확산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