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0-03 20: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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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미  경  생의 마지막 창이 창공을 향하여 열렸나 보다. 불쑥 날아오른 콘도르 한 마리가 빙빙 선회하기 시작한다. 대신 작별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낯선 길을 헤맬 영혼을 위해 마중이라도 나온 것일까. 콘도르는 마지막 손을 흔들듯 선회하면서 하늘 높이 오르더니 마침표 같은 소실점만 남긴 채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정말 하늘로 올라가셨나 보다. 막 시토가 끝난 엄마의 무덤은 울다 만 자식들의 눈두덩처럼 아직도 붉다. 모두들 갑자기 나타난 콘도르를 올려다보느라 하늘에다 눈동자를 붙박았다. 오늘따라 청명한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높고도 멀다. 저마다 못다 한 작별의 말들이 많은지, 콘도르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인 하늘에서 눈을 거두지 못한다.  콘도르는 잉카의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 담긴 독수리의 일종이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 어찌 보면 지상의 모든 어머니들도 영웅이지 않을까. 한 생명을 잉태하고 또 그 생명을 죽을 산고를 다해 낳아 기르고, 마지막 자신이 숨 가두는 순간까지 자식들 걱정만 하다가는 존재가 바로 엄마다. 약하지만 가장 강한 존재가 엄마인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콘도르가 안내하는 듯싶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이 년여 시간 동안 엄마는 마지막 생의 고비를 넘느라 안간힘을 쓰셨다. 대장암 3기에 발견된 암 덩이는 떼어내도 달라붙는 깜부기처럼 끝까지 생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두 달 가량은 거의 병원에서 보냈다. 마지막 길이 될 줄도 모르고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병상 밑에 놓여있는 신발만 하염없이 내려다보셨다. 더 이상 퇴원이 힘들다는 의사의 통보를 듣자, 엄마의 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딸인 내가 마지막 모험을 시도했다.   암환자들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재택 호스피스를 신청하고 무작정 집으로 모셨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던 열이 가장 큰 걱정이었으나, 집에 돌아온 엄마는 오히려 심적 안정을 되찾았다. 날이 갈수록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쌀을 갈아낸 미음을 매일 끓였다. 그나마도 쌀을 갈아서 뻑뻑한 쌀 물만 받은 뒤 쌀은 한 줌 겨우 넣은 뜨물 같은 미음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바로 구토와 화장실을 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우리는 무엇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의 창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서도 먼 산 바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이 최고다. 집에 오길 잘했어.’ 혼잣말처럼 자꾸 되뇌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늘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잦아졌다. 세 시간 간격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도 삼십 분에서 한 시간으로, 거의 한 시간마다 화장실 가서 한 시간을 머무는 셈이었다. 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저귀를 사용하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질색을 하셨다. 아마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기어 나오는 엄마의 두 눈은 뿌연 안개가 서려 있었다.  엄마의 창은 언제나 ‘맑음’일 줄 알았다. 자식들을 바라다보는 두 눈은 유리처럼 맑아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훤히 보였다. 멀리서도 자식들이 행여나 별일 없는지 엄마의 창은 늘 열려 있었다. 삶에 지친 자식들은 수시로 그 창으로 뛰어갔고, 그 창을 다시 나올 때면 겨처럼 묻은 상처들도 말끔히 닦여 나왔다. 그런 엄마의 창이 점점 닫혀져가고 있다.  다행히 하던 일을 접고 쉬는 내가 엄마 곁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그동안 사업에 매달려 사느라 친정 부모님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명절조차도 친정에 들르지를 못했다. 시집이 종가라 차례가 끝나기 바쁘게 일터로 뛰어가야 했고, 오히려 그런 딸을 돕기 위해 엄마는 매장으로 뛰어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명절에는 주변 식당도 문을 닫기에 종일 굶을 딸자식을 위해 직원들 식사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시곤 했다. 이제야 여유를 갖고 돌아다보니 엄마는 벌써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유독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집에서 사십 일을 더 머무셨다. 떠나시던 날은 종일 미동도 없었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문득 미국과 군대에 가있는 두 아들이 떠올랐다. 폰을 통해 손자들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자, 거짓말처럼 ‘응’ 소리가 엄마의 가슴에서 울려나왔다. 그것은 육신의 터널을 뚫고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온 엄마의 마지막 신음 소리였다. 피붙이를 향한 엄마의 창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열려 있었던 게다. 그리운 음성을 모두 들은 후에야 엄마의 창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엄마의 안식처를 절에서 관리하는 납골묘로 정했다. 금오산 자락 끝에 있는 절이다. 절에서는 칠 일마다 일곱 번의 재를 지낸다. 재를 지내러 갈 때마다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혹시 오늘도 보이려나. 마지막 재를 지내는 날, 거짓말처럼 콘도르는 또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났다. 훨훨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면서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이렇게 훨훨 날아다니잖니. 그래, 그래 너희들도 잘 지내.’ 라고 하듯이. 사실 콘도르가 아닌 그냥 독수리였을 테다. 설사 독수리면 또 어떤가. 어미 잃은 자식들 눈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마지막 작별인사처럼 보였다.  요즘도 엄마가 생각날 때면 종종 절로 달려간다. 까만 묘비석이 엄마의 눈동자처럼 반짝반짝 우리를 반긴다. 육신은 비록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엄마의 창은 여전히 열려있나 보다. 묘비 앞에서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돌아서는 발길은 또 훨씬 가벼워진다. 그래, 이제 엄마의 창은 벌써 저 높은 하늘에서 말간 별빛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전문가 | 김미경 | 2022-09-21 12:39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명절이 가지는 행복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이며,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지출하는 소비와 금전의 지출은 경제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생동감 있게 하고, 구체화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한가위는 농업사회를 살아오던 선조들이 정성스레 가꾼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대명절이다. 한가위는 嘉俳(가배)라는 신라시대의 이두식 표현인 한 가운데 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한가위를 추석으로 일컬으며, 설과 함께 우리나라의 2대 명절로 생각한다.  명절은 글자 그대로 이름 있는 좋은 날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명절에는 삶의 현장에서 하던 일상을 멈추고,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나 중심가정으로 모여 함께 안부를 나누고, 즐기는 기쁜 날이다. 명절은 피를 나눈 가족과 형제들이 모여서 삶의 기쁨을 확인하고 사람다움을 찾는 날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뿌리를 알아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은혜입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와 보답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옛 부터 “孝는 百行之本” 이라고 했다. 조상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백가지 행동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행동의 기본이 됨을 말한다.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날이다. 추석은 특별히 온 가족이 한 해의 풍년 농사에 감사하며, 하늘과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기도 하다.  조상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사는 마음 자세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기본적인 자세이자 도리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대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3천만 명이 넘는 민족의 대이동을 한다. 조상을 존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그해 지은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 진실한 마음을 담아 차례를 올린다.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묘소를 찾으며 참배도 한다. 이러한 행사를 하는 한가위는 민족의 범사회적 도덕재무장이며, 정서의 대대적인 훈련기간이기도 하다. 사람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의미 깊은 의식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추석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풍요한 추수를 하게  해준 하늘 님과 조상,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과 소중한 친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심성을 다지고 확인하는 행복의 실천 장이다.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자리이며, 사람다움을 느끼고 배우는 가족공동체 교육의 자리이다. 함께 좋은 음식을 만들고, 제례 일을 같이 하며, 서로간의 존재에 감사하며,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행복을 나누는 자리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하늘의 법칙을 배우는 자리이다. 그것은 명절이 주는 행복경제학이다. 경제원칙에 의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행복경제의 자리이다. 좋은 마음과 좋은 일을 위해서 귀한 돈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은 왜 애써 돈을 버는가? 소중한 일에 쓰기 위함이다. 일찍이 천재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사람들은 왜 돈을 보유하고자 하는 질문에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를 든바 있다. 돈은 무엇보다도 우선 거래적, 예비적 동기에 의하여 벌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용처에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쓰는 일, 즉 경제행위는 필요한 욕구를 실현하는 행위이니 즐거운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소정의 돈을 쓰는 행위는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다. 적당한 소비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나 모두 미덕이 되는 일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명절에 쓰는 돈은 미덕이며, 애민을 실천하는 행복실현 행위이다. 추석에는 각자가 귀한 돈으로 명절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돈으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표현한다. 사랑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나누는 명절은 행복의 실천장이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국 돈은 합당한 필요에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잘 벌어야 하고, 또한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한다.   잘 번 돈과 잘 쓰여 진 돈은 세상을 밝게 하는 묘약이다. 평소에 잘 쓰여진 돈과 같이 추석 명절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적절히 쓰여 진 명절지출은 사람다움을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는 적당한 소정의 명절비를 드리는 것은 도덕심을 키우고 서로에게 행복의 파이를 높인다. 조부모나 어른들은 꽃보다 귀한 손주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명절 용돈을 주는데 이는 서로에게 사랑과 소중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명절 용돈을 주는 조부모도 기쁘고, 받는 손주들도 행복한 윈윈의 행복경제이다. 옛 부터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다. 현대는 시장 자본주의 사회이다. 돈의 소중함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모두가 슬기롭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서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명절을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돈의 지출이 필요하다. 명절날의 가족 간의 금전의 나눔은 돈의 미학이며, 행복을 위한 슬기이다. 서로 간에 적당한 돈을 지출하는 명절비는 행복경제학이며, 효율적인 행복의 실천행위이다. 돈에는 무절제한 낭비도 금물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것도 문제이다. 그것은 반행복경제이며, 비능률의 경제학이다. 좋은 일에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돈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묘약이며, 삶의 효율이자 합리적인 행위이다. 효율과 합리를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녀야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끈질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는 건재하다. 한가위는 '팔월의 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한가위에서 ‘한’은  “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음력으로는 가을을 상징하는 달이 7,8,9월이다. 이 석 달 가운데 8월은 중간이고, 15일은 그것의 중앙에 위치한다. 그래서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한 가운데임을 의미한다. 하늘이 높고 푸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한가위는 분명 하늘이 내린 축복된  날이다. 축복된 날은 축복을 받은 만큼 합당한 경제적 지출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산업은 농업이고,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조건이다. 현대와 같은 농사를 위한 인위적인 시설 설비가 빈약하던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천기 즉 하늘의 뜻이다. 농사절기에 가장 좋은 한가위는 하늘의 뜻에 따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의 계절 가을에 있다. 농업사회에서 한해를 풍년으로 농사짓는 일보다 더 농심을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한가위는 풍요이자, 감사이자, 기쁨의 상징이다. 물질적인 풍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은 그 만큼  행복실현의 가능성을 높인다. 옛 부터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시장자본주의가 시대적 가치가 되고 있는 오늘날, 적절한 돈의 사용과 나눔을 실천하는 한가위는 행복실현의 날이다. 한가위 명절에는 돈보다 몇 백배 귀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인연이 있는 소중한 이웃을 위하여 멋진 행복 경제를 실천하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가위 명절이 주는 중요한 의미를 새기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2-09-21 12:38

발행인 김문규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정책 중에서도 태양광 활성화 정책이 얼마나 무모한 졸속 정책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원가가 낮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낮은 원자력 전력생산시설을 파괴하고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실시하면서 가스와 태양광, 풍력발전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작 단계에서 많은 전문가와 대학교수, 관계자들의 반대에도 그들의 논문을 수렴하지도 않고 권력으로 밀어부쳤다. 우리나라는 지형과 기후가 맞지 않다. 영토가 넓지 않고 산지가 많으며 일조량이 일정하지가 않다. 원자력 전력쪽에서는 많은 전문인력이 실업자가 됐다.   원자력전력을 파괴시키는 과정에서 각 대학교의 학과는 폐지되는 참담함을 겪었다. 또 많은 협력업체들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천연가스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러시아산을 수입해서 써야 하는데 가스가격은 완전히 러시아 마음이다. 유사시 계약조건이 필요없는 국가가 아닌가.   현재 유럽 쪽 나라들은 에너지(가스) 문제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원자력전력을 없애고 가스에 많이 기대면 가스는 순간에 전쟁무기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은 어떤 고통을 당하며 살아갈까 모골이 송연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물가계산으로는 정책 실패의 계산이 안된다. 몇 배의 물가인상에 따른 손해가 더 클 것이다. 석탄에너지 생산에 따른 공기오염도 심각하지만 가스사용으로 인한 오염도 크다.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원자력전력은 주변국과 서방국들도 늘려가고 있다. 이것은 아직은 원자력전력을 대체할만한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다.   지난 정부는 많은 반대에도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막무가내로 추진한 이유가 지금 밝혀지고 있다. 문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한 12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은 국민의 혈세였다. 그 예산은 국민들이 낸 전력기금이라는 세금에서 나온 예산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지원을 위해 전력산업 기반기금법은 결국 세금 빼먹기 잔치였다. 졸속 급행으로 추진된 신재생에너지 보급, 발전소 주변지원, 전력연구개발 사업 등에 천문학적 국민세금이 투입됐지만 결국 온갖 불법과 부정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다 열거할 수도 없는 백화점식 불법은 알아볼수록 대단하다. 그 수법도 다양하다 못해 경이롭다.   부패예방추진단에서 12곳의 기초지방단체를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2조1천억원의 12%에 해당하는 2,616억 원이 불법으로 사용되어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했다고 한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1차 실태 점검결과 제도상 허점, 관리부실로인한 불법 부적정 집행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등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부실이 확인됐다”며 “조사대상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추가점검을 실시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위법사례가 근절되도록 관리감독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12조원의 막대한 혈세가 투입됐던 만큼 전수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전국 산지에 난립한 태양광 설비가 집중호우 때 산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짓느라고 주변나무를 무리하게 베어낸 탓에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산업부는 산사태 위험이 높은 지역에 있는 태양광시설 3000여 곳을 선정해 특별안전관리를 한다고 발표했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2-09-21 11:25

김 미 숙  큰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졌을 때였다. 일 년을 더 공부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굳이 도시로 고집했다. 급기야 인터넷을 통하여 방을 얻어놨으니 짐만 옮겨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할 수 없이 옷 보따리와 이불을 챙겨서 아이가 얻어 놓은 방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원룸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랐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번잡한 거리에 자리 잡은 것도 모자라 네 식구가 발을 다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두 평 남짓 될까. 책상과 의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일인용 침대는 책상 한 귀퉁이 밑으로 반쯤 들어가 있었다. 아들이 침대에 누웠더니 몸의 반이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한 면이 창문으로 된 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다. 삼월이 시작되었건만 방 안은 온통 냉기로 가득했다. 8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원룸은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칼바람 추위에 따뜻하게 해줄 히터도 없었다.   끼니가 더 문제였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웠다. 뭐든지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음식 한 가지도 맛을 음미하였고 모양과 색깔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학원 시간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찾아 먹고 설거지와 청소며 옷가지도 알아서 했다. 여태 부모 무릎 밑에 있다가 갑자기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장구치고 북도 쳐야한다니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었다.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지만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도 이런 마음 이였을까.   여고를 졸업한 나는 도시로 나와서 회사에 취직 했다. 처음에는 한 달 쯤 지났을 때 가까운 곳에 단칸방을 얻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렸더니 곧장 기차를 타고 달려오셨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오셨다. 두 평 남짓한 방은 다리도 못 뻗고 새우잠을 자야겠다고 하셨다. 내 방이 생겨서 신이 난 나와 달리 어머니는 이렇게 작은 방은 처음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큰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어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홑청에 솜을 넣어 만든 이불이었다. 딸이 취직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동안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건만  방이 너무 작아서 이불은 다 펴지도 못하고 반은 접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동생들에게 일찍 어머니 품을 내 준 나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그날만큼은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니 팔을 베고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살다보면 더 큰방을 갖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독이셨다. 그건 아마 어머니의 소원일 수도 있었고 맏딸인 나의 앞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 년 사글세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시 그 방을 재계약했다. 전세로 옮기고 싶었지만 적금 탈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좁은 내 방으로 들어가면 적막강산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갈 곳은 오로지 두 평 남짓한 내 방 뿐이었으니까.   가족과 다 함께 살 때는 늘 꿈꾸었던 나의 방이었다. 네 명의 동생들과 한 방에서 지지고 볶고 싸울 때면 온전한 자유를 누리길 얼마나 바랐던가.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막상 내 방을 갖고 나니 동생들이 그립고 부모님이 애타게 보고 싶었다.   어느 초겨울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썰렁한 방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얼른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연탄을 피웠다. 깔아놓은 이불을 덮고 잠시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는 들렸다. 딸 시집보냈다며 떡을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줌마는 덜컥 겁이 났다. 바로 119를 불렀고 달려온 소방대원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내 입과 코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나의 첫 방을 떠났다. 2년 부었던 적금을 탔고 좀 더 넓은 방을 구했다. 두 칸짜리 방이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옮겼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보다 짐이 두 배 정도 늘었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한 명씩 순서대로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니 옛날 나의 첫 방이 너무 궁금하였다. 찾아가 보았더니 도로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에게나 첫 방은 잊지 못할 공간일 것이다.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딜 때처럼 첫 방은 설렘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신의 첫 방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환 학생과 인턴으로 갈 때는 몇 달 동안 비워 두었던 방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을 거쳐야 하겠지만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두 평 남짓한 그 방은 잊지 못하리라. 

전문가 | 김미숙 | 2022-08-09 18:53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인간의 행복은 문화와 경제라는 두 가지 개념에 의해서 잘 실현되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인 삶과 풍요한 경제는 구체적인 행복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또한 삶의 중심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애기할 때, 행복의 내면에는 문화라는 개념이 항시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을 말한다. 문화의 享受는 행복의 수준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인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의식체계인 문화를 가미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의식체계는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삶의 편리성과 합리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문화의 추구형태를 분석해 보면, 문화는 眞·善·美 그리고 聖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이 같은 인류적 가치들이 보다 고차적인 욕구인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도덕과 인간본성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조화롭게 투영되는 모습을 인류역사는 높이 평가해 왔다. 그래서 인류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富의 추구와 기나긴 문화가치의 추구가 함께 유지되어 온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은 그 시대의 가치와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해 온 값진 결과들이며, 이를 통해 행복실현의 이상을 성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행복을 실현함에 있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문화적 욕구와 그 지향성이 특별하다는 점이다. 이성적 판단으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참된 행복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통해서 얻은 결과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문화적 가치를 실현하고 추구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행복감을 성취해 나간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예술품이며 지적자산인 문화유산들은 모두가 문화적 욕구를 추구해온 인간의 삶의 모습들이다. 어느 시대나 인간은 행복실현의 절대적인 부분을 문화적 욕구의 실현으로 채워왔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소득이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는 증가하며, 문화적 욕구의 실현은 고차적인 행복을 향수하는 삶의 모습과 직결된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소득증가와 늘어나는 레저시간을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데 할애하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소득과 여가가 늘어나면, 품위 있는 미술전시회나 음악회를 즐기고 싶어 하고, 문학적 행사나 고급 레져 프로그램을 향수할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행복실현의 절대적인 비중이 문화와 관련된 부분임은 이미 실증되고 있다. 이제 문화는 인간생활의 일상이 되어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인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도 문화적 컨셉이나 컨텐츠는 필수 부분이 되었다. 문화적 감각이 경제와 행복의 질과 수준을 결정한다. 또한 문화적 감각이 한 나라의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문화는 모든 산업과 개인적인 삶의 성패를 결정지우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상품에 문화적 부분이 체화 되어야 하며, 기업은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다. 개인의 삶에도 문화적인 소양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모든 상품의 생산이나 소비에도 문화적 요소는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문화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취업이나 사회생활에도 문화적 자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점점 더 높아가고 있는데 그 결정적인 요인은 한국의 문화수준이 가져온 결과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스포츠 속에서의 예술성과 BTS의 세계적인 인기, 국산영화의 세계영화계 속의 위상강화, IT를 비롯한 문화적 소양과 기술로 무장된 한국의 반도체 및 전자기술 수준에는 문화강국 코리아의 수월성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고, 그것이 21세기 어드반스드 코리아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21세기를 맞이하여 한국인들이 가진 문화적 수월성이 국제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선도해가고, 그것이 한국의 부와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 문화는 이제 개인 행복실현의 필수분야가 되었고, 국가사회는 문화적 컨텐츠를 여하히 관리 발전시키느냐가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는 이제 경제와 대립되는 개념에서 경제와 공생·협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에도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문화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적 경쟁력은 그 자체가 국가적 경쟁력과 직결되고, 산업 및 경제적 경쟁력과도 연결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상품을 선택할 때도 디자인을 중요시 한다. 상품선택의 중요 요인으로 스마트한 디자인을 들고 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하게 일하고, 스마트한 문화를 즐기는 스마트문화 세대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폰이 아닌 종합 개인 생활문화의 소통장이 되고 있다. 문화 소통을 하며, 음악과 미술, 스포츠, 게임을 즐기며 쇼핑과 비즈니스를 함께 한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복합생활문화의 실현장이다. 종합적인 생활문화를 즐기면서 일도 하고, 인생의 궁극적 가치인 행복을 실현해 나간다. 그들은 문화를 소비하며 창출하는 문화와 경제가 공생하는 시대에 지금 살고 있다.  인류발전의 역사적 과정을 보면, 인류는 자연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문화 친화적인 모습으로 생활양식이 변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문화는 경제와 공존하는 형태로 바뀌어 왔다. 본래 문화는 인간의 정서나 감정에 바탕을 두며, 경제는 인간의 합리성과 실증성에 근거하지만, 이제 문화와 경제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등장한 공공경제학이 문화를 경제학의 영역에 들어오게 했다. 인간의 삶의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는 문화와 인간의 삶의 물량적 측면을 다루는 경제학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가 발전하던 시대에 문화도 발전했다. 오늘날 시장자본주의가 세계화를 선도하는 상황에서 문화는 경제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는 도저히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1세기는 지구촌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문화생활을 향수하는 고급문화소비 시대이다. 따라서 문화와 경제를 고려하지 않는 행복은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21세기이다. 보편적인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문화적 행복경제 실현을 위한 국가사회의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2-08-09 18:51

경산소방서 소방교김  풍  민  코로나19가 빠르게 재확산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방역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휴가철인 만큼 다중이용업소 이용객 증가는 막기 어려워 이로 인한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시기이다.  지난 4월, 서울의 고시원과 제주도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업소에서 왜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자주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영업주 및 이용자의 안전관리 의식·능력 부족에 있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2,082건 중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862건으로 41.4%를 차지한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다중이용업주는 물론, 그 종업원도 소방안전교육(2년 이내 1회 이상)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하지만 종업원 안전교육이 미흡하고, 이용객 또한 안전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  둘째, 소방시설·피난시설 작동 불량으로 인한 급격한 연소 확대다.  사망자가 발생한 다수의 화재에서 스프링클러·경보설비 작동 불량사항이 발견되고 있고 영세사업자인 경우 대부분 화재안전시설 투자에 미온적이다.  셋째, 유흥주점·단란주점·노래방·고시원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좁은 공간 내 다수의 구획된 실이 있고, 내부통로는 좁고 복잡하다. 또한 실내장식을 위해 도료 등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질식 위험이 높다.  그렇다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불나면 대피먼저’가 최우선이다.  물론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고 119신고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할 행동은 안전한 장소로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다.  안전한 대피방법은 ① 불길 속을 통과할 때, 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② 자세는 최대한 낮춰 이동한다. ③최대한 외부나 옥상으로 나가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만약 출구가 없다면 연기가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을 적셔 문틈을 옷 등으로 막고 휴대폰으로 신고하거나 창문을 통해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추가로, 평소에 건물의 비상구 및 주요 비상계단 코너 등 피난 시설 인근에 물건이 적치되어 있는지 수시로 확인 후 제거하면서 안전 관리에 힘쓴다면 유사시 대피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휴가철 다중이용업소 방문 전, 반드시 안전수칙과 유사시 행동 요령을 숙지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휴가가 되었으면 한다.  

전문가 | 경산소방서 소방교_김풍민 | 2022-08-09 18:46

발행인 김문규  미국의회 1인자이자 미국국가의 서열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미국하원의장으로는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마침 휴가중인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이 잡혀지지 않은 것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윤대통령은 펠로시 의장과 40분간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40분이면 상호간에 의견교환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펠로시 의장의 동아시아 순방일정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을 것이고,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타이완 방문과 대한민국 방문, 일본 방문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침 윤 대통령은 휴가중이었고 펠로시 의장의 의전파트너는 우리나라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는 것이 의전상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연히 만났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의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역대대통령은 휴가기간에 방한한 외국손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여름휴가지인 청남대에서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했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코언장관은 한국의 사거리 500km미사일 자체연구개발을 논의했다. 2000년 이병박 대통령은 1주일간의 휴가를 5일로 줄이고 휴가종료 다음날 나세를 쿠웨이트 총리를 만났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미하원인 민주당 원내대표시절 하원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하원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1시간 넘게 접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4박5일간의 여름휴가중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을 접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막중한 임무는 휴가를 반납하기도 한다. 펠로시 의장의 방한 목적은 국회의장과의 면담이다. 의회인사 방한시 행정부가 영접은 하지 않는다. 방한측인 미국에서는 조용한데 유독 우리나라 언론에서 연일 대통령의 의전에 대해 맹공을 가하고 있다. 국회 의전팀이 영접할 것을 전달했는데 미국 측에서 영접을 사양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형 국회손님이 방한하는데 어찌 양국 간에 사전조율이 없었겠는가. 펠로시 의장 방한에 따른 공항영접 등 제반의전은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상, 의전상 관례이며 이 사안이 국회영역임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 측에서는 늦은 시간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하는 것을 감안해 영접을 사양했다고 한다. 펠로시 의장과 하원의원 대표단이 전용기편으로 오산 미공군기지에 도착할 당시 현장에 국내 의전인력이 아무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전홀대 논란이 빚어졌다.  방한을 마친 펠로시 의장은 “한미 양국은 강력한 유대를 공유하고 있는데 이는 수 십년 간의 따뜻한 우정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비무장지대(DMZ) 방문과 관련 “한반도 민주주의 파수꾼인 군인들의 애국적인 봉사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생각을 해보라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에 우리정부가 어떻게 의전에 소홀할 수 있겠는가. 사전에 양측의 의견 조율이 있었을 것이 자명한데정치권과 언론에서 국가적인 중대한 의전에 국민 각 개인의 의견이 난무하여 국가에 해가 될 것 같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2-08-09 17:52

소우주 정 석 현ㆍ경북 경산ㆍ중앙대학 연영과 졸업ㆍ경산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ㆍ영남문학 등단ㆍ영남문학작가회 회장생각할 줄 알고사랑해주는 것도 알며해롭게 하는 것도 알아 살아 있는가 보다 기쁨과 슬픔 고마움과 미움을 가르치며감동을 주는 가슴이 있어더러는 우리의 지배를 받는 척하지만 크게는 우리를 지배하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헤아릴 수 없이 간직한 오묘한 그대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도 예쁜 꽃들의 웃음도그리고 기어코 떠나보내는 이별의 슬픔도그대로부터 기인한 것임에 그 위대함에 주눅 든 채 순종하게 만드는 그대산을 보며 높은 가슴 배우고바다를 보며 넓은 마음 배우고하늘을 보며 끌없는 베풂을 배우며가슬러 오르지 않는 물을 보며순리를 배우라고 골고루 만들어 놓았지만우리는 그대 세상이 궁금하여 달을 따러 가고 별을 가지러 가고공기를 오염시키고 바람 길을 막고그대 심장의 기름을 퍼내고 물길을 틀어 놓았지그래서 순리를 거역한 죄 벌로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온 세상에 뿌려자구에서 수천만 명을 떠나보내고그 위력으로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나 보다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그대키워 놓은 생명체는 기어이 다시 거두어 가고인간이 저지른 죄는 여과 없이 벌하는 유아독존그러나 그대의 말 없는 계시에 따라 어울려 사는 세상이 좋아지금은 나의 시간을 주셨기에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가 활짝 웃는 꽃이 되었다가포롱포롱 날아가는 새가 되어보네그대는모든 걸 탄생시켰다가언젠가는 되가져가는 부메랑인 것을

전문가 | 소우주 정석현 | 2022-07-13 11:05

송학 김시종ㆍ제6회 송암문학상 수상ㆍ<영남문학> 영남문학 신인상 수필 등단ㆍ제50회 민족통일 문예대전공모전에 대구광역시 협의회 회장 상 수상ㆍ<한국경찰문학>발전 유공 수상ㆍ시집[봄의지열](1958년)  50여 수년 전 일이다.  남과 북이 이념과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냉전이 심각할 때다. 젊은 시절 문학과 영화 예술에 심취되어 서울 충무로와 사대문 안을 배회할 무렵 서울 인구는 6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대구에는 80만 명이 살았다.  서울시청 서편에는 조선호텔과 반도 아케이드(arcade)가 있었으며, 건너편에는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물산 본사 건물이 있었다. 유명시장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이 있었지만, 외국 관광객이 찾은 곳은 고려민예사와 반도 아케이드였다. 그곳에는 귀중품과 한국 제품을 홍보하는 장소로 외국인이 많이 찾은 관광지이기도 했다. 왕십리 방향에 워커힐 호텔이 있었으나 그 일대에는 농민들의 농경으로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를 듯 진동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충무로에는 영화인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단역 배우라도 출현키 위해 경쟁이 치열하였고, 300원짜리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는 시절이기도 했다. 정부는 청계천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고가도로 공사를 위해 전철 레일을 걷어내는 시기였다. 사대문 안쪽에는 미도 백화점과 화신 백화점이 유일하였다.   비록 휴전협정은 되었지만, 군사 분계선에는 피아간에 총성이 그치지 않았고 무장 공비 침투가 빈번히 출몰했었다. 정부에서는 경제 개발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차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다. 당시 국내에 미군이 칠만여 명이 주둔할 때 도시와 농촌에서는 미군을 상대로 먹고살기 위해 가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주한미군은 토요일이 되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미화를 뿌리며 일본 여성으로부터 위안받으며 군 복무를 할 시기였다.    5.16 쿠데타 후 군사 정부는 공직 사회에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사람을 추출하여 국토건설단에 편입시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혁명 정부는 과감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그 시절은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고, 섬유공장이나 월부 책장사며 신문 배달 등으로 생업과 학업을 이어  간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부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백화점이나 수예점에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인형에 고무 제품으로 만든 손가락 크기의 고무신을 납품했다.   특히 미군이 거쳐 간 아시아 지역에는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생아가 많았다. 미국의 선교단체에서는 동남아나 한국의 사생아를 돕기위한 운동이 활발하였다. 맨입으로 모금하기보다는 소형 장식품인 인형 신발을 선물로 주면서 선교 할동에 도움이 되겠다고 선교사와 계약을 한 바 있었다. 본보기를 배편으로 미국에 보냈으나 현지 도착 때는 제품의 색상이 변질하여 파기 환송되었던 사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무에서 나오는 아이나 성분이 분출되어 제품이 변색하고 말았다. 경험 부족으로 인한 사업 실패작이 되었다.   다양한 직업으로 전전해 보았지만 모두 신통치 못했다. 어느 날 임자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 아이도 있고 하니 올바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요”라는 말을 듣고 어떤 직업이 좋을까 싶어 고심하고 있을 때 임자가 무심코 던진말이  “당신사주에는 권세가 들어있으니 순사라도 하면 밥술 걱정은 안하여도 되니 순경 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했다.” 듣고 보니 귀가 쫑긋해졌다.   30세가 되어 공무원으로 응시하기에는 늦었지만 주경야독하면서 도전해 보았다. 그 시대는 신체검사에 합격하자면 체중 55kg, 신장165cm가 되어야만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행이 합격통지서를 받고 경북경찰학교에 입교하여 6주간 교육을 이수 후 조건부 순경으로 배명받아 임지로 떠났다. 당시만 하여도 시골의 읍 소재지에는 좀도둑과 폭력배가 득실 했다. 나는 제복을 입고 밤낮으로 범죄 예방과 교통정리도 하고 주민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치안 유지에 열중하였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주민과 지방 유지들로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다. 파출소에 김 순경이 부임한 후로 좀도둑과 폭력배가 없어졌댜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이 자자하였다. 당시 경찰관의 정년퇴직은 50세이었다. 늦은 나이에 경찰에 입문하였지만, 범법자 검거, 병역 기피자, 인명구조, 첩보 수집, 기소 중지자 검거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비록 늦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였지만, 청년기에 문학에 심취되어 다양한 책을 다독과 정독한 것이 공무 집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분기별로 업무 실적 평가를 하여 우수한 직원에 대한 표창이 있어 표창도 많이 받았다. 새마을 사업 유공자로 지사 표창도 받았고, 범죄 검거 유공에 대한 치안 본부장 또는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 표창과 주민들로부터 감사장 등 많은 표창을 받았다.   사복 근무를 할 때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검거 송치 등으로 중앙정보부에서 건국 후 처음 실행한 우수 대공 요원으로 선발되어 산업 시찰하는 영광도 누렸다.   70년대에는 남북이 냉전과 긴장 상태에서 남파 간첩색출을 위해 동해안 2개면에 파견 근무할 때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편입된 울진군에 상주하면서 월북자나 남파 간첩 색출에 몰두하며 국가 안보에 이바지한 공적도 많았다.   내가 공직 생활하는 동안 신념처럼 새기며 가슴에 간직한 좌우명이 있었다.   生爲組國生死爲民族死 (사는 것도 조국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민족을 위해 죽는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대과大過 없이 모범 경찰관으로 정년퇴임을 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전문가 | 송학 김시종 | 2022-07-13 11:03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하여 배려와 관용의 마음을 갖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의 마음이 평온해져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음 또한 사실이다. 질병과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인간의 마음가짐이 건강과 질병을 좌우한다고 한다. 스스로의 마음이 선하고 관용적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잘 다스려 나감으로써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상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는다. 기쁨과 평안은 생체 에너지의 과용을 줄이고, 노화와 질병을 막아 행복의 파이를 키우는 마음의 묘약이다. 남을 시기하거나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은 스스로가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감소시켜,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경제를 잃게 된다.   의학자들은 질투심과 이기심이 많은 사람은 크고 작은 질병에 잘 걸리게 되며, 반대로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병에도 잘 안 걸리며, 또한 병에 걸려도 잘 낫는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긍정의 에너지를 소생시켜 스스로를 건강하게 함으로서 행복 엔돌핀을 증가시킨다. 남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남에게는 물론,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사랑과 자비의 묘약이며, 마음의 행복경제를 실천하는 하는 하늘의 길이다.   한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질 높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소득수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진복지국가 또는 행복국가는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만큼 마음의 건강상태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천 달러(2020년 기준 2,860달러)가 채 안 되는 남부아시아의 히말라야산맥의 산악국가 부탄은 국민총행복의 국가목표를 마음에서 찾고 있다. 국민 75%가 대승불교인 라마교를 믿으며, 힌두교, 이슬람교 등 대부분이 종교를 갖고 있으며, 문맹률 66.6%이지만 행복지수가 높다. 세계 일등 행복국가로 일컬어지는 부탄인들은 자연과 함께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한 삶으로 생각한다.  건강한 마음상태로 상호 배려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의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볼 수가 있다. 복지국가 또는 행복국가라고 하는 나라들은 도덕성이 높고, 인간관계에서 배려심이 높은 나라들이다. 흔히들 지구상의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일컬어지는 북유럽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나라들은 대부분 국민들의 마음상태가 안정되어 있고, 환경과 사회질서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다. 마음이 정제되고 인성들이 조화롭게 성숙된 나라들로 알려져 있다. 설사 그 나라의 국민소득수준이 높고, 경제적인 부가 선진국 수준이 될지라도, 국민의 마음 수준이 저급하고, 사회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나라라면, 그 나라를 과연 진정한 선진복지국가라고 인정하기가 힘들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인 수준에서는 최고수준의 국가들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도의가 살아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권에 대한 존중도가 높은 도덕국가라면 그 나라는 마음이 풍요한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악한 이기주의와 반양심적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라면, 그 나라는 소득수준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에 생명존중과 인권의 가치가 제대로 녹아있지 못한 군사강국의 정치지도자나, 미개한 의식수준으로의 세계평화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일삼는 국가지도자는 지구촌 행복의 파괴자임에 분명하며, 그는 정치적 위상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영혼이 병든 하급인물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국가나 개인은 마음이 병들고 인류에 대한 이상을 상실한 자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은 국민들의 마음바닥에 인간애적인 휴머니즘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은 올바른 마음의 길을 잃고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일찍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몬 쿠즈네츠와 아더 루이스도 경제가 잘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올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불리어졌던 폴 사뮤엘슨 MIT대학의 교수도 그의 명저 『마음으로부터 경제학』에서 인간의 사랑, 경제행위의 동기 등 마음이 경제적인 부의 형성에  중요함을 강조했었다. 인간의 올바른 마음가짐은 개인의 심신건강은 물론 한 국가의 경제발전과 그 나라의 참다운 번영에 기초가 된다. 국가사회나 개인의 행복실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마음도 수련과 노력의 산물이다. 마음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하여 상당부분 변화되고 형성될 수 있는 자유선택의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 마음이 소심하고 옹졸했던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크나큰 마음의 그릇으로 거듭난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많이 알아 왔다. 어떤 후천적인 교육 또는 자각에 의하여 고매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격체로 거듭난 위인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릇이 어떤 모양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도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종교적 가르침으로 마음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는 우리가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성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마음, 불교나 유교에 가르침을 따른 자비심과 공경의 마음은 모두가 후천적인 마음의 수련에서 얻는 행복의 길 찾기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음은 당연지사이다. 마음같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이 개개인의 맘에 들지 않는 수도 있고, 자식을 키우는 일,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양하다보니 세상의 일들도 나의 뜻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마음의 세계는 다양한 사상을 만들고 상이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마음의 체계적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사상이나 이념은 삶의 태도나 사고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때로는 사상의 대립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삶의 행, 불행을 만들기도 한다. 마음은 이 모든 갈등과 행·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요술사이다. 마음의 그릇은 세상에 평화와 사랑을 주고, 자신에게는 행복을 안겨주는 신이 인간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잘 관리하는 마음의 경제학은 또 하나의 소중한 행복경제학이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2-07-13 10:56

발행인 김문규  국민의힘은 작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과 올해 3월 대선에 이어 3번의 선거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자당소속 대통령이 탄핵 당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존폐의 위기와 마주했던 정당이 불과 5년 만에 대통령 직을 되찾고 전국단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은 국민의힘을 믿고 밀어주었다.   출범한 지 한 달도 안된 정권이 안정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민주당 텃밭을 제외한 전지역을 싹쓸이 한 것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민주당이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대패를 한 것은 “성찰하고 혁신하겠다”고 했던 민주당이  한 달도 안 돼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으로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비리수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법조계와 시민단체, 국민다수가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강행했다. 의원, 위원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 온갖 편법을 다 썼다.   공수처법, 선거법, 임대차3법 등 입법 폭주로 20년 집권하겠다던 정권이 5년만에 교체를 당하고도 반성이 없었다. 대선에 패배한 대선후보는 상당기간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무연고 지역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해 당선은 되었지만 방탄출마라는 꼬리표는 달고 있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시장 출마도 상식을 벗어났다.   두 사람은 표를 얻기 위해서 현실성 없는 김포공항 이전과 새정부에서 추진한 적도 없는 공기업 민영화 괴담도 퍼트렸다.   이들의 처신도 민주당에게는 큰 악재가 됐다. 한덕수 총리인준을 계속 미루어서 총리와 주요 장관 없이 새정부가 출범했다. 한동훈 법무장관 인준도 무조건 반대만하다가 이모사건과 쓰리엠 등 황당한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대통령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도 계속 발목 잡았다.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서 하기로 해 놓고 합의를 뒤집었다.   이 모든 민주당의 행태가 국민들에게는 문 대통령의 미련과 민주당의 대선불복으로 비쳤다.   민주당 소속 충남지사, 서울시장, 부산시장의 잇단 성범죄에 국민은 경악했다. 3선 박완주 의원은 보좌진에대한 성범죄로 제명되기도 했다. 짤짤이 거짓말을 한 최강욱 의원의 징계도 유야무야 됐다.   민주당 1당 독재인 지방의회도 국회 못지않게 폭주했다. 국민의힘 시장이 짠 예산은 삭감하고 자기들과 가까운 시민단체 예산은 다 통과 시켰다. 시 예산이 ‘시민단체 현금인출기’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 하다못해 시장이 의회의장의 허락 없이 말하면 퇴장시키는 조례까지 만들었다.   이런 오만과 폭주가 국민들의 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낡은 이념적 사고방식, 독선, 내로남불, 입법횡포, 새정부 발목잡기를 해선 안 된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성숙한 정당이 되면 국민들의 지지도 돌아올 것이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2-06-07 06:12

김  미  숙ㆍ[수필문학 신인상] 등단ㆍ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영남수필 문학회 경산문협 회원ㆍ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ㆍ원종린 문학상 수상  바닷가 아담한 마을 삐스코에 도착했다. 우리는 새떼를 보기 위해 여기서 배를 타고 바예스따 섬으로 가야 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손짓으로 따라오라 했다. 선착장에 이르자 보트에 올라타라는 눈짓을 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좌석을 가득 메우자 보트는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섬으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 우뚝 솟은 바예스따 섬이 보였다. 섬이 가까워지자 바다 위에 떠 있는 새떼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빽빽하게 바위에 앉아서 조잘조잘 거리는 새떼들의 소리가 야단법석이었다.  보트가 섬에 닿았다.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 새떼들의 배설물이었다. 그것은 굳어진 채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켜켜이 쌓여 있었다. 마치 흰색 페인트를 칠한 조형 예술품이 바다 위에 놓여있는 듯했다.  새떼들의 배설물은 질소와 인산이 함유된 구아노 비료로 쓰인다.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에 구아노 비료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바예스따 섬에서 나온 구아노 비료의 원료는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이 되었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농토에 한 번만 뿌려도 작물이 잘 자랐기 때문에 획기적인 비료가 되었던 것이다.  오래전 가을, 외환 위기로 남편이 실직했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생계가 암담해졌다. 아이들 학원은 고사하고 땟거리조차 걱정이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다. 유일한 위안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배 밭이었다.  봄날, 배 밭에 갔더니 배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눈부시게 핀 꽃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하고 있던 순간에 하얗게 송이송이 피어있는 배꽃을 보니 작은 일렁임이 생겼다. 부자로는 못 살더라도 돈 걱정은 안 하면서 살고 싶었다. 배 밭에 비료를 뿌리면서 부디 돈 걱정 안 하게 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바예스타 섬에서 나오는 구아노 비료는 한때 가난한 페루를 부자 나라로 만들어줬다. 수 십 년 전 우리나라에도 구아노 비료가 들어왔었다. 비료는 농사짓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복숭아와 포도농사를 짓는 나는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짐승들의 배설물인 유기질 거름이 최고였다. 이 섬에서 수입 되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구아노 비료를 몇 년 동안 배 밭에 뿌렸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좋다고 하니 돈을 들여서라도 맛있고 예쁜 배를 키워서 좋은 가격에 팔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해였던가! 작은 아이가 우리도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와 수학 학원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쳤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보내주지 못한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학원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배 밭에서 놀면 더 재미있지 않냐’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콧등이 시큰거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배 농사를 희망으로 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은 그 밭에서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을 거쳐서 성인으로 성장했다. 열매를 적과 하거나 전지를 할 때, 거름을 줄 때와 수확을 할 때도 늘 아이들이 함께 했다  두 아이가 공군 장교 지원서를 쓸 때였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면접관의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은 주말마다 작은 배 밭으로 달려가서 일하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우린 그 당시 무척 힘들게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밭으로 가서 무거운 짐을 날라야 했고, 퇴비도 뿌려야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무심코 형의 얼굴을 보았더니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형도 자신의 땀범벅이 된 얼굴을 쳐다보더니 배꼽을 잡고 웃더라고 했다. 형제는 서로를 보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웃었다. 일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형과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답을 했고, 다행히 둘 다 장교가 되었다.  군복무 후 형제는 이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힘들게 보냈던 고난의 흔적도 조금씩 우리 곁을 떠나갔고, 가끔씩 하늘도 한 번씩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났다.  먹고살기도 힘들었는데 살다 보니 지금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 페루의 보물섬에 올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농사지으며 새떼들의 똥을 금처럼 여겼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 때문에 지금의 삶이 그리 고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바예스따 섬에서 바닷새들이 비행하는 모습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 모습은 휘황찬란하였으며 어떤 단어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새떼는 우리에게 인사라도 하는 듯 섬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따라오면서 ‘끼욱끼욱’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정겨웠다.  돌아오는 길, 내가 탄 보트는 수면을 스치듯 날아가는 새들과 함께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섬은 점점 멀어져 갔다. 새떼들의 동굴들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전문가 | 경산뉴스 | 2022-06-07 05:48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돈이나 재산관리는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에서 돈과 재산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 돈과 재산을 합리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돈과 재산을 적당한 시기에, 적정 액수를 그 사용처에 맞게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돈과 재산은 말할 것도 없이 有限財이고 이들의 사용은 선택한 부분에 일정량을 사용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용처에 쓸 기회가 줄어드는 선택비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돈과 재산은 언제나 필료한 용처에 합리적으로 사용토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돈의 사용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선택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행복한 삶을 유지하거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경제행위인 금전적 관리를 잘 해나가야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액수의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좋은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돈과 재산은 무조건 아끼고 절약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잘 사는 것은 아니며 또한 바르게 사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때에 돈을 쓸 줄 알고, 합리적인 선택행위로 재산관리를 해나가는 사람은 세상을 잘사는 방법을 터득한 지혜로운 사람이다. 행복을 보장하는 성공적인 삶은 바로 이 돈과 재산을 여하히 합리적으로 사용하느냐 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돈과 재산은 꼭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하고, 또한 쓰지 말아야 할 때는 아끼고 절약하는 경제생활의 태도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중국인을 예로 한 이야기가 있다. 돈 궤짝을 품에 안고 홍수에 떠내려가는 중국인이 있어, 이를 발견한 사람이 그 안고 있는 궤짝의 돈 절반만 주면 구해주겠다고 얘기를 하니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는 얘기다.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중국인의 모습을 표현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은 매우 중요하다. 돈 때문에 목숨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으니, 자본주의사회에서 가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 할만도 하다. 시쳇말로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돈)가 최고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닌 농담이 되기도 한다. 현대는 더욱 돈의 영향력이 커진 사회에서 돈 관리가 중요한 시대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돈과 재산에 대한 이해와 그 사용법을 잘 터득해나가는 삶이 필요하다.  행복에 관한 연구를 하는 행복경제학자들 중에서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통계적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돈이나 재산의 중요성은 그 절대적인 의미에서 라기보다는 사용 당시의 용처별, 시점별의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촌각을 다투는 생명을 구하는 의료비라든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要重한 일들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돈이나 재산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인생을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돈의 사용이 매우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돈 궤짝을 안고 물에 빠져 죽는 중국인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지만, 그에 견줄 만큼 돈과 재산관리를 비합리적으로 하며 지내는 사람은 의외로 주위에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을 때는 흥청망청 무계획으로 돈을 써 버리다가 수중에 돈이 똑 떨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돈 없음을 탄식하는 사람도 있다. 이 밝은 계산주의 시대에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보다 더 처량한 삶은 없을 것이다. 또한 혹자는 수십억이 나가는 부동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까워서 처분 못한 채 망설이며, 평생을 사용할 돈이 없어 초라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는 늘 궁핍을 느끼면서 재미없는 노후를 보내는 구두쇠 실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죽으면 결국 자식들이 좋겠지만, 그 상속된 재산이 과연 자식들의 삶에 얼마나 큰 보탬을 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돈과 재산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돈과 재산은 행복한 삶을 위한 방편을 제공해 줄 수 있지만, 돈과 재산 그 자체가 곧 인생의 행복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돈과 재산은 있는 만큼 그것의 사용과 관리를 통해서 행복한 삶을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 100수 인생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한 인생 전체를 놓고 분석해 보면 즐겁고 행복하며,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기간은 한없이 짧다. 결국 인생은 일장춘몽일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보람 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을 이루기 위해 돈과 재산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과 재산은 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절약이 결코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미덕이 될 수 없다.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반드시 모든 경우에 통하는 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적당한 소비는 사회적 미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은 순환되어야 경제를 살리고 내 이웃을 부유케 하며, 또한 국가를 발전시킨다. 모든 돈과 재산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잘 배분되어야 생산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재산과 돈은 합리적으로 사용되고 관리되어야 행복지수를 높인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또는 불행했는지를 평가할 때, 기본적으로 우리는 3대의 행복개념을 얘기한다. 말하자면 자신을 중심으로 윗대와 아랫대 즉 부모와 자식의 행복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의 삶이 유복할지라도 부모와 자식 세대가 불행하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총행복은 감소할 것이다. 옛날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는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니 행복하다” 고 했지만, 오늘날은 서구식 사고가 도래하여 가족의 범위도 좀 변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행복한 삶에서 인연의 고리인 부모와 자식의 삶은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돈과 재산이 3 대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으므로 가정의 행복파이는 커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돈과 재산의 합리적 관리의 개념에는 소비, 투자를 포함하여 자신의 부를 언제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개념도 포함된다.    재산과 돈은 우선적으로 가족 그리고 형편이 나아지면, 지정된 기관이나 사회단체로 확대되어 활용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돈과 재산이 잘 관리된 삶은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이고, 세상을 복되게 한다. 그러므로 돈과 재산을 잘 관리하는 지식과 습관의 훈련은 이제 국민적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다양한 기부천사들의 기부행위는 세상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합리적인 재산관리에 대한 이해는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2-06-07 05:43

이  동  열(경산제일고 교사)친구 그만 고개 들게                      이동열(경산제일고 교사) 친구 그만 고개 들게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네그것이 인생이라네어차피 인생은 미리 정해져 있는거라네될 놈은 넘어져도 돈구덩이에 빠지고안될 인연은 통사정해도 떠나는것 이라네다만 우리는 시간의 베일에 가려모를뿐 누구나 날마다  착각하며 꿈을 꾸다아침이 오면 또 꿈을 쫒아다시 문을 나서지그래서 산다는 건늘 만만치 않은 거라네그 사이에 몸과 마음은 망가지고 흩어진다네이보게화투판 끗발처럼, 광 다섯개 들었다고 광발로 끝나는게 아니야 역시 인생은 미리 정해진 뒷 끗발이 아닌가그럴때마다확률이란 잠시 희망이 있긴 하겠지만그거야 그때 뿐이지친구야내가 이제 나이 먹어보니인생은  하루하루 가려진 커텐을 걷어내며 그냥 정해진 길을 가는거라네누구한테 언제 큰 비가 올지내일은 누가 돈벼락 맞을지 어찌 알겠나알듯 말듯한 이 수수께끼를 잡기 위해  집착하지만이 또한 지나가리라그래서세상은 꿈을 가지게 하는착각과 소망의 연속이라네그래도로또 복권 하나 품고 착각하며 사는것이 포기하며 사는 삶보다는 행복한 일이라네자, 한잔하며  그만 고개 들게되는 게 없다고"이놈의 인생 ""이놈의 세상"하며술에 쩌는 친구야.

전문가 | 이동열_경산제일고 교사 | 2022-06-07 04:59

발행인 김문규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새정부의 국무총리로는 부적격이라는 민주당.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와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철회하면 한덕수후보를 인준해 주겠다는 민주당.  정호영 후보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같은 비리로 엮은 결격 사유로 국회에서 인준을 거부하고 있고, 본인은 같은 사안이 아니라며 적극해명과 사퇴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한동훈 후보자도 큰 결격 사유는 없지만 자녀의 학교문제는 사과하고 적극해명으로 맞서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은 없는 경력과 자격을 만들어 실제 학교와 직장에 적용되어 혜택을 누린 대사건이다. 정호영 후보의 자녀사건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자신들의 노력과 실력으로 편입학 한 것을 같이 묶어 낙마시키려는 민주당은 새정부의 발목을 잡고 조국 전 장관의 범법행위를 정당화 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은 5월 16일 대통령의 여·야지도부만찬제의를 거부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언제든 대통령의 회동을 찬성했는데 민주당은 정확한 날자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명백한 발목잡기다.   새정부의 발목잡기는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고 그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민주당은 새정부와 협치는 자당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자당의 지지결집을 유도하는 것으로 본다는 국힘 관계자의 말이 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후보를 부적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한덕수 후보자 인준을 미루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둔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당에서도 새정부 발목잡기는 중장기적으로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직 인수인계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처럼 비협조적인 정부는 없었다. 새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반대하며 예산승인을 한동안 미루었다. 민주당이 총리와 장관후보 인준을 거부한 관계로 내각출범이 막혀, 총리와 주요 장관 없이 문정부의 장관들과 국무회의를 열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거대야당인 민주당은 추경안에도 난색을 표하며 국회가 예산편성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도 민주당 뜻대로하려 한다. 자신들 집권당시의 행태를 반복하며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자기들의 뜻대로 좌지우지해 거대야당의 횡포를 국회에서 저지르려 한다.   문재인정부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비리수사를 막기 위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을 온갖 편법을 동원해 강행처리했다. 이는 대선불복행위와 마찬가지다. 협치를 하겠다던 민주당이 대통령과 면담까지 회피하며 새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진심을 담아 회담을 제의하고 야당도 대통령의 제의에 응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민주당이 만찬제의에 답을 주지 않는다고 압박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민주당지도부에 협치를 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 멋진 협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시한번 민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 대립만 계속한다면 그 폐해가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는 신3고로 인해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에너지, 일자리, 노동정책을 다시 정립하고 북한의 핵, 미사일도발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한다. 내각인선도 마무리해서 정부조직을 일신해야한다.   여야 지도부는 조건 없이 만나서 협치 체제를 만들어 어렵게 된 국정을 풀어내 국민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2-05-17 23:55

김  미  숙  우리 부부는 삼십 년 전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결혼식을 올렸던 친구는 곧바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얼마 전에 그들과 연락이 닿아 남미의 페루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급한 일이 생겨서 올 수 없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아닌가! 머나먼 타지에서 길잡이가 될 그들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인해 당황스러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인천에서 비행기에 올랐고 멕시코를 거쳐 이틀 만에 페루에 닿았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는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기사는 지도를 보여주며 와카치나 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고속도로 양옆으로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사막은 페루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달궈진 모래 언덕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팍팍했다. 여행은 고생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빵 한조각 살 만한 마트도, 밥한 끼 먹을 만한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말도 통하지 않았고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다 보니 배낭여행의 어려움이 폐부 깊숙이 와 닿았다.  결혼 초, 우리의 삶도 팍팍했다. 얇은 월급봉투로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껴야했다. 재래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빵 한 조각 덥석 바구니에 담지 못했고 마음 놓고 외식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혼수품이니 예물 같은 것들은 다 생략해도 좋은데 신혼여행만큼은 제주도로 가자고 졸랐다. 돈이 없었던 그이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이는 나 몰래 돈을 빌려서 제주도의 여행을 성사시켰다. 그 경비는 몇 달 동안 월급을 쪼개가면서 갚아야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돌아오는 공항에서 결혼 30주년엔 남미 여행을 하고 싶다며 지나가는 말로 던졌었는데 그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오게 될 줄이야.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다 이룬 느낌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내 등줄기에서 서성거릴 때쯤 와카치나 사막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보이는 모래언덕의 능선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자 신비로운 모래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와 몸의 열기를 훔쳐갔다. 사막 한가운데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도 있었다. 호수 위로 잎이 풍성한 야자수들과 작은 배가 유유자적 떠다녔다. 사람들이 바다 사막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때처럼 비닐 포대기를 배에 깔고 모래사막을 타고 미끄러져 갔다. 남편도 포대기에 몸을 맡긴 채 저 아래 블랙홀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블랙홀에 도착한 그가 한 알의 점 하나로 보였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손짓하는 그의 모습은 모래 알갱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았다. 그는 환갑이 되었다. 숲을 이루었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다 빠져나갔고 흘러내린 은빛 곱슬머리 몇 가닥이 봄 응달의 잔설처럼 남아 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지 젊은 사람도 두렵다는 모래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내려가다니 아직도 청춘이구나 싶었다. 뭐든지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일궈내는 그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껏 좋아하는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하고 살았던 그이다. 친환경농자재 영업과 판매를 하느라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들어오곤 했다. 전국을 헤매다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돈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삼십 년 동안 몰래 조금씩 적금을 부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렵던 시절에도 해약하지 않았던 적금이었다. 창문 없이 뻥 뚫린 버기카에 올라탔다. 버기카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높은 언덕에 단숨에 올랐다. 쭈-욱 언덕에 오르다가 경사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다. 마치 롤러코스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결혼 삼십 주년을 돌이켜보니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이 버거워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고 잔잔한 파도가 이어지던 때도 있었다. 어떤 해는 한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막장에 닿는가 싶다가도 수면 위로 천천히 해가 뜨는 날도 있었다. 삶은 수시로 낭떠러지로 떨어뜨렸다가 하늘로 치솟았다. 어느 해 삶이 힘겨워 무작정 서해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할미 바위와 할배 바위가 물속에 잠기고 있었으며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해가 솟아오르는 광활한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해가 넘어갈 때의 찬란한 분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해넘이도 해돋이 못지않게 펼쳐질 수 있음에 감동했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보자고 새롭게 출발했던 날로 기억된다.버기카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어딘가로 달렸다. 해넘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붉게 물든 사막에 앉아 언덕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해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계곡을 넘고 또 넘었다. 사구의 능선들을 온통 주황빛 붉게 물들이며 서녘으로 해는 천천히 넘어갔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봤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재설계한다. 삶이란 길을 여행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할 길잡이가 없어도 우리의 인생은 넘실넘실 잘도 세상을 물들이며 기울어간다. 그때마다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갈 것이다. 찬란한 인생의 해넘이를 위해서. 

전문가 | 김미숙 | 2022-05-17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