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2-09 16:0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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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푸름이 짙어 가는 유월, 더위가 조금씩 몰려온다. 사무실 청소를 한 다음 문을 열어 놓고 커피 한 잔을 탄다. 마침 농부 한 분이 사무실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아저씨가 다리 한 쪽을 절고 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다쳤냐고 물었다. 그는 한 달 전에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을 내밀면서 많이 아프시겠다고 했더니 얼굴을 찡그리더니 무리하게 일을 해서 그렇다며 깁스한 다리를 의자에 올린다.  그는 원래 광고업을 하던 분이었다. 처음에는 조그마하게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대기업의 광고를 따냈다. 부산 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K기업의 간판 광고였다. 그 후로 일거리가 줄줄이 들어왔다. 광고를 하고 나면 월세를 받는 일도 짭짤했다. 월세를 받고 건물 세를 내고 하청인에게 다시 결제를 해주고도 이익이 생겼다.  그의 인생에 몇 가지 아쉬운 일이 있었다. 극장에서 하는 광고였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하는 미디어 광고판이었다. 개봉관이 수십 개 되는 회사였는데 영화관 광고가 전망이 좋으니 한 번 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한 번은 지나간 셈이다.  그는 형광등 점멸기 특허를 가지고 있다. 자동으로 형광등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그 특허로 제품을 만들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베트남에 사업체를 만들어서 공장을 지었다. 우리나라는 자재비와 인건비가 비싸서 그곳에서 제품을 만들어 우리나라로 수입을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베트남 정부와 여러 가지 협상을 했지만 서로 맞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이듬해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인건비가 적게 들었다. 여러 가지 조건도 베트남에 비해서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공장의 외형이 커지면서 인건비와 생산비가 배로 들어가더니 자금 조달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4년 만에 빈털터리로 귀국을 했다. 우리 나라에 발을 딛는 순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덜컥 겁이 났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빈털터리가 되자 삶의 희망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떼 부동산 컨설팅을 했던 형이 대추밭을 소개해 주었다. 만 평이나 되는 농지였다. 처음 농사를 지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느꼈다. 그렇게 두 해 농사짓고 나니 자신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대추밭 주인이 조카에게 줘야 한다며 땅을 달라고 했다. 너무나 허무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사업을 하다가 망했을 때도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 평 되는 대추밭을 하루아침에 되돌려 주고 나니 삶이 너무나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농사지으라며 공짜로 땅을 빌려 주기도 하고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도 있었다. 그는 빈 땅에 복숭아나무를 심으면서 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은 빠지지 않고 들었다.  땅 한 평 없이 시작했던 농사가 십 년이 지난 지금은 팔천 평이나 된다. 포도 농사 이천 평에 복숭아 농사가 사천 평 되었다. 천이백 평에 콩을 심었고 깨도 천 평 심었다. 몇 년 동안 너무나 어렵게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돈은 없고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농사는 인건비 싸움이다. 사람을 쓰면 인건비로 다 빠져나가기 때문에 가족이 힘을 모아서 일을 해야 인건비라도 남는다. 일꾼을 시키면 차 떼고 포 떼고 남는 게 없다.  그의 아내는 미용실을 이십 년 경영했다. 단골도 실력도 경험도 쌓였던 아내는 혼자 농사짓는 남편이 안쓰러웠는지 미용실을 처분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힘들어 할 때도 농사를 짓는다고 도와 달라고 했을 때도 아내는 얼굴 한 번 붉힌 적이 없었다. 오히려 무릎 수술한 남편 걱정을 했다. 오늘도 아내는 뜨거운 땡볕에 나가서 콩 적심을 하고 있단다.  농사지은 지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에게 농업의 열악한 환경은 여전하다. 먹고살기 위해서 시작한 농사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공무원이었던 친구가 퇴직한 후 할 일이 없어서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서슴없이 농사를 시작해 보라고 했다. 몸은 고달프지만 시간 하나는 정말 잘 간다며 노후에 가장 좋은 놀이터라고 했다.  정오가 되자 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점심 식사하러 오라는 호출이다. 오전 내내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부가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느낀다. 농사는 부부가 함께 지어야지 혼자서 짓기는 어렵다. 절뚝거리며 사무실을 나가는 그를 향해 나는 소리친다. “아저씨 얼른 나으세요. 밭에 일하러 가셔야지요.”

전문가 | 김미숙 | 2021-12-08 10:04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코로나19로 구속된 생활이 무려 2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생활현장에서 생존적 위기를 느끼는 서민들은 일상의 회복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국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한 정부는 결국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들어가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정책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코로나19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위드 코로나 정책이 커다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 더욱이 남아공화국과 보츠와나를 비롯한 남아프리카 8개국에서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새롭게 출현함으로써 위드 코로나 정책은 한층 더 어렵게 되었다. 당초 빌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이 코로나 충격을 2022년 연말쯤에는 정상회복으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단계적 일상회복의 과정에서 늘어나는 확진자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계는 또다시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지난 11월 26일 WHO는 보츠와나-남아공화국 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B11529의 이름을‘오미크론(Omicron)’으로 명명했다. 그리스 알파벳 15번째 글자인 오미크론을 새코로나 바이러스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다. 원래는 13번째 알파벳을 새 바이러스 이름으로 쓸려고 했으나 이 열 세 번째 알파벳이인 ‘뮤’는 영어의 뉴(new)와 의미가 비슷하여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 다음 순서인 14번째 알파벳 크시(Xi)를 쓸려고 했다. 그러나 크시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이름자의 영어발음과 비슷하여 결국 15번째 글자인 ‘오미크론’을 썼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라스의 명칭에도 중국 정치지도자의 이름을 피해야 하는 WHO의 결정이 조금 우습고, 이해가 가지 않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에치오피아의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 WHO 사무총거브러 여수스의 중국 눈치보기는 세계인의 의심을 받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오미크론의 감염 전파력과 증상의 정도 등 정체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바이러스 공포는 조금 더 계속될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8시 기준으로 경북은 신규확진자 116명, 대구는 99명이 나왔다. 이제 대구는 1일 100명이 넘는 감염환자들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12월이 되면서 전국적으로는 1일 확진자수가 5,000명이 넘어서고, 위중증 환자가 600명이 넘어서는 충격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감염환자 수가 전국의 80% 수준에 이르고 있어 다시 단계적 일상회복정책을 수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단계적인 일상회복의 첫걸음을 땐 뒤 대부분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갖고 일상을 바쁘게 시작했지만, 온기를 느낄 겨를도 없이 코로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심각한 현실이다. 앞으로의 바이러스 상태를 쉽게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는 듯도 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그러다 보니 다시 어렵게 시작한 위드코로나를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쉽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적 여건과 경제사정 등, 사회 종합적 상황이 이를 쉽게 수긍할 형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단계에서는 새롭게 시작한 위드 코로나 정책을 견지해 나가면서 확진자 수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체계를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부는 비상계획 4 가지 중,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제외한 방역패스, 취약시설 보호, 병상확보 등 방역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정부는 필요에 따라서는 방역의 단계적 규제를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서 신축적인 정책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 역시 당초 부스터 샷으로 생각하던 3차 접종을 백신접종 완료 단계로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향후 바이러스 상황의 변화에 따라 n차 백신도 가능할 수 있음을 계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는 지금 이웃 일본에 대하여 주의 깊은 조사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올림픽 전 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몇 배의 확진자가 나왔으나 최근에 이르러는 하루 50~100명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염자 수가 줄어 그 요인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들고 있는데 첫째, 깔끔한 일본인들의 성격이 마스크를 열심히 쓴다는 점 둘째, 검사 건수가 줄었다는 설 세째, 정부의 권고를 잘 따르는 국민성 네째,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 등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주장으로 화이자ㆍ 모더나 백신을 많이 맞았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일본인들은 백신효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스트로 제네카는 거의 맞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도 아스트로 제네카는 사용치 않아 재고가 쌓여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제 정부는 백신의 효과와 효율적인 백신정책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 단계 높은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계가 위드 코르나 시대를 시작하고 있다. 코로나가 감기처럼 인류와 영원히 함께할 질환이라면 이제 우리 국민들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슬기로운 코로나생활을 모색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세계인들도 코로나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제 크로나 사태로 인한 봉쇄조치나 공장폐쇄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 이르러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지만, 코로나는 인류에게 계속 남아 있을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직도 완벽한 의학적 검증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인류의 삶과 영원히 함께할 질환으로 인식되어가는 경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속출하고 인류의 의료체계는 계속해서 바이러스의 변이를 추적하면서 치료방법을 찾아야하는 쫓고 쫓기는 의료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듯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최근 보츠와나-남아공에서 발병하는 오미크론(Omicron) 바이러스는 기존의 백신체계를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러한 변이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즉각적으로 조사해서 정책적 조치를 내려 야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일상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코로나 상황이 5차, 6차 대유행을 만들 가능성 역시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개인의 안정과 행복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개인 자신의 자유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방역체계를 철저히 준수하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합리적인 생활패턴을 만들고, 기존의 방만했던  대면적 인간관계 중심의 생활패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21세기 환경을 감지하고, 생활방식을 대전환하는 비대면의 새로운 삶의 모델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우선 지금까지 너무 방만하게 살아온 사회생활을 축소하고 합리화, 효율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모임과 만남을 최소화해야 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길러야 한다. 적당한 운동, 충분한 수면, 충분한 영양섭취,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자연친화적 생활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면의 장소에서는 위생관리 코로나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대면상황이나 집합장소에서는 가능한 한 마스크를 철저히 쓰는 일이다. 마스크도 가능하면 94K 마스크를 써야 할 것이다. 모든 생활에서 규모의 최소화, 만남의 빈도 최소화 등 효율적이고도 합리적인 생활이 개개인 스스로의 행복을 지키는 행복경제를 실천하는 슬기로운 삶이 될 것이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 2021-12-08 10:02

송하 전명수교육행정질 공무원 정년퇴직계명문화대학교 출강대구.경북 범죄예방위원유네스코대구협회 부회장대구문화제짐이회회원대구생명의전화 상담원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원저서:수필집[실개천에 부는 바람]외 다수녹조근정훈장 수훈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봄날처럼 느껴지는데 새부산 고속도로를 달려 한숨에 밀양 삼랑진에 위치한 민어산으로 오른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헐떡이며 오르니 산정 바로 아래에 작은 절집 만어사가 나타난다. 만어산 만어사(萬魚寺)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만어사는 46년(수로왕 5)에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전설 속의 사찰이다. 1180년(고려 명종 10) 중창하였으며 1506년(중종 1) 화일(化日)이 중건하였다. 이어서 1879년(고종 16)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는 만어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금의 양산지역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독룡 한 마리와 다섯 나찰(羅刹)이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다. 이에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로부터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이들 돌에서는 신비로운 경쇠소리가 났다. 수로왕은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하였으며 불법의 감화를 받아 돌이 된 고기떼의 의미를 살려 이름을 만어사(萬魚寺)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감화로 인해 수많은 물고기가 돌로 변해 법문을 듣는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절집이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동해 용앙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천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 터라고 알려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현재 절의 미륵전(彌勒殿)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 한다. 이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하며 창건 이후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하나의 바위가 전승되어 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암괴류를 물고기가 돌로 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큼직한 바위가 미륵바위로 믿고 섬기는 현장을 돌아보고 그냥 웃고넘길 만은 아니다. 옛날 옛적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민속 신앙의 하나로 자연숭배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높은 산정이나 큰 바위 앞, 신령스러운 고목 아래서 지극정성을 드리는 일은 일종의 민속 신앙이라 하겠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신앙을 불교가 이를 수용한 곳으로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라 하겠다. 절집에서 산신각을 짓고 산신을 모시는 일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하듯 법당 앞 널찍한 너덜지대에는 물고기 떼가 변한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는 돌더미가 널려있는데 지금도 이를 두드리면 맑은소기가 나기 때문에 종석(鍾石)이라고도 부른다. 현존하는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 불상이 아닌 미륵바위를 안치한 미륵전, 삼성각, 요사채, 객사 등이 서 있다. 산 위에 있는 수곽(水廓)의 물줄기는 매우 풍부한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밀야 만어사 삼층석탑(密陽 萬魚寺 三層石塔)은 지금의 절이 자리한 위치와는 조금 떨어져 있으나 석탑의 뒤편에 건물터로 보이는 널찍한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터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석탑도 지금의 위치가 원래 세워져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올려진 3층 석탑으로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 장식에는 보주(寶珠)가 얹혀 있으니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탑의 바닥돌이 드러나 있고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정돈된 모습을 보이는 등 뛰어난 작품이다. 일부에서 퇴화된 자취가 엿보이지만 각 부의 구조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1181년(고려 명종 11)의 중창 때 건립한 것이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견고하게 정제된 탐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밀양 만어사 아미타오존도(密陽 萬魚寺 阿彌陀五尊圖)는 정행(正倖), 정첨(正添) 2인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19세기 후반의 아미타불화로 안정된 화면 구성, 세련된 필선과 비례를 잘 갖춘 인물표현 등 조선후기에 유행한 아미타오존도 형식과 양식이 잘 갖추어진 작품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1880년에 조성된 불화이다. 불화의 화풍과 안정된 인물 구성이나 인물들의 비례감이 잘 표현되어 돋보이는 작품으로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밀양 만어사 석조여래좌상(密陽 萬魚寺 石造如來坐像)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승호가 제작한 석제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양식적인 특징을 통해 조각승의 계보 혹은 유파는 물론 활동과 제작기법 등 조선후기 석조불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밀양 만어사 암괴류(密陽 萬魚寺 岩塊流)는 만어산(700m)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만어사(萬魚寺)에서부터 산의 아래쪽으로 암괴류(岩塊流)가 잘 발달해 있다. 암괴류란 동결과 융해의 반복에 의해 암괴들이 계곡을 따라 집단적으로 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만어산 암괴류는 한반도에서 빙하기가 끝난 후 산의 암석들이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된 암괴류로, 경관적 가치가 크다. 빙하기에 사면을 따라 암괴가 토양과 함께 느린 속도로 흘러내리다가 완경사지에 도달한 후, 이후 흐르는 물에 의해 토양이 씻겨 나가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대구의 비슬산, 부산의 금정산, 광주의 무등산 등지에서도 암석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암괴류가 발달해 있다.  이곳의 암괴류에 있는 암석 덩어리를 물고기로 인식한 불교적 믿음이 반영된 지명으로 전설상으로는 동해에서 온 물고기와 용이 불법에 감동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된 것이라 한다. 암괴류는 돌덩어리가 흐르면서 만들어 놓았기에 ‘돌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만어산은 정상에서부터 해발 500m까지는 경사가 25。를 넘는 급경사를 이루지만 암괴류가 형성된 아래 지점인 해발 300m에 이르면 경사도는 5。 정도로 완만해진다. 만어산의 암석이 노출된 시기는 산 정상부의 것이 약 6만 5천 년 전이며 만어산 아래쪽 주변의 것은 적어도 3만 8천 년 전인 것으로 측정된다고 한다. 빙하기에 형성된 것이므로 현재의 기후 환경에서는 암괴류가 만들어질 수 없다. 암괴를 이루는 암석은 새립질 화강섬록암이며 암괴의 평균 직경은 1.5m 정도이고 암괴류의 면적은 115,149m2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밀양에는 ‘밀양의 신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곳이 있다. 이는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 밀양시 무안면 소재지에 위치한 표충비각, 그리고 이곳 만어산 암괴류가 그것이다. 자연경관은 물로 지형학적인 관점에서도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현재는 암괴류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화석화 단계이며 주변의 식생이 서서히 암괴류를 잠식해 가고 있다. 다른 암석 위에 가볍게 올라가 있는 일부 암석을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나 쇠북소리를 낸다. 이 때문에 만어사보다 이 돌들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돌들은 물고기가 수면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어서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어산불영에 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만어산 암괴류는 처음 찾아와서 보았던 그 풍광 그대로이며 신비로움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는 오솔길을 걸어서 올라왔었는데 지금은 승용차를 타고 올라왔으니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미륵전에는 불상은 보이지 않고 길쭉하고 훤칠한 바위가 버티고 서있으니 동해 용왕의 아들이 이곳에 와서 바위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을 거두어 돌아서는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전문가 | 송하 전명수 | 2021-12-08 09:51

발행인 김문규   모 일간지와 방송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차기정부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64.7%, 유지해야 한다 27.8%, 모름 무응답은 7.6%로 나타났다. 남성 68.2%, 여성61.2%,  18~29세 73%, 30대 56.6%, 40대 54.6%, 50대 64.2%, 60대 이상은 69.5%로 탈원전에 대한 국민 의견은 탈원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10~30대 젊은층에서도 이렇게 이성적인 결과치를 내놓는데 현 정부는 어떤 결과치를 따랐는가 묻고 싶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에너지 전환 비용보전 이행계획을 확정했다. 탈원전으로 발행한 손해를 국민부담금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빼내 쓸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이 만들어 놓은 기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의 3.7%가 주요재원으로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 비축해둔 재원이다. 국민부담금인만큼 전기사업법에는 사용처를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기반조성’이라는 총론과 도서·벽지 전력공급, 발전소와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 지능형전력망 구축, 전선로의 지중 이설, 연구개발 등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세계 절대 다수의 전문가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도 탈원전을 강행한데 따른 발전비용 상승과 천문학적인 매몰비용 등을 전력기금으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전남 나주의 한국에너지 공과대학교 설립에도 이 기금이 사용된다.   이 기금은 국민이 만들어놓은 기금으로서 전력에 따른 문제에만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이 기금은 탈원전 정책으로 큰 손실을 입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로 지원받을 전망이다.   비용보전대상은 경주시 월성1호기, 삼척시 대진1·2호기, 영덕군 천지1·2호기 등 5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 비용도 엄청나게 크지만 전기생산비 급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한국전력과 민간기업, 연구기관까지 포함하면 보전비용은 크게 불어날 것이다.   세계 각국의 동향만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이해불가다. 그냥 사용했으면 탈원전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전기요금을 올리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산업부에서는 “이미 지출한 비용만 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월성1호기를 조기폐쇄하지 않고 계속 가동했다면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을 것이다. 신한울1·2호기는 완공했음에도 가동인가를 미루면서 생산을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면서 발생할 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실제 탈원전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지난해 카이스트 정용훈 교수가 에너지경제연구원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논문 탈원전 비용과 수정방향’에 의하면 원전수명을 20년 연장할 경우 발생되는 이익은 513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정부에서 논문 게재를 막았다고 한다. 탈원전은 당장의 국익은 물론이고 백년대계까지 망치는 악법이었다. 다음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폐기와 법적 책임을 규명하고 구상권 행사도 해서 국민적 울분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어야 한다.   현 정부는 어떤 명분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면서 탈원전을 감행했는지 최고 책임자의 명백한 해명과 책임을 밝혀야 한다.   지금까지도 국가적인 손해가 막심했다. 앞으로도 탈원전으로 인한 세계적인 국가신임도의 원상복구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정부가 탈원전에 매달려 있는 동안 세계의 원전사업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다 수주했다.   원전에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우리나라는 그들 국가에서 하청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는 심각한 현실이 안타깝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1-12-08 09:19

경산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소방경 임성호  최근 난방 기구를 많이 사용하는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 주변에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화재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경산소방서에서는 올 11월 부터 내년 02월까지 “불조심 강조의 달” 및 “겨울철소방안전대책”기간으로 지정하여 화재 경계지구 및 재래시장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순찰을 강화하고, 대상별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화재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전통시장의 경우 최근 현대화 작업으로 화재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시장 인근 상가의 경우 소규모점포의 밀집, 가연성 물건 다량 적재, 노후 전기시설과 방화구획, 소방시스템의 부재와 상인들의 안전의식 부족 등 종합적인 문제를 앉고 있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화재로 번져 많은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어떤 지역 보다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욱이 좁은 도로로 인해 소방도로가 없다든지 주변의 불법 주정차로 소방차량의 접근이 지연될 경우 초기 화재진압을 실패하여 대형화재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노후화된 전통시장의 경우, 인근의 상가와 함께 위에서도 언급한 밀집된 점포, 노후 전기시설, 다량의 가연성물건 적치, 안전의식 부족 등 복잡한 문제점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화재로 전이 될 위험성이 더더욱 크다는 점에서 소방기관에서는 주기적 소방시설 점검과 화재진압훈련 등 “전통시장에 대한 맞춤형 소방안전대책”을 추진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노력들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장 상인 및 인근 상가 점포주들의 화재 예방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전통시장 및 주변 상가에 대한 화재를 예방하고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첫번째, 우선 노후화된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특히 화재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후 전기시설을 교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겠다. 또한 전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두 번째, 시장 주변에 소화기, 비상소화장치,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보강하고 정기점검 및 자체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점포주 및 인근 상가 주민들의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조금은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주입식 교육보다 체험 및 참가형 교육을 통해 효과를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시설이 개선되고 좋은 소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하더라도 안전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만일 화재가 발생하였다면 관계인은 지체 없이 입주자 및 이용자들을 지정된 대피경로를 통해 안전한 장소로 피난유도하고,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시설물에 비치된 비상소화장치(소화기, 방수기구함, 호스릴)등을 이용하여 초기 진화함으로써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한다. 유사시에는 피난 방향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패닉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훈련을 통해 화재대피요령 및 비상 소화장치 사용법 등을 숙지하여 두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다중이 이용하는 전통시장 및 인근 상가에서 화재를 예방하고 유사시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안전수칙을 잘 지켜 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전문가 | 경산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_소방경 임성호 | 2021-11-17 12:12

이복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입양 어머니로 인하여 18년 동안 거짓말하고 살았던 罪를 자수할 용기를 가졌다.  목욕탕이나 식당, 병원 마트 등 함께 다닐 때 사람들이 어머니냐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인에게 연대보증을 써 준 것이 화근이 되어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이셨다.  입양 어머니를 만났을 그 당시 나는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고 고3, 중3 자녀와 함께 교회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신분이 전도사다 보니 항상 교회 사역이 우선이었고 자녀에게는 자격 미달인 엄마였다.고3 수험생을 둔 엄마로서 날마다 교회 가서 기도하며 밤을 지냈다.  어느날 저녁에 기도하러 처음 오신 분이 계셨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으시며 기도 부탁을 했고 서로 가까이하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마치면 대신동에서 산격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셨다가 낮에는 법무사 사무실로 법원으로 동분서주 하시다가 이른 저녁이면 교회로 바로 오셔서 때로는 저녁도 거르시는 날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몇 차례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다 보니 아들딸을 잘 돌보지 못하는 내 사정을 아시고 가사를 돌봐주시더니 옷가지를 한 둘씩 가져오셨다.  그러다가 산격동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짐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되어 자연스레 입양어머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새 노쇠해져 팔순을 넘어가면서 돌봄이 필요하게 되었다  요양원과 가정을 번갈아 지내시다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8년 만에 천국으로 가셨다.  장례를 치르려니 아들이라고 했던 두 아들은 연락이 끊기고 호적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4일 만에 시청에서 장례를 맡아 주었다.  아들과 딸이 외국에서 살다가 엄마 곁으로 돌아온 올해는 나를 하얀 거짓말쟁이가 되게 했던 그 어머님 생각이 더욱 많이 난다.   고3 딸이 보충수업하고 늦게 돌아와도 그사이에 언제 교복을 씻어 말렸는지 풀을 먹이고 다림질까지 해서 입혀 보내던 그 정성은 친할머니보다 더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 딸이 어느새 성장하여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사위가 혼자 한국에 왔을 때 민정이 신랑이라고 하니 사위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으며 민정이 민정이 하시며 연거푸 딸의 이름을 부르시던 그 심정은 지난날 기억이 살아나 너무나 보고 싶다는 애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때로 머리에 열이 나고 온몸은 기진맥진하여 드러누울 때가 있었다.  수건 두 장을 번갈아 냉동실에 넣어 찬물수건을 이마에 얹어 주시며 지극정성으로 간호 해 주신 입양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가 급성 당뇨가 오고 불안증과 치매 전조증으로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는 그만큼 하지 못한 불효가 마음 한켠에 도사리고 앉아 때로 아프게 한다.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라고 하지만 나는 네 가지다  지나가 버린 시간, 쏘아버린 화살, 내뱉은 말, 한 번 가신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절 입양 어머니의 돌봄 속에 자랐던 아들, 딸이 성장하여 미국과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엄마가 사는 동네 같은 아파트로 들어왔다.  아들이 한국에 나와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친할머니처럼 돌봐주셨던 그 사랑을 많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읽어진다.  교회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하더니 삼계탕 260개를 주문하여 예배를 마치고 나가시는 어르신들께 전달하게 되었다.  그 섬김의 현장에는 성도들의 효심이 함께 담겨 전달하는 손은 분주했고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들,딸이 엄마한테 마음껏 효도하며 교회 어르신들까지 섬기는 그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날 더욱 입양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햐안 거짓말을 또 하고 싶어도 검은 캐딜락 뒷모습만 아련히 남기고 떠난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전문가 | 이복순 | 2021-11-17 11:59

이진구(자유기고가)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 해리 G. 프랭크퍼트 교수는 그의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거짓말과 개소리의 차이를 말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정한 상황에 있으면서 조금은 치밀하게 꾸며진 가짜’를 말하는데, 팩트체크로 거짓말이 들통나면 부끄러워하고, 주장을 철회하고, 반성한다. 즉, 거짓말은 진실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개소리>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개소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관심 없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프랭크퍼트는 ‘거짓말도 아주 나쁘지만 <개소리>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를 오염시키는 악이다’라고 말한다.  2022년 3월 9일 향후 5년 국민과 국가를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가장 중요하고 큰 정치행사에 사상 최대 <개소리>가 국민의 선택을 혼란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최근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기본소득>을 국민을 현혹하는 언론과 정치인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개소리>를 넘어 토론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기본소득을 제기하는 이재명 후보 측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며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며, 이를 반대하는 국민의힘 등 다른 당은 기본소득을 '불가능한 논쟁이라거나 찬성해도 시기상조'라고 한다.  이러한 <기본소득> 찬성•반대 두 입장을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경산자치신문에  1. 기본소득은 왜 필요한가?(찬성 입장)  2.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는?(반대 입장)  3. 미래를 위하여  라는 소제목으로 3회 연재하며 건강한 토론을 기대해본다.  오늘은 그 첫 회로 찬성 입장을 정리한다.  <1. 기본소득은 왜 필요한가?(찬성 입장)>  1. 미 대선 후보 앤드류 양과 김세연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장의 <기본소득> 나에게 국가가 매월 50만 원의 돈을 준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생활이 바뀔 것 같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제안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이미 더 크게 제안되었다.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20위권에도 오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 정치 초년생‘앤드류 양’이 돌풍을 일으키며 당당히 10위 안에 들어 TV 토론에 나왔고, 한 때 5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정치 초신인이자 아시아계 이름 없는 후보가 이런 파란을 일으킨 것은‘앤드류 양’의 <기본소득> 공약 때문이었다.  그는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하며, 부가세도입이라는 재원 대책까지 발표했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회장) 등 많은 셀럽들의 지지를 받은‘앤드류 양’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는‘4차 산업혁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자리로 생기는 해고 노동자 등을 위한 유일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그 자리를 AI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한다.  자율주행 하나만으로 미국에서는 700만 명이, 우리나라에서도 약 100만 명의 운전노동자 및 관련 업종에서 실직자가 생길 것이라 한다.  자동차 판매직, 보험 설계사, 마트 계산원, 전화 상담원, 식당 서빙, 편의점 알바 등은 물론, 우리나라도 향후 10년 이내에 50% 가까운 일자리가 인공지능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될 전망이다.  앤드류 양은 이런 급격한 일자리 감소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낸 김세연 전 의원 역시 일자리 감소에 가장 효율적인 대책이 <기본소득>이며, 보수당도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극심한 자본의 양극화가 국민이 권리에 눈 뜨게 하다.  1980년대 전체 부의 60%를 상위 20%가 보유했던 것이 1990년대에는 상위 10%가 가져갔다. 그러던 것이 2000년을 지나면서 부의 60%를 상위 1%가 보유하더니, 놀랍게도 2021년 상위 0.1%가 부의 60%를 가져가 버렸다.  헬싱키 세계개발경제연구소의 2012년 자료에 의하면‘전 세계 부자 2000명, 세계 인구0.0000001%의 부가 하위 50% 25억 명의 부의 합계보다 두 배가 많다고 한다.  지독한 부의 편중이고, 이런 불평등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런 이유를 프랑스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21세기 자본]의 저자‘토마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아서 생기는 불평등의 심화”라고 한다.  즉,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듯, 금수저는 상속받는 부 덕택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불평등 심화 과정에서 99%의 국민이 당연하게 부여받은 자본에 눈뜨게 된 것이다. ‘공유부’가 그것인데, 하나님과 공자, 맹자는 물론 모든 성인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토머스 페인’이다. ‘토머스 페인’은 미국 독립전쟁 직전 발간해‘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들은 모두 싸 봤다.’라고 하는 책 [상식] 발간 직후 낸 [토지 분배의 정의]라는 논문에서 “자연과 토지는 감히 건방지게 누구의 소유라고 말할 수 없는 모든 국민의 공유재산이다. 단지 개인이 토지의 점유(배타적 독점 사용권)와 상속을 인정하여 주고, 대신 세금을 내게 한다. 이 세금은 적립하여 모든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매우 옳은 일이다.”라고 했다.  즉, 토지세, 탄소세 등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자연과, 개인이 만들 수 없는 지식 등 공유지식 또는 데이터베이스를‘공유부’라 하며 이를 전 국민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실제로 미국 알레스카주에서는 석유 생산으로 생긴 수익을 매년 전 주민께 <기본소득>으로 수십 년째 지급하고 있고, 스위스에서는 거둬들인 탄소세를 전 국민께 나누어 준다.  마지막으로‘토머스 페인’은 전 국민의 소유인 토지와 자연을 독점적으로 개인이 사용하게 하고 받은 토지세 등 자연 이용세를 전 국민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은“자선 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이 토지세, 탄소세 등 공유부에서 생긴 수익을 <기본소득> 형태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데 요구하지 않고 있다가,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자리와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부의 불평등 심화로 인해 지금까지 참아온 당연한 권리를 비로소 요구하게 된 것이다.  3. 무슨 돈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나?  토지세, 탄소세 등 공유부를 만들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토지세 등은 이미 다른 분야에 쓰고 있어, 우선 가능한 부분에서 예산을 마련하여 적게라도 지급한 후 정상적인 지급을 해나가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보도블럭 교체를 하지 않고, 대신 문제 구간을 수리하는 정도로 교체하여 남는 돈으로 매년 중고등학생 교복비를 지원했다.”라고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LAB2050 연구소는 말한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국고지원 없이, 증세 없이 단순하게 예산을 절약하여 <청년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LAB2050은 2022년부터 증세 없이 전 국민께 매월 3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며, 낭비되는 예산을 절감하고,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세금혜택을 줄이고, 각종 기금을 활용하는 등 구체적인 예산확보 방안도 제세하고 있다.(LAB2050 홈페이지 자료제공)  또한 이재명 후보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1인당 25만 4인 가구 100만 원씩 지급하는 것은 증세 없이 할 수 있고, 1인당 매월 50만 원씩 지급하는 목표치에 이르러면 증세가 필요한데, 토지보유세와 탄소세로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토지보유세는 OECD 평균만 거둬들여도 충분하다는데, 토지보유세를 내게 되는 사람들의 90%는 내는 토지세보다 받아가는 <기본소득>이 많기 때문에 이런 사실만 알면 저항이 없을 것이라 한다.  4. 청년과 미래를 위한 유일한 희망 <기본소득>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이 사회적 약자이다.  청년과 장애인 등 소수자가 피해를 받을 것이고, 그래서 구매력이 떨어진다면 국가 산업 전체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나이, 성별차별 없이) ▶무조건적으로(부자, 가난한 사람 조건없이) ▶개별적으로(가구별이 아닌 개인에게) ▶현금(지역화폐)으로 ▶정기적으로(년, 분기 또는 월)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국민이 당연히 가진 ’자연자본 수익‘에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권리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도,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국민의힘 김세연 여의도연구소장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네르지와 뒤플로 등 많은 노벨상 수상자 등이 지지하고 있다.  왜 부자들이 놀면 재충전이라 말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쉬면 게으르다고 하는가?  왜 부자들은 자기만 걱정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나라 걱정하는가?  왜 부자들은 자기 자본만으로 쉽게 돈 벌고 부를 축적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당연한 권리인 <자연자본 기본소득>도 찾아 먹지 못하는가?  <기본소득> 이젠 권리로 나서야 할 때이다!  (다음 호에는 <기본소득> 반대 입장을 살펴봅니다.)

전문가 | 이 진 구(자유기고가) | 2021-11-17 11:10

경산소방서 예방안전과조  준  석  올해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기억 안 날만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연일이어지고 있고 뙤약볕에 여물은 곡식들을 이제는 가을걷이를 준비하고 있다. 자연은 적절한 시기가 되면 그 시기에 맞게 변화한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시기가 변하고 계절이 변함에 따라 준비가 필요하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추워지면서 빼앗기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긴옷을 입고, 난방을 위해 불을 피운다. 불을 사용하는 횟수나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화재 발생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므로 주택용 소방시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축물이나 시설들은 소방시설을 갖추어야만 사용할 수 있지만, 개인주택은 많은 비용을 들여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주택은 다른 건축물에 비해 소방시설의 부재로 화재 초기대응도 어렵고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화재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 화재 중 주택화재는 28% 정도지만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화재 사망자 중 50%나 차지할 만큼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주택화재에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초기에 신속히 대피하고 진압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10월 25일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원룸에서 불이 났으며 부주의로 인해 원룸 발코니에서 불이 시작되자, 주택용 화재경보기가 경보음을 울렸다. 인근 주민이 경보음을 듣고 불이 난 사실을 인지, 집안에 미리 갖춰놓은 소화기로 초기 진화하였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주택용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개인주택에 꼭 필요한 것이다.  소방청에서는 2012년 2월부터 가정내 주택용 소방시설을 의무화하였는데 그렇다면 주택용 소방시설은 무엇일까? 주택용 소방시설은 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를 말한다. 단독경보형감지기는 열, 연기 또는 불꽃을 감지하여 내장된 음향 장치로 위험을 알리는 장치다. 경보음이 크게 울려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으며, 주변에서 소리를 듣고 화재 신고도 가능하다. 소화기는 압력에 따라 방사하는 기구로 화재 초기 진압에 효과적이다.  주택용 화재경보기 설치를 먼저 의무화한 해외의 사례를 보면, 화재 사망자가 현저하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77년 관련 규정을 마련하여, 2004년까지 96%의 주택에 화재경보기를 보급해 사망자가 46%나 감소하였다. 일본의 경우 주택용 화재경보기에 대한 2004년 기준을 마련하고, 2015년 81%의 주택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해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2% 감소하였다.  소방관들은 화재 예방교육시“화재 초기 소화기 1대는 소방차 1대와 맞먹는다.”표현을 많이 쓴다. 각 시도별로 주택화재출동 건 살펴보면 소화기를 이용하여 초기진화하여 큰 피해를 막은 사례가 많다. 소화기는 무게가 약 3.3㎏으로 다른 소방시설에 비해 가볍고 사용이 간단해 소화기를 이동시킬 힘만 있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대형마트, 철물점) 등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화재경보기는 천장에 나사 몇 개만  간단하게 체결하면 설치도 어렵지 않다. 화재경보기는 구획된 방마다 설치하면 되고 소화기는 세대별, 층별 1개 이상 설치하면 된다.    화재경보기는 AAA건전지를 사용하며 배터리 수명이 약 10년으로 주기적으로 배터리 점검 및 교체 필요하다. 오작동으로 경보음이 울릴 경우 초기화 버튼을 누르면 경보음이 꺼진다. 소화기는 제조일자 기준 사용기한은 10년이며, 동그란 압력 게이지는 빨간색 화살표가 녹색 범위안에 있으면 정상이다.   신체기능이 떨어져 대피가 어려운 고령 가구나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경우에는 화재를 인식하는 것이 늦어지고,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화재에 취약한 고령 및 1인 가구에 주택용 소방시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    화재는 예고 없이 발생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화재로부터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 위해서는 조그만 관심과 준비는 필수라고 생각하며 화재예방을 위해 주택용 소방시설이 없는 가정에서는 화재경보기와 소화기 구비하기를 당부한다.

전문가 | 경산소방서 예방안전과_조준석 | 2021-11-17 10:17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인류는 오랜 역사를 두고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그러나 유사이래로 이 불평등의 문제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한 시대와 나라는 없었다. 과거 이상적인 나라로 지칭되던 중국의 요순시대나 공산주의 국가들이나 유토피아를 꿈꾸던 그 어떤 나라들도 결코 이 불평등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불평등의 아이러니는 모두가 가난한 빈국이 될 때나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한 때 미국의 소득분배론의 권위 있는 경제학자였던 아델만 교수는 한국의 소득분배를 분석하면서 6.25 동란 직후 우리나라의 분배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남을 분석한 바 있다. 그 의미는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의 국민소득은 모두가 가난하여 저소득 상태로 평준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균등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풍요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도 나라마다 구조적으로 발샌하는 불평등의 문제와 싸우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는 불평등이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는 헌상일 수도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을 낳을 수 있는 요인들은 많다. 능력의 차이, 부의차이, 선택의 차이, 정보의 차이, 기회의 차이 그리고 개인적인 성격 즉 근면과 나태, 검약과 낭비 등이 모두 빈부의 격차를 가져오고 불평등을 낳는 요소들이다. 민주와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들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선대가 부자여서 부의 좋은 조건을 태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조상이 대대로 가난을 물려받아 태생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있다. 우수한 두뇌와 건강한 체격 등 좋은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 변변치 못한 건강과 별다른 재능이 없이 태어나서 부를 축적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의 선택에서도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고, 별로 돈을 벌수 없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삶은 기회와 선택의 연속인데,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선택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를 얻을 수 있는 정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정보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천성적으로 기회의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배움의 차이, 능력의 차이가 기회의 차이를 가져오고, 그것이 이어져 수많은 차이와 불평등을 낳는다. 민주주의사회에서 기회의 차이는 불평등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기회의 차이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교육의 기회평등은 우리사회가 평등지지향의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회 환경이나 구조의 변화는 그러한 인위적인 노력의 크기 만큼 불평등의 문제를 잘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전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가진 능력에 의하여 거대한 부를 누리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의 능력에 의하여 유능한 사업가가 되고, 세계적인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되어 큰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그 시대에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 수도 있다.   세상살이에서 완벽한 평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사회를 생동감 있게 하고, 한층 더 재미있는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불공정한 사회의 룰이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불합리한 부의 분배가 빈부의 격차를 야기한다면, 사람들은 그걸 용납하기가 어렵다. 이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나 제도는 부당한 격차나 불공정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오랜 세월동안 그러한 노력을 해왔음에도 부의 격차나 불평등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자연현상의 변화나 이를 대처하는 능력의 차이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발생할 수가 있다. 요즘은 코로나19 가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CNBC 방송이 밝힌 바에 의하면 미국의 상위 10% 계층이 주식 90%를 소유하여,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서 빈부의 격차를 커지게 하는 요인으로 코로나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부동산 값이 오르고, 특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격차가 발생하여,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 경제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수로 많이 알려진 지니계수란 것이 있다.      1912년 이탈리아의 인구통계학자 코라도 지니가 개발한 지수인데 소득분배가 균등한지 또는 불균등한지를 판단하는 지수이다. 이는 전체국민소득을 각각의 개별국민들이 얼마나 나누어 가지는지를 지수로 나타내는 것인 그 값이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고 보고 있다. 보통 그 값이 0.4이하 이면 양호하고, 그 이상이면 불균등한 것으로 이해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2017년 이후 2019년까지 대체로 0.34 정도 수준을 보여 비교적 근로소득이 균등한 나라였으나, 최근 코로나19 가 덮치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점차 불평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불공정이 원인이 되는 불평등은 국민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증가시켜 사회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속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불평등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지만, 불합리한 룰(rule)에 의하여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수긍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치는 공동체의 행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최소화 시켜나가야 하며, 사회의 불평등 평등을 줄여나가는데 뜻을 모아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성장을 위해 경제의 효율화도 이루어나가야 하고 분배 또한 균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의 공통점은 시장의 법칙에 방치된 상태에서는 게임의 룰이 시장실패를 가져와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여 국민의 행복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시장메카니즘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극대화하고 국가 발전을 지속한다는 기본원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국민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시장기능의 실패현상이나 한계점이 노출되어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경제제도의 운용은 수정되어야 한다. 무작정 시장을 신뢰하는 사고는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낡은 성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 감을 예측하고 있다. 정책 당국은 국리민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경제정책발굴에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잘사는 나라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파이가 커짐을 통해서 국가전체의 총량적 행복이 극대화 되는 정책의 실현을 통해서 실현가능하다고 본다. 행복경제학은 부가 국민다수에게 골고루 배분되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행복의 크기가 키지는 사회라고 보고 있다. 총량적으로 같은 액수의 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부의 부유계층에 집중되어 있기 보다는 저소득층 다수에게 나누어져 있는 상태가 총행복의 크기를 높여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로 엄청난 소득감소 및 생산, 소비감소의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서민생활의 불행은 현저하게 커졌다. 시장이 만들어낸 다양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구체적이고도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할 시대라고 생각한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_명예교수 박천익 | 2021-11-17 10:14

발행인 김문규  중국정부가 지난 10일 한국기업이 이미 계약한 요소 1만8천7백 톤에 대해 수출에 필요한 통관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요소수 수출규제 26일만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에서 선적된 물량은 3백톤밖에 안된다. 나머지 물량이 들어오는 데는 최소 2~4주 가 걸린다.   요소 3백톤으로는 국내 경유차 하루 사용량인 9천톤 정도의 요소수 밖에 만들지 못한다.   차량용반도체에 이어 차량용 요소수 수급문제가 불거졌다.   청와대 한 인사는“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대통령 레임덕이 되어서 공무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정부의 늦장 부실대응으로 요소수 대란이 악화된 것을 공무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한심한 발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요소 재고가 월말이면 바닥난다고 한다. 경유로 움직이는 모든 산업현장에서는 도미노 셧다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요소수 대란은 거의 모든 요소를 중국에서 수입하다 일어난 사태다.  중국 발 요소사태 때문에 우리 국민의 삶이 자칫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우리정부가 중국정부에 긴급수출을 요구했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국내요소 재고량이 바닥나고 수입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물류대란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정부가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하지 못하면 화물대란은 걷잡을 수 없이 현실화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경제가 마비사태가 될 수 있다.   국민생활은 일상생활에서 전방위적인 충격이 될 것이다.   이런 수급문제에 의한 질서 파괴가 21세기의 전쟁이다. 반도체 문제를 겪었으면서도 요소 문제로 다시 국민생활을 불안하게 만든 정부는 무능하다할 것이다. 자동차 생산에 꼭 필요한 반도체, 경유자동차 운행에 꼭 필요한 요소수는 낮은 가격의 제품이지만 자칫 공급이 모잘라서 큰 생산라인의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아직도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정부는 사전예방에 실패하고 사후대책에도 실패했다. 요소수 문제도 9월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부처는 태만했다. 결국 문제가 발생해서 생산 질서가 붕괴되고 나서야 사후대책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가 탄소저감 포플리즘에 빠져서 생활밀접 물자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결국 국민들의 삶만 피폐해질 것이다. 정부가 되늦게 공급망 점검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의 전력난, 탄소배출규제, 마그네슘, 알류미늄 같은 원자재값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긴급 공수가 도움이 되겠지만 추가조달이 관건이라며 많은 수요자들이 이미 물량을 사들인 후에야 매점매석금지 고시로 한발 늦어 보인다고 했다. 우리정부는 어떤 사태가 발발한 후에야 불끄기에 급급하다.   정부는 사전대비와 사후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었던 삶이 위드코로나로 조금 풀려 활기를 띠려고 하니 요소수 사태를 맞았다. 정부당국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 얼마가 들어온다는 것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연속성 있는 수입다변화와 국내생산을 성공시켜야만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중국이 요소수 수출규제 방침을 공고한 것은 지난달 11일인데 중국주재대사관은 열흘 후에야 외교부에 보고했고, 또 열흘이 지나서야 관계부처 대책회의가 열렸다. 정부의 늑장대응이 이번 사태를 확대 시켰다.   그리고는 정부는 쉽고 국민은 고통인 배급제 시행이다. 전국의 주요 물류센터에서는 요소수를 넣기 위해서 수백m 줄을 서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마스크 5부제도 상황오판과 문제해결 능력부재가 부른 것이다. 세계 2위의 생산능력을 갖췄으면서도 확진자 발생 50일이 되도록 문제를 풀지 못해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생소한 배급제는 마스크 5부제에 이어 요소수 배급제가 두번째다.   배급제의 법적 근거는 1976년 제정한 물가안정법이다. 천재지변이나 경제위기 때 한시적 수급통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70년대말 2차 오일쇼크, 90년대말 외환위기 등 온갖 위기 사태에서도 역대  정부는 배급제 없이 상황을 넘겼다. 그러다 문재인정부들어서 처음으로 두 차례 배급제가 실시됐다. 국민은 처음으로 배급제를 경험하는 황당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1-11-17 09:42

김미숙  농협에서 수십 년 동안 근무하다 퇴직을 한 이재권씨를 만났다. 자그마치 삼십 오 년을 한 곳에서 일했으니 회사를 위해 한평생 산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 없이 순탄하게 보냈다. 특별한 굴곡이 없었고 자식들도 모두 별 탈 없이 자랐다. 2남 1녀의 삼 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그는 퇴직을 하면서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남아 있는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지만 딱히 할 만한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퇴직 전에 특별히 준비한 것도, 생각해 놓은 일도 없었다. 농협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땅을 밟으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게 되었다.  그의 고향은 용성면 매남이다. 그곳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들이 400여 년간 13대에 걸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는 일찍 도시에 나와 학교를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농협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퇴직을 하고서 부모님이 물려준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그해 가을, 그는 천 평에 털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이듬해는 조경수로 벚나무 삼백오십 주를 심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서툴고 힘이 들었고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직장 다닐 때 받았던 스트레스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직장 생활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 농사는 육체적인 노동의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시골의 한적하고 느긋한 분위기가 퇴직 후 자신이 원했던 생활과 딱 맞아 떨어졌다. 나무를 심고 돌보는 일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눈 깜짝할 사이에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다.  그는 혼신을 다하여 과일 농사에 몰두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결과가 나왔다. 농사는 이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수십 년 지은 전문가라고 해도 해마다 수확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무는 말이 없으니 어디가 아픈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년 후 복숭아나무에서 약간의 수확을 했다. 자신이 심고 가꾼 나무에서 처음 수확을 하니 기쁨이 가득했다. 복숭아를 따서 주변의 이웃과 친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것도 잠시 이듬해가 되자 삼 년생이 된 나무는 키가 커서 관리하기가 힘들어졌다.  과수 종목 변경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되었다. 블루베리 농가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다. 시작 단계라 뜨고 있고 일하기도 쉽다고 하니 한 번쯤 해 볼 만하다고 화면 속의 농부가 말했다. 그는 육체적으로 힘이 덜 들 것 같은 블루베리 농사로 바꾸기로 했다. 농업진흥청에서 재배와 관리하는 교육을 받고 농장 여러 곳을 기웃거렸다.  복숭아를 베어내고 블루베리 삼백오십 주를 구입해서 화분에 심었다. 똑같은 크기의 화분에 심어 놓은 분재는 새순을 밀어내며 자랐다. 그해 겨울, 하우스 안의 블루베리는 추위를 탔던지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흙을 파서 뿌리를 봤더니 원뿌리가 썩었다. 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묘목을 다시 구입했다. 구입한 나무에 퇴비를 밀어 넣은 다음 영양재를 섞어서 다시 심었다.  가끔 냉해를 입긴 했지만 그럭저럭 나무는 잘 자랐다. 사 년 정도 되자 까맣게 익은 열매가 나뭇가지마다 조롱조롱 달렸다.  그해, 수백 그램 정도의 수확을 하여 천만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농사를 짓고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리기는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수백만 원의 돈이 들어갔지만 현금화되어 나오지 않았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것도 잠시, 문제는 이듬해에 일어났다.  배수 불량으로 인하여 나뭇가지가 마르기 시작했다. 더 두었다가는 나무를 모두 잃을 것 같았다. 마음이 쓰렸다.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삼분의 이 이상의 나무를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미 뿌리가 상해서 옮겨 심어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묘목을 구입해서 다시 심었지만 겨울이 되자 나무는 또 얼었다. 농사는 나무를 심고 캐내고 또 심고 캐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사람 사는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년에는 잘 짓겠지, 내년엔 더 많은 열매를 따겠지 하는 각오로 매년 다음 해에 희망의 메시지를 거는 게 농사와 사람의 인생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가 생각난다. 블루베리를 심어서 언제쯤 얼마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그를 보며 지금 이 시간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여름이 시작되던 6월 초였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올해는 다행히 추위에 피해가 없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결실이 잘되었다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검게 익은 블루베리가 오종종하다. 수확하는 그의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일하거리가 있는 노년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전문가 | 김미숙 | 2021-10-04 19:08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코로나 위기로 인해 재난지원금을 5차례나 받게 되었다. 일반 국민들도 서민이라면 작년과 올해 걸쳐 평균 세 번 정도는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지금까지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전대미문의 일이다. 1997년 11월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당시 외환위기 때는 경험적인 데이터로 네 집중 한 집이 망했다. 4형제의 집안이라면 그중에 한 형제는 망하는 꼴이었다. IMF의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에 의해 공공, 기업, 금융, 노동의 4개 부문에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이 이루어졌고,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1999년 2월에 실업자 수가 근 200만명을 육박해 10%대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정부가 그때는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줄 생각을 못 했다. 빈곤인구가 전체인구의 4%에 머물던 나라가 8∼20%(빈곤통계 및 기준차이에 따른 빈곤규모의 차이)로 급증함으로써 빈곤문제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지금 코로나19의 충격은 그때보다도 더하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서민 경제 상황은 참으로 어렵다. 식당, 목욕시설, 여가 및 위락산업은 거의 폐업의 위기에 이르렀다. 비교적 OECD 가입국 39개 가운데서도 그런대로 우리나라가 코로나 위기를 가장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하지만, 취약계층과 코로나 쇼크에 충격이 큰 자영업자들은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범국민적으로도 이동이 제한되고, 만남이 제약되는 가운데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질환이 주는 구속지수는 참으로 크다. 무언가 자꾸만 움츠려들고, 일상의 만남이 위축되고 귀찮아진다.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니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가 없고 외톨이 행동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모임이 없으니 대중음식점과 관광 여행사, 스포츠, 목욕탕, 영화관, 놀이시설 등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전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지구촌 전체가 한꺼번에 겪는 위기이고 보니, 그 고통의 총량적인 크기가 그 이전의 개별국가들이 겪었던 고난시기 보다 훨씬 그 충격이 크고 넓으며 또한 깊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들은 저마다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어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 마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내 로라 하는 선진국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을 위한 재난극복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부가 주는 재난지원금정책을 두고는 정파간, 국민간 논란이 뜨겁다. 국민들은 시각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주장을 펼치며,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치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를 태면 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느냐에서 부터, 자영업자, 저소득자를 중심으로 집중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줘도 된다는 주장까지 실로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정부는 88%까지 주자고 한 5차 재난지원금을 경기도는 100%까지 주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높으니 아예 일반국민들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줄 필요도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는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재난지원금의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부터 따져보자. 재난지원금의 재원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세금은 누가 낸 것인가? 국내의 모든 기업과 근로 현장에 종사하는 소득창출자인 기업과 개인이 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금은 돈을 많이 버는 고소득층이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저소득자는 적게 낸다. 소득이 낮아 한계소득권에 있는 근로자는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세금은 절대적으로 결국 부자 기업과 부자 개인이 내는 돈이다. 우리나라 조세구성을 보면 대기업들과 고소득자, 고재산가들이 내는 세금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합리적으로 살아서 부자가 되었고, 그 결과로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는 애국자이며, 국민경제의 혁혁한 공로자들이다.   그들은 세금을 많이 낸 댓가로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가? 사실상 국가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은 없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고액납세자에 대한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혜택이 없다. 우리는 아직도 부자를 쓸데없이 미워하고 헐뜯으려는 성향이 있다. 물론 나라가 어려울 때 저소득자나 충격이 큰 자영업자들을 국가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대 환란이 왔을 때, 고난을 함께 이기기 위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수많은 경제적 기여를 한 부자를 포함해서 모든 국민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드리는 차원에서 주는 재난 지원금은 국민의 사기를 올리고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소득증가와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가 있다.  일찍이 대공황기에 구원의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는 경기회복을 위한 유효수요의 증가를 주장하면서 국제회의의 위해 숙박하던 호텔에서 새 타월을 몇 장이나 쓰고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경제가 여려운 시기에는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은 돈을 써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자영업자들도 회생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재난지원금은 결국 부자들이 낸 세금으로 나라가 국민들에게 베푸는 시혜인 셈이다. 그 돈은 위축된 경기를 살려 경제의 활기를 찾는 역할을 한다. 경기를 회복시키고 경제를 살려 국민소득을 높이고, 고용을 증가시켜 경기도 부양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은 두 가지 형태로 지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의 사기를 돋우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편적 재난지원금과 특정계층을 위한 차별적 재난지원금이 그것이다. 재난지원금 정책에 대하여 지나치게 경제적 약자지원이라는 제한적 목적 한 가지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또한 재난지원금으로 재정적자가 커지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염려할 필요도 없다. 국가재정은 가정 살림과는 다르다. 재난지원금을 주어 경제를 회복시켜 차년도의 국민소득을 올려 세금을 더 많이 거두고, 부채를 줄이면 될 일이다. 국가는 나라의 사정에 따라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후일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좀 더 거두어 보충하면 된다. 우리나라 부동산가격 급상승으로 가계부채는 높지만, 우리나라의 재정상황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크게 나쁘지 않다. GDP대비 50% 선이다. 일본의 220%, 미국의 180%에 비하면 아직은 좋은 편이다. 물론 적자가 없는 건전재정이 좋을 테지만, 그렇다고 항상 건전재정이 가장 좋은 선택은 아님을 경제학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왔다.  단순한 도덕적 인식과 과도한 정파적 정쟁이 보편적 재난지원금에 대하여 지나친 비판과 부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책운용자들이 재난지원금에 대하여 합리적인 설명을 않고, 무작정 실시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불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5차 재난지원금의 용처를 밝히고 있는 언론 기사를 보면, 이번 추석연휴에 재난지원금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올리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는 생물이다. 경제는 생명체처럼 순환해야 살아가는 생물인 것이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재난지원금으로 적절히 순환되는 사회는 행복경제를 창조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1-10-04 18:50

발행인 김문규  대장동 개발사업은 2015년 2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대를 맡은 유동규가 당시 성남시장 이재명의 승인을 받아 결정됐다.   유동규는 2010년 성남시장 인수위원이었고, 천화동인 1호 사내이사 이한영은 2018년 지방선거 때 이재명 지사의 선대본부장을 지낸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화영의 보좌관 출신이다. 30여명 규모인 회사고문단에는 전직 대법관, 전직 검찰총장, 특검출신, 현직 국회의원 등 거물급 인사들로 포진되어 있다.   대장동 개발비리는 시행사인‘성남의뜰’에 3억5천만원을 투자, 지분 1%인 화천대유가 배당금 4,040억과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은 5필지에서 수익금4천5백억 등 수익을 독식한 배경이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 2020년 4월 금융정보분석원이 수상한 자금흐름을 포착해 경찰청에 통보했지만, 서울경찰청을 거쳐 용산서에서 5개월간 방치되었다. 검찰은 최초 의혹 보도 후 1개월이 지나도록 미적거리는 사이 남욱 변호사 등 핵심관계자 들이 해왜로 도피, 증거인멸을 방조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이 게이트의 수사능력이 의문이다. 검·경의 대규모 수사팀 결성에 따라 수사의 중복과 충돌이 우려된다. 수사는 충돌이 없는 특검에서 맡아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특검을 왜 피하는지 의문이다. 천하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는 뇌물수수와 8억원대 수익금 분배내역, 차명 대주주 등을 규명할 수 있는 녹취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의 통화내역 등 19건의 녹취파일도 제출했다.   정영학은 대장동 개발초기단계서부터 개발 계획서를 작성하는 등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644억 배당금을 받은 핵심인물이다.   녹취파일에는 뇌물전달 방법과 리스트에는 유 전본부장과 법조계·정계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년간의 녹음 촬영한 파일에는 거액의 배당금과 분양수익금배분 내용도 있다고 한다. 정씨가 제출한 자료만 제대로 확인만 해도 대장동 개발사업의 계획집행과 뇌물전달사항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전 대법관과 검찰총장이 월 1천5백  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뿐인가 정·관계, 법조계. 특검출신 등 쟁쟁한 이들의 활동과 책무는 무엇이었겠는가. 그 시점의 성남시장이었던 여당 대통령 예비후보는 단 1원도 받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가 설계해서 서민의 재산을 수탈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해서 엄청난 돈잔치를 벌인 주역들의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   그들의 비리가 속속 들어나는 가운데 야당 곽상도 의원의 아들 퇴직금 50억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일설에는 50억 클럽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그들의 역할도 기대된다.   여당에서는 야당의원 곽상도 의원을 몰아붙이는데 검찰수사가 진행되면 밝혀질 것이다. 청렴한척 곽상도 의원을 공격하는 파렴치한들은 녹취파일을 들여다보면 배후까지 철저히 밝혀질 것이다.

데스크 | 김문규 발행인 | 2021-10-04 18:15

김미숙   경상북도 울진이 고향인 황익수 씨를 만났다. 그는 몇 년 전 복숭아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러다 최근에 동호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나왔다. 도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에 파묻혀 살았다. 공무원은 안정된 직업이었지만 일을 해도 어딘가 허한 느낌이 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사표를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운이 좋았던지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대로 쭉 나가길 바랐지만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는 모양이었다. 인터넷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대리점은 차츰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지인이 찾아왔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식품공장 하는 일에 뛰어 들었다. 그 일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어떤 때는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벌어 놓은 돈은 사업 자금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로 쓰일 곳이 많은 때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날도 막막했다.  오십대 초반, 그는 우연하게 농사에 발을 디뎠다. 지인의 소개로 도시의 근교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농사는 하우스 안에서 야채를 길러 직접 도매상으로 내다 파는 일이었다. 상추 농사가 짓기 쉽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시작했다.  농사에는 문외한이던 부부는 하우스 안에서 적응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서 상추를 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랭지에서 8년 동안 팔천 평과 씨름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가물했다. 사업을 하면서 전 재산을 탈탈 털린 악몽을 잊기 위해 일에만 전념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농사짓는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도 못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견뎌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다. 하우스의 파이프는 엿가락처럼 휘었고 비닐은 여기저기 흠집을 내고 달아났다. 하우스 안에 있던 상추는 만신창이가 된 채 쓸모없게 되었다. 야채 농사는 이제 그만 지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복숭아 농사로 길을 바꾸었다.  원래 그는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사업이 잘나가던 중에도 틈을 내어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녔다. 그때 원예학을 전공하면서 농업의 전반적인 지식을 쌓았고 애정도 가졌었다.  경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아내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옮겨서 처음 시작했던 농사는 천도복숭아였다. 천칠백 평의 빈 땅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때는 복숭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주변에서 추천해 준 품목을 심었는데 삼 년 후에 다 익은 복숭아 맛을 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과일 맛이 아니었다. 너무 시고 텁텁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이 나지 않았다. 맛없는 복숭을 눈속임으로 시장에 갖다 내놓기 싫었다.  저도 가족도 먹지 않는 과일을 농사지어서 판매할 수는 없었다. 그해 가을 그들은 삼 년생인 복숭아나무를 뽑아냈다.  이듬해, 다시 백도와 황도를 심었다. 명품이라고 하는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들이 원하는 품종이 또 아니었다. 품종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오 년이 지난 후에 알았다. 묘목 키우는 사람이 장난을 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착오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몇 그루의 품종 중에서 스물세 그루를 뽑아냈다. 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또다시 묘목을 심었다. 나무를 심어 놓고 수확할 때까지 수입이 나오려면 몇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8년 동안 키웠던 스물세 그루의 나무는 돈으로 따지면 그들 부부에게 엄청난 금액이었다. 수확은 없고 투자만 계속했으니 십 원짜리 하나라도 아껴야 했다.그들은 다른 농부에 비해서 농사가 많지는 않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품질 좋은 복숭아를 생산하는 게 꿈이었다. 어느 날 그들의 밭에 들른 적이 있었다. 나무를 예술 작품처럼 키워 놓았다. 작년에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나무처럼 분재를 해 놓은 것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밭을 둘러보는 내내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또 천 평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그곳에 산딸기를 심었다. 복숭아 수확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초처럼 커야 하는 딸기를 수확할 때면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뻘뻘 흘렸다.  부지런한 그들 부부는 잠시도 놀 틈이 없었다. 힘든다고 그만두려고 했던 딸기를 뽑지 못하는 이유는 돈의 회전이 빨랐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고 아이들 학비도 댈 수 있었다.시간이 흐르자 두 가지 일이 겹쳐졌다. 딸기를 매일 따서 납품을 하다 보니 복숭아 열매를 솎지 못했다. 나무를 심고 첫 수확 하는 해는 복숭아를 하나도 따내지 못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가 없었다. 농번기의 시골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딸기를 따는 족족 도매상으로 직접 갖다줘야 하니 일하는 시간보다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복숭아 아카데미 일 년 과정을 마쳤고, 경북기술원 농민사관학교의 일 년 과정도 수료했다. 지금은 영남대학교 2년 마이스터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복숭아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는 농사짓는데 필요한 공부를 끝없이 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다. 요즘은 농번기가 따로 없다. 공부와 농사를 병행하다 보니 일 년이 눈 깜짝할 시간이라고 했다.  농사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있으면 짓기가 수월하지만, 호미자루 하나 없이 시작한 그들 부부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직 정상적으로 수입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에게서 행복의 씨앗이 엿보인다. 그들 부부는 큰 욕심이 없다. 이웃 사람들과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면 그만이라고 했다.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 그들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순을 갓 넘긴 너털웃음이 삶의 여유를 말하는 것 같다. 참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이다.

전문가 | 김미숙 | 2021-09-11 22:45

한국복지사이버대학교임승환 부총장  8.15 광복, 1945년 8월 15일 일제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한지 76 주년 되는 국경일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께서 온몸을 던져 목숨바쳐 구한 이 나라 우리가 함께 고마워하고 기뻐해야할 오늘 전국민은 연일 2천명을 오르내리는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불안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고 백신공급이 제때  안되어 2주 이상 지연되는 것은 물론 예약을 받기위해 폰을 들고 정보의바다를  헤메는 현실입니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는 한숨이 눈물로 바뀐지 오래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철저한 개인위생 준수와 사회적거리두기 이젠 정말 지쳐가고 있네요.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백신접종 하라. 개인위생 철저히 하고 마스크 착용하라. 4인 이상 모이지마라. 거리두기 하라. 시간 지켜 영업장 문닫아라.  이와중에 K방역 자화자찬이란 말이왠말입니까. 언제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지.  특히 자영업자ㆍ소상공인들 언제까지 얼마 안되는 지원금으로 경쟁력을 상실시킬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든든하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국민백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명의 확진자라도 제대로 치료해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온몸을 던진 자랑스런 그리고 존경하는 세계최고의 의료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은 광복절인 오늘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코로나19여 우리 국민들 더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조용히 지구를 떠나거라. 

전문가 | 한국복지사이버대학교_임승환 부총장 | 2021-09-11 22:35

고황 대조영 장군상  경자년 금년 한해는 지나온 세월 중에서 가장 힘들게 살았던 것 같다.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아니하고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한 해를 허송하게 보낸 것이다. 중국 우환에서 들어온 폐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지금도 지구상의 전 인류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월 10일 첫 확진자가 나타난 이후 전국적으로 감염시키고 있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그 기세가 조금 수그러지는 듯하다가 늦가을부터 다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동호인을 만나거나 여행도 마음 놓고 떠날 수 없으며 친구나 친인척의 모임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연말이 되니 이제 본격적인 겨울철에 접어들고 추위가 점점 심해진다. 그래도 오래 만에 오늘 하루만 포근한 날이 될 거라는 일기예보에 따라 길을 떠나본다.   오늘 찾아 나선 곳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의 발해마을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을 입구에는 큼직한 바위에‘발해마을’이라 새겨 놓았으며 도로변에는 태극기와 발해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은 오래전에 복개를 하여 넓은 길이 나있고 농산물집하장 앞에는 마을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담벼락에는 발해국을 세운 대조영 장군과 기마부대가 만주벌판을 누비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이곳에 와사 농촌계몽운동이랍시고 한 달 동안 살았던 곳인데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   발해마을을 다듬고 가꾸어 나가는 발해왕조제례보존회장 태재욱 선생을 만나 발해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발해국(渤海國)은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로 고구려 역사의 연장을 의미하고 있다. 698년부터 926년까지 15대의 왕위를 계승하며 229년간 존속한 나라로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발해의 건국으로 남북국 시대가 열렸는데, 남은 신라, 북은 발해를 이르는 것이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및 연해주에 걸친 지역에서 존속하였으며 수도는 발해 성왕 이후로 상경 용천부로 정하고, 초기에는 나라 이름을 진국(震國)으로 정하였으나 이후 해동성국(海東盛國)이나 고려라 불리기도 하였다.   발해의 건국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약 30년 뒤 당나라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698년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기반으로, 대조영이 동모산 부근에서 건국하였다. 발해는 강한 군사력과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영토를 확장하여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다. 건국할 당시 대조영이 진국(震國)이라 하였으나, 713년 당나라로부터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 渤海郡王 忽汗州都督)'으로 명목상 책봉을 받은 후 국호를 발해(渤海)라 하였다. 926년 발해는 갑작스럽게 멸망했는데, 그 이유는 백두산 폭발, 거란의 침입, 지도층의 내분 등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모두가 명확하지는 않다. 발해국이 멸망한 이후 고왕 대조영의 후손들이 대거 옛 고구려 땅에 유민으로 정착하였다. 그 이후 영순태씨 일족은 상주, 문경지역에서 세거하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지금까지 대조영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당서에 나온 고려 별종(渤海靺鞨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고구려 장군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미명으로 2001년부터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이 고대 중국 정부의 동북 지방에 속했다는 역사 왜곡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행태에 대해 태씨 문중의 일족이 똘똘 뭉쳐 역사바로세우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견하며 그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으며 나라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을 추진하고 있음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태재욱 회장은 영순태씨 43세손으로 1942년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721번지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가 1990년 초에 귀향하여 문중 재실을 관리하던 중 대조영을 모시는 사당과 영순태씨 입향조에 대한 내력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부터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인 발해에 대하여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역사 왜곡 사실을 접하게 되어 중국이 우리나라 역사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에 참을 수가 없었단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대조영의 후손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의 역사 왜곡을 반박하기 위하여 종인들의 중지를 모아 발해국의 대조영 후손들이 사는 마을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다. 역사 자료를 수집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발해마을 종합계발계획을 추진하였으며‘발해왕조제례보존회’를 결성하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 송백2리를 발해마을이라 한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대조영의 후손인 영순태씨 일족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이라서‘발해마을’이라고 부른다. 발해는 거란의 침공으로 9세기 후반 멸망했고 발해왕조의 마지막 세자 대광현은 934년 민중 수만 명과 함께 고려로 내려와 살았다. 이후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의 18세손인 중시조 태금취는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오르면서 지금 문경 일대인 영순현 고을을 하사받아 다스렸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대중상의 31세손이며 통전대부를 지낸 태순금이 피난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영순태씨는 북한 지역에 많이 정착하였고, 국내에는 이곳 발해마을이 유일한 태씨 집성촌이라 한다. 1950년 중반에는 송백리에만 60여 가구가 살 만큼 번성했으나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27가구에 40여 명 정도이고 주민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약 9천여 명이라 한다.  그런데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이 어떻게 태씨(太氏)인지 궁금하여 문의하였더니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영순태씨의 태(太)는 큰 대(大)와 서로 통용되는 글자이다. 두 글자는‘크다’라는 의미인데 대(大)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획을 하나 추가해 태(太)로 썼을 뿐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서인 '동사통감'에도 대조영을 태조영이라고 쓴 기록이 있고 '고려사'에도 고려 후기의 무신 대집성(大集成)을 태집성(太集成)과 혼용한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설명을 들어보니 궁금증이 풀린다.   이어서 발해마을을 가꾸어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발해마을은 2016년 농촌건강장수마을에 선정되었고, 2017년 농촌진흥청 주관‘전국 어르신 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 참가하면서 대조영 후손들이 살고 있는 태씨 집성촌이라는 역사 콘텐츠를 발굴, 적극 활용해 그해 9월에 발해마을 입구에 대형 마을 표지석을 세웠고 신도비, 발해고황 대조영 장군상 제막식을 가졌으며 마을벽화, 기마상 조형화, 안내표지판, 발해 상징 로고 깃발과 태극기 게양, 마을 스토리 지도 등으로 마을환경을 정비하는 등 경산을 대표하는 농촌 관광마을을 조성하였다. 2017. 11. 28일‘전국 어르신 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고황제 대조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가 2015년부터 춘분과 추분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으며 제사를 지낼 때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순태씨 후손들이 모두 모인다. 처음 대조영 후손들이 고려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왕조 제사를 지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중시조 제사로 작아졌다가, 2015년 영순태씨와 협계태씨를 합치면서 다시 왕조 제사로 부활하여 지내고 있다. 2018. 3. 21일 사당에 대조영의 표준영정을 모시고 발해왕조 춘분 대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발해국 태씨의 뿌리 및 민족사'란 대형 유래석을 세움으로 발해 마을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발해국의 역사와 명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게 하였다. 대조영의 영정을 모시는 추모재(追募齋) 앞 정원에는 발해마을 안내판, 발해국 태씨의 뿌리 및 민족사 유래석, 대조영 흉상, 석등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조영의 표준영정을 제작한 과정도 이야기해 주었다. 대조영의 표준영정은 얼굴 박사 조용진 한국얼굴연구소 소장이 전국의 142명의 태씨 남성 얼굴 사진을 찍어 특징을 종합 분석한 뒤 민두상을 만들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숙명여대 권희연 교수가 영정을 그렸다고 한다. 이 작업엔 석 달 정도가 걸렸다. 태씨 일족의 남성은 한국인의 평균 남성보다 머리의 앞과 뒤가 더 큰 특징이 있다. 대조영 표준영정은 현재 정부 표준영정 제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 점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발해마을을 더욱 다듬고 가꾸어나갈 포부도 들려주었다. 2013. 5. 27일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발해 왕궁이 있던 자리에서 흙을 한 되 퍼 와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대조영 황제의 왕릉을 재현해 능 안에 중국 발해 왕궁터에서 갖고 온 흙을 넣어 두고 싶다고 한다. 또 발해역사관과 박물관도 건립하고 한옥마을을 조성하며 대조영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또 대조영 영정을 모신 고황전 사당도 큼직하게 마련하고 그 뒤쪽에 대나무 산책길을 만들어 역사교육 관광지로 가꾸는 '발해마을종합계발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한다.  마른 장작으로 군불을 지핀 따듯한 방안에 앉아 발해마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태재욱 회장님은 생동감이 넘치며 기백과 사명감을 갖고 보람 있는 일을 추진함에 참으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니 신바람이 나는 삶인듯하다. 흔히들 경산에는 문화관광자원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이곳에 발해마을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삼성현공원과 압량의 김유신장군의 군사 훈련장인 경산병영유적, 자인 한장군 유적, 구룡산 반룡사, 용산산성 등과 더불어 관광 벨트화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된다. 밖으로 나와 태재욱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고 고황제 대조영을 모시는 추모재 및 사당과 조형물을 살펴보았다. 정부 기관이나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민간차원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발해마을을 가꾸어나가는 그의 일상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린다.                          (2020. 12. 29. 화)             발해국 대씨의 뿌리 및 민족사                    고황 대조영 장군상

전문가 | 송하_전명수 | 2021-09-11 22:01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2020년 연초부터 시작한 코로나 19는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환란을 만들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감염자수는 2억 명이 훨씬 넘었다. 바이러스의 진행 조짐도 단시일에 끝나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성도 우한에서 사스로 의심되는 질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우한 중심병원 의사 리원양은 최초로 우한폐렴 발생이 간단한 질환이 아님을 경고했다. 인구 1,100만 명의 우한은 중국 중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정치, 경제, 금융,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세계 각처에서 왕래자가 많은 곳이다.  발병의 첫 출발은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환자 27명이 발생한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이어 우한 당국은 2020년 1월 9일, 우한 폐렴의 원인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임을 발표했다. 중국이 아닌 첫 해외의 환자는 1월 14일 태국 방콕에서 발생했다. 61세 여성인 그녀는 중국 우한에서 입국했다. 일본의 첫 환자는 1월 16일로 우리나라 보다 약 4일 정도 빠르다. 한국의 첫 번째 환자는 1월 20일 우한에서 인천으로 입국한 35세 중국여성이었다. 이어 그해 21일 미국에서도 첫 환자가 발생하는데, 그 자도 우한을 다녀온 사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코로나 19로 정식 명칭을 갖게 된 것은 2020년 2월 11일 이후이이다. '신종코로나 감염증' 혹은 '우한폐렴'으로 정확한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코로나 19는 중국의 확진자 4만 명, 사망자 1천 명, 한국의 확진자가 27명이 나온 2월 11일 이후 정식 명칭 "코로나19" 를 갖게 되었다. 유사 이래 지구촌의 전인류를 향해 무차별 감염을 시키고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성 질환 코로나19 는 이제 감염기간이 1년 반을 훌쩍 넘기고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이 대체로 발병 후 2년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의 조짐으로는 당초의 예상보다 감염기간이 길어질 전망이다. 그 이유 중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코로나19 가 끊임없는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형, 베타형, 감마형, 델타와 델타 플러스에 더하여, 유형을 알 수없는 변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 4 차 대유행기에 들어 있는 지구촌은 코로나19 로 인해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휴교령이 내린 학교는 텅 비었었고, 재택근무로 인해 사무실도 비었었다. 도시의 거리도 한산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상식화 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비 대면이 뉴 노멀이 되는 사회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며, 통신매체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걸 피하고 있다.  오프라인 사업장이 장사가 안 되고, 공연장, 스포츠경기장, 연회장에도 손님이 적다. 영화관이나 공공장소, 놀이공원도 텅 비고 한적 하다. 어떤 병원은 90% 정도로 수입이 줄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한다. 비대면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장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모든 질서가 고장 난 엔진처럼 속도가 줄고 맥이 빠진 듯도 하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졌고, 거주와 이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어디든 함부로 갈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분명 현재의 이 위기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위기이다.   도쿄 하계 올림픽을 일 년을 연기하여, 겨우 겨우 개최했지만, 관중이 없는 경기가 되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들이 작년 일 년은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금년 들어 겨우 미약한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혼쭐이 났던 1997년 IMF경제위기 보다, 미국 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보다 몇 갑절 어려운 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세계 GDP의 10%가 줄어드는 지구촌 경제상황이 바로 작년이었으며 아직도 크 충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재난지원금을 주는 방법을 두고 나라마다 시끄럽지만, 나라의 구제사업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은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지켜주는 국가가 있음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선별지원도 있어야 하지만, 전 국민에게 위로를 주는 격려금도 필요하다. 정파를 떠나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국가가 베푸는 은전은 경제를 살리고, 애국심에 득이 된다. 물론 국가가 주는 재난지원금 재원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부자들은 많은 세금을 내었다. 결국 지원금의 대부분은 부자들이 낸 돈이다. 부자를 쓸데없이 미워하는 생각은 과거형 낡은 사고방식이다. 부자는 가난한자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직한 사회라면 부자가 인정받는 사회가 자본주의사회의 바른 길이다. 남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통해서 부자가 된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라면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다.  그러나 이 코로나19 의 환란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코로나 19가 가져오는 수많은 변화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탈세계화, 디지털화, 개인주의화 그리고 집중화이다.   첫째, 탈세계화는 지금까지 지향해온 세계화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자유자본주의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쟁적으로 자원을 무제한 사용함으로써, 과도한 자원사용이 자연의 리싸이클리닝(재생) 능력을 불가능하게 했다. 슬로베니아의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밝히듯이 이제 자유방림주의는 수정되어야 하고, 새로운 공산주의 모델을 모색하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둘째, 세계는 지금 디지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CCTV카메라에 스스로도 모르게 찍히고, 디지털이 관리하는 문화 속에 확인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보호하며 감독하는 자동화 시스템에 순응하는 반듯한 삶을 살아야 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연대적 개인주의 사회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누구든 서로를 위해  갖추어 진 조건으로 만나야 한다. 세상은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연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개인주의가 기본이지만,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긴밀한 고리로 얽혀진  연대적 개인주의 사회이다. 디지털로 만나고, 비대면 온라인 거래에서 대부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서로 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연대적 개인사회에 익숙해져야 한다.  넷째, 집중화는 코로나 위기를 어느 나라들이 잘 대처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집중화가 잘된 나라들이다. 일본의 어떤 정치가는 한국이 집중력이 높은 나라라고 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코로나19 대응능력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개인과 전체를 위해서 가능한한 잘 협조하고, 절제된 자유의식이 필요하다.  위기는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만은 "오직 위기만이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고 했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건생활을 상식화 하고, 모든 행동에서 남을 생각하며, 조직과 전체를 생각하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행복의 개념과 기준도 변해야 할 것이다. 많고, 크고, 높고, 화려한 외형의 것만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빨리 가고, 많이 소비하고, 화려하고 빛나는 것이 참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이 참된 행복이다. 일상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삶임을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가 19는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낸 죄업임을 인식하고, 작은 욕심으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통해 세상의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는 작은 경제학이 새로운 행복경제의 명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자연과 공존하면서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순응자가 되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가족중심의 진실한 사랑의 삶이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행복모델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1-09-11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