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09-19 14:5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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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경상북도 울진이 고향인 황익수 씨를 만났다. 그는 몇 년 전 복숭아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러다 최근에 동호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나왔다. 도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에 파묻혀 살았다. 공무원은 안정된 직업이었지만 일을 해도 어딘가 허한 느낌이 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사표를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운이 좋았던지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대로 쭉 나가길 바랐지만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는 모양이었다. 인터넷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대리점은 차츰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지인이 찾아왔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식품공장 하는 일에 뛰어 들었다. 그 일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어떤 때는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벌어 놓은 돈은 사업 자금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로 쓰일 곳이 많은 때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날도 막막했다.  오십대 초반, 그는 우연하게 농사에 발을 디뎠다. 지인의 소개로 도시의 근교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농사는 하우스 안에서 야채를 길러 직접 도매상으로 내다 파는 일이었다. 상추 농사가 짓기 쉽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시작했다.  농사에는 문외한이던 부부는 하우스 안에서 적응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서 상추를 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랭지에서 8년 동안 팔천 평과 씨름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가물했다. 사업을 하면서 전 재산을 탈탈 털린 악몽을 잊기 위해 일에만 전념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농사짓는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도 못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견뎌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다. 하우스의 파이프는 엿가락처럼 휘었고 비닐은 여기저기 흠집을 내고 달아났다. 하우스 안에 있던 상추는 만신창이가 된 채 쓸모없게 되었다. 야채 농사는 이제 그만 지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복숭아 농사로 길을 바꾸었다.  원래 그는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사업이 잘나가던 중에도 틈을 내어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녔다. 그때 원예학을 전공하면서 농업의 전반적인 지식을 쌓았고 애정도 가졌었다.  경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아내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옮겨서 처음 시작했던 농사는 천도복숭아였다. 천칠백 평의 빈 땅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때는 복숭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주변에서 추천해 준 품목을 심었는데 삼 년 후에 다 익은 복숭아 맛을 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과일 맛이 아니었다. 너무 시고 텁텁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이 나지 않았다. 맛없는 복숭을 눈속임으로 시장에 갖다 내놓기 싫었다.  저도 가족도 먹지 않는 과일을 농사지어서 판매할 수는 없었다. 그해 가을 그들은 삼 년생인 복숭아나무를 뽑아냈다.  이듬해, 다시 백도와 황도를 심었다. 명품이라고 하는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들이 원하는 품종이 또 아니었다. 품종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오 년이 지난 후에 알았다. 묘목 키우는 사람이 장난을 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착오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몇 그루의 품종 중에서 스물세 그루를 뽑아냈다. 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또다시 묘목을 심었다. 나무를 심어 놓고 수확할 때까지 수입이 나오려면 몇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8년 동안 키웠던 스물세 그루의 나무는 돈으로 따지면 그들 부부에게 엄청난 금액이었다. 수확은 없고 투자만 계속했으니 십 원짜리 하나라도 아껴야 했다.그들은 다른 농부에 비해서 농사가 많지는 않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품질 좋은 복숭아를 생산하는 게 꿈이었다. 어느 날 그들의 밭에 들른 적이 있었다. 나무를 예술 작품처럼 키워 놓았다. 작년에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나무처럼 분재를 해 놓은 것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밭을 둘러보는 내내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또 천 평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그곳에 산딸기를 심었다. 복숭아 수확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초처럼 커야 하는 딸기를 수확할 때면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뻘뻘 흘렸다.  부지런한 그들 부부는 잠시도 놀 틈이 없었다. 힘든다고 그만두려고 했던 딸기를 뽑지 못하는 이유는 돈의 회전이 빨랐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고 아이들 학비도 댈 수 있었다.시간이 흐르자 두 가지 일이 겹쳐졌다. 딸기를 매일 따서 납품을 하다 보니 복숭아 열매를 솎지 못했다. 나무를 심고 첫 수확 하는 해는 복숭아를 하나도 따내지 못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가 없었다. 농번기의 시골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딸기를 따는 족족 도매상으로 직접 갖다줘야 하니 일하는 시간보다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복숭아 아카데미 일 년 과정을 마쳤고, 경북기술원 농민사관학교의 일 년 과정도 수료했다. 지금은 영남대학교 2년 마이스터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복숭아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는 농사짓는데 필요한 공부를 끝없이 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다. 요즘은 농번기가 따로 없다. 공부와 농사를 병행하다 보니 일 년이 눈 깜짝할 시간이라고 했다.  농사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있으면 짓기가 수월하지만, 호미자루 하나 없이 시작한 그들 부부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직 정상적으로 수입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에게서 행복의 씨앗이 엿보인다. 그들 부부는 큰 욕심이 없다. 이웃 사람들과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면 그만이라고 했다.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 그들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순을 갓 넘긴 너털웃음이 삶의 여유를 말하는 것 같다. 참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이다.

전문가 | 김미숙 | 2021-09-11 22:45

  경산시는 지난 6일부터 결혼ㆍ임신ㆍ출산, 육아ㆍ보육, 아동ㆍ청소년ㆍ교육분야 지원 등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정책을 담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  이번 동영상은 저출생 위기 극복 적극 대응을 위해 ▲결혼·임신·출산 ▲육아·보육 ▲아동·청소년·교육 ▲다자녀가구 지원 등 4개 콘텐츠로 구성하여 시민이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신속히 알 수 있도록 했다.  결혼·임신·출산 단계에서는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임신ㆍ출산 진료비 지원, 둘째아 건강보험료 지원 등 26개 지원사업을 육아ㆍ보육 단계에서는 영유아 보육료 지원, 아이돌봄 지원, 시간제 보육지원 등 15개 지원사업을 아동ㆍ청소년ㆍ교육지원 단계에서는 다함께 돌봄센터 운영, 아동수당 지원, 초ㆍ중ㆍ고 학교급식 지원 등 23개 사업을 다자녀가구 지원사업에는 다자녀가정 교복구입비, 평생학습강좌 수강료 감면, 자동차 취득세 감면, 가족의료비 지원 등 14개 사업에 대한 지원내용을 담았다.   최영조 시장은“앞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시민이 편리하게 정보를 확인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저출생ㆍ고령화ㆍ지방소멸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대응 사업을 지속해서 발굴ㆍ추진하겠다”고 했다.   

사회 | 김도경 기자 | 2021-09-11 22:41

한국복지사이버대학교임승환 부총장  8.15 광복, 1945년 8월 15일 일제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한지 76 주년 되는 국경일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께서 온몸을 던져 목숨바쳐 구한 이 나라 우리가 함께 고마워하고 기뻐해야할 오늘 전국민은 연일 2천명을 오르내리는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불안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고 백신공급이 제때  안되어 2주 이상 지연되는 것은 물론 예약을 받기위해 폰을 들고 정보의바다를  헤메는 현실입니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는 한숨이 눈물로 바뀐지 오래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철저한 개인위생 준수와 사회적거리두기 이젠 정말 지쳐가고 있네요.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백신접종 하라. 개인위생 철저히 하고 마스크 착용하라. 4인 이상 모이지마라. 거리두기 하라. 시간 지켜 영업장 문닫아라.  이와중에 K방역 자화자찬이란 말이왠말입니까. 언제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지.  특히 자영업자ㆍ소상공인들 언제까지 얼마 안되는 지원금으로 경쟁력을 상실시킬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든든하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국민백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명의 확진자라도 제대로 치료해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온몸을 던진 자랑스런 그리고 존경하는 세계최고의 의료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은 광복절인 오늘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코로나19여 우리 국민들 더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조용히 지구를 떠나거라. 

전문가 | 한국복지사이버대학교_임승환 부총장 | 2021-09-11 22:35

  경산시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등산객을 대상으로‘즐거운 산행, 이것만은 알고 가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산행문화 개선 현장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산행문화 개선 캠페인’은 건전한 산행문화 정착을 위해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대국민 참여 행사로, 온·오프라인으로 연중 지속 추진되고 있다. (온라인 참여는 산림청 홈페이지 www.forest.go.kr/hope/100clean/mountain_culture.html)  특히, 경산시는 9월 3, 4일 이틀간, 이용자가 많은 성암산과 백자산의 주요 등산로 입구에서‘산행 안전수칙’과‘코로나 19 방역수칙’을 지킬 것을 홍보하고, 산림 내 불법행위 계도 및 산지정화 활동 등 현장 캠페인을 실시했다.  또한, 캠페인과 병행하여‘등산로 보행매트 설치에 대한 선호도 및 등산로 이용 시 불편사항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등산로 정비사업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상정 산림과장은“이번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께서 보다 더 안전한 산행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앞으로 더욱더 시민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여 쾌적한 산행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시민이 만족하는‘행복건강도시 경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사회 | 김도경 기자 | 2021-09-11 22:32

   경산시는 지난 8월 31일 농업기술센터에서 경산시 수의사회, 경산축협, 한돈협회 경산지부, 양계협회가 참여한 방역 대책 연석회의를 가졌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2021/2022 동절기에 전국적으로 109건(농가), 234건(야생조류)이 발생했으나, 경산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금호강 철새도래지가 경산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리 특성상 철새의 산란계 농가 전파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초소설치 및 개별농장 방조망 설치, 외부차량 농장진입제한, AI 정기검사협조 등 대비에 의견을 모았다.  예방백신이 없는 100% 치사율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8월 중 고성, 인제, 홍천 등으로 남하하여 발생하고 있어, 지역 양돈농가에서는 야생멧돼지의 백두대간을 통한 감염을 방지하고자 양돈 울타리 점검 및 멧돼지 기피제, 생석회 도포, 농장소독, 배수로 정비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산시에서도 양돈농가 8대 방역 시설 조기 설치를 독려하며 2022년 국비사업으로 지원할 것을 밝혔다.  양돈협회 및 양계협회에서는 방역 및 축산 전반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고, 김헌수 축산진흥과장은 가축전염병 발생 시 메뉴얼에 입각한 초동대응절차 및 폐사축 처리 방법 등을 양돈 및 양계농가에 설명 후 협조를 구하였으며, 신속한 처리로 근절 및 재입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부했다.  경산시 수의사회 및 축협에서도 신속한 신고체계 확립 및 질병 대응에 대한 시의 대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우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철저한 방역 대응으로 발생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며, 발생할 경우에는 축산농가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민과 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 | 김도경 기자 | 2021-09-11 22:30

  경산청소년아침무료급식센터(센터장 이주용)에서는 지난 12일 봉사자 및 후원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경산청소년아침무료급식 500회 기념행사」를 가졌다.  2010년 9월 전국 최초로 청소년에게 아침 도시락 배달을 시작한 경산청소년아침무료급식센터는 지역사회 시민, 단체, 기업체의 후원과 자원봉사만으로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아침 결식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추천받아 매주 수요일 새벽 180명의 각 가정에 배달해오고 있으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반찬과 국, 생필품을 격주로 전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청소년 무료급식 500회를 기념하여 오랜 기간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봉사로 헌신한 봉사자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표창장과 기념품을 전달했으며,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정규진 복지문화국장은 축사를 통해“경산청소년무료급식센터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여 무료급식 봉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희망경산 만들기에 함께해 주시기를 당부드리며, 시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사회 | 김도경 기자 | 2021-09-11 22:09

고황 대조영 장군상  경자년 금년 한해는 지나온 세월 중에서 가장 힘들게 살았던 것 같다.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아니하고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한 해를 허송하게 보낸 것이다. 중국 우환에서 들어온 폐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지금도 지구상의 전 인류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월 10일 첫 확진자가 나타난 이후 전국적으로 감염시키고 있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그 기세가 조금 수그러지는 듯하다가 늦가을부터 다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동호인을 만나거나 여행도 마음 놓고 떠날 수 없으며 친구나 친인척의 모임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연말이 되니 이제 본격적인 겨울철에 접어들고 추위가 점점 심해진다. 그래도 오래 만에 오늘 하루만 포근한 날이 될 거라는 일기예보에 따라 길을 떠나본다.   오늘 찾아 나선 곳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의 발해마을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을 입구에는 큼직한 바위에‘발해마을’이라 새겨 놓았으며 도로변에는 태극기와 발해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은 오래전에 복개를 하여 넓은 길이 나있고 농산물집하장 앞에는 마을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담벼락에는 발해국을 세운 대조영 장군과 기마부대가 만주벌판을 누비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이곳에 와사 농촌계몽운동이랍시고 한 달 동안 살았던 곳인데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   발해마을을 다듬고 가꾸어 나가는 발해왕조제례보존회장 태재욱 선생을 만나 발해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발해국(渤海國)은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로 고구려 역사의 연장을 의미하고 있다. 698년부터 926년까지 15대의 왕위를 계승하며 229년간 존속한 나라로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발해의 건국으로 남북국 시대가 열렸는데, 남은 신라, 북은 발해를 이르는 것이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및 연해주에 걸친 지역에서 존속하였으며 수도는 발해 성왕 이후로 상경 용천부로 정하고, 초기에는 나라 이름을 진국(震國)으로 정하였으나 이후 해동성국(海東盛國)이나 고려라 불리기도 하였다.   발해의 건국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약 30년 뒤 당나라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698년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기반으로, 대조영이 동모산 부근에서 건국하였다. 발해는 강한 군사력과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영토를 확장하여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다. 건국할 당시 대조영이 진국(震國)이라 하였으나, 713년 당나라로부터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 渤海郡王 忽汗州都督)'으로 명목상 책봉을 받은 후 국호를 발해(渤海)라 하였다. 926년 발해는 갑작스럽게 멸망했는데, 그 이유는 백두산 폭발, 거란의 침입, 지도층의 내분 등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모두가 명확하지는 않다. 발해국이 멸망한 이후 고왕 대조영의 후손들이 대거 옛 고구려 땅에 유민으로 정착하였다. 그 이후 영순태씨 일족은 상주, 문경지역에서 세거하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지금까지 대조영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당서에 나온 고려 별종(渤海靺鞨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고구려 장군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미명으로 2001년부터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이 고대 중국 정부의 동북 지방에 속했다는 역사 왜곡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행태에 대해 태씨 문중의 일족이 똘똘 뭉쳐 역사바로세우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견하며 그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으며 나라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을 추진하고 있음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태재욱 회장은 영순태씨 43세손으로 1942년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721번지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가 1990년 초에 귀향하여 문중 재실을 관리하던 중 대조영을 모시는 사당과 영순태씨 입향조에 대한 내력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부터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인 발해에 대하여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역사 왜곡 사실을 접하게 되어 중국이 우리나라 역사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에 참을 수가 없었단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대조영의 후손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의 역사 왜곡을 반박하기 위하여 종인들의 중지를 모아 발해국의 대조영 후손들이 사는 마을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다. 역사 자료를 수집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발해마을 종합계발계획을 추진하였으며‘발해왕조제례보존회’를 결성하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 송백2리를 발해마을이라 한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대조영의 후손인 영순태씨 일족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이라서‘발해마을’이라고 부른다. 발해는 거란의 침공으로 9세기 후반 멸망했고 발해왕조의 마지막 세자 대광현은 934년 민중 수만 명과 함께 고려로 내려와 살았다. 이후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의 18세손인 중시조 태금취는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오르면서 지금 문경 일대인 영순현 고을을 하사받아 다스렸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대중상의 31세손이며 통전대부를 지낸 태순금이 피난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영순태씨는 북한 지역에 많이 정착하였고, 국내에는 이곳 발해마을이 유일한 태씨 집성촌이라 한다. 1950년 중반에는 송백리에만 60여 가구가 살 만큼 번성했으나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27가구에 40여 명 정도이고 주민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약 9천여 명이라 한다.  그런데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이 어떻게 태씨(太氏)인지 궁금하여 문의하였더니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영순태씨의 태(太)는 큰 대(大)와 서로 통용되는 글자이다. 두 글자는‘크다’라는 의미인데 대(大)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획을 하나 추가해 태(太)로 썼을 뿐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서인 '동사통감'에도 대조영을 태조영이라고 쓴 기록이 있고 '고려사'에도 고려 후기의 무신 대집성(大集成)을 태집성(太集成)과 혼용한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설명을 들어보니 궁금증이 풀린다.   이어서 발해마을을 가꾸어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발해마을은 2016년 농촌건강장수마을에 선정되었고, 2017년 농촌진흥청 주관‘전국 어르신 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 참가하면서 대조영 후손들이 살고 있는 태씨 집성촌이라는 역사 콘텐츠를 발굴, 적극 활용해 그해 9월에 발해마을 입구에 대형 마을 표지석을 세웠고 신도비, 발해고황 대조영 장군상 제막식을 가졌으며 마을벽화, 기마상 조형화, 안내표지판, 발해 상징 로고 깃발과 태극기 게양, 마을 스토리 지도 등으로 마을환경을 정비하는 등 경산을 대표하는 농촌 관광마을을 조성하였다. 2017. 11. 28일‘전국 어르신 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고황제 대조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가 2015년부터 춘분과 추분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으며 제사를 지낼 때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순태씨 후손들이 모두 모인다. 처음 대조영 후손들이 고려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왕조 제사를 지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중시조 제사로 작아졌다가, 2015년 영순태씨와 협계태씨를 합치면서 다시 왕조 제사로 부활하여 지내고 있다. 2018. 3. 21일 사당에 대조영의 표준영정을 모시고 발해왕조 춘분 대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발해국 태씨의 뿌리 및 민족사'란 대형 유래석을 세움으로 발해 마을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발해국의 역사와 명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게 하였다. 대조영의 영정을 모시는 추모재(追募齋) 앞 정원에는 발해마을 안내판, 발해국 태씨의 뿌리 및 민족사 유래석, 대조영 흉상, 석등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조영의 표준영정을 제작한 과정도 이야기해 주었다. 대조영의 표준영정은 얼굴 박사 조용진 한국얼굴연구소 소장이 전국의 142명의 태씨 남성 얼굴 사진을 찍어 특징을 종합 분석한 뒤 민두상을 만들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숙명여대 권희연 교수가 영정을 그렸다고 한다. 이 작업엔 석 달 정도가 걸렸다. 태씨 일족의 남성은 한국인의 평균 남성보다 머리의 앞과 뒤가 더 큰 특징이 있다. 대조영 표준영정은 현재 정부 표준영정 제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 점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발해마을을 더욱 다듬고 가꾸어나갈 포부도 들려주었다. 2013. 5. 27일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발해 왕궁이 있던 자리에서 흙을 한 되 퍼 와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대조영 황제의 왕릉을 재현해 능 안에 중국 발해 왕궁터에서 갖고 온 흙을 넣어 두고 싶다고 한다. 또 발해역사관과 박물관도 건립하고 한옥마을을 조성하며 대조영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또 대조영 영정을 모신 고황전 사당도 큼직하게 마련하고 그 뒤쪽에 대나무 산책길을 만들어 역사교육 관광지로 가꾸는 '발해마을종합계발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한다.  마른 장작으로 군불을 지핀 따듯한 방안에 앉아 발해마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태재욱 회장님은 생동감이 넘치며 기백과 사명감을 갖고 보람 있는 일을 추진함에 참으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니 신바람이 나는 삶인듯하다. 흔히들 경산에는 문화관광자원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이곳에 발해마을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삼성현공원과 압량의 김유신장군의 군사 훈련장인 경산병영유적, 자인 한장군 유적, 구룡산 반룡사, 용산산성 등과 더불어 관광 벨트화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된다. 밖으로 나와 태재욱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고 고황제 대조영을 모시는 추모재 및 사당과 조형물을 살펴보았다. 정부 기관이나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민간차원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발해마을을 가꾸어나가는 그의 일상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린다.                          (2020. 12. 29. 화)             발해국 대씨의 뿌리 및 민족사                    고황 대조영 장군상

전문가 | 송하_전명수 | 2021-09-11 22:01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2020년 연초부터 시작한 코로나 19는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환란을 만들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감염자수는 2억 명이 훨씬 넘었다. 바이러스의 진행 조짐도 단시일에 끝나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성도 우한에서 사스로 의심되는 질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우한 중심병원 의사 리원양은 최초로 우한폐렴 발생이 간단한 질환이 아님을 경고했다. 인구 1,100만 명의 우한은 중국 중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정치, 경제, 금융,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세계 각처에서 왕래자가 많은 곳이다.  발병의 첫 출발은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환자 27명이 발생한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이어 우한 당국은 2020년 1월 9일, 우한 폐렴의 원인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임을 발표했다. 중국이 아닌 첫 해외의 환자는 1월 14일 태국 방콕에서 발생했다. 61세 여성인 그녀는 중국 우한에서 입국했다. 일본의 첫 환자는 1월 16일로 우리나라 보다 약 4일 정도 빠르다. 한국의 첫 번째 환자는 1월 20일 우한에서 인천으로 입국한 35세 중국여성이었다. 이어 그해 21일 미국에서도 첫 환자가 발생하는데, 그 자도 우한을 다녀온 사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코로나 19로 정식 명칭을 갖게 된 것은 2020년 2월 11일 이후이이다. '신종코로나 감염증' 혹은 '우한폐렴'으로 정확한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코로나 19는 중국의 확진자 4만 명, 사망자 1천 명, 한국의 확진자가 27명이 나온 2월 11일 이후 정식 명칭 "코로나19" 를 갖게 되었다. 유사 이래 지구촌의 전인류를 향해 무차별 감염을 시키고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성 질환 코로나19 는 이제 감염기간이 1년 반을 훌쩍 넘기고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이 대체로 발병 후 2년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의 조짐으로는 당초의 예상보다 감염기간이 길어질 전망이다. 그 이유 중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코로나19 가 끊임없는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형, 베타형, 감마형, 델타와 델타 플러스에 더하여, 유형을 알 수없는 변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 4 차 대유행기에 들어 있는 지구촌은 코로나19 로 인해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휴교령이 내린 학교는 텅 비었었고, 재택근무로 인해 사무실도 비었었다. 도시의 거리도 한산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상식화 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비 대면이 뉴 노멀이 되는 사회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며, 통신매체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걸 피하고 있다.  오프라인 사업장이 장사가 안 되고, 공연장, 스포츠경기장, 연회장에도 손님이 적다. 영화관이나 공공장소, 놀이공원도 텅 비고 한적 하다. 어떤 병원은 90% 정도로 수입이 줄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한다. 비대면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장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모든 질서가 고장 난 엔진처럼 속도가 줄고 맥이 빠진 듯도 하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졌고, 거주와 이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어디든 함부로 갈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분명 현재의 이 위기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위기이다.   도쿄 하계 올림픽을 일 년을 연기하여, 겨우 겨우 개최했지만, 관중이 없는 경기가 되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들이 작년 일 년은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금년 들어 겨우 미약한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혼쭐이 났던 1997년 IMF경제위기 보다, 미국 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보다 몇 갑절 어려운 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세계 GDP의 10%가 줄어드는 지구촌 경제상황이 바로 작년이었으며 아직도 크 충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재난지원금을 주는 방법을 두고 나라마다 시끄럽지만, 나라의 구제사업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은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지켜주는 국가가 있음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선별지원도 있어야 하지만, 전 국민에게 위로를 주는 격려금도 필요하다. 정파를 떠나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국가가 베푸는 은전은 경제를 살리고, 애국심에 득이 된다. 물론 국가가 주는 재난지원금 재원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부자들은 많은 세금을 내었다. 결국 지원금의 대부분은 부자들이 낸 돈이다. 부자를 쓸데없이 미워하는 생각은 과거형 낡은 사고방식이다. 부자는 가난한자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직한 사회라면 부자가 인정받는 사회가 자본주의사회의 바른 길이다. 남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통해서 부자가 된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라면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다.  그러나 이 코로나19 의 환란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코로나 19가 가져오는 수많은 변화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탈세계화, 디지털화, 개인주의화 그리고 집중화이다.   첫째, 탈세계화는 지금까지 지향해온 세계화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자유자본주의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쟁적으로 자원을 무제한 사용함으로써, 과도한 자원사용이 자연의 리싸이클리닝(재생) 능력을 불가능하게 했다. 슬로베니아의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밝히듯이 이제 자유방림주의는 수정되어야 하고, 새로운 공산주의 모델을 모색하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둘째, 세계는 지금 디지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CCTV카메라에 스스로도 모르게 찍히고, 디지털이 관리하는 문화 속에 확인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보호하며 감독하는 자동화 시스템에 순응하는 반듯한 삶을 살아야 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연대적 개인주의 사회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누구든 서로를 위해  갖추어 진 조건으로 만나야 한다. 세상은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연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개인주의가 기본이지만,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긴밀한 고리로 얽혀진  연대적 개인주의 사회이다. 디지털로 만나고, 비대면 온라인 거래에서 대부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서로 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연대적 개인사회에 익숙해져야 한다.  넷째, 집중화는 코로나 위기를 어느 나라들이 잘 대처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집중화가 잘된 나라들이다. 일본의 어떤 정치가는 한국이 집중력이 높은 나라라고 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코로나19 대응능력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개인과 전체를 위해서 가능한한 잘 협조하고, 절제된 자유의식이 필요하다.  위기는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만은 "오직 위기만이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고 했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건생활을 상식화 하고, 모든 행동에서 남을 생각하며, 조직과 전체를 생각하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행복의 개념과 기준도 변해야 할 것이다. 많고, 크고, 높고, 화려한 외형의 것만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빨리 가고, 많이 소비하고, 화려하고 빛나는 것이 참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이 참된 행복이다. 일상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삶임을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가 19는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낸 죄업임을 인식하고, 작은 욕심으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통해 세상의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는 작은 경제학이 새로운 행복경제의 명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자연과 공존하면서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순응자가 되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가족중심의 진실한 사랑의 삶이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행복모델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가 |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 2021-09-11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