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빛난 자랑스런 경산의 딸

  지난 4월 8일은 우리나라 첫 여성영화감독인 박남옥(사진)이 2017년 타계한지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박남옥은 지역출신 최초의 여성영화감독이다. 그는 평생 이 세상에 외동딸과 단 한편의 영화 ‘미망인’만을 남기고 95세에 타계 했다.

  현재도 여성영화감독은 많지 않지만 6.25전쟁 직후의 열악한 환경에서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처절한 자기희생 속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겨우 마련한 개봉관에서조차 3일만에 간판을 내려야만 했다.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선전도 그 시절 그 사회에서는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들고 더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박남옥은 1923년 경산 하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10남매 중(딸6, 아들4) 3째 딸로 태어났다. 박남옥은 어려서부터 문학과 미술, 운동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경북여고 재학 중에는 투포환과 달리기 선수로 활약했고 투포환은 3번씩이나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얼마나 인기가 좋았으면 광복 전에는 박남옥, 광복 후에는 백옥자라는 말이 돌았다. 박남옥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이화여전에 입학해서는 과년한 딸에 대한 집안의 반대에 의해 1년만에 귀향했다.

  대구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썼다. 그는 광복 직후 서울의 조선영화사에서 편집을 배우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알게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영화 촬영대에 입대해 종군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만난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한 그는 1954년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업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미망인은 그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영화였다.

  영화는 전후 미망인들의 고충과 처지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다. 더욱이 자식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했던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속에 있는 여성의 진솔한 욕구를 가감없이 보여준 영화였다. 미망인은 욕망과 모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근대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확립하게 해준 영화라는 평가다.

  박남옥의 첫 작품 흥행실패 원인은 그 시대 사회상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돌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남옥은 우리나라 첫 여성영화감독으로서 뒤늦게 빛난 우리지역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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