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경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영남문학 시등단 한국수필 등단
김    미   경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영남문학 시등단
한국수필 등단

  우뚝 솟았다.

  천오백년의 세월을 머리에 이고, 청춘도 무색할 짙푸름을 나뭇잎 하나하나에 매달았다. 바로 강원도 삼척 늑구리 천오백년 된 은행나무다.
  지인들과 당일 다녀올 수 있는 나들이 계획을 잡았다. 더 늦기 전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지인의 고향인 강원도 태백쪽으로 마음을 모았다. 그러나 그 며칠전부터 내린 비가 모처럼의 나들이를 훼방놓고 있었다. 다행히 아침부터 높이 솟은 해가 출발을 재촉했고, 늦은 아침에야 슬그머니 내배려던 여름 꽁지에 다들 급하게 올라탔다.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몸도 마음도 편하질 않았다. 몸은 일터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했고, 마음은 몸의 고단함에 넋두리만 보태었다. 주변 일들도 뜻과는 달리 자꾸만 어깃장을 놓았다. 이래저래 마음속에 시끄러운 일들이 아예 터를 잡아 버렸다.. 매사 자신을 잃어가도 있던 지친 일상이었다. 지친 마음도 달랠 겸, 찬바람이 불면 바람과 함께 떠나자고 지인들과 미리 작정을 했더랬다.
  태백에 들어서자 지인의 의기양양한 안내로 몇 곳의 명소를 먼저 둘러보았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삼척 늑구리에 있는 천오백년 은행나무쪽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그 곳이 사실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이유다. 천오백년 노목을 보면 혹시 그 기운을 받을 수 있진 않을까. 그래서 일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뻔뻔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꼬불꼬불한 언덕기을 들어서면서 흩어졌던 마음들을 하나로 모은다. 드디어 도착한 천오백년 노목, 거욱하고 엄숙한 기운마저 흐르는 거구 엎에서 풀어헤쳤던 옷깃을 자연스레 여민다. 그 기운에 압도당하면서도 억지 태연한 척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나무는 이미 상할 만큼 상한속에다 시멘트로 큰 수술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신기한 것은 그 밑에서 돋은 아홉 개의 나무가 원줄기를 에워싸 무거운 가지들을 같이 떠받들고 서있다. 노목은 푸른 잎들을 청춘인냥 뽐내며, 수많은 은행들을 올망졸망 매달아 놓았다. 마치 가장인 아버지를 떠받들며 오순도순 모여 사는 한 가족의 모습으로.
  성스럽기마저 한 노목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선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캄캄한 골목 어귀에서 환한 손전등을 밝히며, 구부정한 노목의 모습으로 서계셨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야간자습하고 돌아오는 딸자식이 걱정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구불텅한 골목을 불 밝히고 계셨다. 쭈그리고 앉았다가도 실 그림자라도 어른거리면 이내 두 눈을 환하게 비추셨다. 눈이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버스정류장까지 달려 나오셨다. 자식이 버스에서 내리는 잠시라도 비에 젖을까, 지나던 버스가 멈출 때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가를 또 몇 차례 하셨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그 자식이 여전 불 밝히고 계셨던 당신의 나이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기다리고 계신다. 친정에 들린다는 연락이라도 드리면, 바로 집 앞에 나와 앉아 하염없이 시간만 헤고 계신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마음의 등불을 밝히시고. 물론 그 옆엔 엄마도 그림자처럼 앉아 계신다. 마치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노목과 그 가지를 같이 받든 작은 나무의 모습으로. 내 차가 서서히 다가서면 언제 보았는지 벌떡 일어나 달려오시는 두 분의 모습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죄송함이 덜컥 돌덩이처럼 내려앉곤 한다.
  얼마 전 아들을 미국이란 먼 나라에 교환학생으로 떠나보냈다. 철없던 자식을 지구의 반대편으로 보내고 나서야 부모님의 마을을 다시금 헤아린다. 멀리서 손흔들던 아들은 속울음 우는 부모의 마음을 짐작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들떠만 있었을 뿐. 아들을 보내고 돌아서는 남편의 눈가에 촉촉함이 비쳤다. 어색하게 웃어는 보였지만, 이미 마음의 등불은 내가 먼저 밝혀들었다.
  오늘 가슴이 먹먹하도록 다가온 노목의 모습에서 이미 등골 휘어진 부모님이 떠올랐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부모의 사랑. 인생이란 큰 고개 길에서 휘청대는 자식을 볼 때면, 부모님은 또 한 번 가슴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행여 주저앉아버리진 않을까. 그 노목의 마음은 붙박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마음을 등불을 더 높이 비추어야할 때가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천오백년 모목의 의연한 모습은 바로 우이네 부모님의 자화상이진 또 않을까. 천오백년 세월은 이제 숫자에 불과하다. 서로 받들며 기대선 모습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먼 훗날 자식들에게 나 또한 당당한 노목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길 바랄뿐이다.
  먼 길 떠나는 여름 끝자락에서야, 마냥 받기만을 기대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천오백년 노목에서조차 난 또 무엇을 얻어가려하였다. 그러나 긴 세월동안 주기만 했을 노목의 그늘 밑에서 사랑은 받는게 아님을, 줄 수 있을 때 더 당당함을 깨달았다. 하염없이 주기만 했던 우리네 부모님처럼. 

기자명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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