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숙

  여든의 중반을 건너고 있는 외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자식이 몇 명이나 되었지만 당장 모실 사람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불효자라며 슬퍼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한동안 곡기를 끊었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를 자신이 모시겠다고 했다. 요양원에서 짐을 꾸리던 날 할머니 얼굴에 서광이 비추었다. 대화 상대가 없었던 할머니는 피붙이들이 그리웠다. 친정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할머니와 어머니는 지나간 옛 이야기를 들추며 행복해 하셨다. 

  할머니가 친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주무시다가 헛소리를 하셨다.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느라 힘들었던 탓일까. 가끔씩 정신 줄을 놓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젊은 사람도 깜박 할 때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차츰 이상해진 것은 나를 보고 뜬금없이“누구래요”그러는 것이다.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손을 잡고 큰손녀라고 해도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더니 치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치매가 온 후 부터는 어머니가 일하러 간 사이, 점심과 저녁을 챙기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상태가 어떤지도 봐야 했다. 기저귀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할머니와 뒹굴다보면 둘 다 콩죽 같은 땀이 줄줄 흘렀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였다. 할머니는 밤사이에 몸이 많이 아팠는지 지쳐 보였다. 눈에 초점을 잃은 것 같았다. 차고 있던 기저귀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검붉은 핏덩이로 이불이 엉켜 있었다. 방 안 가득 퍼지는 비릿한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해도 구역질이 났다. 기저귀를 채우려고 눕혔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추한 모습을 나한테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기저귀는 채우지 못하고 핏덩이 이불을 그대로 덮어 둔 채 나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친정으로 향했다. 양쪽 베란다에는 어머니가 세탁한 이불들이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방 모서리에 앉아 계셨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는지 나를 알아보셨다. 전날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기저귀를 이불속에 덮어둔 채 달아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여섯 살 되던 겨울이었다. 외할아버지 생신이 다가왔다. 일주일 전부터 도포자락 휘날리며 갓을 쓰고 오신 친인척분들이 사랑방에 머무르셨다. 할머니는 가마솥에 옥수수가루로 조청을 달였고 맷돌에 콩을 갈아서 두부도 만드셨다. 유과며 단술을 만들었고 손님들 접대를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어린 나는 홍역이 걸렸다. 열이 펄펄 끓었고 붉은 반점의 두드러기가 온 몸에 꽃을 피웠다. 군불을 넣은 아랫목에 누워 있으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고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니며 칭얼거렸다. 종종 걸음을 치던 할머니는 징징거리는 나를 등에 업고 몇 날 며칠을 노심초사 하셨다. 그때 할머니는 기운 없이 축쳐진 내가 죽는 줄 알고 애면글면 눈물을 보이셨던 기억이 난다.  

  여고 2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내고 개학하기 며칠 전이었다. 비가 억수로 퍼붓더니 태풍이 몰려왔다. 불어난 냇가에 길은 끊어지고 콘크리트 다리 위로 쏜살처럼 흐르는 물은 짐승의 포효하는 형국이었다. 등교는 코밑에 다가왔고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학교에 갈 수 없음이 걱정되어 밤새 뒤척였다.  

  그 마음을 알았던지 할머니는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비는 오락가락 했고 큰물은 여전히 모든 것을 삼킬 듯 넘쳤다. 할머니는 산길로 돌아가자며 이른 새벽, 나를 깨우셨다.  

  아직 산허리의 반도 오르지도 않았는데 헉헉 숨이 목까지 찼다. 가끔 비가 내렸고 그 비가 그치면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햇살 한줌도 나타났다가 이내 숨곤 했다. 할머니와 나는 재를 넘고 또 넘었다. 가슴은 따가웠고 온 몸이 나른 하자 다리도 후들거렸다. 소나기가 한차례 퍼붓자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우산은 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벌써 높은 재를 세 개나 넘었다.“할매 아직 멀었어.”하고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하셨다. 조금 가다가 또 여쭈면 돌아오는 대답도 한결 같았다. 산길은 가파르고 비는 연신 퍼부었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맥없이 걷다보니 다리가 풀렸고 움푹 파인 길 위에 빠지면서 중심을 잃었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나는 데굴데굴 굴러서 수십 미터 아래로 나뒹굴었다. 온 몸은 멍투성이고 얼굴이며 팔다리는 돌맹이에 부딪혀서 피가 줄줄 흘렀다. 

  아득하게 할머니 소리가 들렸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눈을 떴다. 희미하던 할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리손녀 살았구나. 할머니는 나를 껴안고 꺼억 꺼억 소리 내어 우셨다. 다 키운 외손녀를 잃을 뻔 했다며 산이 쾅쾅 울리도록 통곡을 하셨다. 빗물인지 핏물인지 범벅이 된 내 얼굴에 할머니는 얼굴을 갖다 대고 하염없이 울음을 토해냈다.  

  목욕통에 물을 받았다. 할머니는 따뜻한 물속에서 행복해 하셨다. 미소 짓는 얼굴이 해맑다. 등을 밀고 가슴과 팔, 다리를 씻겨 드렸다. 가슴은 바싹 달라붙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전날 핏덩어리를 그대로 두고 간 죄스러움 때문에 그것을 만회라도 하듯이 온 몸을 깨끗하게 닦았다. 여든 여섯의 나이답지 않게 흰머리도 찾기 힘들었고 체구가 작아서 어린아이 같았다. 할머니의 몸이 언제 이렇게 작아졌을까. 나를 업고 끌어안았던 할머니는 나보다 훨씬 작아진 채 내 품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날 몸이 개운했던지 할머니는 죽 한 그릇 다 드시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명치끝이 눌리는 것처럼 따가웠다. 나의 유년 시절과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웃고 울던 행복했던 날이 많았다. 이제 그리워도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할머니는 떠나셨다. 나의 슬픔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러 있었다.

기자명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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