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천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암 송시열선생의 수제자이자 계승자였으며, 의정부좌의정을 역임한 대학자 ‘수암 권상하선생’은 생모가 천민임을 알고, 학습에 열중할 뿐 스스로 관직과는 거리를 두었다. 유교사회이자 계급사회에서 천민의 소생이 차지할 관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제삿날 기호학파는 물론 다른 학파의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기호학파 최고 지도자 수암선생이 어머니의 지방을 어떻게 쓰는지 묘한 눈으로 티끌을 잡기 위해 감시하러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수암은 어머니의 지방에‘나의 어머니는 천민이다’라며 신분을 분명하게 기록했다. 그의 추상같은 당당함에 기호학파 뿐 아니라 반대파 등 모든 학자들은 스스로 고개를 숙여 경배했다고 한다.

  공자 또한 자신의 출생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았다.

  아버지 숙량흘이 예순살 때 안장재라는 어린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공자는 자신의 출생을‘야합’이라고 스스로 규정한다. 즉, 비정상적인 사생아란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이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대학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정의’ 수업은 지난 20년 동안 무려 14,000명이 수강 했다.

  그의 저서‘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2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그는 강의마다 흔히 있는 일, 생기기 드문 일, 가상의 사건 등에 대해 가지는 각자의 견해를 묻는다. 이를테면, 한 명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는 철길 위의 상황에 대한 입장, 동성 간의 결혼 허용에 대한 의견, 네 명이 표류 중 세명이 살기 위해 병으로 위독한 한명을 희생시키고 살아 돌아와 법정에 선 이들의 처리 문제 등이다.

  먹고 살기 바쁜 중년과 취업준비에 하루가 짧은 젊은이들에게 마이클 샌델 교수의 토론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더구나 몇 천 년을 결론도 없이 이어져 내려온 토론 아닌가!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칸트는 말한다. 자기 독단의 사고로 방황할 수도 안주할 수도 있지만 잠시 뿐이다. 우리의 이성은 살아 있고 결국 이성으로 우리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고 결론이 없을지라도 그건 피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한다. 정의는 그 고민 속에 있기 때문이다.”

  늦지 않은 시간

  요즈음 들어 나는 우리의 정신적 수준이 ‘저질스러워짐’을 많이 느낀다. 정치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권력기관도 그렇고 이에 부화내동하며 일희일비하는 일부 국민들도 그런 것 같다.

  인문학이 죽어가는 병든 세상의 모습이 이런게 아닐까 생각한다.

  5.16이 쿠테타이건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지나간 역사에 대한 평가만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로 정치를 한다면, 입장에 따라 미래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에 정직해야하며, 정의 앞에 경건해야하며, 국민 앞에 겸손해야 바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남북 대화나 남북 간의 소통이 전혀 없으면서도 통일대박을 꿈꾸진 않을 것이며, 돈 마련할 준비도 없이 복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공권력으로 국민을 겁박하면서 민주를 외치진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앞으로 3년간 더 일을 해야 한다. 새롭게 시작해도 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끊임없는 토론과 정의에 대한 지루한 고민이 우리 역사를 바른길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정책 당사자와 깊은 대화, 대립되는 정치세력과의 끊임없는 소통노력 만이 국민을 편하게 할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모든 단추를 풀고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한다. 더뎌 보이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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