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선조(宣組)임금에게 10만 군병을 양성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율곡(栗谷)은 함경도를 침공한 여진족을 물리친 뒤“앞으로 10년 내에 나라 무너지는 큰 화가 있을 것이니 10만 병졸을 미리 양성해 한양도성에 2만 명, 각도에 1만 명씩 두고 변란이 일어나면 그 모두를 합쳐 나라를 지켜야한다”고 했다.

  이“10만 양병설” 담은 상소(上疏)가 시무6조다.
  율곡은 상소를 올린 이듬해 숨졌고 선조는 이 진언(眞言)을 간과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져 온 나라가 피바다가 됐다.

  시무(時務)란“당대에 마땅이 해야 할 일”이란 뜻의 사선(事宣)과 비슷한 말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내용이 남아있지 않다. 그의 증손인 최승로가 고려 초 불교계를 비판하는 시무28조를 왕에게 올린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이처럼 시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소(疏)의 일종이다.
  일전 청와대 게시판에 塵人 조은산이란 사람이 올린 시무7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임금님께 아뢰어 청한다”는 뜻의 진청(秦請)이라는 제목을 썼다. 문체는 왕조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극진한 경어투 이지만 내용은 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 내로남불, 혹세무민을 일곱 가지로 나눠 낱낱이 질타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를 게시판에 숨겼다가 거센 비판이 일자 공개로 전환했다. 200자 원고지 64장 분량의 이 글은 문학적이면서도 논리적이다.“경상의 멸치와 전라의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은 아이의 눈처럼 맑았고, 할미의 주름처럼 깊었다”는 감성적 묘사,“간신이 쥐떼처럼 창궐하여 역병과도 같다”는 시의적절한 수사가 어우러진 명문이다.
  김현미 장관을 겨냥해 현/시세 11%가 올랐다는 미/친 소리, 이해찬 전 대표에 대해 해/괴한 말로 찬/물을 끼얹고, 추미에 장관을 향해 미/천한 백성들의 애/간장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조선의 왕들은 수시로 구언(求言)을 했다. 세상이 흉흉할 때 임금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숨기거나(隱) 꺼리지(忌)말고 다 말하라고 했다. 일종의 소원수리였다. 민생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왕이 구언을 하지 않으면 신하들은 시무를 올렸다.
  구언은커녕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썼다는“時務7조”를 이 정권 실세들이 거들떠보기나 할지 모르겠다.

  (2020년 8월 27일 자 조선일보 한현우 論說위원의 글 소개)

저작권자 © 경산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