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미숙
ㆍ「수필문학 신인」등단
ㆍ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경산문협 회원
ㆍ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
ㆍ원종린 문학상 수상
ㆍ수필집『배꽃 피고 지고』2011
ㆍ수필집『나는 농부다』2014
ㆍ2014 대구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회 창작지원금 수혜

    남편이 이십여 년 가까이 일하던 곳에서 사표를 냈다. 그 후 3년은 결혼 생활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매달 들어오던 일정 금액의 돈은 끊어졌고, 다달이 써야 할 돈은 여지없이 나갔다. 나는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남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마음 속에는 농사에 대한 꿈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서 전공했던 것도 그의 마음에는 온통 농업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사과 농사와 벼농사를 지었기에 농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남편은 고향에서 수십만 평의 농사를 지으며 고나광 노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였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깨졌다. 운문댐이 들어서면서 고향은 수몰 지역으로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남편이 취직을 했다. 농업과 관련된 직장에 들어갔다. 종묘와 농약기게,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회사였다. 새벽에 일터로 나갔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왔다. 그렇게 일에 빠져 있었지만 마음 속에는 농사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의 꿈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남편이 배밭을 샀다며 잠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집 안에 갇혀 있던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는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 차를 타로 한참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상주에 있는 배밭이었다. 나이테 없는 배나무가 병사의 행렬처럼 줄 서 있었다. 아직 새순도 올라오지 않은 한 살배기 배나무는 꽃샘추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듬해부터 주말과 휴일이면 농장으로 향했다. 큰아이는 나무 사이를 휘젓고 다녔지만 작은아이는 걷는 게 서툴렀다. 등에 업혀 있던 아이는 밭에만 오면 기어 다녔다. 첫해 배 농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해가 갈수록 요령이 생겼다. 대구에서 상주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농사짓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농사를 짓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던 남편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틈만 나면 밭으로 향했다.
  배밭을 자주 들락거리던 해는 수확이 좋았다. 반면 회사 일이 많아 관심을 조금만 덜 가져도 표가 났다. 어느 해는 가물어서 배가 제대로 크지 못할 때도 있었고, 회사 일로 바쁠 때는 수확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린 적도 있었다. 몇 주만 걸러 가도 풀이 내 무릎까지 올라와 초원이었다.
  직장을 그만둔 삼 년 동안 남편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농업기술원에서 자료를 받아 배밭에서 실험하고 연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쪼들리는 생활은 점점 가라앉았다. 아이들 학원비며 생활비 모든 것을 줄여야 했다. 그렇다고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한차례 소나기처럼 지나가리라 여겼다.
  어느 해 연말이었다. 남편이 아이들과 나에게 봉투 하나씩 내밀었다. 그 속에는 만원짜리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지금 돈이 없어도 기죽지 말고 살라고 넣어준 것이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거금이 생긴 나는 너무 좋았다.
  쉬지않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연구한지 4년이 되어 갈 즈음이었다. 남편이 드디어 사과 농사에 필요한 특허 하나를 냈다. 사과나무에 이끼 낀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나무에 낀 이끼는 사과 열매에 영향을 끼쳤다. 사과가 덜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끼가 끼어서 시퍼렇게 보였던 것이다. 특허품을 치면 사과의 색깔이 선명하고 병충해도 덜 입었다. 일년이 지나고 이삼년이 지나자 전국의 능금조합과 농약방을 통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우린 사무실이 필요했다. 경산에 있는 도로 옆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냈다. 농사에 필요한 퇴비와 비료, 영양제와 칼슘제를 전시해 놓은 수준이었다. 거기에는 농약 컨설팅도 해 준다는 문구를 간판에 새겨 넣었다. 남편은 전국으로 홍보와 광고 판매를 하러 다녔고, 나는 사무실에서 제품을 전시하고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주말과 휴일에는 여전히 과수원을 드나들었다.

기자명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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