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08-04 03:15 (수)
[수필] 용성 육동의 대종에서
[수필] 용성 육동의 대종에서
  • 송하 전명수
  • 승인 2021.06.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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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 전명수교육행정질 공무원 정년퇴직계명문화대학교 출강대구.경북 범죄예방위원유네스코대구협회 부회장대구문화제짐이회회원대구생명의전화 상담원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원저서:수필집[실개천에 부는 바람]외 다수녹조근정훈장 수훈
  송하 전명수
- 경산시 용성면 고죽리 출생
- 교육행정직 공무원 정년퇴직
- 계명문화대학교 출강(전)          
- 대구·경북범죄예방위원(전)       
- 유네스코대구협회 부회장(전)     
- 대구문화재짐이회 회원                                   
- 대구생명의전화 상담원
-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원      
- 녹조근정훈장 수훈            
- 저서: 수필집 「실개천에 부는 바람」 외 다수  

  기온이 연일 30℃까지 오르내리는 초여름 날씨가 이어진다. 오늘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여 고향으로 달렸다. 언제 어디서 바라보아도 육중하며 넉넉한 용성의 진산인 용산(龍山)를 바라보고 슬픈 전설이 배어있는 비오재(飛烏峴)를 넘어 육동의 대종리에 닿았다. 육동은 구룡산이 뻗어내려 이어진 반룡산이 품고 있는 분지의 마을이다. 부일, 용전, 용천, 괴일, 대종, 가척 등 여섯 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육동은 해발 약 250m의 준고랭지이며 오염원이 전혀 없는 오지라 공해가 없으며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청정 미나리가 자란다. 지하 150m에서 암반수를 뽑아 올려 무농약으로 미나리를 재배하므로 생미나리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육동에서 제일 위쪽에 자리 잡은 부일리의 옆 계곡에 위치한 육동지 옆으로 난 도로변에는 왕벚나무를 심어 가로수를 조성하였는데 왕벚꽃이 만발할 때는 새로운 볼거리로 명소가 되었다. 또 가족 여행지로 이름난 곳인 산촌생태마을이 조성되어있고 이곳에는 산채 체험장, 해맞이공원, 산촌생태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용천리에는 육동 마을 행복센터가 자리 잡고 있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산촌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 용전리에는 신라 천년고찰인 반룡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육동의 으뜸 동네 대종리(大宗里)에는 특별히 볼거리와 전설이 전승되고 있어 찾아오게 되었다. 구룡산과 반룡산에서 흘러내리는 부일천를 가로지르는 대종2교(大宗二橋) 옆 들판에 진충묘(盡忠廟)가 자리 잡고 있다. 진충묘는 신라 말기에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북쪽의 도천산에 은거하며 약탈과 살생을 일삼는 왜구의 무리를 한 장군과 그이 누이가 이들을 버들못으로 유인하여 처단하여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였는데 주민들은 그의 사후에 한 장군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추앙하는 전각이다. 자인면 서부리의 계정숲에는 한 장군의 묘소와 진충묘가 자리 잡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 진충묘에 제를 올린다. 경산 자인 단오제에 한장군놀이를 삽입하여 더욱 성대하고 뜻깊은 단오제가 진행되고 있다. 한 장군 거리행렬과 여원무(女員舞)는 경산 자인 단오제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계정숲의 한 장군 묘소 옆에 마련된 진충묘와 별도로 자인면 원당리, 용성면 가척리와 이곳 대종리, 진량면 마곡리에 한 장군과 그의 누이 사당이 세워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한당(韓堂) 또는 한묘(韓廟)라 부르기도 한다. 진량면 마곡리에는 한 장군의 누이동생인 한 낭자를 모시는 사당이며 다른 곳은 모두 한 장군을 모시는 진충묘이다. 전각의 규모는 조금씩 달라도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경산 자인 단오 행사 때 각 지역에 소재한 사당에 제를 올린다. 이곳 대종리의 전각은 규모가 작으나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앞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기와를 이었고 옆에는 눈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을 달아 놓았다.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전각의 주변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사당 처마에는 초롱을 달아 놓고 금기(禁忌) 줄이 처져 있었다. 앞으로 4일 후면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라 지금부터 주민들이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들이는 모양이다.

  신라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진충묘 제례 행사는 또 다른 하나의 우리 전통문화라 하겠다. 자인현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백성들을 괴롭혀온 왜구를 무찌른 공로가 지대한 한 장군을 추앙하며 기리는 일은 당연하다 하겠는데 어떻게 하여 용성에 그의 사당이 둘씩이나 세우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이곳의 유력한 토호가 현감의 허락을 받아낸 결과라 여겨진다. 장군의 사당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척리도 그렇고 자인면 원당리와 진량면 마곡리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이렇게 진충묘를 살펴보고 그 주변의 풍광을 돌아보았다. 대종리에서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로 향하는 도로변에는‘5연대’와‘4연대’라는 명문의 바위와 비석이 있다. 五連臺(오연대)라 새긴 큼직한 글씨 옆에는 작은 글씨로 崔晩海五兄弟五月五日遊賞之所也(최만해오형제오월유상지소야)라 새겨져 있다. 四連臺(4연대)라 새긴 빗돌 오른쪽에는 張基植四兄弟遊賞之所也(장기식 사형제 유상지소야)라 새겼고 왼쪽에는 1964년 갑신 4월 초 8일이라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의좋은 최씨의 5형제와 장씨의 4형제가 각각 시절이 좋은 봄날에 이곳에 와서 즐겁게 놀다간 흔적을 남겨놓은 듯하다.

  이곳 주변은 세나벌이라 알려져 있는데 오지의 산촌치고는 제법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고 부일천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데 개천에는 물고기가 많은지 이름 모를 새들이 연신 물속으로 잠수하는 광경이 바라보인다. 마을 앞에는 300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고 팔각정 정자가 세워져 있다.

  부일천 계곡 옆의 산 중턱에는 큼직한 거북바위가 있는데 목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새나벌의 전설이 전승되어오고 있다. 세나벌 전설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를 장자계 전설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은 편협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말해주는 본보기라 하겠다. 이 전설은 조선 중기 때 일이다. 이곳은 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던 작은 동네였는데 마을 앞의 산 중턱에 거북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의 앞산은 구룡산 줄기가 흘러 모여 마을을 지키는 형상을 하고 있어 명당이라 한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아도 산수가 수려하고 들판이 넓으며 계곡에는 맑고 풍부한 물이 흘러내려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명당이라 전해 온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동네 사람들은 거북바위의 덕으로 모두가 넉넉한 살림을 꾸려갔고 그 중 세나벌 바위를 정면에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김첨지는 가장 큰 부자였다.

  김첨지는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도무지 쓸 줄은 모르는 위인이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안에서 거느리는 식솔들마저 배불리 먹이지 아니하였으며 소작을 얻은 일가들도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가들의 재산도 김첨지의 돈 모으기에 짓눌려 논과 밭을 하나둘 그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김첨자는 집성촌의 대지주가 되었다. 일족들도 욕심이 많은 김첨지를 지주로 모시며 살아가야 하였다. 이러한 김첨지를 미워했지만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첨지가 부자인 것은 세나벌의 거북바위가 김첨지 집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 믿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씨를 증오하여 세나벌 거북바위를 부수려 하였으나 그때마다 천둥 번개가 일고 비바람이 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인근의 반룡사에 올라가 주지승에게 김첨지가 큰 시주를 하겠다며 거짓으로 알리자 주지승은 믿지 아니하였다. 천하의 구두쇠가 절에 시주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한 탁발승은 세나벌 김부자 집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바깥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김부자가 문전을 들어서며“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시주할 거라곤 없으니 돌아 가시요.”하자 탁발승은 재빠르게 김부자를 향해 정중히 예를 올리며 “김부자께서 큰 시주를 하신다기에 이렇게 찾아 뵈옵게 되었습니다.”하니 김부자는 버럭 화를 내며“나는 시주할 것도 없고 시주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마침 옆에 있던 머슴 막쇠에게 안으로 들어가 쇠똥 구정물을 가져오게 하여 문간에 서 있는 탁발승을 향해 구정물 한 바가지를 냅다 뿌렸다.

  시주는 얻지 못하고 구정물 세례만 받은 탁발승은 어이가 없어 얼굴을 훔치고는 김부자 집을 나서는데 며느리가 스님에게 사과하며 쌀을 시주하였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탁발승에게 매달려 김부자의 나쁜 행실을 고치려면 거북바위를 깨어버리는 일이라며 그렇게 해주기를 간곡히 애걸하자 탁발승은“거북바위를 부수면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못살게 되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김첨지의 처신이 너무나 못마땅하여 우리는 못살아도 좋으니 꼭 거북바위를 깨부수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탁발승은 반복하여“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바위를 향해“이얍!”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거북바위는 목이 잘려 나갔고 갈라진 바위 사이에는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스님은 김부자 집 며느리에게 단단히 일러주었다.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며느리는 새벽길을 나서 마을을 떠나가다가 뒤에서 큰 소리가 나 뒤돌아본 순간 바위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부자는 이름 모를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그 해 추운 겨울날 이승을 하직하였다. 그는 홀로 쓸쓸하게 죽어 상여조차 하지 못하고 일꾼의 지게에 얹혀 산으로 올라가 한 평의 땅만 깔고 눕게 되었다. 호화스럽던 김첨지의 집도 불이 나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김첨지의 집에 불이 나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불을 끄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부자 김첨지의 욕심은 허망함만 낳았는데 욕심을 부리면 그 결과는 허망함을 안겨준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대종(大宗)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풍기는 점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앞뒤 산의 준령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으며 부일천의 맑은 개울 물가에 박혀 있는 너럭바위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바라보이는데 금방이라도 한 마리의 용이 하늘 높아 승천할 듯 강력한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난 구룡산의 정기가 이곳까지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먼 옛날 왜구들의 약탈과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한 장군의 위대한 애국정신과 동포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곳 진충묘에서 새롭게 느껴보았다. 최첨단을 자랑하는 과학의 문명 속에 살아가면서도 천년이 넘게 이어오는 진충묘를 다듬고 지키며 제례를 올리는 정성이 참으로 놀랍고 고맙게 생각을 하며 가척리에 소재한 한당을 찾아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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