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 전명수교육행정질 공무원 정년퇴직계명문화대학교 출강대구.경북 범죄예방위원유네스코대구협회 부회장대구문화제짐이회회원대구생명의전화 상담원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원저서:수필집[실개천에 부는 바람]외 다수녹조근정훈장 수훈
송하 전명수
교육행정질 공무원 정년퇴직
전)계명문화대학교 출강
전)대구.경북 범죄예방위원
전)유네스코대구협회 부회장
대구문화제짐이회회원
대구생명의전화 상담원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원
저서:수필집[실개천에 부는 바람]외 다수
녹조근정훈장 수훈

  대구에서 경산시가지를 거쳐 고향 땅 용성으로 가는 길목인 자인면 소재지 들머리에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다. 고등학생 때와 젊은 시절 자인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산책을 즐겼으며 수 없이 드나들었던 숲이라 친숙하기도 하다. 오늘은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옛날 생각을 하면서 계정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 장군 묘소 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다. 길옆에는 경상도 관찰사, 자인 현감을 비롯한 관리들의 송덕비, 공적비, 불망비 등 수많은 비석이 도열해있다. 아마도 이 지역의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비석을 이곳에 모아둔 것으로 보인다.

  경산 자인계정숲(慶山 慈仁桂亭숲)은 경북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번지 외 12필지, 43,237㎡의 면적에 이팝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참느릅나무 등 약 500여 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는 천연의 숲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산 자인계정숲은 구릉지에 남아있는 천연 숲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자연 숲인데 나무의 나이는 10∼250년으로 추정된다. 이 숲은 우리나라 온대 낙엽활엽수림의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평지림으로서 이팝나무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류의 나무가 모여서 혼효림(混淆林)을 만들고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경산 자인계정숲은 과거 경산시 일대에 어떤 나무들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는 자연 유적지이며, 우리 조상들의 자연사랑과 자연을 보호하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숲이다. 그래서 천연적인 숲 자체의 가치는 물론 조상들의 정신과 문화를 이어받아 더욱 가꾸고 다듬어 나가기 위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계정 숲은 이곳 사람들이 개장지 숲이라 불러왔고 계림(桂林)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1650년경의 문헌에 계정서록(桂亭西麓)이란 기록이 있고, 또 금석문에도 계정록으로 기록되어있어 이것을 바탕으로 계정 숲이란 명칭이 주어진 것이다. 민족 항일기에는 자인면사무소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하여 서림(西林)으로 개칭하였는데 학창 시절에 흔히 서림 숲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군함의 갑판용으로 수많은 노거수가 벌채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일대에는 속칭‘말 무덤’이라 부르는 고분이 산재해 있다.

  이 숲의 어귀에는 당나무가 서 있으며 오월 단오 전후에는 버들가지를 꽂은 금줄이 쳐진다. 숲 전체가 제사 마당이 되는 것이다. 이 숲은 한 장군을 모시는 성지이며 자인 단오굿의 굿판으로서 향토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그래서 이 숲은 생물학적, 역사적, 민속적으로 높은 가치를 담고 있는 곳이다.

  누이와 함께 여원무(女員舞)를 추면서 왜구를 물리친 한 장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 자인면 교촌리 북쪽에 자리 잡은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하여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으로 꾸민 관을 쓰고 도천산 아래 버들 못으로 왜구를 유인한 후 칡 그물로 가두어 검흔석(劍痕石)에 올려놓고 참수시켰다는 한 장군의 묘이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본관 신축을 위해 공사 중 석실묘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한 결과 두개골이 포함된 유물과 은으로 제작된 갑옷과 투구, 녹슨 철제 창 등 수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묘를 한 장군의 실묘(失墓)라 확정하고 출토된 부장품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옮겼으며 유해는 1969. 5. 10 이곳에 옮겨 한 장군 묘를 조성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 장군 대제를 올리고 있으며 지금은 그 부장품이 2011. 12. 29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 소장하고 있다. 어느 왕릉에 버금갈 정도의 봉분과 봉분의 호석에는 십이지상을 새겨놓았으며 상석과 장명등이 갖추어져 있고 문·무인석이 호위하고 있다. 앞에는‘증 판서한장군묘’라 새긴 비석을 세워 두었다.

  계정 숲에 서 있는 진충묘(盡忠廟)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 여원무의 주인공인 한 장군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이다. 한 장군이 죽은 뒤에 이 지방 사람들이 세운 것이며 정충언 현감이 중수한 바 있다. 애초에 한 장군 신위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그들이 신사를 세웠다. 광복 후 호장굿과 여원무를 중심으로 한‘한장군놀이’가 복원되면서 북사리에 있던 한당(韓堂)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여 현재의 진충묘가 되었다. 한 장군은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로서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단오절에 제를 올린다. 진충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사당이다.

  진충묘 옆에 시중당이 서 있다. 시중당(使衆堂)은 인조 15년(1637)에 자인현이 복현되어 현감 임선백(任善佰)에 의해 자인현의 정청(政廳)으로 자인면 신관리에 세워졌다가 관아가 옮겨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이건되었다. 지금의 시중당은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 자인, 경산이 경산군으로 통합된 후 자인중·고등학교 안으로 옮겨와 교실로 사용하였다. 자인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도서실, 과학실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학생 간부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요산정(樂山亭)이라 하였는데 일명 무금헌(撫琴軒)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 후 뜻있는 자인 지방민들이 건물의 훼손을 안타깝게 여겨 1980년 한 장군 사당 옆으로 이건하였다. 현재 시중당 현판은 목각한 것인데 영조 39년(1762) 정충언(鄭忠彦) 현감이 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넓은 대청과 커다란 방이 곁들어져 굵직굵직한 기둥과 더불어 간결하고 온건한 풍취를 자아낸다. 시중당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그 옆에는 현대식 2층 건물의 한장군놀이 전수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자인계정숲은 경산자인단오제의 주 무대이다. 경산자인단오제는 경산시 자인면 일원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단오 행사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의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고려초기에 왜적이 침입하여 도천산에 웅거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꾀를 내어 여자로 변장하고 누이동생과 함께 꽃으로 화려하게 꾸민 관을 쓰고 춤을 추어 버들 못으로 유인하여 의병들과 함께 왜적들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후 한 장군이 죽은 뒤에 이 고을 주민들이 한 장군의 사당을 짓고 해마다 단옷날에 제사를 지내고 성대하게 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온다.

  경산자인단오제는 모두 다섯 가지 연행(演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군을 위해 진충묘에서 지내는 제사인 한 장군 대제, 단옷날 아침 마을의 향리를 비롯한 일행이 한 장군 대제를 지내러 가는 호장장군 행렬, 한 장군과 누이동생이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왜적을 물리치는 장면을 재현한 춤인 여원무, 한 장군 대제를 지낸 다음에 여흥으로 벌이는 팔광대 춤, 주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단오 축제 마지막 날 진충묘에서 무당들이 벌이는 단오굿 등으로 짜여있다.

  한 장군 대제는 유교의 제례 형식으로 진행되며 한 장군 대제를 올리기 위하여 진충묘로 향하는 호장장군 행렬이 이색적이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여원무는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무형유산이다. 여원무는 한 장군이 여장(女裝)을 하고 누이와 전신을 가린 화관을 쓰고 춤을 추며 잡희(雜희)로 꾸민 여고생 300여 명이 등장한다. 한 장군 남매가 쓰는 화관의 높이가 3m나 되고 종이로 만든 조화가 무려 500여 송이나 달리며 춤사위도 매우 독특해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이다. 축제가 종료되면 관객들은 이 꽃송이를 서로 먼저 가져가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고 한다. 여원무 화관의 꽃을 집에다 두면 모든 액운이 사라지고 가정이 편안해지며 바라는 바의 소원이 성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지방의 광대놀이는 오광대가 보통인데 이곳에는 팔광대가 무대에 오르며 줄타기는 공중에 줄을 매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줄을 깔아놓고 공중에서 줄타기하는 몸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며 흥미진진하게 광대놀이가 펼쳐진다.

  한 장군의 남매를 기리며 올리는 대제나 여원무와 팔광대 놀이 그리고 단오굿 등은 오랜 세월 동안 자인지역 주민들이 대대로 이어받아 전하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옷날을 전후하여 크게 축제를 열고 있다. 보인동 농악대가 한바탕 풍물놀이를 하고 계정들소리 공연도 빠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며 지역 출신 가수들의 열창은 더욱 흥을 돋운다. 그네뛰기, 씨름대회, 줄 당기기는 필수적인 행사이다.

  고향길을 오고 가면서 자주 바라만 보며 지나가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자인 계정숲 속으로 들어가 아련한 옛날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한 장군 오누이 이야기와 자인단오제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확실하게 익히고 돌아선다. 경산자인단오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일과는 별도로 여원무와 자인팔광대 놀이는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 각각의 국가나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 눈부시게 바라보았던 노거수 이팝나무에 하얀 꽃이 지금도 그대로 피어 있다.

기자명 송하 전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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