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
이복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입양 어머니로 인하여 18년 동안 거짓말하고 살았던 罪를 자수할 용기를 가졌다.
  목욕탕이나 식당, 병원 마트 등 함께 다닐 때 사람들이 어머니냐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인에게 연대보증을 써 준 것이 화근이 되어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이셨다.

  입양 어머니를 만났을 그 당시 나는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고 고3, 중3 자녀와 함께 교회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신분이 전도사다 보니 항상 교회 사역이 우선이었고 자녀에게는 자격 미달인 엄마였다.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로서 날마다 교회 가서 기도하며 밤을 지냈다.

  어느날 저녁에 기도하러 처음 오신 분이 계셨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으시며 기도 부탁을 했고 서로 가까이하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마치면 대신동에서 산격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셨다가 낮에는 법무사 사무실로 법원으로 동분서주 하시다가 이른 저녁이면 교회로 바로 오셔서 때로는 저녁도 거르시는 날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몇 차례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다 보니 아들딸을 잘 돌보지 못하는 내 사정을 아시고 가사를 돌봐주시더니 옷가지를 한 둘씩 가져오셨다.
  그러다가 산격동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짐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되어 자연스레 입양어머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새 노쇠해져 팔순을 넘어가면서 돌봄이 필요하게 되었다
  요양원과 가정을 번갈아 지내시다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8년 만에 천국으로 가셨다.
  장례를 치르려니 아들이라고 했던 두 아들은 연락이 끊기고 호적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4일 만에 시청에서 장례를 맡아 주었다.

  아들과 딸이 외국에서 살다가 엄마 곁으로 돌아온 올해는 나를 하얀 거짓말쟁이가 되게 했던 그 어머님 생각이 더욱 많이 난다. 
  고3 딸이 보충수업하고 늦게 돌아와도 그사이에 언제 교복을 씻어 말렸는지 풀을 먹이고 다림질까지 해서 입혀 보내던 그 정성은 친할머니보다 더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 딸이 어느새 성장하여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사위가 혼자 한국에 왔을 때 민정이 신랑이라고 하니 사위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으며 민정이 민정이 하시며 연거푸 딸의 이름을 부르시던 그 심정은 지난날 기억이 살아나 너무나 보고 싶다는 애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때로 머리에 열이 나고 온몸은 기진맥진하여 드러누울 때가 있었다.
  수건 두 장을 번갈아 냉동실에 넣어 찬물수건을 이마에 얹어 주시며 지극정성으로 간호 해 주신 입양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가 급성 당뇨가 오고 불안증과 치매 전조증으로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는 그만큼 하지 못한 불효가 마음 한켠에 도사리고 앉아 때로 아프게 한다.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라고 하지만 나는 네 가지다
  지나가 버린 시간, 쏘아버린 화살, 내뱉은 말, 한 번 가신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절 입양 어머니의 돌봄 속에 자랐던 아들, 딸이 성장하여 미국과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엄마가 사는 동네 같은 아파트로 들어왔다.
  아들이 한국에 나와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친할머니처럼 돌봐주셨던 그 사랑을 많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읽어진다.
  교회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하더니 삼계탕 260개를 주문하여 예배를 마치고 나가시는 어르신들께 전달하게 되었다.
  그 섬김의 현장에는 성도들의 효심이 함께 담겨 전달하는 손은 분주했고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들,딸이 엄마한테 마음껏 효도하며 교회 어르신들까지 섬기는 그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날 더욱 입양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햐안 거짓말을 또 하고 싶어도 검은 캐딜락 뒷모습만 아련히 남기고 떠난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자명 이복순
저작권자 © 경산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