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 천 익

  여느 세월처럼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오는 송구영신 세모의 기간이다. 올해 辛丑년이 시작하던 연초에는 흰 소의 축복을 기원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증가로 국민들의 삶은 핍박해졌고, 나라 곳곳에서는 못살겠다는 서민들의 절규가 그 어느 해 보다도 처절했다. 올해의 말미에는 남아프리카 8개국에서 발생한 변형 코로나19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지구촌을 강타하여, 온 세상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당초 세계의 전문가들이 2022년이면 코로나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했지만, 그 예측을 믿을 수 없게 하는 세모이다. 새해 壬寅년은 호랑이의 해이다. 예부터 우리에게 호랑이는 신령하고 두려운 동물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옛 동화의 주제가 되고,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은을 할 줄 아는 의리와 분별의 동물이었다. 동양학이 얘기하는 축생학을 현대과학으로 해석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미신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12지간 동물로 새해의 운세를 풀이하면서 살아왔다.

  지구촌은 모두가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꼬박 2년간을 구속받는 삶을 살았다. 실로 근래에 이르러 처음 겪는 전대미문의 고난이며 시련이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이 고통스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가 들이닥친 작년 올해는 생활패턴의 실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 한해였다. 일상의 대면생활이 제약되었고, 온-라인이 삶의 중요한 생활수단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수많은 단체 모임이 제도적으로 제한되고, 국내외의 자유로운 여행조차도 구속받았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고, 모든 집회에서 모임의 시간과, 말 하는 행동이 절제되어야 했다.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누리던 자유로움의 행복이 아득한 옛날 얘기 같은 세월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사이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특히 가난한자의 고통은 현저하게 커지고 말았다.

  행복은 어느 특정인, 특정계층의 독점물이 아니다. 나의 삶과 이웃의 삶이 모두 함께 유복해지고 여유로워질 때 행복의 파이는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눔과 공생의 법칙이 존재한다. 세모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구세꾼들의 모습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인간의 최고 가치는 성스러움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가치인 진·선·미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모습들이다. 眞은 참됨을 말한다. 세상살이에는 거짓이 너무 많다. 생존경쟁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편법을 쓰고, 거짓 행동을 통해 남을 속여 자신의 유익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유혹하지만, 학문은 이를 부정하고 감연히 참됨을 최고의 가치로 보고 끊임없이 추구해 나간다. 眞을 추구하는 학문은 이래서 값지고 귀한 것이다. 바른 것은 무엇이며, 착한 것은 무엇이며,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지를 배워서 알게 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 세상을 보다 밝고 바르게 하여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함이다. 善은 착한 것이다. 착한 것은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 善의 근원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나의 유익을 채우고 싶지만, 상대방을 생각하여 나의 유익을 절제하고 남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다. 배려의 마음인 자기희생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부모를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선의 발원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美는 아름다움의 표현이다. 아름다움의 추구와 표현도 다양하다. 아름다움에도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문학가들이나 예술가들은 주로 외형적인 미와 내면적인 미를 동시에 그려 나간다. 예를 들면, 15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톨 유고는 그의 대작 <노틀탐의 꼽추>를 통해서 주인공들의 美를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바른 것과 착한 것은 모두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미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위의 진선미의 세계 중에서 善의 세계는 심성의 세계이다. 영역으로 구분하기가 엄밀하지는 않지만, 진과 미가 이성의 세계라면 선은 심성의 세계라고 구분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예로  부터 우리는 마음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학문(배움)을 통해서 부지런히 마음의 밭을 갈고 닦아왔던 민족이다. 착한 것은 세상을 훈훈하게 하며, 타인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우리 선조들은 머리를 통해서 아는 진리의 세계와 마음으로 느끼는 선의 세계를 연결하여 생각해 왔다. 학문을 통해서 바른 것을 알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착하게 행동하는 것을 인생의 올바른 목표로 보고 삼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은 곧 인생의 행복을 실현하는 바른 길로 생각해왔다. 그러므로 행복은 자기 자신만의 이익추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끊임없이 사회와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가운데서 참다운 행복실현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소통과 나눔에서 실현된다. 남의 고통을 동참하는 마음, 약자의 삶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 옳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을 공감하는 마음속에서 행복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 중에 4 대 가치로 볼 수 있는 가치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성스러움 즉 聖이다. 인간의 3 대 가치인 진·선·미는 4대 가치인 聖에 의하여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진선미의 모든 가치가 성스러움으로 다듬어질 때, 그것은 한층 더 세상을 온전하게 성숙시킨다고 본다. 언젠가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총칼로 세상을 지배한 자신보다도 몇 갑절 더 크게 세상을 굴복시킨 예수 크리스트에 대하여 감탄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성스러움은 인간가치의 완성이다. 그렇게 보면 진선미의 가치는 결국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인간의 구도 행위의 하나의 방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성스러움은 종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지만, 인간의 궁극적 가치라고 볼 수가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실현은 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추구 방법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기는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 이 성스러움의 가치를 일정 수준까지 이루지 않는 상황에서는 참다운 행복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보여 진다. 

  행복경제는 의식주 생활을 통해서 살아가는 인간의 행복을 실현을 위한 경제적 조건이지만, 그것은 결코 무한정의 부나 이익을 독식해가는 스크루지 같은 삶이 아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지만, 기쁨을 함께하면 배가 된다는 논리처럼, 세상의 모든 가치는 나눔과 베품에 의해서 더욱 온전하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행복경제는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국민적 소득증가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잘 성장하고, 잘 나누어지고, 잘 베풀어져, 성스러움이 존재하는 모든 경제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최고의 경제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세모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질환으로 온통 공포에 시달리며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기간이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이 이토록 음울하고 구름 낀 날씨처럼 침침하게 가라앉은 때도 일찍이 없었다. 인간의 행복의 절반 이상은 마음이 결정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불편한 세월이고 보니 행복경제지수도 형편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서민들의 살림살이이다. 곳곳에서 가계를 문닫아야하는 서민들의 절규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생각하고 주변을 살피라는 옛사람들의 충고를 거울삼아 한해를 좀 더 차분히 살피며, 지나온 과거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세모였으면 한다. 냉정하게 돌이켜 생각해보면, 축복도 고난도 모두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크게는 세상이 지금까지의 삶을 너무 무질서하고 욕심대로 맘대로 살아온 결과이며, 작게는 개인이 스스로의 삶에서 절제되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생활패턴을 지속해온 탓이다. 많은 일상의 충격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짧은 시간에 치유되기는 힘들지만, 생각을 가다듬고 세월의 의미를 찬찬히 짚어보는 송구영신의 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시간에도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자를 돕고, 폭풍우가 지나면 희망의 태양이 다시 뜬다는 진리를 잊지 않는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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