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미숙

  박성용 씨, 낯익은 얼굴이다. 작년 이맘때 우리 사무실에 몇 번 왔었는데 일 년 만에 왔다. 그때 그는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포도 알맹이가 굵어지지 않는다며 필요한 영양제를 몇 번 사간 일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소식이 없더니 오늘 그의 아내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선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다시 봐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어떤 일을 하다가 농가를 짓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여러 사람이 있어서 묻지를 못했다.
  그들 부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내가 만난 농민 중에 가장 많은 작업을 접해 본 사람이다. 비디오 가게와 포장마차 식육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일들은 모두 먹고 살 만큼 그의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착실하게 일하는데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정도라고하니 선진국이라고 외치는 우리 나라가 부끄럽다.
  나 역시도 남편이 월급을 받고 일할 때 한 달 벌어서 한 달 살고 나면 통장의 잔고는 고스란히 다 빠져나갔다 그때마다 하루살이 같았다. 그날이 그날이었다.
  어느 날 그는 슈퍼마켓에 갔다가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슈퍼는 수입이 꽤 괜찮았다. 얼마 후 사장은 슈퍼 내에 생선 가게를 냈다. 직원이 돌아가면서 운영을 했다. 직원에게 맡겨진 생선 가게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생선은 싱싱함이 최고의 값인데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은 내 일처럼 하려고 들지 않았다. 시간만 때우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직업 운영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수백만 원의 보증금을 걸고 생선 가게를 냈다. 슈퍼를 찾는 사람들이 생선 가게로 몰려왔다. 싱싱한 생선이라며 단골손님도 늘었다. 하루에 수십만 원이 주머니에 들어오니 콧노래가 절로 홍얼거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큰 슈퍼가 생기자 사람들은 그리로 몰려갔다. 그렇게 많던 손님이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생선가게 또한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번창하던 슈퍼가 하루아침에 파리만 날리더니 자금 조달이 잘되지 않자 곧 부도가 날 지경이었다. 그는 보증금이라도 받을 목적으로 사장 집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렸다. 아내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등에 업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사장을 몇날 며칠 기다렸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콧등이 시큰거렀다. 새벽이 되어 나타난 사장을 붙들고 아이 우유 먹일 돈도, 쌀 한 푼 살 돈도 없다고 했다. 아내 등에 업힌 아이가 울음보를 터트리고 그도 아내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장은 2개월짜리 어음을 끊어 줬다.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 돈을 받고서야 슈퍼의 사장는 부도를 냈다.
  그는 경산에서 식육점을 내고 이십 년 가까이 운영했다. 그 일을 하면서 음식점도 냈다. 그때는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잠을 잤다. 너무 바쁘니 피곤한 줄도 몰랐다. 어느 날 그는 지인에게 땅 한 필지를 소개 받았다. 축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소를 사러 다니다 보니 지저분한 우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를 깨끗하게 키울 수 있는 우사를 만들고 싶었다. 포도밭 한 필지를 사서 그곳에 축사를 지었다.
  우사를 지으면서 식당을 하는 아내를 도왔고 식육점 일도 도맡았다. 일인 몇 역을 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생각이 빗나가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 식당 주변에 몇 개의 기업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옮겨 갔다. 그 바람에 식당에 손님이 줄어들었고 결국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축사의 소는 나날이 늘어갔다. 식육점을 닫았다고 상심할 시간이 없었다. 그 후 몇 마리 되지 않던 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서 상심할 시간도 없이 또다시 일이 많아졌다.
  소가 백 마리 넘어서자 먹고살 만했다. 시간적 어유가 생기자 어떤 일을 더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 그때 지인이 찾아와서 농사를 지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복숭아 농사 세 필지로 시작해서 지금은 삼천 평 농사를 짓고 있다. 퇴비와 비료, 영양제와 미생물을가득 넣어 놓고 제 밭처럼 잘 가꾸어 농사를 지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성실하게 일하니 주변에서도 알아봤다.
  이제 그의 목표는 소를 이백 마리로 늘리는 것이고, 좀 더 농사를 짓는 것이다. 농사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힘든 것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농부로서 걸어가야 할 길에 푸른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 같다. 앞길에 크고 넓은 길이 놓여 있다.

기자명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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