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2-09 22:25 (금)
 자인향교 기로연 개최
 자인향교 기로연 개최
  • 수필가 전명수
  • 승인 2022.11.17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인향교 제21회 기로연 장면
▲ 자인향교 제21회 기로연 장면

  지난 10월 29일(토) 10시부터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9(교촌리)에 소재한 자인향교(慈仁鄕校) 명륜당(明倫堂) 뜰에서 제21회 기로연(耆老宴)을 개최하였다. 기로연 행사장에는 삼성현 다예원(회장 손병숙) 회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차(韓茶)와 다식(茶食)을 준비해 대접하였으며 경산향교와 경주이씨 종친회에서 보내온 축하 화환이 놓아져 있었다. 경산시가 후원하고 자인향교에서 주관한 이번 행사는 자인, 용성, 남산, 진량에 거주하는 유림과 기관, 단체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사회자의 개회에 이어 국민의례, 상읍례(相揖禮), 문묘배향, 내빈소개, 이희문 전교 인사, 류한상 자인면장의 축사에 이어 향연이 펼쳐졌다. 

  향연은 먼저 노래자랑이 열렸는데 각 지역 대표가 출연하여 열띤 경쟁을 벌였으며 1, 2, 3등을 차지한 인사에 대하여는 푸짐한 상품이 수여되었고 참가상도 주어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향연 시간에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시루떡, 돼지고기 수육과 도토리묵 등 푸짐한 음식이 제공되어 서로 술잔을 권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쇠고기국과 갖은 반찬으로 맛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자인, 용성, 남산면 대항 윷놀이가 벌어졌다. 멍석을 깔아놓고 각 팀의 선수가 윷가락을 던지면 환호성을 질러대는 응원전도 볼만한 풍경이었다. 윷놀이 결과 용성면이 3연패의 영광을 거머쥐었으며 자인, 남산면이 각각 2, 3등을 차지하였다. 윷놀이가 끝나고 흥겨운 반주에 맞추어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졌는데 모두 젊은이의 기분으로 돌아가 각자 마지막 끼를 발휘하며 마음껏 온몸을 흔들어대었다. 마지막 순서로 천기찬 성균관 전의의 행운권추첨으로 많은 참석 인사에게 다양한 선물이 주어졌다. 기로연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든 참석자에게 이희문 전교가 마련한 기념 타월을 배부하였다. 

  조선시대의 기로연은 1394년(태조 3) 한양 천도 후 태조 자신이 60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것이 처음이었다. 기로연은 매년 상사(上巳)와 중양(重陽)에 보제루(普濟樓)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이 잔치에는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 출신 관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종친으로 70세에 2품 이상인 자, 정1품관, 경연 당상관들을 위하여 훈련원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영회(耆英會)라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들 잔치에는 임금이 술과 1등급 풍악을 내렸다. 

  태조는 잔치 비용 마련을 위하여 토지, 노비, 염분(鹽盆) 등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 잔치는 예조판서가 주관, 준비하였고, 왕명을 받은 승지가 특별히 파견되어 감독하였다. 기로연에 참석한 문신들은 먼저 편을 갈라 투호(投壺) 놀이를 한 뒤, 진 편에서 술잔을 높이 들어 이긴 편에 건네주면 이긴 편에서는 읍(揖)을 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데, 이때 풍악을 울려 술을 권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잔치를 열어 크게 풍악을 울리고 잔을 권하여 모두 취한 뒤에 파하였고, 날이 저물어야 서로 부축하고 나왔다. 태조, 숙종, 영조, 고종과 같이 나이 많은 임금은 직접 이 잔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오는 경로효친사상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경로잔치 형태로 진행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삶 속에서 경로효친이라는 유교 사상을 전승·함양해 소중한 전통이 이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인향교는 명종 17년(1562)에 경주부윤 이정(李楨)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4년(1612)에 도천산 아래에 옮겼으며 영조 4년(1728)에 현 위치에 다시 이건(移建)하였다. 1900년부터 1924년까지 대성전과 명륜당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부터 교육 기능이 쇠퇴하여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자인향교에는 외삼문인 모성루(慕聖樓)가 서 있는데 팔작지붕에 3문으로 이루어진 2층 누각이며 2층에는 마루를 깔아놓았다. 향교 입구에 대·소인을 막론하고 모두 말(馬)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明倫堂)이 서 있고 그 앞마당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향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교실이라 하겠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측면 2칸의 이익공, 다포계 건물로 맞배지붕에 골 기와를 얹었다. 명륜(明倫)이란 말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동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 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기숙사와 같은 건물이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강학 공간이라 한다. 명륜당 동편에는 관리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 뒤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내삼문이 서 있고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은 전면 3칸, 측면 2.5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자인향교는 외삼문인 모성루,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전학후묘 형태이다. 대성전 동편 모퉁이에는 문묘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서 있고 대성전 전면 좌측에 전사청(典祀廳)과 제기고(祭器庫)를 겸한 3칸의 건물이 서 있다.

  자인향교에서는 음력 2월 상정(上丁)일과 8월 상정(上丁)일에 각각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있다. 석전대제의 시초는 후한 명제 때이고, 당나라 태종 때는 중국 전역에 문묘(文廟)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성종 때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종 때는 전국에 학교를 세우고 공자를 모시게 하였다. 충렬왕 때 국자감(國子監)을 성균관(成均館)으로 바꾸고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향교의 건립은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기인하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234개의 향교가 설립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 안에는 중앙에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의 위폐가 봉안되어있으며 그 양옆에 연국복성공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의 위폐가 봉안되어있다. 동쪽 벽과 서쪽 벽에 주희, 정호 등 송조 2현과 홍유후 설총, 문성공 안유, 문경공 김굉필, 문정공 조광조, 문순공 이황, 문성공 이이, 문원공 김장생,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준길, 문창후 최치원, 문충공 정몽주, 문헌공 정여창, 문원공 이언적, 문정공 김인후, 문간공 성혼, 문열공 조헌, 문정공 송시열, 문순공 박세채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폐를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