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자유기고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테네 교외 케피소스 강가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거인 강도가 살고 있었다. 이 강도는 낚시를 하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꾀어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의 집에는 쇠로 만든 침대가 하나 있는데, 주인의 호의에 감사한 마음으로 침대에 잠이 든 나그네들은 사지가 결박된다. 거인 강도는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잡아 늘려 침대 크기에 맞추고 침대보다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다리와 머리를 잘라 죽였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Procrustean bed)’로 이름 지워진 이 신화는 흔히 자기가 정한 기준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때 인용되는 우화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경기규칙이 있듯이 사회의 토론에도 원칙이 있다.
  탈무드식 토론의 분명한 원칙은 첫째,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들을 것, 둘째,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말할 것, 셋째, 모두가 빠짐없이 말할 것이 그것이다.

  엄정식 한양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토론의 세 가지 원칙’도 첫째가 반론을 듣는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그의 발언을 충분히 들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참여자들 모두가 골고루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평등의 원칙이고, 셋째는 소통의 수칙을 준수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뿐 아니라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정중한 표현을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소통의 원칙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토론의 여러 가지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이‘찬반토론’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는 것이 ‘성토’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어떤 문제를 일방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며 규탄하는 장을 ‘성토장’이라고 한다.

  성토장의 초청 인사들은 이미 성토에 적합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며, 여기에서는 반론이 설 여지가 없다.
언론, 특히 수시로 방영되는 방송이 토론이 없는 성토장이라면, 국민의 선택은 방송을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밖에 없다.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장단점을 듣고, 나라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나은 안을 고민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정책에 큰 잘못이 있어도 수정할 수 없으며, 이미 기획된 일방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으며 소통과 합의는 설 곳이 없다. 문제는 그렇게 결정된 정책이 실패 할 경우 피해는 사회 전체에 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종합편성채널이 생길 때 야당과 많은 교수, 학자들이 반대하였다. 종편이 ‘일방의 정책과 의견을 선전하는 성토장이 될 것이며, 사회의 건강한 토론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 의견은 적중하였다. 종편은 사회의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 대하여 ‘토론 없는 성토장’이 되었으며, 성토는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과 집단에게 집중된다. 이들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부류의 딴지걸기’로 치부하며 일반적으로 성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업에 찌든 국민들은 이런 ‘일방의 성토를 토론과정으로 오인’하여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정부의 정책은 양날의 칼이다. 특정 정책으로 인하여 득을 보는 부류가 있다면 이로 인해 개인과 집단의 권리에 심각한 침해를 받는 부류가 있다.

  토론은 정책이 비록 다수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에 반대하는 부류의 입장을 충분히 경청하고 이들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토론을 민주주의의 출발이라 하고, 토론이 없는 사회를 ‘병들어가는 민주주의 사회’라 말하고 심할 경우 그 사회를 ‘독재사회’라 부르는 것이다.

  어느 날 아티카의 영웅 테세우스가 나그네로 변장하여 거인 강도 프로크루스테스 집에 초대 받아 간다. 테세우스는 반격하여 거꾸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침대에 눕힌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죽인 것과 똑같이 머리와 다리가 잘려 죽는다.
건강한 토론이 없는 사회는 그로인해 병들고 쓰러진다 것을 그리스·로마 신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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