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은 삼한시대 옛 압독국의 찬란한 문화가 꽃피워졌던 고장으로, 압독국이 신라에 합병되었을 때는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압독국을 되찾기 위해 신라에 항쟁하였다는《삼국사기》일성이사금조의 기록, 642년에는 신라의 대야성 탈환과 압량주를 사수하기 위하여 압량주의 청장년들이 스스로 주병(州兵)을 모아 신라통일의 초석을 다졌다는《삼국사기》김유신조의 기록, 신라 말 또는 고려 초, 자인현 도천산에 웅거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한 장군과 더불어 수많은 자인현민들이 지역의병으로 봉기하였다는 자인단오 한 장군놀이의 형성유래, 또한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1636년 병자호란 때에도 수천의 지역의병들이 구국대열에 나서 나라를 구하고 지역을 사수하였다. 이들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나 지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의병이 되어 목숨을 걸고 구국 대열과 향토사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는 압독인들의 신라에 항쟁, 백제 침입을 지켜내기 위하여 스스로 압량 주병(州兵)이 되었다는《삼국사기》의 기록과 구비 전승되는 설화, 그밖에 경산에 여러 임란의병실기를 통하여 옛 경산인의 끈질긴 구국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경산지역에는 이를 고증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조선시대의 경우에도 경산지역 임란창의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로는 지역의병장의 행적을 적은 문중 실기나 이를 인용한 경산시지, 내 고장 전통, 그밖에 최근에 발간된 지역 문화지에 등제된 내용 일부가 고작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존하는 황경림선생의 면와실기(勉窩實紀), 죽은·죽포실기(竹隱竹圃實紀), 조선환여승람(朝鮮?輿勝覽), 최대기선생의 회당실기(晦堂實紀), 최문병선생의 성재선생실기(省齋先生實紀), 근래에 편찬한 하양 팔의록(八義錄), 등, 이들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공덕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망전필위(忘戰必危)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하여 각 가문에서 선조들의 임란 참전실기를 각종 문집에 남겨 두었음은 임란 당시 하양 · 자인 · 경산현민들이 이 지역의 향토방위를 위하여 얼마나 천신만고의 고초를 겪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간접체험의 기회가 되고, 그밖에 경산군의 내 고장 전통(1985), 경산의 문화유적 총람(1996), 경산시지(1997), 임란의병항쟁(경산문화원, 2000), 경산문화대사전(2009), (사)임진란정신문화 선양회의 대구·경북 임진란사학술대회 연구논문 등은 부족하지만 경산지역의 의병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와 같이 경산지역의 의병활동은 1592년 4월 임란 발발과 같은 시기에 자인현의 최문병, 경산현의 최대기, 하양현의 신해·황경림 등 경산지역 3개현에 80여에 달하는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오로지 향토사수라는 대명제 아래 목숨을 건 사투는 경산지역에 수천에 달하는 의병봉기에 불을 지폈고, 이로써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받들고 추앙하여야 할 선조들의 구국정신이다.

  물론 구전에는 오목천에도 왜구가 출몰하고, 경산 성암산 약수암 일대도 왜구의 잔병들이 출몰하였다는 설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구전은 곧 경산지역에 의병들이 출현하였음에도 왜구들의 출몰은 계속 시도되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여기에 지역 의병들은 한시라도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였음은 앞의 여러 실기기록들을 미루어 보아 그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경산의병들은 임란 초기 청도와 영천전투에 원정하여 왜군을 격파함으로 경산지역에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였고, 이후 인근 지역 의병장들과 연합작전으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왜군들의 전방 공격력을 무력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여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또한 경산시역의 3개 권역에 각각 걸출한 인물들이 현 단위의 의병장이 되어 지역 내 수천에 달하는 의병들을 동원하였다는 점은 당시 관군보다 훌륭한 작전지휘 능력과 리더십이 작용되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산지역의 의병활동은 그들의 구국의지와 뛰어난 지략으로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 시켰음은 물론, 인접에 이르기까지 지원군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감당하였음은 경북의병사에 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경산지역 의병 활동은 그저 문중단위로 그들의 후손들에 의하여 그 행적이 전승될 뿐, 이들의 행적을 추앙하는 지역단위의 추모비, 위령비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오늘에 우리가 반성하여야 할 점이다. 다행히 경산학회에서 잊혀져가는 경산지역 의병사를 현창하는 일에 지역학자들이 뜻을 같이하겠다는 다짐은 2016년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는 벽두에 쾌거가 아닐 수 없다.

  ▲ 대구 수성구 고산 성동, 고산서원에 건립된 임란의병 “충의추모비”
     - 이 추모비에는 최응담, 박응성, 정변함, 정변문, 황경림, 김락, 진섬 등 다수의 경산지역 의병장들과 그들의 의병활동기가 소상히 기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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