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 육영재는 1822년에 세워진 지방의 고등교육기관이다.

  경상도에서는 대구의 낙육재와 영천의 삼일재, 하양의 육영재 3곳이 있었다. 육영재는 서당, 향교, 서원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육영재 에서 교육을 시키고, 다시 영재를 선발하여 서울성균관으로 진학시켜 과거에 응시하도록 했던 요즘의 특목고 같은 성격의 고등교육기관 이었다. 육영재 에서는 가끔 백일장도 열고 특강을 하기도 했다.

  육영재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유림의 많은 노력과 재물헌납 등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해마다 오월에 열리는 정기총회에는 많은 유림들이 참석하여 우의를 다지고 있다. 육영재의 대청에 걸려있는 편액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 궁금하던 중 편액을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정확한 의미를 계승 후대에 물려주기로 하였다.

  육영재 자료집 발간은 경산시의 예산 으로 이루어졌다. 육영재기에는 육영재기 5건과 모영재기 1건, 상량문1건, 중수기2건, 보수기1건, 신의묵 공적기록문1건, 육영재 주련1건등이다. 육영재기 1건을 소개해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원문】
  河之山川明麗 如文之敬庵 武之錦浦 出焉 但處遠科宦近頗少
  하지산천명려 여문지경암 무지금포 출언 단처원가한근파소
  豈山川古厚而今薄야 特人不能如敬庵錦浦而然也 歲癸未 創此齋於舞鶴之東 相土者 亦曰吉  
  기산천고후이금박야 특인불능여경암금포이연야 세계미 창차재어무학지동 상토자 역왈길
  欲使邑斯士 講讀于斯 起居于斯 才焉是養 行焉是懋 久久不已則 安知無敬庵錦浦復出
  욕사읍지사 강독우사 기거우사 재언시양 행언시무 구구불이즉 안지무경암금포부출
  適至此有韻 故寓感記言 以贈邑之士
  적지차유운 고우감기언 이승읍지사
  我到非關邑 齋成亦豈時 事應終易怠 意戒欲無遲
  아도비관읍 재성역기시 사응종이태 의계욕무지
  歲月方應驗 山川肯自私 老夫偏若語 休枉覓諸詩
  세월방응험 산천긍자사 노부편약어 휴왕멱제시
  黃庭 황정
 【해석】
  하양의 산천은 맑고 수려하여 경암(敬庵)같은 문사와 금포(錦浦)같은 무장이 배출되었다. 다만 처한 지역이 서울에서 멀고 과거 급제자가 근래에 매우 적었다. 어찌 산천이 옛날에는 두텁게 하고 지금에는 야박하게 했겠는가? 다만 사람이 능히 경암 이나 금포 같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다. 계미(癸未)년에 무학산(舞鶴山) 동쪽에 이 재실을 창건하였는데, 땅을 살피는 사람이 길지라 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이곳에서 강독하고 이곳에서 생활하며 재주를 기르고 행실에 힘써 오래도록 그만두지 않는다면 경암 이나 금포 같은 분이 다시나오지 않는다고 어찌 알겠는가? 마침 이곳에 이르니 시운(詩韻)이 있기에 나의 느낌을 붙이고 할 말을 기록하여 고을의 선비에게 주노라. 내가 이 고을에 연고가 있어 부임한 것은 아니지만 재실이 만들어진 것도 시운(l.時運)이 아니리오. 일은 태만함에서 끝나게 되나니 조심해서 늦지 않도록 하고자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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