賦得高原草送別
                                                白居易
離離原上草 壹歲壹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부득고원초송별
                        백거이
이리원상초 일세일고영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
원방침고도 청취접황성
우송왕손거 처처만별정

고원의 풀을 보며 송별시를 짓다
들판 위의 풀은 여기저기 흩어져
해마다 모두 말랐다가 모두 무성해진다
들불로 태워도 다 없어지지 않고
봄바람 불면 또다시 생겨난다
향기는 멀리 옛길에 차츰 퍼져나가고
하늘 개여 황폐한 성에는 물총새 모여있네
또다시 송별하며 귀공자마저 가버리면
풀이 무성하듯 이별의 정만 가득 차리라

서예가 곽종육
  백거이(772~846): 당나라 때의 관료 시인으로 자가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로 하남성 신정河南省 新鄭 사람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고 하며 29세 때인 정원 16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좌습유 형부의 상서(장관) 등을 지냈다. 백거이는 바르게 충성을 다했으나 여러 번 배척을 당하자 이에 시와 술에 빠져 방종하였다. 차와 술이 몸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언제나 맨머리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마음이 편안하고 한가롭게 선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옛날 시가를 읊었다. 또 시에 있어서 육의를 주로 하면서 어려운 표현은 바라지 않아 매번 시가 완성될 때마다 반드시 집안의 할멈에게 그것을 읽도록 하여서 물어보고 그 뜻을 이해할 경우에만 기재하였다. 노년에는 향산사에 은거하며 술을 즐기며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그의 무덤은 용문석굴 맞은편 향산사 부근에 백원이라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문집으로 백씨장경집 육첩 백씨금침집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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