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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육의 新古文眞寶
곽종육의 新古文眞寶
  • 곽종육
  • 승인 2017.01.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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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幽州臺歌
                   陳子昻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등유주대가
                   진자앙
전불견고인 후불견래자
염천지지유유 독창연이체하

유주대에 올라 노래하다
앞으로는 옛사람 보지 못하고
뒤로는 오는 사람 볼 수 없어서
천지의 아득함을 생각하다가
혼자 슬퍼하며 눈물 흘린다

곽종육(서예가)
  유주대: 북경 인근에 있었던 누대.
  진자앙(661~702): 당나라 때의 관료 문인으로 자가 백옥伯玉이며 재주 사홍梓州 射洪 사람이다. 고종 때인 개요 2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습유 등을 지냈다. 그는 18세가 되도록 글을 알지 못하고 부잣집 아들로서 임협의 기질을 좋아하여 사냥을 많이 하였다. 뒤에 향교에 들어가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후회하며 금화산으로 가서 공부하였다.
거란의 이진충이 침략하여 영주를 함락하자 토벌대장이 된 무유의가 진자앙을 참모로 불렀다. 이에 출전하여 무유의에게 거란군을 격퇴할 여러 가지 방책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전쟁에 패하며 자앙은 오히려 군조로 강등되었다. 이에 그는 관직을 그만두고 유주 등지를 여행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마침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무덤 옆에 오두막집을 짓고 머물렀다. 사홍현 현령인 단간은 탐욕이 많고 잔인하여 그가 부자라는 소문을 듣고 거짓을 꾸며 자앙을 무고하고 위협하여 20만 민(1민=1천문의 돈)을 뇌물로 받았으나 오히려 그것도 적다고 마침내 감옥에 보냈다. 자앙은 옥중에서 죽고 말았으니 나이 마흔 셋이었다.
당나라가 성하고 문장에 있어서 서릉(남조 진나라의 문인)과 유신(북조 주나라의 문인)을 계승하여 그 풍습이 남아있어서 천하가 이를 본받아 숭상하였다. 그러나 자앙이 나타나 비로소 고상하고 단정한 기풍으로 변하였으며 당대의 시풍 변화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은 그를 평하여 말하기를 능히 저술이 지극하고 비흥을 모두 갖춘 것은 당나라가 일어선 이래로 자앙이 있을 따름이다고 하였다. 아아! 예로부터 재목이 너무 크면 쓰이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믿을 수 있다. 자앙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며 당재자전은 기록하고 있다. 문집 10권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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