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진 -

南川을 걷다
                          - 허남진 -

  쨍쨍 내리쬐던 햇볕이 서쪽으로 길게 누워 허연 뱃살을 드러내는 해거름이면 남천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한때 장마에 넘쳐 움푹 패었던 강변은 잘 정돈이 되어 운동을 하기위해 모여든 시민들의 발길로 부산하다.

  산책로를 따라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사람, 흐르는 물길에 손을 담그는 아이, 이어폰을 꽂은 채 산책하는 아가씨,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걷는 중년 여자, 주차장에서 뭔가를 고치느라 열중인 택시기사 등 한 폭의 그림 같은 강변 캔버스는 멋진 구도를 이루고 있다.

  공원교 다리 밑에는 작은 포장막에 인생의 저물녘에 속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화투놀이로 그들만의 시간을 죽이고 있어서 마치 간이 노인정 같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 곳에 있을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결코 저렇게 노년을 맞지 말아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해본다.

  어제는 캄캄한 시각에 산책을 하느라 벗은 모습의 남천을 보진 못했지만 낮달을 이고 나온 지금은 어둠에 숨겨졌던 강의 전신을 다 볼 수가 있다.

  도시의 강변을 수놓을 듯 피어난 수초 사이로 빼곡히 얼굴을 내미는 들꽃들. 내가 알고 있는 꽃이래야 자운영, 유채꽃, 애기똥풀 정도이지만 올망졸망하게 핀 작은 꽃망울들이 피어있는 광경을 보며 걸으니 혼자여도 심심치 않았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아서 스쳐 지나쳤던 온갖 식물들의 잔치에 경이롭기까지 했다. 저렇게 많은 들풀들이 남천에 생명을 기대어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산책로 바닥엔 출발선에서부터 3Km라는 표시가 되어있어서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쯤이란 걸 알게 해 준다. 인생길이 바로 이런 산책로라면 난 이미 저 반환점을 돌아서 온 셈이다.

  아무 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데 벌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니……. 흔히 말하기를 인생살이 별것도 아니라지만, 내게 있어선 별 것이랄 수도 있는 삶이었다.

  나도 유명한 연예인처럼 관객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삶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돌아다보면 늘 깨진 전구처럼 남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희망과 내일, 기대라는 환상의 무지개만 좇아 안간힘을 쓰면서 달려온 세월이 아니던가.. 산 너머에 있을 것 같던 그 무지개는 한 고비를 넘을 적마다 실망과 허탈의 연속이었고 남은 것은 허공을 가르는 공허한 날갯짓 그리고 주름 잡힌 얼굴뿐인 것을……. 한때는 무언가를 위한 열정으로 잠 못 이루던 때도 있었고 그런 격정으로 내 삶에는 금세 무지개가 손에 잡힐 듯 했었지만 그렇게 속고 속이는 사이에 내 젊음은 나를 뒤로 하며 저 만치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한 때는 좌절과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고 고층 아파트 난간에 서서 아래를 힘없이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하여 그 순간을 참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가? 무얼 바라며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삶을 견디며 살아왔던가? 이런 의문을 수도 없이 가지면서 자문해 보지만 내가 얻은 답은 죽지 못해서 아니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진정으로 죽을 만한 용기가 없는 졸장부의 삶이 바로 나의 그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두 친구는 시기기 다르긴 했지만 스스로의 이런 질문에 성실한 대답을 한 끝에 세상을 등진 채 자신만의 먼 길을 떠났다. 그 때 내 나이가 이십대 중반이었고 또 한 친구의 장례는 사십대 중반이었다.

  그들이 삶의 거죽을 훌훌 털고 떠난 것은 스스로를 향한 애착이 너무 강해 스러져가는 비참한 몰골의 자신을 결코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술 한 잔하고 나서 노래방에 가면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짧았던 자주 그들의 삶을 애도한다.

  암갈색 조명등 아래에서 일행들은 흥에 겨워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나는 그들의 영정 앞에 선 조문객이 되어 그들의 심정을 떠올리면서 그 목이 터져라 불러보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살아가면서 그들이 행했던 선택의 순간들을 자주 떠올려 보았다. 나 역시 뭇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욕망을 지닌 채 살아왔고 그걸 늘 숨기며 살아왔었다. 그 욕구의 좌절로 인해 먼저 간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늘 이렇게 허무와 만난다. 지금처럼 혼자 있을 때는 내 안에 은밀히 잠재되어있던 그 놈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내게 ‘인생이란 다 헛것이야. 아옹다옹 살아봐야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라며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지병으로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실려가 일주일도 못 사실 것 같았던 그 순간에도 아버지께선 생에 대한 애착은커녕 ‘한 시라도 얼른 갔으면 좋겠다.’하신 뜻을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벤치에서 일어나 잠시 쉬었던 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쟁취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씩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정상을 돌아 하산하는 시간일 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 수만큼 내가 지닌 욕심들을 한 가지씩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남들보다 삶이 영광스러워야 한다는 헛된 욕망의 끈부터 풀어 강물에 풀어 헤친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더 많아야겠다는 욕심의 올도 저 흐르는 물가에 실어 보낸다.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보자기를 풀어 저 강물에 훌훌 띄어 보낸다.

  내일도 또 다른 내일도 다시 남천 강변을 걸으리라. 강바닥에 깔린 맥반석이 혼탁한 물을 정화하듯 걸으면서 욕심 가득 찬 내 마음도 조금씩 여과하리라. 천천히 나를 돌아보면서 낮 동안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시들지 않고 꿋꿋하게 여린 생명을 이어갈 줄 아는 저 작은 들꽃들처럼 선한 마음으로 어둑해져가는 남천 강변을 끝까지 걸어볼 것이다.

  허무, 가보지 못한 내 삶의 끝이 허무라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삶을 향한 행보는 부단히 이어질 것이리라. 강변에 핀 들꽃이 나를 보며 작은 미소를 띤 채 무어라고 속삭이고 있다.

                                      - 프로필 -

 
  경북 경주 출생
  영남대학교교육대학원 졸업
  문예사조로 등단
  경산수필 회원
  현재 자인여자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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