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 이 복 순시인ㆍ수필가(사)한국국보문인협회 산악회장제33호 동인문집 '내 마음의 숲' 자문위원시집가는 울언니엄마 닮은 울언니엄마가 그리워진다목화솜 이불 싣고산 너머 시집 가는 날십 리길 따라가며울며 보챘지업어주고 달래주던엄마 닮은 울언니팔십 년 세월에꾸부정한 허리깊은 주름살안아주고 위로하면울언니만고 시름 내려 놓을까보고 또 봐도그리운 울언니
이 동 열(경산제일고 교사)친구 그만 고개 들게 이동열(경산제일고 교사) 친구 그만 고개 들게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네그것이 인생이라네어차피 인생은 미리 정해져 있는거라네될 놈은 넘어져도 돈구덩이에 빠지고안될 인연은 통사정해도 떠나는것 이라네다만 우리는 시간의 베일에 가려모를뿐 누구나 날마다 착각하며 꿈을 꾸다아침이 오면 또 꿈을 쫒아다시 문을 나서지그래서 산다는 건늘 만만치 않은 거라네그 사이에 몸과 마음은 망가지고 흩어진다네이보게화투판 끗발처럼, 광 다섯개 들었다고 광발로 끝나는게 아니야 역시 인생은 미리 정해진 뒷 끗발이 아닌가그럴때마다확률이란 잠시 희망이 있긴 하겠지만그거야 그때 뿐이지친구야내가 이제 나이 먹어보니인생은 하루하루 가려진 커텐을 걷어내며 그냥 정해진 길을 가는거라네누구한테 언제 큰 비가 올지내일은 누가 돈벼락 맞을지 어찌 알겠나알듯 말듯한 이 수수께끼를 잡기 위해 집착하지만이 또한 지나가리라그래서세상은 꿈을 가지게 하는착각과 소망의 연속이라네그래도로또 복권 하나 품고 착각하며 사는것이 포기하며 사는 삶보다는 행복한 일이라네자, 한잔하며 그만 고개 들게되는 게 없다고"이놈의 인생 ""이놈의 세상"하며술에 쩌는 친구야.
지금 경산은 성난 민심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불과 2년 전에 ‘시민의 머슴이요 일꾼’ 이고자 했던 지역 국회의원 윤두현이 어느새 머슴 아닌 상전이 되어, 경산시장 후보 공천에 원칙과 기준 없이 14명의 후보 중 한 명을 단수 공천하는 폭거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것도‘사고 후 미조치’라는 범죄경력이 있는 者인 조현일 후보를!! 최영조 현 시장의 3선 임기 만료로 14명의 예비후보들이 지난해부터 이름 알리기부터 시작, 각자의 방식으로 국민의힘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다. 왜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대통령의 5년간의 폭정에 시달린
김 미 숙 우리 부부는 삼십 년 전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결혼식을 올렸던 친구는 곧바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얼마 전에 그들과 연락이 닿아 남미의 페루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급한 일이 생겨서 올 수 없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아닌가! 머나먼 타지에서 길잡이가 될 그들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인해 당황스러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인천에서 비행기에 올랐고 멕시코를 거쳐 이틀 만에 페루에 닿았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는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기사는 지도를 보여주며 와카치나 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고속도로 양옆으로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사막은 페루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달궈진 모래 언덕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팍팍했다. 여행은 고생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빵 한조각 살 만한 마트도, 밥한 끼 먹을 만한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말도 통하지 않았고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다 보니 배낭여행의 어려움이 폐부 깊숙이 와 닿았다. 결혼 초, 우리의 삶도 팍팍했다. 얇은 월급봉투로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껴야했다. 재래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빵 한 조각 덥석 바구니에 담지 못했고 마음 놓고 외식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혼수품이니 예물 같은 것들은 다 생략해도 좋은데 신혼여행만큼은 제주도로 가자고 졸랐다. 돈이 없었던 그이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이는 나 몰래 돈을 빌려서 제주도의 여행을 성사시켰다. 그 경비는 몇 달 동안 월급을 쪼개가면서 갚아야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돌아오는 공항에서 결혼 30주년엔 남미 여행을 하고 싶다며 지나가는 말로 던졌었는데 그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오게 될 줄이야.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다 이룬 느낌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내 등줄기에서 서성거릴 때쯤 와카치나 사막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보이는 모래언덕의 능선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자 신비로운 모래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와 몸의 열기를 훔쳐갔다. 사막 한가운데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도 있었다. 호수 위로 잎이 풍성한 야자수들과 작은 배가 유유자적 떠다녔다. 사람들이 바다 사막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때처럼 비닐 포대기를 배에 깔고 모래사막을 타고 미끄러져 갔다. 남편도 포대기에 몸을 맡긴 채 저 아래 블랙홀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블랙홀에 도착한 그가 한 알의 점 하나로 보였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손짓하는 그의 모습은 모래 알갱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았다. 그는 환갑이 되었다. 숲을 이루었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다 빠져나갔고 흘러내린 은빛 곱슬머리 몇 가닥이 봄 응달의 잔설처럼 남아 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지 젊은 사람도 두렵다는 모래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내려가다니 아직도 청춘이구나 싶었다. 뭐든지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일궈내는 그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껏 좋아하는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하고 살았던 그이다. 친환경농자재 영업과 판매를 하느라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들어오곤 했다. 전국을 헤매다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돈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삼십 년 동안 몰래 조금씩 적금을 부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렵던 시절에도 해약하지 않았던 적금이었다. 창문 없이 뻥 뚫린 버기카에 올라탔다. 버기카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높은 언덕에 단숨에 올랐다. 쭈-욱 언덕에 오르다가 경사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다. 마치 롤러코스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결혼 삼십 주년을 돌이켜보니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이 버거워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고 잔잔한 파도가 이어지던 때도 있었다. 어떤 해는 한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막장에 닿는가 싶다가도 수면 위로 천천히 해가 뜨는 날도 있었다. 삶은 수시로 낭떠러지로 떨어뜨렸다가 하늘로 치솟았다. 어느 해 삶이 힘겨워 무작정 서해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할미 바위와 할배 바위가 물속에 잠기고 있었으며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해가 솟아오르는 광활한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해가 넘어갈 때의 찬란한 분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해넘이도 해돋이 못지않게 펼쳐질 수 있음에 감동했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보자고 새롭게 출발했던 날로 기억된다.버기카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어딘가로 달렸다. 해넘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붉게 물든 사막에 앉아 언덕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해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계곡을 넘고 또 넘었다. 사구의 능선들을 온통 주황빛 붉게 물들이며 서녘으로 해는 천천히 넘어갔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봤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재설계한다. 삶이란 길을 여행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할 길잡이가 없어도 우리의 인생은 넘실넘실 잘도 세상을 물들이며 기울어간다. 그때마다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갈 것이다. 찬란한 인생의 해넘이를 위해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사람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의 대부분의 욕구실현이 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실현을 위해 필요한 돈에 대하여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정도를 경제적 자유도라고 하자. 오늘날 행복한 삶이란 상당부분 경제적인 요인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역할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회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풍족한 경제생활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가 용이하다.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경제적 자유도라고 할 때, 경제적 자유도를 기준으로 행복을 평가하면, 돈이 많을수록 경제적 자유도는 높고 행복도 증가한다고 볼 수가 있다. 물론 행복 실현을 위한 경제적 자유도 역시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구체적인 실체는 무엇이며, 행복은 어떤 형태나 모습으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경제사회란 말할 것도 없이 누구에게나 돈이 소중하게 기능하는 사회이다. 돈이 인간의 궁극적 과제인 행복의 실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의 영향이 과거의 전통주의 사회보다도 훨씬 더 커진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경제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개인의 행복실현을 위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불가피한 변수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욕구와 선호가 다양하며, 행복을 실현하는 방법과 수단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모든 다양한 개인의 선호와 취향은 대부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정한 금전적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성취 된다. 인생의 가치와 목표는 행복실현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들 행복의 향수는 대부분 일정한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만 가능하다. 일찍이 자유주의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했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 진정한 공짜는 참으로 희귀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집에 살면 마음이 흡족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입맛이 개운하고, 스마트한 의상을 차려 입으면 기분이 상쾌해 지며, 좋은 구경거리나 명승절경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 모든 유쾌함을 향수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불가피하게 일정한 수준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이다. 경제문제가 세계적인 중요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는 국가의 안정과 개인의 행복실현을 위해서 돈이 한층 더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돈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주의적 인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돈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할 줄 아는 금전관리 개념을 터득하는 삶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돈은 얼마만큼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까? 좀 더 구체적으로 돈과 인간의 행복문제를 관련지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만약 어떤 사람이 남에게 인정받는 좋은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그는 그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일정한 인간관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경조사에 일정한 액수의 부조를 해야 하고, 동창회나 동호회의 모임에도 남들이 좋아할 만한 회비와 찬조금을 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 자선단체나 봉사단체에 일정한 기부도 해야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많은 부분이 인간성과 그가 지불한 돈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일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들 듯이 돈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돈을 만드는 것이다. 원만한 사회관계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돈의 사용에서 적절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행복경제학은 행복의 결정에 경제문제가 매우 중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행복의 문제가 반드시 경제문제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행복은 결국 주관적으로 느끼는 개인의 만족도에 의하여 실현되기 때문에 심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생각보다 실생활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돈의 역할이 큰 것이다. 평생을 행복문제를 계량화 하는데 바친 18세기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 Bentham)은 결국 행복의 계량화가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자신의 모든 저작들을 불태워 버렸다는 얘기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행복을 객관적으로 구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을 객관화 하는 데는 아직도 학문의 길이 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하는 인생을 위한 모든 노력 역시 자기 나름의 행복실현을 위한 역정이다. 행복은 인생을 결정하는 궁극적 목표이자 가치이지만, 그것을 정의하거나 객관적으로 지표화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행복은 완전히 주관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고전적인 행복관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행복관도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행복을 복의 실현으로 보아 壽, 富, 攸好德, 康寧, 考終命의 다섯 가지를 잘 이루면 그런 사람을 복된 사람으로 보았다. 즉 오래 살고, 부유하며, 덕이 있고, 잘 죽는 삶을 五福으로 보았다. 대체로 행복의 근원은 크게 어긋남이 없으나 세월의 특성은 행복의 변수에도 다소의 영향을 준다. 인류역사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쳤으며, 현대사회의 주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이다. 즉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자본과 시장을 통해서 상품을 교류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회임을 말한다. 현대경제학의 기초를 세운 19세기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첫째는 종교의 문제이며, 둘째는 물질의 문제 즉 경제문제가 그것이다. 이들 중 종교문제는 믿는 자에게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나, 경제문제는 모든 인간에게 다 소중한 문제라고 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는 아니지만, 빵 없이는 또한 살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질 즉 경제의 문제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이며, 인류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는 행복의 중요 요소인 부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는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적으로 부를 잘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증가시키며, 동시에 다수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환영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다. 이 논리는 개인적인 삶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부를 잘 관리하고 증가시키는 행위는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행복가치는 환경적이며 또한 상대적이다. 남이 좋은 집을 갖고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남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레저와 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현대인들의 행복관은 상대적이며 구체적이고 또한 현실적이다. 행복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와 즐길 거리들을 향수하는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행복의 실체이다. 그 구체적인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사회가 인정하는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만 한다. 그러한 노하우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노력으로 얻어 질 수 있다. 자본주의적인 삶에 잘 길들여지는 생활이 오히려 삶을 편하고 복되게 만든다. 원하는 것을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갖거나 이루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를 줄이기 위하여서도 올바른 경제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경제문제를 인식하는 기초지식이 필요하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 투자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2022년 UN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국 146개국 중 59위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이내이고, 개인국민소득 역시 3만 5천 달러로 세계상위 수준에 있다. 합리적인 경제마인드의 함양으로 개인의 행복수준이 올라간다면 우리나라의 행복순위도 높아질 것이다.
찻잔에 남은 생각앞니로 느껴보는향기는 연두빛이다하얀발레복 춤추는 깨금발어깨동무한 속살들은꽃서리 마저 따닥따닥제 몸 태우며 향내 뿌린다수줍은 모양으로 고개숙인 새색시였다갸날픈 절개는 구름을 걷는봄바람으로 흔들린다다시는 꽃피우지 못할 듯이 절실하다달그림자 가볍게 내리는 날찻잔에 터져나오는 노란 분수에 취한다잘근잘근 앞니로 느껴본 향기에그리움은 시간의 들판을 건너 네 생각을 잡는다김 귀 옥canopener학원 원장제2회 전국문학인 꽃 축제 백일장 우수상영남대학교 문예예술과정 수료영남문학 시 등단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정치란 크게 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정치철학을 소유한 정치가라면 누구나 바르고 효율적인 정치를 통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정치지도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는 동서고금의 정치지도자들의 꿈이요 희망이었지만, 생각보다 이를 실현한 정치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많은 정치가들이 의외로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답시고, 내심으로는 자신의 아집에 좇아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여론이나 국민의 뜻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잘못된 신념이나 주장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당선자가 최근에 대통령집무실 이전문제를 두고 국민여론의 53%가 반대하고, 36%가 찬성하는 여론이 엄연히 존재함을 알면서도 급박한 집무실 이전을 고집하는 처사나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무조건 당선자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한심한 주변세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권을 잡으면 뭔가 달라지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나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을 가장 절박한 일인 양 안달하며 조급증에 빠져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처사 역시 바람직한 국가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일의 경중을 알고, 매사 신중하고 심사숙고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은 국가지도자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이다. 우선 현 시국에서 무슨 일이 가장 긴급하며, 국민을 위하는 일인지 인수위가간이나 그 후에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이후 일을 미래안목을 갖고 차분하고 무게 있게 처리함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대사를 처리함에서 정파적 시각에 집착한다든지, 보이기식 과시주의에 집착한다든지, 승패의 투쟁적 인식에 빠져 일을 조급하게 생각하는 경박함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 문재인 정부 역시 정치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승부의 개념에 집착한다든지,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무리한 인사정책, 출구를 잃은 부동산 정책, 소통이 부족한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 등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상당한 불신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책은 결국은 국민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기에 많은 부분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투표기간에는 표를 얻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을 유혹하고,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이율배반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참으로 역겨울 정도이다. 실언을 밥 먹듯 하는 조령모개의 정치인들의 모습은 차라리 장삿꾼 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진실해야 하고, 깊어야 하며, 무거워야 하고 또한 유유자적해야 한다. 정치가는 겉만 번지르르한 내로라하는 보이기식 자기정치를 앞세우기에 앞서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실한 정치가라면 먼저 국민의 마음을 살피고,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경제가 잘 발전하고 운용되기 위해서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 좋듯이, 정치가 잘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민주적 의사결정원리에 따라야 한다. 경제는 경제원리, 즉 시장원리에 충실해야 경제가 잘 되고, 정치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원리를 준수하고 국민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치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일찍이 영국의 사상가 벤담( J. Bantham)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상사회 최고의 가치로 보았으나, 이 말의 뜻을 요즘 정치가에게 요구하면, 국민의 다수여론을 존중하는 정치의사 결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말한다고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경제에서 시장원리를 생활현장에서 잘 활용하는 사람은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가 있듯이 정치에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정치가는 정치에서 성공을 하고 국민들로부터 오랜 기간 환영을 받을 것이다. 옛날 중국의 섭나라 임금 섭공이 공자를 찾아와서 “정치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는 “정치란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그리워서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외에도 공자는 “정치는 현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정치는 경비를 절약하는 것이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정치의 도를 설명했다. 이러한 공자의 표현을 성공하는 정치 경제의 원리로 이해해 보면, 정치는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다스림이요, 처방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정치 사안도 근본적으로는 시장에서 수요자의 마음을 얻는 경제 원리와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정치이며, 국민 행복을 극대화하는 올바른 정치의사 결정이 될 것이다. 역대의 성공한 정치가를 살펴보면, 그들은 위기에서는 나라를 구하고, 평시에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펼친 위정자였다. 물론 현대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정책결정을 위한 정치사안 하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 ㅤㅅㅓㄺ혀 있다. 수많은 변수가 얽혀있는 정치의사결정을 바르게 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자본주의 지식의 안경을 쓰지 않고는 현상을 판단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국민 계층 간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있고, 정치적 이념과 지지하는 정파적 가치가 서로 다른 많은 복잡한 상호이해관계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서 합리적이고도 국민 다수를 행복하게 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 전문가의 눈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해진 사회일수록 분야별 전문가의 지식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이를테면, 복잡한 이해관계속의 부동산문제,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의 문제, 기후환경변화에 따른 디양한 질병대책 등의 현대사회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고도의 분야별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주요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국민적 합의를 얻는 일이며, 둘째는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국민적 합의를 얻는 문제는 일반국민들이 해당분야의 정책 사안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할 때까지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하여 관계전문가들과 해당분야의 지식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장시간 토론을 하고 국민이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청하기 좋은 시간대에 지상파방송 등의 고정적인 “정책토론 광장”을 지속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는 정치에 관련되어 있는 변수들이 너무도 많다. 경제문제는 이미 정치경제라고 얘기해야 할 정도로 정치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속하며, 그 외에도 사회문제, 교육문제, 국방문제, 외교문제, 문화문제, 의료보건 등 수많은 과제들이 정치와 긴밀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정치는 수많은 변수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조화롭게 처리해나가는 적극적인 정치기술이 필요하다. 정책선택에서 정치의사의 합리적 결정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국민적 이해를 통해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다수의 국민이 정부의 의도와 정책선택의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정부는 국민설득을 위해 유효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언론매체 등을 인내력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성공하는 정부 또는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요구를 잘 알아야 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도 합리적인 처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만족과 행복의 크기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가장 효율적인 무상의 행복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많은 정성과 국민 한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생각하는 정치의식이 중요하다. 그 바른 길은 전문적인 지식이 충분하게 향수되는 문화적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도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수준 높은 정치가의 정치적 지성이 투영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통과 지식의 나눔을 통해서 고차적인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치가이어야 만이 진정 21세기 문화강국 코리아를 이끌어갈 자격이 있는 정치지도자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요, 고급 지식정보가 보편화 되는 시대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IT 강국 한국의 지식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치의사를 바르게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행복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정치혁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김미숙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귀농 귀촌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귀농은 장밋빛 환상이 아니다. 손수 밭을 갈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노동이 들어간다. 귀농은 삶의 터전은 물론 생활 방식과 가치관까지 한꺼번에 바꿔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땅을 선택 한 젊은 농부가 있다. 경산 육동에서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는 황하철 씨가그 주인공이다. 귀농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그는 그럴 만한 성격이 안 되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부터 옮겼다. 그가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저유소였다. 주유소보다 좀 더 큰 규모의 기름 저장고였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해서 직장에 다니다 보니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에 가서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진학을 했다. 섬유학과에 들어간 그는 한 학기를 하고서 군에 들어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남자답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수부대에서 5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졸다가도 눈이 반짝인다는데 그도 그랬다. 군대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몸에 밴 생활은 평생 간다고 했다. 그는 제대를 하고 바로 신협에 취직을 해서 대부와 채권 관리를 맡았다. 돈을 빌린 뒤 돌려주지 않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잡느라 새벽녘까지 집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이나 새벽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은 7년 가까이 했다. 어느 날 사무실로 큰일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외출 중이었던 그는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갔다. 노인이 농약을 마셨다고 하면서 사무실 직원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전날 노인네를 만나 차마 돈을 갚으라는 얘기는 못 하고 술잔 기울이다 헤어졌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지다니 마음이 아려 왔다. 돈 떼먹고 달아나는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사실 달아나는 게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아는 사이면 서로서로 맞보증을 섰다가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죄 없는 사람을 잡는 것같았다. 월급을 받으면서 험한 꼴을 봐야 하는 자신이 한없이 서글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자신이 동조한 것 같아 만나는 사람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음 날 그는 화사를 그만뒀다. 그 후로 중고 자동차 판매하는 곳에서 몇 년 동안 근무를 했다. 그 일을 위해서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했다. 청년회 회장을 맡고 여러 단체에서 깃대를 앞세우며 일하느라 정신없이 몇 년이 흘렀다. 그 세월은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해서 가정을 돌보는 일이 어려웠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나 일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바깥일에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숨을 헐떡였다. 어느 날 지인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갈 즈음 사골에 빈집과 땅이 있다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가족과 함께 일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했다. 여태껏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 살았으니 이제는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던 것이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음 날 바로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해 겨울은 시골에서 났다.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시골에 와서야 추슬렀다. 그러다 보니 한 계절이 후딱 지나갔다. 봄이 되자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미나리 농사를 시작했다. 그가 정착한 곳은 경산에서도 오지 마을 육동이었다. 지난봄 처음 그들 부부를 만났을 때 미나리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농가에서 삼겹살을 구워 미나리와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 그들을 알기 전에는 미나리 농사짓는 사람은 떼돈을 버는 줄로 알았다. 1kg 한 봉지에 만 원 가까이 하니 다른 농사와는 비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나리를 가꾸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미나리는 물과 공기와 바람이 좋아야 하고 배수가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맛과 향기와 영양가가 높은 야채로 길러진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미나리는 더러운 곳에서 자라 생것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미나리는 청정 지역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지하수를 퍼 올려서 길러진다. 그것을 알고는 난리법석이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미나리를 먹어야 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들 하우스 안에도 미나리가 가득했고 미나리 향을 맡기 위에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미나리 농사를 지으며 과일 농사를 보탰다. 말없이 남편을 돕는 그의 아내가 대견스럽다. 일이 고되고 힘들겠지만 그는 몇 년 전의 아내를 떠을리면서 너무나 미안해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살림하는 것도 모자라 휴대폰 가게까지 운영할 때는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요즘 그녀의 얼굴에 꽃이 피고 있다. 농촌 일은 여자들의 잔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과 함게 밭에서 늘 일을 한다. 을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고사리 손으로 아빠를 돕는다. 아들과 아빠의 모습이 정겹다. 이제 그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면서 산다. 그의 얼굴에도 아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한다.
이 재 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 봄 진달래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산천이 흔들리어 날아가는 종달새 더는 못가네 꽃향기에 취한 애기구름 한송이 길을 잃고 헤메인다 아! 봄 봄은 너무나 황홀한 계절
정 석 현ㆍ경북 경산ㆍ중앙대학 연영과 졸업ㆍ경산시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ㆍ영남문학 등단ㆍ영남문학작가회 회장 새봄 소우주 정석현 촉촉이 내리는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땅속 새싹은 웃으며 뾰족히 얼굴을 내민다. 앙상했던 가지에도 물이 올라 꽃망울 몽실몽실 설레는 마음으로 님 마중 나갈까? 태양은 마냥 따뜻한 빛을 감싸고 계절을 만들고자 때론 산마루에 짙은 안개로 그리움을 엮어간다. 어둠이 엄습 하면 냉기가 친구가 되어 캄캄한 밤하늘 별빛도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동공을 굴리며 자연 속 심호흡하며 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꽃 피우고자 몸부림친다.
칼럼리스트이 진 구 대통령선거는 끝났고, 윤석열 후보 당선과 이재명 후보 낙선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어느 후보의 지지자였든 새 대통령의 성공을 기대하고 응원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나는 언론인 경산자치신문 김문규 발행인을 존경한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신문 지면에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기사나 글도 거짓이나 부정의한 글이 아니라면 여과 없이 보도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경북에서 크지 않은 지역 신문을 운영하면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고, 보도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균형을 잡고 언론의 기능을 유지하려는 변하지 않는 노력 때문에 김문규 발행인을 존경한다. 태권도 공인 9단의 패기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우리나라 조중동 등 레거시미디어는 이미 이익을 계산하여 특정 후보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 같은 의심이 매우 많이 든다. 그 대표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이 <이재명 전과 4범> 공세이다. 국힘당은 선거운동 내내 <이재명 전과 4범>을 강조했으며, 조중동 등 레거시미디어들은 이에 가세하거나 이용하고, 때론 험잡기에 인용하고, 이에 대한 모함을 묵인하여 많은 국민이 부적격 후보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과 4범의 실상>은 이러하다. 1. [음주운전]은 이재명 후보도 여러 번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했고, 지지자들도 잘못을 인정한다. 변호사로 시민운동을 하던 시절 '급한 제보'가 있다는 시민의 전화를 받고 제보를 받으려고 음주를 했음에도 불가피하게 운전하고 갔다는 것을 이재명 본인도 핑게라며 구지 설명하지 말라며 사과만 한다. 2. [공용물건손상 특수공무집행 방해] 사건은 전혀 다르다. 90% 서민이 이용하고, 특히 30%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도록 성남시립병원을 만들자는 조례안을 만들고, 여기에 무려 수개월 노력하여 1만 명 시민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제출했는데, 보수당 의원들이 단 47초 만에 부결시켜 버리자 시민들과 함께 시의회에서 울며 항의하다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벌금 500만 원을 받은 것이다. 변호사가 돈과 시간, 노력을 써가며 시민 위해 앞장서다 받은 상처이다. 3. [선거법 위반] 역시 같은 경우다. 1만 명 시민의 서명으로 제출한 시립병원 조례안이 47초 만에 부결된 후“변호사님이 출마해서 시장이 되어 직접 시립병원을 만듭시다”라는 시민들의 요구로 출마하여 지하철역에서 명함을 돌리다 50만 원 벌금을 받은 것이다. 지금은 악법이라며 없어진 선거법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이재명 변호사는 시장이 되어 전국 최고 시설의‘성남시의료원을 결국 만들었다. 4. [공무원(검사) 사칭]은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취재하는 KBS 방송 PD에게 사건담당 검사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고‘기자의 검사사칭’을 도왔다는 이상한 판결로 벌금 150만 원을 받은 것이다. 음주운전 전과를 제외하면 나머지 3개의 전과는 감히 독립군들의 전과 기록과는 비교할 바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청년들의 전과와는 비슷한 시민을 위한 공익활동 중에 받은 상처이다. 훈장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짓을 언론들이 앞장서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국민이 <전과 4범> 건으로 이재명 후보를 비난하는 공범이 되도록 했다. 대선도 끝난 마당에 왜 지면까지 할애하여 <전과 4범>에 대해서 말하는가? 이유는 자명하다!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될 것이고, 선거 때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모함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는 물론 이어지는 선거에서 더 이상 능력 있고 추진력 있는 공직 후보들이 억울하게 거짓선전에 속아 피해보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런 거짓을 펙트체크하여 진실을 알려주고, 후보들의 건강한 정책대결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그 역할을 다할 후보를 선택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시민께서도 스스로 판단 능력을 키워 언론이나 정당의 거짓 선전에 속아 투표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곧 있을 경산시장 선거에는 국민의힘 후보가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만큼 국민의힘 내에서도 허위사실에 휘둘리지 않고, 능력 있고 시민을 위하는 후보가 경산시장 후보로 선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선거는 장난이 아니고 시민, 나아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호언 하던 민주당 정권이 정권연장에 실패했다. 국민이 선거에서 투표로 민주당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정권은 집권초기 의기양양하게 이전의 박근혜 정부가 떨어드린 국격을 높이겠다고 요란한 다짐을 했었다. 그렇지만 집권 초기부터 몇 가지 정책실패로 국민의 원성을 받더니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온 나라를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들 만큼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형국민을 실망 시켰다. 국세청 세무담당자들도 도데체 부동산세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28번에 가까운 임기응변식 부동산정책으로 국민들이 정신을 못차리게 했다. 역대 최악의 부동산정책은 일치감치 민심을 떠나게 만들었다.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의 주요지역 아파트 값은 미친 듯이 올랐고, 정부는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부동산문제는 정권 말기까지도 미해결인 채 남아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에 통한의 분노를 삼켜야 했고, 집이 있는 사람은 턱없는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때문에 울분을 터트려야 했다. 문정권이 뱉은 말을 되 담아 보면, 나라답지 않는 부동산정책으로 나라 꼴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무능한 부동산 정책에 화가 난 민심은 진작부터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고 와신상담하고 있었다.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아예 출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의 선거 게임이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함께 문 정부는 몇몇 행정책임자들의 내로남불식 행동과 민심을 배반한 인사정책으로국민의 원성을 샀고, 장기적인 에너지관리 정책에서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책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바꾸는 주요 정책을 실시할 때는 왜 그러한 정책을 해야 하는지 반드시 국민들을 충분하게 이해시켜야 함에도 정부는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원자력 감축 정책을 실시할 때에는 왜 그렇게 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수립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대안을 갖고, 어떻게 수립해 나갈 것인지에 대하여 국민들을 충분하게 설득해 나갔어야 했다. 열린 사회에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없이 강조했지만, 정작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서는 소통에 미흡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미 20대 총선에서도 정권심판의 조짐은 강했으나 그때는 코로나 19의 방역에 열과 성을 다한 정부의 노력 탓으로 민주당 스스로도 놀랄 만큼 기대 이상의 180석의 의석을 차지하여 정부를 비롯한 집권당을 안이하고 오만하게 맏들었다. 그 후 여권은 국민들이 열망하는 부동산 정책을 위시한 주요정책과제들을 바르게 해결하려는 열정이 식어가는 듯했다. 부동산, 에너지, 코로나 등을 비롯한 주요과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시작되었고, 대세는 정권교체로 기울어졌다. 각 후보자들이 부동산문제의 해결을 위해 수백만 호의 집을 짓겠다고 응급처방식 공약을 내세우며, 다방면에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청사진을 내었지만, 이미 국민들의 마음에는 그런 공약은 그야말로 빈 空約으로 들릴 뿐, 투표의 결정은 유권자들의 정서적 판단에 따라갈 뿐이었다. 여기에 선거의 외부적 요인으로 볼 수 있는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증가와 전국으로 시시각각 발생하는 대형 산불 역시 선거에서 여당에게 불리한 외부불경제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오미크론의 기세가 최근에 이르러 신규확진자 수 1일 35만 명 선에 육박하고, 하루 사망자 수가 200명이 넘고, 총 감염자 수가 500만 명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코로나 감염자 수의 증가는 선거에서 이득이 될 수가 없고, 울진·삼척, 강릉·동해 등 전국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타오르는 산불 역시 여권에는 부의 선거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오일, 천연가스 등 원자재가격이 상승하여 국민 생활이 날로 곤궁해 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선거에 미약하나마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국가 대사는 하늘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이러한 대내외적인 여건에서 실시되었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개표상황은 밤 자정이 넘을 때까지 초박빙의 상황을 지속해 선거의 개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자정을 지나 개표가 85% 수준에 이르렀을 때 역전을 시작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결국 출구조사의 예상대로 힘겨운 박빙의 승리를 했다. 결국 천심은 윤 후보를 선택했다. 선거에서 진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일찍이 패배를 인정하고 승리한 윤 후보를 축하했다, 패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긴 윤석열 당선인도 잘 싸웠지만, 패배한 이재명 후보도 기대 이상으로 잘 싸운 선거였다. 비록 선거에서 지기는 했지만, 이번 선거는 여권의 주변 세력이던 이재명 후보가 투표에서 진 선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선거는 여권의 중심세력인 문재인 정권이 진 선거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도 하다. 선거는 처음부터 여권이 불리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천정부지로 타오른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분노는 아예 정권교체의 열망을 치밀어 올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문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선거상황하에서 0.73%, 24만여 표의 초박빙으로 선거를 이끌어간 것은 이재명 후보자의 개인적인 능력이 크게 좌우했다고 본다. 한편 진영의 논리에서 보면 오히려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을 이긴 선거이다. 만일 진보성향의 심상정 후보의 2.3% 지지표가 합산되는 보수 대 진보의 완전한 1대 1의 선거를 했더라면, 아마 이재명 후보가 낙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는 엄정한 이 선거결과를 집권 5년간 한시도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를 한 윤 당선인은 정치적 행운아이다. 그는 검찰총장이라는 공직에서 은퇴하고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1년도 않되어 세계 베스트 10의 경제 강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듯이 그는 실정의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준 한국 정치의 신성이다. 아마 국내외에서 역사상 찾아보기 드문 정치 스타를 한국의 정치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그의 장도가 마냥 밝다고만은 얘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국내외의 정치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다. 민주국가에서 중요한 정치의사 결정기구인 국회가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의 노태우 정권도 여소야대의 정치권을 바꾸기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3당 합당을 만든 적도 있다. 그만큼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협치가 중요하다. 소수 여당과 행정부의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 자신도 무엇보다도 국민통합을 정치의 제일 과제로 언급하고 있다. 선거로 상처받고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통합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빠르게 승복을 한 이재명 후보의 깨끗한 태도는 그의 정치적 앞날을 밝게 하는 모습이다. 민주국가는 선거를 통해서 발전한다. 잘하는 정권은 국민이 밀어 주고 못하는 정권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갈아치운다. 그것이 선거의 미학이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으로 이해하고, 선거를 통한 민주 사회발전을 믿는 진실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의 게임을 스스로 즐겨야 한다. 선거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조하고, 선거판 그 자체를 하나의 재미나는 스포츠 게임처럼 쿨하게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초박빙의 선거 게임일수록 오히려 흥미를 갖고 냉정한 자세로 즐길 수 있는 자는 선거를 삶의 행복 엔돌핀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이다. 이번 선거는 냉정하게 보면 정확하게 절반의 승리에 불과한 것이다. 당선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절반이고, 반대하는 세력이 나머지 절반이다. 나의 의사와 반하는 절반의 의사가 있음을 잊지 않음이 민주사회의 발전을 높일 것이다. 인생도 선거처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음을 알고, 지지 않기 위해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진정한 선거의 행복경제학이다. 국민들은 선거로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저비용 고효율의 선거 게임을 즐기는 선거의 행복경제를 찾는 슬기가 필요하다. 성공과 실패는 인생의 과정에서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일상이며, 성공이 행복의 파이를 키워나가는 중요 팩트임을 알고 선거에서 많은 유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은 선거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세상을 배운다고 한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서 진정한 민주시민이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선거를 삶의 유용한 에너지로 활용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난포고택 솟을대문 어제가 경칩(驚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개구리는 번식기라 알을 까는 시절이다. 그런데도 봄이 올듯하면서 멈칫거리는 모양새다. 햇살은 따사로운듯하면서 찬바람이 손을 시리게 한다. 귀촌이랍시고 고향에 들어온 지도 3개월이 지나고 있다. 고향은 항상 포근하고 편안하다. 언제 쳐다보아도 넉넉한 진산이 용산(龍山)이다. 용산의 동쪽 자락에 깊은 골을 이루고 옹기종기 집을 지어 촌락을 이루고 있으니 곡란리라 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멋진 숲이 반기는데 왕버들, 회화나무, 느티나무 등 30여 그루가 곡란숲을 이루고 있으며 아름답게 꾸민 정자가 서 있다. 배산임수형인 곡란마을의 이름은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해서 골안 또는 고란이라 부르다가 곡란(谷蘭)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동네가 넓고 주민이 많이 살고 있어 옛날부터 용산, 두곡, 산대, 수동, 북녘, 남녘 등 7개의 동네를 이루고 있다. 난초 골짜기라는 뜻의 곡란리는 대부분 평지로 이뤄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풍수학으로 보면 곡란리의 지세는 전체적으로 청룡인 남쪽이 높고 북쪽의 백호가 완만하게 낮아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동남쪽 골짜기의 용산지와 회곡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을 앞 개울을 지나 외백호 끝자락에서 수구를 이루고 이 수구는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백호의 끝자락에 수구막이 나무를 심어 비보림(裨補林)으로 삼았다. 곡란 숲은 비보림이자 방풍림이라 마을 사람들이 보호하며 가꾸어 나간다. ▲ 안채 마을 중앙을 거쳐 소천 고개를 넘어가면 운문댐과 운문사나 언양, 울산으로 통하는 도로가 연결되어있다. 이 도로변에 난포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난포고택은 경북 경산시 용성면 운용로 792(곡란리)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시대의 고택이다. 곡란은 필자의 외가 동네라 어린 시절에 자주 놀러 왔던 곳이지만 난포고택은 그저 부잣집쯤으로만 알고 지냈는데 문화재 공부를 하다 보니 고향에 소재한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난포 선생을 새롭게 만나 뵙고 고택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오늘 걸음을 하게 되었는데 난포 선생의 후손인 최주근 박사가 친절하게 안내와 설명을 해주었다. 고택 앞에는 쇄석을 깔아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있고 솟을대문이 앞을 가린다. 솟을대문은 두리기둥을 세웠고 출입문을 중심으로 한쪽은 방이고 다른 쪽은 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 앞에는 큼직한 바위에 난포고택이라 새겨 놓았다. 난포고택은 경산에서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민가 고택으로는 유일하며 평지에 다소곳하게 자리하여 편안함을 안겨준다. 당초에는 12채의 집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주택 중앙으로 도로를 내면서 주택의 규모가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되었으나 6백 년을 이어온 고택이라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하여 1975년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수오당 난포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사로 전주를 방어했던 난포 최철견 선생이 지은 집이라고 전한다. 명종 원년(1545)에 지었다고 하는데, 건축양식이나 기법으로 보아 17세기 전후의 집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도 참화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전한다. 가경 14년이라고 쓰진 막새기와와 상량문의 중수기록이 있어 순조 9년(1809)에 보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09년에 중수한 상량문에 후손들에게 남긴 덕담이 담겨있다.“수우후곤 불고불후개이 경복 어우사천(垂雨後昆 不故不朽介以 景福 於寓斯千) 너희 후손들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쇠퇴하지 않고 모두 복되게 만사형통하여 잘 살아야 한다.”난포고택은 길지 중의 길지로 손꼽힌다. 1929년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임명받은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전국의 길지를 조사한 후 난포고택을 대표적인 주택 36개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난포고택은 정침, 아랫사랑, 중사랑, 방아실, 행랑채와 마루 그리고 사당 등이 고루 갖추어진 대규모의 양반집이었으나, 지금은 안채, 행랑채, 사랑채, 사당, 수오당(守吾堂)이 남아있다. 재실인 수오당(守吾堂)은 최근세에 용산(龍山)에서 이건(移建)한 건물이다. 넓은 마당에 서향한 안채가 있고 좌측에 남향한 아래채, 안채, 뒤쪽 동남으로 사당이 서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앞면 7칸, 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향 좌측에서부터 부엌 2칸, 안방 1칸, 대청 2칸, 작은방 1칸, 마루방 1칸 순이다. 가운데 5칸은 옆면이 홑처마 맞배지붕이고, 양쪽 1칸씩은 눈썹지붕을 덧달아서 팔작지붕처럼 만들었다. 안채 맞배지붕의 끝을 장식하는 눈썹 처마는 난포고택의 백미라 하겠다. 사람의 눈썹을 닮아 눈썹 처마라 부르는데, 들이치는 비바람도 막고 햇볕도 가리기 위한 장치라 하겠다. 난포고택에서 본 눈썹 처마는 한옥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청은 들문을 달아 막았으며, 뒤쪽에는 다락을 설치하여 방과 이어지도록 하였다. 간반통(間半通)으로 앞면에 퇴칸을 두었고 안방 뒷벽엔 고미다락을 설치하였다. 이 집의 특색은 마루 앞에도 문을 달았다는 점이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부엌은 널문, 안방과 건너방은 머름 위에 두 짝 띄살창, 대청은 두 짝의 띄살 분합문, 마루방은 외짝 살대문이다. 행랑채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인데 지금 한창 복원공사 중이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정면 2칸, 측면 1칸 앞퇴가 없는 가묘형이다. 안채 뒤뜰에는 수백 년이나 묵은 배롱나무 아래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큰 고인돌이 보존되어 있다. 곡란리에는 곳곳에 고인돌이 많았는데 경지정리를 하면서 고인돌을 들어내거나 땅속 깊숙이 묻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고인돌은 고택의 뒤뜰에 자리 잡고 있어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이곳의 고인돌은 사당의 조상님과 함께 난포고택은 물론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 사랑채 솟을대문 담장 옆에는 능소화가 자라고 사당과 수오당 담장 옆에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뒤뜰의 배롱나무와 함께 철철이 뿜어내는 각각의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과 단풍은 고택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 줄 듯하다. 마당에는 대를 이로 지켜온 장독대와 우물이 있고 맷돌과 말(馬)을 매는 돌이 특이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안채 죽담에는 흙으로 빚은 조각상이 흥미롭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든 손자와 곤히 잠든 손자의 이마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긴 할머니의 모습이다. 정겹고 포근하고 미소가 머금어지는 상이며 조손(祖孫)간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상이다. 어느 여성 후손이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였는데 할머니와 함께하였던 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한다. 난포고택의 후손들은 이 집 구석구석에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자취와 역사를 이어온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최철견(崔鐵堅, 1548-1618) 선생은 영천최씨 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이며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응구(應久), 호는 난포(蘭圃), 몽은(夢隱)이며 부친은 증 호조참판 최력이다.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을 시조로 하는 최씨의 후손은 경주최씨, 영천최씨, 흥해최씨, 전주최씨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난포 선생은 금호의 최무선 장군이 중시조이며 금호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하였다고 한다.‘난초가 무성한 밭’이라는 뜻의 난포를 호로 지은 것도 이 마을 전체에 난초가 많았지만, 특히 이 집에 밭을 이루듯이 난초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포 선생은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 1585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 감찰, 형조좌랑, 사간원 정언을 역임하였다. 1590년에는 병조정랑이 되어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전라도 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찰사 이광(李光)이 패주하자 죽기를 맹세하고 전주 사민(士民)에 포고하여 힘껏 싸워 전주를 수호하였다. 그의 나이 70세 고령인데도 의병을 창의하여 대장이 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영천의 권응수(權應銖) 의병과 합세하여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1597년 수원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599년 내자시정(內資侍正), 1601년에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가 호조참의로 전임되었다. 1604년에 춘천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낙향하였다. 저서로 몽은집(蒙隱集)이 전해오고 있다. 매화는 곱게 피어있고 개구리는 알을 낳았는데 봄은 가까이 오지 않아 손이 시리고 메모하기조차 힘이 들었으나 외가 쪽의 선현 한 분을 만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나라와 백성의 안녕과 복리를 위하여 70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창의하여 왜구를 무찌른 고귀한 정신을 배우고 담아간다. (2022. 3. 6. 일)
칼럼리스트이 진 구 대통령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장은 “찍을 후보가 없다!” 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선대위원장은마저“35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라고 말하겠는가? 후보들은 억울할 수 있다. 언론에 의해 허위 사실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도 하고, 거짓에 의해 치적이 부정의로 둔갑 되기도 하며, 작은 사실이 크게 확대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기 위한 공방과 팩트체크의 지난한 과정은 역사에 맡겨두어야 하지만, 눈앞의 대선은 당장 투표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세계 1% 부자 재산이 세계 90% 69억 명의 재산 2배가 된다. 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Paradise Papers) 중 단 10곳에 숨긴 대한민국 국적 232명 부자의 숨겨둔 재산만 해도 당시(2016년) 우리나라 GDP의 15% 이상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하루 1달러, 약 1,100원의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어린이가 수십만 명이 되는가 하면, 수십만 명이 굶지 않고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돈 1억 원을, 단지 친구의 생일이라는 이유로 서너 명이 서울 나이트클럽 버닝썬 VIP룸에 모여 마시는 양주 1세트 값으로 지불 해 버리는 부자 2세들도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보아리니 밀라네시(Boarini Milanesi)의 78억 짜리 악어가죽 가방이 아니더라도, 자랑할만한 명품 가방은 1억은 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부자의 현실이다. 하루 네 시간 알바를 한 달 25일 쉬지 않고 해도 90만 원 내외인 대학생들의 삶이 현실인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신발 한 켤레에 보통 200만 원이 넘으며, 겨울용은 300~500만 원대이고, 저렴한 남성용 벨트가 100만 원이 넘으며, 주머니 안의 반지갑도 평균 300만 원이 넘는 명품이 날개 달린 듯 팔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자동차로 옮겨지면 더욱 놀란다.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 같은 225억 수제 명품차가 아니더라도 강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동차도 10억을 넘는 것이 즐비하다. 주택은 말해 뭐하겠나. 1조 원이 넘는 세계 명품주택이나 500억 원이 넘는 고 이건희 회장의 단독주택을 제외하더라도 대한민국 공동주택 빌라도 상상 이상의 가격이다. 서초동‘트라움하우스’나 청담동‘PH129’는 빌라인데, 한 채 호가가 200억 원을 넘는다. 2014년 2015년 불과 2년 만에 미국 최고 부자 15명의 재산이 170조 달러 늘어난다는 것은 정의가 아니고 분명 타락한 경제 상황이라고 미국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의 말이다. 170조 달러는 2021년 대한민국 예산 558조 원의 335배에 달한다. ‘찍을 후보가 없다’라는 것이 현실이라면 눈을 똑바로 뜨고, 가슴을 활짝 열고 살펴야 한다. 기독교 신자들은 미신이나 역술에 빠진 후보를 싫어할 것이고, 부동산정책 실패로 손해 봤다면 여당을 싫어할 수도 있다. 검찰의 역사를 알면 검찰 출신은 절대 불가를 외칠 것이며,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여당을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찍을 사람이 없다면 선택은 역시 경제다. 공자부터 빌 클린턴까지 외쳐왔던 말을 대선 선택의 중심에 둬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특히 경제 불평등, 경제 양극화 극복이야~” 우리나라의 경제 양극화, 경제 불평등도 상상 이상으로 심한데 OECD나 세계은행 발표에 의하면, 2010년 이후 빈부격차나 소득 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 대선 선택의 폭은 매우 좁혀진다. <경제 발전과 경제 불평등을 완화를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이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자 1%가 60% 국민 부의 합보다 많은 재산을 가진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것도 파악한 재산만으로 그렇고, 조세피난처 재산을 합한다면 가늠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정의롭지 않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뿐이다. 그래서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고, 그 선택은 경제를 바르게 이끌 능력 있는 후보라야 된다는 것이다. 명저‘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 프랑스의 세계적인 경제학자‘토마 피케티’, 세계 3대 투자자 중 한 명인‘짐 로저스’,‘조세정책의 세계적 권위자’이매뉴얼 사에즈 UC버클리대 교수 등이 주장하고 우리나라 출신 김누리, 홍기빈, 장하준 등 세계적인 보수, 진보 양측 학자들이 공히 주장하는 내용은, 진보 정치인들이 집권하는 시기가 경제 불평등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자료로 증명되고 한국도 같은 경우라고 한다. 이에 따라 부자, 재벌들의 반발도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한다. 현 정부도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하위 70% 국민께 많은 복지정책을 펴, 부자들의 엄청난 반발을 싼 것이 반증이기도 하다. 부자들이나 능력 있는 사람들이 큰 돈을 벌게 하되 상상 이상으로 너무 과하게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청년이나 90% 국민께도 경제성장 혜택을 충분히 누리게 하여 경제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킬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수출이 늘어나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문화 강국으로 인정받는 등 세계 대국이 되어간다. 그런 만큼 이번 대선은 안정된 선진국으로 안착하느냐 다시 개발도상국으로 추락하느냐 하는 귀로에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다. 누가 경제성장과 경제 불평들 해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후보인지 판단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청년과 97% 국민의 희망을 위해서!
정석현경북 경산중앙대학 연영과 졸업경산의회 3선의원, 의장 역임영남문학 등단영남문학작가회 회장 정월 대보름 소우주 정석현세월 따라사라져 가는 풍습들을산에서 들로 냇가로하나둘씩 풍물로 모아오곡밥 부름 깨며 귀밝이술 한잔에추억을 반추하며달집 태워 모든 액운 떨쳐 버리고소원 성취 이루 고저 지신 밟으며 풍년을 기원한다.정월 대 보름달 두둥실휘영청 밝게 비추는 밤우린 그대가 그리워 또 한 해를 설계하며두 손 모아 안녕을 비나이다. 2015년음력 정월 대 보름날 밤에
김미숙 박성용 씨, 낯익은 얼굴이다. 작년 이맘때 우리 사무실에 몇 번 왔었는데 일 년 만에 왔다. 그때 그는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포도 알맹이가 굵어지지 않는다며 필요한 영양제를 몇 번 사간 일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소식이 없더니 오늘 그의 아내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선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다시 봐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어떤 일을 하다가 농가를 짓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여러 사람이 있어서 묻지를 못했다. 그들 부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내가 만난 농민 중에 가장 많은 작업을 접해 본 사람이다. 비디오 가게와 포장마차 식육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일들은 모두 먹고 살 만큼 그의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착실하게 일하는데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정도라고하니 선진국이라고 외치는 우리 나라가 부끄럽다. 나 역시도 남편이 월급을 받고 일할 때 한 달 벌어서 한 달 살고 나면 통장의 잔고는 고스란히 다 빠져나갔다 그때마다 하루살이 같았다. 그날이 그날이었다. 어느 날 그는 슈퍼마켓에 갔다가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슈퍼는 수입이 꽤 괜찮았다. 얼마 후 사장은 슈퍼 내에 생선 가게를 냈다. 직원이 돌아가면서 운영을 했다. 직원에게 맡겨진 생선 가게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생선은 싱싱함이 최고의 값인데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은 내 일처럼 하려고 들지 않았다. 시간만 때우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직업 운영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수백만 원의 보증금을 걸고 생선 가게를 냈다. 슈퍼를 찾는 사람들이 생선 가게로 몰려왔다. 싱싱한 생선이라며 단골손님도 늘었다. 하루에 수십만 원이 주머니에 들어오니 콧노래가 절로 홍얼거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큰 슈퍼가 생기자 사람들은 그리로 몰려갔다. 그렇게 많던 손님이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생선가게 또한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번창하던 슈퍼가 하루아침에 파리만 날리더니 자금 조달이 잘되지 않자 곧 부도가 날 지경이었다. 그는 보증금이라도 받을 목적으로 사장 집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렸다. 아내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등에 업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사장을 몇날 며칠 기다렸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콧등이 시큰거렀다. 새벽이 되어 나타난 사장을 붙들고 아이 우유 먹일 돈도, 쌀 한 푼 살 돈도 없다고 했다. 아내 등에 업힌 아이가 울음보를 터트리고 그도 아내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장은 2개월짜리 어음을 끊어 줬다.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 돈을 받고서야 슈퍼의 사장는 부도를 냈다. 그는 경산에서 식육점을 내고 이십 년 가까이 운영했다. 그 일을 하면서 음식점도 냈다. 그때는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잠을 잤다. 너무 바쁘니 피곤한 줄도 몰랐다. 어느 날 그는 지인에게 땅 한 필지를 소개 받았다. 축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소를 사러 다니다 보니 지저분한 우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를 깨끗하게 키울 수 있는 우사를 만들고 싶었다. 포도밭 한 필지를 사서 그곳에 축사를 지었다. 우사를 지으면서 식당을 하는 아내를 도왔고 식육점 일도 도맡았다. 일인 몇 역을 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생각이 빗나가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 식당 주변에 몇 개의 기업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옮겨 갔다. 그 바람에 식당에 손님이 줄어들었고 결국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축사의 소는 나날이 늘어갔다. 식육점을 닫았다고 상심할 시간이 없었다. 그 후 몇 마리 되지 않던 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서 상심할 시간도 없이 또다시 일이 많아졌다. 소가 백 마리 넘어서자 먹고살 만했다. 시간적 어유가 생기자 어떤 일을 더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 그때 지인이 찾아와서 농사를 지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복숭아 농사 세 필지로 시작해서 지금은 삼천 평 농사를 짓고 있다. 퇴비와 비료, 영양제와 미생물을가득 넣어 놓고 제 밭처럼 잘 가꾸어 농사를 지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성실하게 일하니 주변에서도 알아봤다. 이제 그의 목표는 소를 이백 마리로 늘리는 것이고, 좀 더 농사를 짓는 것이다. 농사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힘든 것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농부로서 걸어가야 할 길에 푸른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 같다. 앞길에 크고 넓은 길이 놓여 있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선거는 왜 하는 것이며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요즘은 우리나라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 시즌이라 바람직한 선거문화를 두고 생각해 보게 한다. 선거는 민주국가가 선택하는 정치 의사결정 방법이며 중요한 정치게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각 정당들은 치열한 선거전에 돌입한다. 정파적인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는 비정한 선거행위를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한 승부 게임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저급한 선거는 국민의 화합과 행복감을 감소시키는 비생산적인 선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선거는 달리 보면 국민들이 한나라의 최고정치지도자를 뽑는 축제의 장이다. 그러므로 그 축제의 분위기가 선거 후에도 국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스마트(smart)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민주국가에서 나라가 더 잘 살고 국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선택한 선거제도가 매우 사악하고 승부에 집착한 저질 게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 선거 상황이다. 그 원인은 선거의 과정과 방식이 지나치게 방림적이고 비규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를 두고 느끼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의외로 비계산적이고 반실증적이며 감성적인 경우가 많다. 정치와 나라의 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과 구체적인 생각이 부족한 상황에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소위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무조건 진보는 싫고 현 정부가 잘못했으니 이번에는 바꾸어 새 정부에 기대를 걸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보수는 꼰대들이며, 지금까지 반민주 기득권세력들이 누리고 있는 낡은 세력이니 절대로 정권을 맡겨서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나라의 장래에 대한 장기적인 분석이나 후보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에 대한 검증보다는 이미 정해진 정서적 감정에 따라 편싸움 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나 정치교체를 원하는 세력의 상당수조차도 후보자들의 정치적 능력이나 국가의 장기발전에 대한 철학과 평가와는 상관없이 단기적이며 감성적 인 판단에 이끌려 후보를 선택하다 보니 선거는 점점 더 무조건적이고 사악하게 되는 것이다. 선거에 임하는 자세에서 대부분의 유권자는 국가적 과제와 후보자 개인의 역량평가보다는 이념적, 감성적, 정파적, 지역적 정서적 성향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적으로 감성적인 경향이 크다는 외국인들의 지적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흔히들 선거를 두고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얘기한다. 꽃이라고 함은 선거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예쁘고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선거는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자를 선택하는 정치 의사 표현행위이기 때문에 민주국가의 꽃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거는 유권자 스스로가 양심과 판단에 의하여 대표자를 뽑는 방법이기 때문에 민주적 의사를 표출하는 정치주권 행사이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온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다수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점이다. 설사 선거결과가 자신의 뜻과 다르게 나타날지라도 국민적 약속에의해 결정된 결과를 흔쾌히 수용한다는 점이에서 선거의 가치는 높다. 선거에 의하여 결정되는 대통령는 개인은 물론 나라의 영광이요, 국민의 행복창출자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선거이기에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과정이 스마트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도 수긍하기가 쉽다. 그러나 선거과정이 지나치게 네거티브하고 저질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선거에 대한 승복이 어렵고,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 민주국가는 선거를 통해서 발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선거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꽃의 의미에 걸맞게 진행되어야 하고 그런 선거가되도록 제도적인 뒷 받힘이 이루어져야 한다. 저질스런 인신공역과 마타도어가 없는 스마트한 선거라야 국민통합과 국민의 행복증진에도 선거가 기여하게 된다. 꽃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지금 민주주의의 꽃으로 치러지는 우리나라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다소 불편하고, 선거과정에 대한 혐오스러움이 많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뿌리 깊은 곳에는 선거제도 그 자체가 지나치게 고정관념에 길들어져 있고, 기존의 선거제도를 과신하여, 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방관적 자세를 취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잘 적응하는 보다 유쾌하고 생산적인 선거를 치르기 위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선거가 독설과 인신공격으로 난장판이 되는 네가티브적인 선거를 막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신공격, 도덕성 시비 또는 사생활을 비롯한 마타도어와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근절시켜야 한다. 선거를 유쾌하고 스마트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의 바람직한 선거철학과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선거를 통해서 발생하는 국민 분열과 갈등을 줄이려는 선거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에 대한 윤리와 매너가 상실한 선거판에서 오직 승리에만 집착하는 무자비한 인신공격과 네가티브 선거판은 비생산적, 반행복적 마이너스 선거 경제학이다. 국민을 유쾌하게 하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선거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의 네가티브를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무방비하게 풀어 놓은 흑색선전 또는 인신공격성 행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선거관리 위원회내에 가칭 ‘도덕성 검증위원회’ 와 같은 후보자 윤리검증기구를 두어 사전적으로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하고, 이후 도덕성문제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온 국민을 보수와 진보의 양진영으로 나누어, 나라를 온통 거대한 편싸움 선거판으로 만드는 선거는 국민행복지수를 감퇴시키는 비생산적인 선거이다. 모든 국민이 선거판의 편싸움에 끼어들게 만드는 선거 분위기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 언론과 매스컴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하는 정파적 견해를 유도해나가는 정치 보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특히 요즘은 사이버 공간을 비롯한 다양한 매스컴들이 후보자의 도덕성을 멋대로 난도질하고 과장 조작하는 일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온 국민이 선거홍수에 휩쓸리는 선거공화국은 국민들에게 주는 손실이 크다. 선거는 선거의 룰을 준수하며,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정치집단은 선거판으로 시끄럽더러도 국민은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조용히 자신의 정치의사를 투표장에서 밝히는 정제되고 차분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與든 野든 장래에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에게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가하는 일은 결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으로도 모두 마이너스적인 정치경제학이며 국민에게 해가 되는 반행복 경제학이다. 선거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네가티브는 국가지도자의 인품과 품격을 떨어뜨려 미래세대에 대한 인성적 도의적 교육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도덕성과 사생활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경쟁적인 비판과 보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축제 대통령선거를 장기적으로 생산적이고도 행복 지향적인 기준에 맞추어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선거가 되어야 한다. 후보자들이 향후 어떤 정책과 비전으로 나라를 이끌어나가겠다는 공약과 그 실현 가능성을 놓고 전문적인 토론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단순한 후보자들의 의견교환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비판과 검증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는 중복해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재정적 뒷 받힘이 보증되지 않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인기주의적 공약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이 있어야 하여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당연히 국민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또한 국정운영 능력이 중요한 대통령선거에서는 후보자의 능력이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를 놓고 구체적이며 밀도 높은 정책대결이 있는 스마트한 선거를 해야 한다.
이 재 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 꽃 길가슴가득사랑이머무르는 계절하이얀 벚꽃개나리 진달래온누리 위에스며 번진 이 봄꽃구름 안아 와깔고 누웠는데당신을 거쳐온바람이어쩌면 이리도향기로울까오늘도 당신은하늘나라꽃길을 걷고 있겠지요
경산소방서 예방총괄담당권 민 호 최근 2022년 1월 6일 오전 11시 46분경에는 경기도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로 소방관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공사 현장 내 안전불감증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공사장 화재 사고로 인한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2020년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당했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5월 118명의 사상자를 낸 고양버스터미널 화재, 2012년 8월 29명의 사상자를 낸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등이 있다.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화재,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건축공사장 화재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내는 커다란 재난이다. 또한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기게 된다. 공사 현장 화재 사고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공사 현장에는 가연성 도료, 인화성 물질, 단열을 위한 석유화학제품 등 불에 잘 타는 가연물이 넘쳐나고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용단 작업등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 화재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또한 일단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다량의 유독성 가스와 가연성 가스를 내뿜고 관계인에 의한 초기대응 실패 시 단시간에 연소가 확대되어 인명과 재산피해를 증가시키게 된다. 매번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낳은 반복되는 화재, 정말로 예방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 2015년 1월 8일부터는 공사장 화재를 예방하고 신속한 초기대응을 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사장 임시 소방시설 설치가 법제화되어 시행되고 있으며, 소방서 등 유관기관에서는 화재 예방을 위한 공사장 안전 점검과 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이 강화되고 소방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공사장 화재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건축공사장에는 많은 안전 수칙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용접이나 용단을 할 때는 화기 취급 부주의를 막기 위해 안전관리자를 배치하여 안전 감독을 실시함은 물론 주변 인화물, 가연물 등에 신경 써야 하며, 특히 가림막에 불씨가 옮겨붙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지하 등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 시 환기 등 안전조치와 소화용 준비물 등 화재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언뜻 보면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안전 수칙을 확인하고, 안전시설을 확보해가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나 번거롭고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시간이 낭비가 아닌 화재 예방을 위한 긴박한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안전의식은 근로자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안전에 대한 관심이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나는 정도라고 하며 안전에 대해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천하고 실행하는 정도에 따라 통상적으로 ‘안전의식이 강하다 또는 약하다’라고 표현한다. 안전 확보의 열의와 신념이 행동화될 때 비로소 안전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사 현장 관계인의 안전의식에 대한 본질 이해와 안전의식의 전환을 통해 이제는 공사장 화재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길 바란다.
내일이 임인년 정월 대보름날이다. 옛날 어린 시절 가난하였던 농촌 생활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하였지만 그래도 명절은 먹을거리가 많아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 잡곡밥에 9가지 나물로 아침을 먹고 나서 부름을 깨기도 하였다. 몸에 종기가 나지 않는다며 설에 별도로 남겨둔 강밥을 깨물어 먹었다. 오후 나절에는 어른들과 뒷산에 올라 달 불을 놓고 보름달 달맞이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그러한 풍속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듯하여 못내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오늘은 입춘이 지나고 열흘이 되는 날이고 오는 주말이면 우수가 다가온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는 기분인데 한낮의 햇살이 따사로운 기운이 감돈다. 귀촌이랍시고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고향에 숨어있는 문화재를 찾아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오늘은 고향 후배를 앞세워 남천서원을 찾아보았다. 필자의 고향인 용성(龍城)은 경산의 동극인 구룡산(九龍山)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과 주산인 용산(龍山)은 언제 바라보아도 넉넉하고 듬직하다. 남천서원은 경북 경산시 용성면 덕천1길 35(덕천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조용하고 편안한 길지에 취죽당(翠竹堂) 김응명(金應鳴, 1593년-1647년) 선생의 유업을 기리며 배향하고 있다. 서원(書院)은 성리학의 대가를 제향하는 동시에 교육 기능을 담당한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이 사립초등학교라면 서원은 사립중학교이며 향교는 공립고등학교, 성균관은 국립대학교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천서원은 1696년(숙종 22)에 지금의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인 자인현 남팔리 삼성산 아래에서 자인현 복현(慈仁縣 復縣)과 성리학을 강론하여 향내(鄕內) 인재 육성에 공헌하신 취죽당(翠竹堂)의 업적을 후세에 기리고자 자인 유생(儒生) 수백 명의 발의로 1699년(숙종 25)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에 준공하였다. 취죽당 서거 54년 후의 일이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전국 서원철폐령에 의거 서원이 훼철되었다. 서원철폐령이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1868년, 1871년 두 차례에 걸쳐 내린 명령으로 대원군은 “서원을 철폐하고 위패를 묻으라”고 지시하였으며, 이에 남산면 하대리 남천서원 뒷산 9부 능선에 위패를 묻었는데 그 봉분이 지금도 남아있다. 1922년 자인향교 유생들의 뜻을 모아 1927년 3월 남천서원을 덕천리의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으며, 2008년 3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증·개축(增·改築)하였다. 아마도 이곳 덕천으로 옮긴 것은 이곳이 경주김씨의 집성촌이기 때문인듯하다. 남천서원은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진입공간인 망덕문(望德門)과 강학공간인 강당이 세워져 있으며, 제향공간에는 상덕사(尙德祠)가 세워져 있다. 망덕문은 솟을삼문으로 세워져 있고 출입문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각각 방으로 꾸며져 있다. 강당은 팔작지붕에 4칸으로 중앙의 두 칸은 마루이며 양옆에는 방으로 꾸며 놓았고 앞면에 퇴칸을 두었다. 상덕사 강당 뒤편에 상덕사가 세워져 있는데 전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단출한 사당이다. 당초에는 취죽당 김응명, 매헌(梅軒) 이광후(李光後), 죽헌(竹軒) 이창후(李昌後) 선생 등 3위의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춘추에 봉헌(奉獻)하였으나 현재는 취죽당 단위 위패만 모시고 음력 2월 26일 봉향(奉享)해 오다가 2015년부터 양력 3월, 3째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망덕문(望德門) 현판은 취죽당 11세손 서예 작가 김영문(金永文)이 헌액(獻額)하였으며 남천서원(南川書院) 현판은 취죽당 11세손 서예 작가 김우영(金佑永)이 헌액(獻額)하였다. 남천서원은 2008년 3월 12대손 김상정(金相政) 선생이 주관하여 대천, 박자, 용암의 청도문중, 상대문중, 송백문중, 도산문중, 부일문중의 후원으로 증·개축하였다. 남천서원의 보존을 위해 경주김씨 문중에서는 종회를 결성하여 종친들의 단합과 전통 유교문화를 계승, 보존함에 힘쓰고 있으며 숭조창손(崇祖蒼孫)의 덕목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12대손 김상도 선생이 대구에서 귀촌하여 서원 옆에 거주하면서 서원을 관리하며 선현의 얼을 이어가고 있다. 김응명(金應鳴) 선생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1593년(선조 26) 경주부 서(西) 자인현(慈仁縣) 울곡리(蔚谷里)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취죽당(翠竹堂), 자는 이원(而遠), 본관은 경주이다.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명종(鳴鐘)의 25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재공(松齋公) 김우련(金愚鍊)이다. 송재공은 임진왜란 당시 자인의 최문병 의병장과 함께 창의하여 청도전투, 경주회맹, 팔공산회맹에 참여하였으며 화왕산 전투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장군과 함께 혁혁한 공적을 세웠는데 그 참전기록이 용사록(龍蛇錄)에 의해 전해 내려온다. 용사록은 임진왜란 전투에 참전하였던 의병들의 명단이다.취죽당 일고 취죽당 김응명 선생은 1607년(선조 40) 15세의 어린 나이에 ‘등태산(登泰山) 소천하(小天下)’라는 시제(試題)로 밀양 영남루에서 치른 향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과 1617년(광해군 9)에 향시, 생원시, 초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1617년에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하고 이어 1618년(광해군 10)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출사를 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선생에게 사사(師事)하였다. 그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또한 박식하였으며, 벼슬에 뜻이 없어 향리에서 연하천석(烟霞泉石) 사이를 소요하면서 독서에 힘썼다. 자인은 원래 현(縣)이었는데 경주부에 속현되는 바람에 자인 지역민들은 경주까지 내왕하는 거리가 너무 멀 뿐만 아니라 관리의 수탈이 심하여 고초가 심하였다. 1633년(인조 11)에 자인 복현(復縣)을 위하여, 방희국(方熙國)을 선두로 하여 최두립(崔㞳立), 이시혐(李時馦), 이창후(李昌厚) 등 300여 명과 함께 자인이 경주부에 속하여 현민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소를 올렸으나 실패하였다. 1637년에 다시 자인현 복현(慈仁縣 復縣)을 상소(上疏)하여 윤허(允許)를 받아 자인현으로 복현(復縣)되어 임선백 현감이 처음으로 부임하였다. 자인 지방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취죽당 선생의 4년간 투쟁해온 결과이다. 그 후 임선백 현감이 퇴락한 자인 향교를 다시 복원하기를 권유하므로 이에 사비(私費)를 투입하여 향교를 복원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자인향교에서 매월 초하룻날에 수많은 생도를 향교에 모아서 소학(小學),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주자서(朱子書)와 예기(禮記) 등을 가르치며 유생양성(儒生養成)에 일생을 헌신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남한산성이 포위되어 인조 임금의 몽진(蒙塵)을 통념하여 향병(鄕兵)을 모집하여 참전하였으나 중로에서 화해함을 듣고 통곡하여 돌아와서 삼락봉(三樂峯) 아래 집을 짓고 대나무 일천 그루를 심어 당호를 취죽당이라 하였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 공부를 하고 심경(心經)과 사자서(四子書)와 백가제서(百家諸書)를 주위에 두고 공부하니 소문을 듣고 원근에서 찾아오는 이가 끊어지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나라에 충성하는 충신은 부모에 효도하기 마련이다. 김응명 선생은 부친이 병환에 있을 때 부친의 매일 대변을 맛보고 병세를 가늠하여 치료할 약재를 구하여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소 아래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그 후 모친이 또 별세하여 다시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경산의 이름난 효자로 꼽히고 있다. 경산지역의 112명 효자 명부 중에 상위에 기록된 인물이다. 취죽당 선생은 1647년(인조 25)에 55세의 일기로 별세하여 자인면 신관리 뒷산에 그의 부친 김우련 선생 묘소 아래에 잠들어있다. 취죽당 선생의 사후 275년 후인 1922년 취죽당 일고(翠竹堂 逸稿)가 상재(上宰)되었다. 취죽당 일고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경산박물관, 영남대학교 박물관,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각각 보관되어 있으며 목판본은 취죽당 후손이 보관하고 있다. 취죽당 선생의 아들 운계공(雲溪公) 김주(金柱) 선생은 운문사 입구의 원모재(遠慕齋)에서 배향되었으며, 원모재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봄이 가까워진 듯 포근한 낮에 남천서원에서 선현 한 분을 만나고 돌아서는 마음은 가볍고 행복감에 젖어 든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였으며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전장(戰場)에 나아갔으며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출사하지 아니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유학자를 우러러본 시간이었다. 특히 취죽당 김응명 선생은 필자의 12대 조부이신 죽계공(竹溪公)과 친분을 나누며 교유한 분이라 더욱 마음이 끌리는 선현이시다. 서원 내외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마침 관리하시는 김상도 선생이 출타 중이라 상덕사에 들어가 배례를 드리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자주 지나는 곳이라 다음 기회에 예를 드리고자 한다. (2022. 2. 14.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