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 배 혜 주
靑山 배 혜 주

<경력>
- 안동 출생
- 경북대학교 졸업
- 대구문인협회 회원
-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 영남예술인협회 이사
- 천마문학회 회원
- 수필미학문학회 회원
- (주)영신에프엔에스 이사
  (경산 남천면소재)
<수상>
- 영남문학 문학상 등 8회
<저서>
- 머물렀던 순간들
- 눈길 머문 곳
- 두 번째 피는 꽃
 

 

 

  자연에는 보이지 않는 섭리가 존재한다. 
  예쁜 꽃은 빨리 지고 수수한 꽃은 오래 간다. 그리고 향기가 있는 꽃은 쉬이 지고 향기가 없는 꽃은 더디 진다. 또한 조급히 핀 꽃은 빨리 지고 천천히 핀 꽃은 오래 간다. 세상의 섭리가 이럴진대 이 섭리를 일탈한 꽃이 있다. 바로 송엽국이다.

  쌀쌀한 봄기운이 서성이던 3월 말 사무실 앞 화단에 시선이 머물렀다. 도톰한 잎에 물이 오른 것이 순박한 시골 아낙의 입술 같다. 몇 개의 줄기를 꺾어 고향 집에 심기로 했다. 시골집을 수리하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여 무슨 꽃을 심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위채가 있던 곳을 허물어 빈터와 아래채 사이에 낮은 언덕이 있는 곳이다. 잘 자라 주기를 기도하며 여러 개 줄기를 나누어 열 군데쯤 심었다. 낯선 곳이라 잘 적응하라고 정성의 물을 듬뿍 주었다. 그렇게 나의 시골집에 안착한 송엽국이 세상의 진리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예쁘면서도 오래 피어 있기 때문이다. 자주색과 분홍색이 섞인 발그레한 볼이 볼수록 아름다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고요히 두 눈을 감게 하기도 한다. 그의 눈짓과 향기에는 벌이 떠나줄 모른다.

  송엽국(松葉菊)은 ‘소나무 잎이 달린 국화’라는 뜻이다. 솔잎과 닮은 잎, 국화와 닮은 꽃이 핀다는 의미가 있다. 소나무와 같은 상록 식물이기도 하다. 잎 모양과 무리지어 피는 모습이 채송화와 비슷해 ‘사철채송화’라고도 한다. 높이 15~20cm 정도로 자라고 이른 봄부터 늦여름까지 자주색, 분홍색, 흰색 꽃이 무리 지어 핀다. 꽃은 줄기 끝에 피며 크기는 지름이 5cm 정도로 작다. 얇고 긴 꽃잎은 매끄럽고 윤기가 나며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속명인 람프란서스(Lampranthus, 송엽국속)는 라틴어로 ‘빛나는 꽃’이란 의미다. 잎은 육질이 두꺼운 원통 모양으로 마주난다. 송엽국과 식물 대부분이 길고 즙이 많은 잎을 가지고 있다. 달맞이꽃과는 반대로 해가 뜨면 꽃이 피었다가 해가 지면 꽃이 오므라드는 특징이 있다.

  화려하고 예쁜 장미는 향기가 없다. 그래서 벌도 찾지 않는다. 붉은 정열을 불태우고는 빨리 지고 만다. 반대로 수수한 찔레꽃은 고혹의 향기를 간직한 채 오랫동안 벌을 불러 꽃 잔치를 이어간다. 벚꽃과 개나리는 화려하게 예쁘게 빨리 피고는 쫓기듯이 사라진다. 때를 놓치면 꽃구경을 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이내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송엽국에는 화무십일홍도 부질없는 단어에 불과할 뿐이다.

  매주 공휴일에는 어김없이 시골집으로 간다. 거기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어 두었고 하루씩 묵으면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추석 연휴를 맞아 일찍 시골집을 찾았다. 파란 담장 안 언덕에 자리 잡은 분홍색 송엽국이 방실거리면 나를 맞아준다. 아무도 찾지 않은 조용한 시골집을 혼자서 지키며 주인 오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과 모습이 고맙고 서럽도록 반갑다. 가만히 눈길을 맞춰보면 봄부터 에너지를 태웠으니 꽃과 줄기에 핏기가 시들어 간다.하지만 보름은 거뜬히 견디어 줄 것 같은 확신이 생긴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가 너를 지켜보았기에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예쁘면서도 무던하고 향기가 있으면서 오래 피어있는 너에게 어찌 반하지 않으랴. 달빛이 감나무 아래로 내려앉고 가로등 불빛이 졸음을 쫓느라 깜빡인다. 그 아래서 수줍은 듯 다소곳한 너를 오늘 밤엔 맘껏 품어야겠다. 그리고 예쁜 너의 입술을 안주 삼아 한 잔 술에 취하련다.

기자명 靑山 배 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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