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경
김 미 경

  황금돼지꿈 꾸세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 꼬리는 하늘을 향해 살며시 치켜 올라갔다. 그 앞에는 팥시루떡, 명주실타래를 둘러맨 북어, 과일 등 정성이 가득 차려졌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웃는 입에다 지폐 한 장씩을 끼워 넣는다. 귓구멍에까지 돌돌 말은 돈을 꾹꾹 찔러준다. 돈을 찔러주는 마음 뒤에는 자신의 지갑으로 배(倍)가 되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줄을 이어 절을 한다. 절을 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빌어댄다. 조상의 음덕까지도 들먹거린다. 만사형통을 빌고 대박을 빌고, 가족의 평안을 빈다. 그 모든 소원들을 가만히 귀 세워 듣고 있다. 고사상에 차려진 인물 좋은 돼지 머리다.

  고사지내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고사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돼지머리다. 무언가가 무탈하게 잘되어지길 빌 때 고사를 지내고, 그 상머리에는 어김없이 돼지머리를 모셔두었다. 돼지는 지신(地神)을 상징하기도 한다. 돼지머리가 주변의 사나운 액(厄)을 누른다고 믿으며, 더불어 복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오기를 빌었던 것이다.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기해년 황금돼지띠 해다. 기(己)는 오행색(五行色)중 황색을 의미하고, 해(亥)는 돼지를 나타내므로, 기해(己亥)년은 황색돼지 즉 황금돼지의 해다. 젊은 신혼부부들은 황금 복덩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 지난해부터 가족계획을 세워두었을 지도 모르겠다. 예부터 돼지는 복과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하물며 황금돼지는 더 말하여 뭣할까. 올해는 아마도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꽃’이 만발할 것으로 살짝 점쳐본다. 굳이 가족계획 등으로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돼지가 다산을 상징하는 만큼, 아기 울음소리에 묻은 보송보송한 향이 온 나라에 넘실댈지도 모르겠다.

  돼지에 관련된 속신(俗信)들도 많다. 산모가 돼지발을 삶아먹으면 젖이 옹달샘처럼 솟아난다고 한다. 나 역시 노산에다 젖이 나오지 않자, 친정엄마가 돼지발 삶은 물을 옹달샘에 빌듯 지극정성으로 날라다주신 기억이 난다. 이는 체험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된 속신이다. 돼지 꼬리를 먹으면 글씨를 잘 써서 명필이 된다는 말도 있다. 옛날에는 양반가 자식들을 위해 가장 하대 (下待)받아 마땅한 꼬리가 가장 귀한 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돼지의 두뇌는 인간, 원숭이, 돌고래 다음이라 한다. 개 평균 IQ는 80이고 돼지는 평균 IQ가 85로 개보다 똑똑하다. 돼지를 지저분한 동물로 오해하지만, 의외로 깨끗함을 좋아하므로 애완용 돼지의 경우는 배변도 가릴 줄 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먹여주고 키워준 주인의 곁을 떠날 때는 아낌없이 꽉 찬 속까지 다 털어주고 간다.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학창 시절 시험 전날에는 돼지꿈 꾸기를 빈 기억이 난다. 특히 시험 준비가 미흡했을 때에는 요행이라도 붙들고 싶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꿈에 돼지 그림자라도 어른거리는 날에는 복권을 사러 뛰어갔다. 지금까지 몇 천 원짜리 이상 당첨된 적은 사실은 없지만. 돼지꿈을 꾸기를 바라고, 또 그 꿈이 행운과 재수를 가져다주리라 믿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희망으로 차오른다.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지 않았을까. 좋은 예감은 더불어 좋은 일들을 구름처럼 몰고 오는 법이니까.

  우리 집에도 돼지를 키운다. 요즘은 좀 컸다고 말도 안 듣는다. 먹는 것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게 돼지가 따로 없다. 막둥이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던가. 막내는 막내라서 또 예쁘다. 늦게 낳은 자식이어서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돼지라 불렀다. 이젠 다 커서 성인이지만 돼지란 애칭이 더 살갑다. 막내를 부를 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돼지란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 애칭 덕분일까, 가족들에게서도 사랑을 독차지한다. 돼지띠의 사람들은 낙천적이며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돼지띠라고 하면 날 세운 경계를 허물고, 스스럼없이 다가가지는 것은 또 아닐까. 아들이 그런 성격까지도 닮아 가면 좋겠다.

  황금 돼지띠 해를 맞이하여 온 국민에게 좋은 일만 그득하길 바래본다. 경제도 돈(豚)처럼 돈(金)이 넘쳐흘러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한만큼의 값진 결실이 은행(銀行)이란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길 바란다. 황금돼지저금통이 전국에서 날개가 돋친 듯 동이 나도 좋겠다. 고사상에 차려둔 돼지머리를 보면서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길 기원하듯, 나라 안팎이 돼지의 기운으로 복과 행운이 충만하길 빌어본다. 기해년 정초, 돼지얼굴처럼 둥실 떠오른 해가 유난히 금빛이다.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영남문학 시등단
  한국수필 등단
  '제8회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수필공모전' 장려상 수상
  '제17회 국제지구사랑 작품공모전' 시 부문 수상
  '자원 및 환경에너지 수필공모전' 수상
  '제5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시 부문 가작 수상
  '제1회 전국 진도사랑 시공모전' 수상

기자명 김 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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