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  천  익

  행복의 크기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려고 애를 썼던 18세기 사상계의 뉴턴, 철학자 벤담(Jeremy Bantham 1748~1832)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쾌락에 있다고 보고 행복과 쾌락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즉 그에게서 고통은 불행이고 쾌락은 행복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마땅히 순행복의 크기를 최대화할 수 있는 쾌락의 길을 가야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순행복(net happiness)의 개념은 쾌락에서 고통을 뺀 값이다. 인간의 삶에는 고통과 쾌락이 함께 존재하는데 고통을 행복의 마이너스 값으로 쾌락을 플러스 값으로 계산한다면, 순행복은 곧 순수한 행복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즉‘최대다수를 위한 최대행복(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행복의 크기를 최대화 하는 사회일수록 이상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행복의 크기를 계산하는 데는 평등한 인간사회의, 유사한 행복관을 가진 사람을 가정한 것이다.

  그는 행복계산법이라는 자기만의 방법을 고안하여 쾌락과 고통의 양을 수치화 하려고 했다. 모든 쾌락이나 고통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고 1)강도(intensity), 2)지속성(duration), 3)확실성(certainty), 4)근접성(propinquity) 5)다산성(fecundity), 6)불순도(impurity), 7)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도(effect on others)로 나누어 쾌락의 강도를 측정하고자 했다. 그는 고통에 대해서도 강도, 기간, 확실성, 근접성 등으로 나누어 계산하고 각각 측정된 쾌락과 고통의 크기를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순행복을 측정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정말 현대경제학자들이 꿈도 꾸지 못할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과제를 감히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다.

  주관적인 개념이 내포된 행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경제학자들은 다시 행복을 序數的(순서로 표현하는 방법)인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첫 번째로 좋아하는 것,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 등으로 표현하여, 선호의 순서로 복지의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순서적 표현이 과연 얼마만큼 행복의 크기를 현실적인 개념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결코 서수적 표현으로는 온전하게 나타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이  비록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그 크기의 일정한 값을 갖고 있음은 사실이다. 작은 행복과 큰 행복, 작은 불행과 큰 불행은 각각 특정의 느낌의 크기를 갖고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크기의 정도를 우리가 정확하게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삶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뭐든 수치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경제학자들은 결국 복지나 효용이란 말로 행복을 대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복지니 효용이니 하는 말 역시 단순한 화폐적 크기로 객관화하기에는 역시 불완전한 표현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은 모두가 단순한 화폐적 개념만으로 통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족의 실체인 돈의 크기가 100원이라고 해서 효용과 행복의 크기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돈 100원의 크기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복지와 효용에도 역시 잠재적으로 주관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정치학이나 윤리학의 영역에서 과학으로 발전시킨 근·현대경제학자들은 서수적 표현으로 복지 또는 효용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과연 그것이 현실적인 행복의 크기를 얼마만큼 반영해 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제일 큰 복지나 효용이 현실적으로 얼마만큼의 만족이나 행복을 주는 것인지는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100의 복지수준 또는 효용 수준이 현실적으로 얼마의 행복 수준을 나타낼지 가늠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복지나 효용이론이 현실의 복지수준 및 행복 수준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이다지도 무력할 바엔, 아예 복지를 행복의 개념으로 대체하여 현실적인 행복을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종합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증주의의 틀에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논리적 기교로 무장한 현대의 복지이론은 수량적인 크기를 제외하면 현실적인 복지와 행복의 문제를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껍데기 이론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행복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행복학자들은 아예 행복의 주관적인 측면은 인문학이나 도의학에 맡긴 채, 행복지수라는 지표를 사용하여 행복의 객관적인 측정을 시도하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측정하는 지수로서 일찍이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상담사 코언(Cohen)이 만들어 2002년에 발표한 행복공식이 대표한다. 그들은 18년동안 1,0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80가지 상황속에서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5가지 상황을 선택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행복은 1)인생관, 적응력, 유연성 등 개인적 특성을 나타내는 P(Personal), 2)건강, 돈, 인간관계 등 생존조건을 표현하는 E(Existence), 3)야망, 자존심, 기대, 유머 등 고차원의 상태를 의미하는 H(Higher order)등 세 가지 요소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들 조건 중에서도 생존조건인 E가 개인적인 특성 P보다 5배 중요하고, 고차원상태인 H는 P보다 3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들은 행복지수를 산출하기 위하여 다음 네 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0점에서 10점까지 부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①나는 유연하고 변화에 잘 대처하는 편이다. ②나는 긍정적이고,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나며, 스스로 잘 통제하는편이다(P지수). ③나는 건강, 돈, 안전, 자유 등 나의 조건에 만족한다(E지수). ④나는 가가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내일에 몰두하는 편이며, 자신이 세운 기대치를 달성하고 있다(H지수).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1)가족과 친구, 자신에게 시간을 쏟을 것, 2)흥미와 취미를 추구할 것, 3)밀접한 대인관계를 맺을 것, 4)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5)기존의 틀을 벗어날 것, 6)현재에 몰두하거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 것. 7)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것, 8)항상 최선을 다하되 가능한 목표를 가질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유엔이 2016년 6월23일 발표한‘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58개국 가운데 한국은 10점 만점에 5.984 점으로 세계 47위이다. 2017년 세계행복지수 랭킹은 노르웨이가 1위, 2위 덴마크, 3위 아이슬란드, 한국은 56위이며 5.838점으로 나타났다(네이처 지식백과).

  그러나 사실상 행복지수를 측정하는 방법은 너무도 다양하며, 기준에 따라 국가별 행복 순위는 너무도 다르고 획일성 또한 없음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대표적 행복국가 부탄의 국왕이 만든 행복지수에 의하면, 부탄, 오만, 인도 등이 상위를 차지하다가 또 다른 지표에 의하면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상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흔히 지구상에서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북구의 행복관을 유추해보면 생활 속에 마음의 여유, 자유 등 심리적인 요소와 맑은 햇빛, 깨끗한 공기, 쾌적한 삶의 환경을 포함해서 질 높은 삶의 수준을 고려한 경제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지수 역시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다양한 행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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