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자
안숙자

  지금부터 15년 전 화장품 대리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키가 크고 생활력이 강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판매사원으로 들어왔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인지 그녀의판매 실적은 늘 저조하였으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였다. 그런 부지런함이 가상하여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주면서 그녀의 사기를 북돋워주었더니 나를 무척 따랐고 어느덧 우린 친한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녀 가족으로는 세 살 연하인 남편과 초등 5학년인 아들과 3학년인 딸이 있었다.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며 마약 중독자라고 했다. 때문에 그녀가 가족을 부양해야할 처지였다. 그녀의 집 형편은 세간이라고는 겨우 밥 끓이는 취사도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단칸 월세에 살고 있었다. 생활이 그녀를 억척으로 만들었을까? 그녀는 지독하다고 할 만큼 성격이 단호했고 자기 방어심이 철저했으며 아이들에게도 대단히 엄격하여 기가 죽은 듯이 엄마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아이들 모습은 가엾게 보일만큼 그늘져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새벽으로 신문 배달을 하라고 했다.‘저 어린 것이 어떻게 새벽마다 신문 배달을?’하는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서 "아직은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하고 말해보았지만 화를 버럭 내면서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남편에게도 잔인하게 보일만큼 비정하게 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하소연을 했다.

  자기가 집에 있을 때는 일부러 궁색하게 보이려고 쌀을 한 되씩만 사고, 연탄도 한 장씩 사서 쓴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끼니때면 남편 몫은 남겨 놓지 않고 다 먹어버리고 연탄불에 데워 놓은 세숫물조차도 남편이 쓸 물을 남겨 두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은 남편 몰래 이사를가버려서 집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겨우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남편에게 소금을 뿌리며 쫓아내더라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지 그녀는 친구도 없는 것 같았으며 내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고 이웃이었다. 내가 화장품 대리점을 정리하고 광고기획사를 할 때였다. 거래처가 어느 정도 확보 되어 있을 때였으므로 그 친구를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소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꽃집을 해보라고 권했다. 내 사무실 근처에 가게를 얻어 꽃집을 하게 되면서 거래처를 소개시켜주고 내 차로 배달도 도와주며 적극 협조해주었다. 아무 상식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열심히 하였고 겨우 생계를 꾸릴 정도가 되는 듯하여 다행스럽게 생각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내가 아는 거래처 사람과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무렵부터 그녀에게는 너무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표독하고 고집스럽기 짝이 없던 그녀가 갑자기 말투나 겉모습이 우아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장하는 것부터 달라지더니 표정이며 헤어스타일 또한 우아하게 바뀌면서 말하는 억양도 나긋나긋하게 품위가 철철 넘치고 있었으니 갑작스런 변화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사랑을하면 예뻐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말소리조차 바뀌는 그녀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무엇이 사람을 그토록 변화시킬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는데 뒤늦게야 그녀를 그토록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친구가 사귄다는 그 남자는 가족이라고는 노모 한 분과 아들 하나 뿐인 독신이었으며 어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그녀에게 쏟는 정성이 지극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꽃집을 하는 그녀의 문 앞에 곱게 포장한 장미 한 송이를 놓고 갔으며 가게에서 심심할 때 들으라고 오디오를 사주고 온갖 시디를 사다 나르는가 하면 읽히고 싶은 책을쉴 사이 없이 사주고 시원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사들이고 우유며 빵이며 과일을떨어지지 않게 했다. 장거리 출장을 가면 휴게소에서 별별 군것질을 잊지 않고 사왔으며, 손님과 식사를 할 때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사들고 와 그녀가 먹는 것을 즐겁게 바라본다. 옷이며 머플러 구두 등을 사주며 그녀를 가꾸는 것에도 온갖 정성을 쏟았다. 휴일이면어김없이 그녀를 데리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갔으며 출퇴근 때면 늘 그녀 집 앞에 또는 가게 앞에 먼저 와서 기다렸다가 태워다 주었다. 아마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그토록 지극한 사랑을 처음 받아보았을 것이며 처음 누려보는 호강이며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 나이가 많은 남편 후처로 들어와서 놀고 있는 남편 대신젊을 때부터 시장에서 야채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늘 시장에서 장사하는 엄마 대신딸로는 맏이인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고 시장에 내다 팔 나물을다듬고 삶는 일까지 해야 했다. 성질 사나운 그녀의 할머니는 일을 잘 못한다고 어린 그녀를 늘혹독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녀는 살림 사는 것이 너무도 지긋지긋하여 앞채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아들이었던 지금의 남편이 그녀를 좋아하자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집을 도망쳐 나오듯이 얼른 결혼해버렸다고 한다. 남편이 직장도 없이 놀고 있었으므로 결혼 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며 수차례이사를 다니면서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려왔지만 결국 마약중독자인 남편과는 마음마저 단절 된 채로 고달픈 역경의 나날이었던 그녀의 결혼생활은 마치 여우 굴을피하니 호랑이 굴이 닥쳐온 격이었다.

  그렇게 암울한 생활로 지쳐있을 때 공주처럼 떠 받들며 사랑해주는 이의 출현은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님의 출현이요 자신은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 아니었겠는가? 그녀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그렇게라도 가여운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음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뭔가 음식을 잘 못 먹은 듯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체한 것 같으니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버티는 그녀를 그 남자가 겨우 설득하여 병원을 찾게 되었고 그녀는 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 때가 15년 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난그 친구를 놀려주려고 전화를 했다.

 “지금 네 가게 건너편 식당이야. 같이 점심 먹으려고 와있으니까 빨리 와서 먹고 가“라고 거짓말을 했다. "알았어요." 라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한참을 지났는데도 속았다고 금방 전화가올 줄 알았는데 전화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깔깔 거리며 투정을 해야 할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심각하게 들렸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가 하는 말은 자기와 내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기는 먹고 살아야 할 처지이므로 만우절 같은걸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난 무안하기도 하고 민망하여 미안하다는 말만 겨우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나 위암이래요.”“엉? 만우절이라고 그런 속 보이는 거짓말을 하냐? 하하 난 안 속지.”“아니 아무려면 내가 목숨을 가지고 거짓말 하겠수? 정말이라니까. 오늘 병원 갔다 왔어요.“야, 솔직하게 말해, 그런 거짓말은 하는 거 아니야.”이렇게 다그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훌쩍 거리며 우는 것이다.그제야 난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멀쩡한 네가 무슨 암이야? 아니야, 오진일 거야 우리 다른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 받아보자. 절대로 아닐 거야.”다리가 후들 거리며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그녀를 데리고 다른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했으나역시 위암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남편은 까마득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남편에게는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영남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녀 연인의 간병은 극진하다 못해 처절했다. 병원비는 물론이며 잠시라도 병마를 잊게 해보려고 코믹한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사오기도 했으며 서울로 가서 저명한 암 전문의를 만나 상담하는가 하면 암에 좋다는 약은 무엇이든다 구해오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수십 년 같이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는 못할것 같았다. 어느 날은 어딘가 같이 가 달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철학관에 가서 그녀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는가를 묻는 그를 보면서 '얼마나 간절하면 저럴까? 저런 남정네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술을 했는데 이미 암 3기였다. 수술을 받고 1개월 만에 퇴원하는 날 그 남자는 그녀에게 화사한 드레스를 선물했으며 장미 백 송이를 안겨주었다. 그 순간 죽음을 앞두고 있는그녀의 마음은 안타까움도 컸겠지만 행복도 느꼈으리라.

  그녀는 평소에 근검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25평 아파트를 사서 세를 주었는데 아들에게 남겨줄 것이라고는 그 것밖에 없는데 그 마저 남편에게 뺏기게 될까봐 그 남자 앞으로 설정해줄것을 부탁했다. 그의 연인은 쾌히 승낙하고 자기 앞으로 설정을 해두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그녀는 고단한 병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생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그 남자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너무 보고 싶다고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한사코 만나주지 않았다. 마지막엔 그녀 자신도 살아날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 듯 그 남자와내가 얼마간의 돈을 모아 약값으로 쓰라고 주었으나 이제는 필요 없으니 자기가 죽고 난 뒤에부조나 하라고 했다. 내가 만들어간 음식도 가지고 온 정성을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한 숟갈만먹겠다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전등불을 끈 채 겨우 한 숟갈을 떠서 먹던 눈물겨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기어이 가버리고 말았다.

  상여 차를 타고 화장터로 가는 도중 훌쩍 거리며 우는 내 울음소리 외에는 어느 누구도 곡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더니 갑자기 그녀의 시누이들과 시댁 친척들이 큰 소리로 통곡을 했다.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이 마약 복용으로 수감되어 있는 곳이 지금 막 지나고 있는 바로 곁에있는 구치소라는 것이다. 살아생전 남편 구실 한번 제대로 못하더니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이 미우면서도 한편 가엾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연인은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내 남편인 것처럼 가장하고 화장터까지 따라 갔다.살아 있는 자들의 오열이 뒤엉킨 망자를 보내는 이별 역은 갖가지 죽음으로 복잡했다. 드디어그녀의 앙상한 뼈가 나오는 찰나였다.

  아! 애써 먹고 가꾸었던 뜨거운 피, 아름다운 살, 아무 것도 흔적 없는........... 웃음도 슬픔도 행복도 추억도 과거도 미래도 한 점 묻어 있지 않은........다만 스스로의 파란으로 삭아버린 듯한 저 저 하얀 뼈!............

  도저히 볼 수 없었는지 그는 획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의 슬픔과 애틋한 마음의 깊이는어떤 것이었을까? 나 역시 난생 처음 보는, 더욱이 친한 친구가 뼈가 되어 나오는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넘을 수 없는 유한의 경계에서 쫓겨나듯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조차 모르게밖으로 나왔다.

  장사를 치룬 사흘 뒤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있는 납골당을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제사를 올릴 음식 일체와 빨간 샤쓰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 한장을 가지고 왔다. 그는 사진을 세워놓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채운 다음 내게 종이 한 장을내밀었다. 그녀에게 바치는 헌시였다. 대신 낭송해달라고 한다.

  슬퍼하지 말고 아름다운 곳에 미리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으면 꼭 찾아 가겠노라는 애절한사랑의 헌시였다. 내가 울먹이는 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동안 그 남자는 시종일관 엎드려 소리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 후 그 남자는 비오는 날이면 꼭 그녀를 찾아 갔고 그녀의 아들과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돌봐주었으며 졸업 후 두 아이의 직장까지 알선해 주었다. 그리고 아들이 결혼할 무렵 그녀의 집을 그녀의 아들 명의로 넘겨주었다고 한다.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떤 것을 가리켜 지고지순한 사랑이라일컫는지 몰라도 나는 이들의 사랑이 그야말로 지고지순하게 느껴졌으며 감히 순애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누가 이들의 사랑에 불륜이라고 침을 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참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언젠가 그 남자가 내게 들려 준 말이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받고 싶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애욕이다”정말 그 남자는 주는 것만으로도 진정 행복했나 보다. 나는 해마다 목련꽃 피는 사월이면 잊을 수 없는 만우절과 함께 잠깐 화사하게 피었다가 몇 겹 해원의 손짓을 털며 허허로이 떨어져버리는 하얀 목련꽃 같은 이들의 사랑을 떠올린다.

기자명 안숙자
저작권자 © 경산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