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동장직이 가장 보람 있었다는 최병룡 서부2동장


 
  경북 경산시 서부 2동 최병룡(60) 동장, 그는 경산시와 인접한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가 고향이다.

  그는 1979년 6월 1일, 24살의 나이로 지방9급 공채시험에 합격, 초임 발령을 경상남도 의창군 천가면사무소 근무를 시작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경상북도 경주시 덕황, 황남동사무소를 거쳐 경산군이 시군으로 분리될 때, 1989년 1월 29일 경산시에 전입, 남부동, 민방위과, 건설과 등을 거친 후 시군 통합 이후 청소과 새마을과, 총무과, 진량읍, 중앙동, 보건소, 행정지원과 등을 두루 거친 후 2011년 1월 4일자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 경산시환경시설사업소장, 중방동장을 거처 지난 2015년 1월 1일자 서부2동장에 보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소 그는 온화한 성품에 매사에 적극적이며, 특히 동료간 우의가 돈독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리더십이 남다른 인품이란 정평이 나있다.

  최동장은 지난 36년간의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근무처를 중방동과 현 서부2동으로 손꼽으며, 동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 만하다고 했다.

  연말에 이임과 공로연수를 앞둔 최동장은 하루에도 수십에 달하는 주민들의 생활 현장과 소외계층을 방문하며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그는 어렵사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중방동과 서부2동을 자랑하면서 먼저 중방동장으로 재임하였을 당시를 회고하였다.

 “중방동은 정말 훈훈하고 넉넉한 고장입니다. 저는 거기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결속하고 화합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고 배웠습니다. 물론 재임 2년 동안 주민생활 현장을 뛰어다니며, 어려운 이웃과 소외 계층을 바라보면서 가슴 조였던 일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는 모두에 자신이 재임하였던 중방동을 자랑하면서 먼저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주민들이 결속하고 화합할 수 있는 중방동의 당산제를 복원하게 되면서 중방동민들의 뭉쳐진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했다.

  특히 당산제 복원을 계기로 중방동두레농악의 복원과 계승을 위하여 동주민센터 지하에 전수시설을 확충하여 최근 들어 중방동농악을 경상북도무형문화재로 신청하게 된 동기 등은 정말 잊지 못할 일이라 하였다.

 “중방동농악이 그렇게 훌륭한 민속놀인지는 몰랐어요.”하면서도 자신이 그 놀이 속에 당산제 헌관으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여하여 은상을 받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회고하였다.

  그는 또한 중방동장 재임 시 동민화합을 위하여, 동민체육대회, 노인잔치 등을 열어 동민들과 화합을 다졌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기관단체와 1대1 돕기 운동을 전개, 생필품, 가전제품 등을 지원하게 하였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지역 아동센터에 뜻있는 독지가 다수와 결연을 주선하여 시설을 보수하고 참고서와 식료품 등을 지원함으로 따뜻한 온정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마음을 길렀다는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라 했다.

  또한 지난 1월 1일자 서부2동장으로 부임하면서 1단체 1봉사활동 발대식을 계기로, 서부동 각 단체가 솔선하여 동정에 참여하는 기풍을 진작시켰고, 이로서 주민의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서부1동 사랑운동으로 발돋움하였다.

 “도심 속에 소외계층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그는 아파트 숲속에 가려진 독거세대와 소외계층세대를 지적하면서 외형으로 보아 전혀 이해하지 못할 힘든 삶을 살아가는 계층이 정말 많다고 토로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재임 중 이들 세대를 수시 방문, 도배, 청소, 생필품지원, 말벗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틈나는 대로 지역 봉사단체들과 함께 사랑 나누기 운동에 솔선참여 함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공직자상을 엿보게 하고 있다.

 “퇴임 후에도 동민들이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지 함께할 각오입니다.”
  그의 이 같은 소박한 결심 속에는 지난 36년간의 공직생활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 하였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아쉬움만 남습니다.”
  막상 이임날짜가 다가오니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지 가슴만 답답하다는 그는 취재 당시도 노인회, 소외계층, 독거노인 방문 등 한시도 쉴 틈이 없다는데서 마지막 봉사에 행복함을 느낀다 하였다. 잠시 후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통에 화급히 일어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기자는 그로부터 정년이라기보다 이제 50대 초반의 청년 같은 느낌을 읽었다.

저작권자 © 경산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