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陵酒肆留別
이 백
風吹柳花滿店香 吳姬壓酒喚客嘗
金陵子弟來相送 欲行不行各盡觴
請君試問東流水 別意與之誰短長
금릉주사유별
이 백
풍취유화만점향 오희압주환객상
금릉자제내상송 욕행불행각진상
청군시문동류수 별의여지수단장
금릉의 술집에서 작별인사하며
바람 불어 버들개지 날리니 술집은 향기로 가득하고
오나라 아가씨는 술을 걸러서 손님 불러 맛보게 하네
금릉의 자제들 모두 나와 서로 송별인사 나누니
가려고 하나 가지 못하고 제각각 술잔만 비운다
그대들에게 시험 삼아 물으니 동으로 흐르는 저 강물과
이별의 마음 중 누가 더 길고 짧은가?
유별 : 먼저 길을 떠나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뜻.
금릉 : 지금의 강소성 남경시.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과 신해혁명 또 중국국민당 정부도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으며 일본 군인들에 의해 중국인 30여만 명이 학살된 남경대학살이 있었던 곳이다.
이백은 사방을 부유하다 화산에 오르려고 술에 취한 채 나귀를 타고 화음현의 행정관청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 현령은 이백을 알아보지 못하고 성이 나서 그를 관청의 뜰로 끌고 가서 말에서 내리라고 하며 소리쳤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무례하게 구느냐? 이에 이백은 일찍이 내가 취하여 토하였을 때 임금이 직접 수건으로 닦아주었고 나의 국을 살펴주었으며 양귀비가 벼루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으며 고력사(현종의 총애를 받던 환관)가 가죽신을 벗겨주었다. 천자의 문 앞에서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 화음현 내에서는 나귀도 타지 못하는가? 라고 하였다.
안녹산의 반란으로 현종의 아들인 영왕이 동남절도사가 되었을 때 그의 막료로 들어가 보좌하게 되었으나 영왕이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도모하자 이백은 팽택으로 도망갔다가 영왕이 패한 뒤에 붙잡혀 심양?陽(지금의 강서성 구강시)의 감옥에 구금되었다. 그러자 지난날 죽을죄를 지은 장군 곽자의를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곽자의의 도움으로 사면되었다. 뒤에 이백은 우저기를 건널 때 술에 취한 채 배를 타고 가며 달을 붙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 두보는 그의 시 음중팔선가에서 이백은 한말 술에 시 백편을 짓고 취하면 장안의 저자 변두리 술집에서 잠을 잤으며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일컫기를 신은 술 마시는 신선이다 하였다. 문집 20권이 전하고 있으며 북송시대에 편찬된 이한림집 30권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