凉州詞
             王之渙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

양주사 
             왕지환

황하원상백운간 일편고성만인산
강적하수원양류 춘풍부도옥문관

양주의 노래
황하는 먼 하늘가 흰구름 사이로 흐르고
아주 높은 산 한쪽으로 외따로 성이 있네
오랑캐 피리는 어찌 원망스레 절양류를 부는가?
봄바람은 옥문관을 건너지 못하는데

곽종육 서예가
  절양류: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곡이다.
  옥문관: 서역으로 가는 관문으로 감숙성 돈황에 있다.
  악부樂府: 한나라의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악부라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을 세워 민가를 수집하고 문인들로 하여금 음악을 제작하게 하였다. 뒤에 악부에서 수집되고 만들어진 민가 또는 그것을 모방하여 지은 시를 악부 또는 악부시라고 부르게 되어 악부라는 명칭은 관청의 명칭에서 음악성을 띤 시체의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는 음악과 분리되기 시작해 낭송되거나 읽히는 것은 시라 하고 음악과 배합된 것은 악부라 부르게 되었다
  사詞: 민간 가요로부터 발전한 것으로 당나라 때에 생겨난 시가의 일종이다. 사는 각 구절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장단구라고도 부르며 악부의 전통을 계승하여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일종의 서정시이며 격률시로서 넓은 의미에서 시라 불린다. 또 본래 노래 부르던 근체시가 약간 변화하여 생겨난 것이라는 측면에서 시여라고도 한다.(중국 시가의 이해. 도서출판 한울. 강창구 송행근 장남희 엮음에서 옮김)

  왕지환(688?~742?):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가 계릉季陵이며 계문薊門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의협심이 있어서 그를 따르는 오릉의 소년들과 함께 검술을 익히며 비가를 읊고 짐승을 쫓거나 술로 방종하게 지냈다. 그러다 중도에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학문을 공부하여 십 년만에 그 명성이 날로 떨치게 되었다. 시문을 지은 것이 생기면 번번이 악공이 이를 받아서 성률을 붙일 정도였다. 그의 시는 많지 않으나 등관작루와 양주사는 절창으로 꼽힌다. 등관작루는 중국의 초,중 교과서에 실려있으며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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