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호 완
(대구대 명예교수, 삼성현연구소)

  1. 들머리
  화쟁 하면,《삼국유사》의 원효불기(元曉不羈)에 나오는“以華嚴經一切無?人 一道出生死”를 떠올린다. 이는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야 죽음과 삶의 벽을 넘어선다. 자신의 주장에 집착함으로써 생긴 단절의 벽을 넘어서야 함을 이른다. 다른 주장을 통섭함으로써 소통하여 단절과 계파의식을 벗어나 공동선을 지향할 때 화쟁(和諍) 회통할 수 있다. 단절의 벽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으로 보아 계층과 종파간의 벽을 들 수 있다. 육두품을 포괄하는 골품제에 따른 벽이란 가장 큰 벽이요, 불통의 벽일 수 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 귀족과 민초들의 갈등에서 기인하는 벽일 수 있다. 중의적으로 보자면 화쟁의 화(和)는 화백 회의의 ‘화’를 이름이요, 쟁이란 이해 상충하는 파쟁간의 다툼으로 볼 수도 있다. 삼국통일은 했는데 지역과 유민 간의 소통은 참으로 머나먼 사막의 길이었다. 원효는 사회통합이라는 화쟁 회통이라는 화두로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대승불교를 비탕으로 하는 화두 또한 광의의 화쟁을 염두로 주목했을 것이다.

  원효(617-686)의 유식에서는 화쟁 하면 회통(會通)한다. 화쟁 회통은 불교이론 내부의 모순과 갈등해소를 넘어 정신적인 삼국통일을 이뤄내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일반적으로 화쟁을 화해이론으로 풀이해 왔다. 이르자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백가쟁명(百家爭鳴)에서 ‘쟁명’도 ‘앞 다투어 자기주장을 펼쳤다’는 뜻임을 고려할 수 있다. 화쟁은 화해를 넘어 서로가 소통하여 새로운 사회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공동선을 향한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주목하고자 한다. 원효 생존의 시대 상황으로는 학파나 종파 간의 대립을 단정하기 어렵다. 원광, 자장, 혜량, 의상, 경흥, 태현 등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에 당시 불교는 왕족 중심의 정치 이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화쟁의 화(和)는 화해(和諧), 쟁(諍)은 다툼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언어의 문화 기호론적으로 보면, 화쟁 회통이란 서로 다른 주장을 통섭함으로써 소통할 수 있다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하나의 개념이나 중요한 화두는 비유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화쟁과 관련한 문헌적인 자료를 알아보고 원효와 관련한 설화자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2. 화쟁과 소통의 자료 
  1)《십문화쟁론》: 如理會通 如實和會. 이 글의 서문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하고, ‘나는 적절하지만 남들은 적절하지 않다’고도 하면서 드디어 황하(黃河)와 한수(漢水)를 이루었구나.” 서로가 ‘나만이 옳다’는 자신의 주장에만 집착하고 있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회통과 화회가 같은 맥락이다. 화쟁을 회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 화(和)는 ‘모인다’ 혹은 총화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이 관련이 있다. 화(和)는 화합을 가리킨다. 쟁(諍)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주장, 의견을 함의 한다. 따라서 화쟁 회통은 서로 다른 의견을 통섭하여 회통 곧 소통함을 드러낸다. 원효의《열반종요(涅槃宗要)》에서 화쟁의 쟁(諍)이 8번, 그 가운데 4번은 이쟁(異諍)으로 나온다. 이는 ‘서로 다른 주장argument’의 뜻으로 쓰였음. 和百家之異諍 화는 부분에서 전체로, 사에서 공을 이른다. 여기 화(和)는 서로 통섭하고 모아 소통시킴을 뜻한다.

  2)《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이 책은 “온갖 논의의 조종(祖宗)이요 여러 주장들의 잘잘못을 살펴 정하는 주인”이라고 말한다. 온갖 논의들이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자손과 같다는 뜻이다. 마침내 모든 불교이론들은 서로 피가 통하는 한 핏줄로 풀이한다.

  3)《금강삼매경론》 : 여기서는 쟁이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부처와 심왕보살의 이야기 내용이다. 심왕보살이 말했다. “만약 그것을 취하여 깨달아 얻는다면 이는 쟁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쟁과 논이 없어야 곧 무생행입니다.” 자신의 주장과 대립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단절’이다. 단절이란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으로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불교의 진리론인 연기법(緣起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3. 설화의 소통 미학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라도 이를 알기 쉬운 비유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화두를 전하는 사례들이 왕왕 있어 왔다. 화쟁 회통을 화두로 한 원효의 소통에 대한 사유를 그와 관련한 몇 가지의 설화를 사례로 들어보기로 한다. 말하자면 설화란 같은 내용이라도 문학적으로 즐겁고 재미있게 감성에 호소하는 언어예술이 된다.

  1)무애가(無?歌) 이야기 :《삼국유사》원효불기조에 나오는 무애가 이야기로 원효의 화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고선사서당화상탑비(高仙寺誓幢和尙塔碑)〉에 원효의 저술로《십문화쟁론》과《화엄종요》를 들 수 있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 두 가지 문헌이 원효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화엄경》의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는 무애가를 서라벌에 퍼뜨렸다. 이러한 사실은 원효의 사상이 화엄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 마침내 원효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에는 왕실 불교와 민간의 불교, 수행자의 불교와 비수행자의 불교라는 단절의식과 그 계층의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원효의 무애가에 담긴 속내다. 이처럼 ‘일체무애인’의 무애가 화해보다는 소통에 가깝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2)천주요(天柱謠) 이야기 :《삼국유사》원효불기 조에 나오는 원효와 요석의 만남을 전제로 하는 노래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다. 원효가 ‘誰許沒柯釜我斫支天柱’라는 노래를 부르다 문천교 다리 아래 물에 빠진다. 은유적으로 자루 없는 도끼를 여성의 성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사회통합의 무기로서 화쟁 회통을 제안하는 일일 수도 있다. 마침내 하늘 곧 약화된 왕권을 떠받쳐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3)여시오어(汝屎吾魚) :《삼국유사》이혜동진(二惠同塵)조에 원효와 혜공이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방변을 한 뒤 그 변에서 다시 살아난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가 잡은 고기라고 말씨름 한다. 해서 절 이름을 항사사(恒沙寺)를 오어사(吾魚寺)로 고쳤다.

  4)유심게(唯心偈) 이야기: <송고승전>에 나오는 설화를 춘원의 ‘원효대사’에서 윤색하여 흔히 원효의 해골물 이야기로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여 마음의 문제를 주목한다. 집착을 버리고 인간 본연의 마음(歸一心源)으로 돌아감을 이른다.

  4. 마무리
  서로의 주장을 모아서 소통시킨다(會通)는 전제 위에서 화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화쟁 역시 여러 주장들(諍)을 서로 모은다(和)는 의미가 되고 결국 화쟁과 회통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 서로 다른 기표에 불과하다. 원효의 화쟁과 회통은 다툼과 대립의 화해라는 의미보다는 모아서(會) 서로 통하게 한다(通)는 의미, 즉 소통에 가깝다. 따라서 원효의 화쟁을, 논쟁을 전제로 한 화해이론으로 볼 수도 있으나 소통이론으로 봄도 가능하다. 마침내 화쟁은 그의 불교적 사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회통(會通)이라는 개념과도 연계되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날 때 본래의 심성으로 찾을 수 있다는 부처의 무소유와 평등의 이상이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자유의 존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문화적인 의미로 대립과 갈등을 풀어보자는 큰 틀에서의 주장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주장이라도 함께 미덕을 발견해줌으로써 화쟁의 미학을 꽃피워 나간다면 좋을 것이다. 이 때 즐겁고 유익한 이야기로 풀어서 더러는 짧게, 더러는 길게 상황에 맞는 감성과 공감이 살아 숨 쉬는 화쟁 회통의 길을 터 나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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