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 대구 경북 지회에서 회원들의 연중행사로 일정이 남해 바닷가 유배문학관. 독일마을. 사천항공우주 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다.
  좀 특이한 방문이고 유배문학 대하여는 생소하였으며 건물정면에 황소가 압송마차에 유배자에게 칼을 씌우고 달구지에 싣고 포졸이 창을 들고 지켜보는 밀랍(蜜蠟)이 실감나게 전시되었다
  김만중의 동상과 4인 8개의 표지석과 인공 연못에 하얗고 노오란 수련이 피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 하였다
  남해유배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니 海南仙島点一(해남선도점일) 기념관 안에 편액으로 표구가 걸려 있었다
  해설요원의 안내를 받아 그 내력을 설명 듣게 되었다
  또한 표지석에 남해로 유배 온 선비는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ㅡ1692) 약천 남구만(南九萬 서예가 1629ㅡ1711) 광암 박성원 (朴聖源 1697ㅡ1767) 자암 김구(金絿 1488ㅡ1534) 유배자의 대표이다
  소개 드리고자 하는 분은 사씨남정기를 저술한 서포(西浦)김만중(金萬重)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함께 한국 3대 고전문학가로서 충(忠)효(孝)문(文)의 대표 인물로 손 꼽힌다
  서포 김만중의 자(字)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시호는 문효(文孝)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持平).수찬(修撰)등를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하였다 동부승지로 있다가 서인의 패배로 관직을 삭탈당한 후 예조 참의로 복귀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까지 올랐으나 남해로 유배당하였다 이런 와중에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다가 병으로 죽었고 그는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숙종15년 (1689) 3월7일에 남해로 유배되어 숙종 18년(1692)4월30일에 56세의 일기로 남해 노도에서 생을 다하였다고 전해진다
  서포 김만중은 당쟁 속에서도 송시열등과 같이 선비의 곧은 정신으로 직언하는 충신이었고 지극한 효로서 모친을 봉양하는데 한 치의 소흘함이 없었다
  김만중은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와 같은 국문소설을 창작하여 허균과 같은 실학파 문학의 중간역활을 수행하였다

  사친시(思親詩)
  금조욕사 사친어(今朝欲寫思親語)
  자미성시루이자(字未成時淚已滋)
  기도유호환부척(幾度濡豪還復擲)
  집중응결해남시(潗中應缺海南詩)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쓰려하니
  글자도 되기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네
  몇 번이나 못 적셨다가 도로 던져 버렸다
  문집에서 남해에서 쓴 시는 응당 빠지겠네

  서포집에서 기사년 구월이십오일 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절해 사친시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는 서포 김만중의 작품으로 숙종대왕이 계비인 인현왕후를 폐출하  고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인데 대해 작가가 임금의 마음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러한 목적을 다루면서도 배경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가 자신의 저항 의식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집니다
  주재는 숙종의 폐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일부 다처제의 가정 생활에서 나타나는 비극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이켜려고 한 것이 잘 드러납니다
  내용은 역시 조선시대 공통적인 주제인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다 숙종이 어느날 궁녀로 하여금 소설을 읽어 달라고 하자 궁녀가 이 작품을 읽어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 숙종은 죄가 없는 사씨를 축출시키는
  유한림을 가리켜 “천하의 고약한 놈“ 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숙종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는 알 수 없지만 숙종 20년에 장희빈을 폐출시키고 인현왕후를 복위시켰습니다
  그러나 지은이 김만중이 이 작품을 지어놓고 인현왕후의 복위를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애석한 일이 였습니다
  국문학적으로 볼 때 한글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작품을 창작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일부다처제로 인해 빚어진 아내와 첩 사이의 갈등을 소설화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고전 소설이 영웅 소설 위주인데 비해 이 작품은 가정소설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김만중에 애절한 어머니 사랑에 가슴이 몽클하였다 이미 때는 늦어 후회한들 소용이 있겠는가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는 교훈을 되새겨 본다

  독일마을기념관에서 영화 국제시장이 새삼 떠 올랐습니다 서독 광부와 간호사들 파독 그 당시 생생한 활동 장면 사진으로 전시되고 그분들에 희생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이며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전시실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관람하면서 선인들 노고에 감사와 심심(甚深)한 위로를 드리면서 고개를 숙인다

  2017.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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