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은
                                                  이다은

  일생을 살면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희로애락이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인생길에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역사를 이루어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평생 만나는 사람이 약1,500명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만나서 편하고 유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불편하고 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사람만 만나면 좋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타고난 재능과 사고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일생뿐인 인생사, 부모와 형제, 스승이나 친구까지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좋은 사람이라고 가까이하고 싫다고 다 멀리할 수만은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지적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함께 풀어갈 모사(謨士)가 중요하다. 사람은(人) 서로 기대면서 도와가며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들을 때 실망하게 하는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다 잘하고 단점 없는 사람 세상에 누가 있을까? 다름을 이해하고 지혜를 모으면 가정도 사회도 밝아질 것인데 공격만 하고 대안이 없으니 말이다. 

  좋은 사람은 대하기도 편하지만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물을 치면서 장애물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한다. 속은 따뜻한데 자존감이 낮고 상처를 안고 살면 자신도 모르게 예민한 반응이 나온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면 도리어 버팀목이 될 수도 있지만 방치하면 나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생긴다. 관계가 꼬이고 금이 생길 때 상대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짚어보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어느 단체에서 산악회장이 되고 첫 트래킹을 하는 날, 난감한 일이 생겼다. 신입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동안 당일 회비 3만원 받던것을 2만 원 받게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총무가 회비를 받는 현장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누구 마음대로 2만 원 받아? 그러면 회장 사표 내” 하면서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고 심하게 화를 낸 것이었다. 무슨 큰 잘못을 추궁이라도 하듯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불만을 토해냈다. 

  평소 약주를 즐기시는 분이라 그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이해하고 삭일려고 해도 반격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속까지 부글거렸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오늘 산악회 모임은 엉망이 될 것이고 서로의 관계가 틀어질 것이 뻔했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분 앞에 나섰다. “아이고 오라버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장 3만 원 받을 테니 진정하세요. 오늘 약주 한 잔 올리겠습니다” 유머와 재치를 동원하여 불같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상하고 속 넓은 사람도 때로는 순간적 실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1. 다독거려 주고 힘이 되는 사람 2. 내면이 아름답고 성품이 좋은 사람 3.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 4. 부족함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 5. 꿈이 있고 긍정적인 사람 6. 따스한 눈빛으로 미소짓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한 명이라도 곁에 있으면 삶의 에너지가 되고 살맛이 난다. 내가 먼저 이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오히려 실망시키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미련 없이 멀리하고 싶어진다. 서로가 좋을 때야 괜찮지만 마찰이 생길 때 잘 대처해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좋은 인간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괴로울 때 핵사이다처럼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비결은 없을까?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내가 지면 된다. 져 주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이기려 할 때 관계는 더 꼬이고 문제가 깊어진 경우가 없었던가? 탤런트 차인표 씨 부인 신애라 씨가 방송에서 “내가 져 주니까 다 되더라”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삶의 진리를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홍역을 치렀다. 아들이 홍역이란 이유로 연이어 휴가를 낼 상황이 못 되었다. 얼굴과 온몸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콧물, 열,기침 증상으로 밥도 못 먹는 아들을 혼자 둔 채 출근을 해야 했다. 왕성하게 성장하는 나이에 힘없이 누워있는 아들을 뒤로하고 나서는 어미의 심정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살기가 버거웠다. 아들에게는 먹구름 이불을 덮어놓고 아픈 이들을 위해 빛으로 다가가야 하는 직업이 그날따라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고 따라 다녔다.

  온통 아들 걱정으로 애간장을 태우며 퇴근하고 돌아오니 이웃집에서 전복죽 한 냄비를 끓여 와서 아들을 보살피고 계셨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사한 마음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감사의 진정한 표현을 아들이 마흔 살이 된 후에야 전복 한 상자로 대신했다. 힘들게 살았을 때 사랑에 빚진 자들에게 보은의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은혜에 보답할 수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인생사 웃고 울게 만드는 것이 사람이다. 만남이 잘못되면 재산손해는 물론, 심적 고통과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길을 열어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내게 유익하기 때문에 사람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혈연ㆍ지연ㆍ학연에 대한 차별 없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은 다 소중한 것이다. 가슴에 예쁜 꽃 한 송이 피워 소중한 사람들에게 향기 되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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