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미숙

  트럭 한 대가 들어오더니 남자가 내렸다. 그는 복숭아와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농사짓는데 필요한 상담을 받으러 왔다. 남자는 만 평 이상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작년 여름에 며칠 동안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방제 시기를 놓쳤단다. 그 바람에 세균성 구멍병이 왔고, 탄저병까지 와서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평년에 비해서 소출이 반 토막이 났다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인건비며, 자재비도 만만찮은데 그것보다 올해 농사가 더 걱정이었다. 

  그는 작년에 왔던 세균성 구멍병이 또 올까봐 노심초사했다. 세균병은 한 번 오면 해마다 올 가능성이 많아서 방제를 해서 없애야 한다. 나는 겨울 방제를 잘 하라고 조언했다. 여름에 잎이 무성할 때는 아무리 방제를 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병이 온 다음엔 어떤 약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그는 농사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 얘기를 꺼냈다. 오늘도 두 분을 뒷자리에 태워서 왔다. 부모님은 조부모님으로부터 수천 평이 넘는 땅을 물려받아서 농사를 지었다. 팔 남매의 자식들은 모두 공부를 위해 도시로 떠났다. 

  그가 도시에서 생활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퇴직할 즈음,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시골 생활이 쉽게 적응 되지는 않았다. 

  그해 봄,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에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감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일거수일투족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조언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쉽게 농사짓기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귀농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셨다. 어느 날부턴가 어머니는 발길 닿는 대로 집을 나가는가 하면,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밥 달라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해가 바뀔수록 말과 행동이 점점 이상해져 갔고, 아버지혼자서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병이 심해지자 아버지가 제일 먼저 그에게 알렸다. 그는 믿기지도 믿지도 않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외출을 하시고 어머니를 돌보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그에게 달려들어 괴롭혔다. 팔과 다리 가슴팍을 물어뜯는가 하면 몽둥이로 때려서 온몸에 멍자국이 들었다. 몹시 놀란 그는 가족들에게 다 알렸다. 

  8남매는 돌아가면서 부모님을 보살폈다. 차츰 먼 곳에 있는 형제들이 못 오면서 그가 어머니를 돌볼 시간이 많았다. 기저귀를 갈 때가 제일 힘들었다. 매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았다. 어머니는 기저귀를 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숨어버리거나 발버둥을 쳤다. 어머니에게 어떤 말로 꼬드겨도 통하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 다리를 누르고 있으면 아버지가 차고 있는 기저귀를 빼고 새로운 것으로 갈았다. 힘이 없는 어머니는 기저귀 채울 때만큼은 어디에서 그렇게 큰 힘이 솟아나는지 두 남자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매일 아침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태우고 어디든지 떠났다. 어머니는 옆에 있는 사람을 못살게 굴다가도 차에만 오르면 얌전해졌다. 아버지와 나란히 차에 올라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는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두 분을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고 앉아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음악을 틀어 놓으면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 년 가까이 그렇게 하고 있다니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에 짜증이 날 만한데 오히려 웃는 얼굴로 대한다니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 나라에서 지원도 받을 수 있고, 가족 모두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형제들이 모두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불효를 저지른다는 죄책감 때문에 살아 있는 날까지 자식들이 똘똘 뭉쳐서 효도를 하는 게 숙제라고 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음료수 두 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한참 흘렀다. 그때까지도 그의 부모님은 차에 앉아서 조용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료수 뚜껑을 따서 그의 아버지께 드렸다. 음료수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가 잘 넘길 수 있도록 입에 갖다 대었다. 

  농사지으면서도 매일 아침마다 드라이브 시켜주는 그는 효자다. 폭력으로 변한 치매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농사일을 하면서 두 분을 보살피고 있다. 살아 계실 때까지는 매일 아침 부모님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선해 보였다. 그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두 분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김미숙 약력 
·『수필문학 신인상』등단 
·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경산문인협회회원, 수필 알바트로스 회원
· 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수상
· 원종린 문학상 수상 
· 청년회의소 아동백일장 심사위원
· 수필집 『배꽃 피고 지고』『나는 농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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