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
이복순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손때가 묻은 정든 집을 떠나 요양시설을 찾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등급을 받은 이용자라도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간병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것이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부모 중 한 분이라도 건강을 잃으면 자식에게 부담이 된다. 부모의 병원비와 유산 문제로 형제간의 우애가 무너진 사연을 종종 듣는다.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갈수록 실감 나게 한다. 

  뇌혈관, 심혈관 이상 진단을 받은 후 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자유의 몸이 되니 동기간과 지인들과 가까워지고 애경사도 챙길 수 있어 좋다. 세월이 빨리 흐른 것인지 욕심을 부려서인지 칠십 계단을 성급하게 올라선 것 같다. 경산을 떠나 용인에서 살다가 8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남매지를 안고 있는 호반에 둥지를 튼 지 석 달이 지났다.

  쉼을 통한 충전과 생일을 자축하며 해운대를 찾았다. 앞으로는 여행도 즐기고 삶에 속도를 늦추며 건강을 돌볼 셈이다. 웃고 울었던 시간들이 급행열차에 나를 태워 가기 싫은 겨울의 문 앞에 데려놓았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 앞에 지나온 사계절을 뒤돌아본다.

  막내로 태어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내 유년 시절에는 꽃길 같은 정원에서 살았다. 고생이란 두 글자를 경험하지 못한 남편을 만나 가난 속에 헤엄치며 보내야 했던 그 여름날의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아빠의 사랑 기억조차 희미한 아들이 손자 셋을 안겨준 것은 최고의 선물이다. 어느새 흰 낙엽을 이고 사는 늦가을 앞에 서니 외로움이 젖어 든다. 하얀 물거품을 토해내는 파도를 친구삼아 멀리서 깜박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내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잿빛 구름에 갇혀 햇살이 숨바꼭질하는 아침을 해운대에서 맞이하는 첫날, 숙소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에 마음을 띄웠다. 저 바다처럼 마음이 넓었으면 좋겠다.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숫자를 더해간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체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 현장이다.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뛰어넘으며 윈드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게 남겨진 삶, 지금처럼 건강을 지키며 소풍처럼 살다 떠나고 싶다. 이제는 내 삶의 여백을 찾아 즐겁고 평안하게 살련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백 년 살 것처럼 열정을 담으리라.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월의 무게를 저울질해본다, 사람으로 인해 울고 웃으며 살아온 시간들, 너 때문에 내가 울었다고 말하지 않으련다. 너 때문에 웃을 수 있어 고맙다. 나 때문에 네가 힘들었겠구나! 칠십 계단을 올라보니 내 잘못이 크게 보인다. 나로 인한 너의 상처 앞에 무릎 꿇으며 용서를 비는 마음 평강이 깃든다.

  해변에서 이틀 째 맞이하는 아침 비가 내린다. 고기잡이 배들도 발이 묶인 채 쉬고 있다. 풍랑을 이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음정을 높이고 희미한 안개 속에 홀로선 등대만이 외롭게 서 있다.

  종일 숙소에서 낮잠도 자고 나를 보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해변을 따라 송정공원으로 향했다. 족두리를 쓰고 얌전히 앉아 길손을 밝히는 송정공원 둘레길은 멋진 야경을 품고 있다. 낮 동안 내린 겨울비에 씻겨 반들거리는 돌담길이 친구처럼 정겹다. 삼 층 카페에서 비추는 불빛은 어제 마신 비싼 레몬쥬스 값을 하느라 낮처럼 밝히고 있다. 팔각정을 독차지하고 앉아 시 한 수 읊조리며 사색에 젖는다.

  내가 태어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는 마당에서 탯줄 태우시던 아버지가 하신 말을 여러 번 말해 주었다. “예쁜 네 동생이 태어났단다.” 칠십 년 전 그날의 음성 비누 같은 흰 거품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토해내는 기도, “유리처럼 맑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쁜 말을 하며 덕을 세우는 삶이 되게 하소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며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늘 명심하며 살게 하소서 건강하게 살다가 2~3일 힘이 없고 밥맛이 없을 때 본향이 가까워짐을 알아 잘 정리하고 떠나게 하소서”, 해운대까지 미끄럼타고 내려와 주님께 드린 기도 꼭 들어주세요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는 시간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육체적인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혼과 정서적 건강도 필요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가끔은 살던 둥지를 떠나 자연과 교감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에 보약이 된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노후에 건강 잃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목표를 세운다. 그게 바로 남매지 둘레길 걷기, 국민체조, 식습관 생활습관 관리 잘하기, 그러려니 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스트레스 안 받기, 날마다 감사일기 쓰기다. 설령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좋다. 다시 도전하여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실수 없는 완벽함보다 실패로 인해 얻어지는 승리는 쾌감의 강도가 높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건강 목표를 향해 열정 지수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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