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미숙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 이십 년 지기 부부들과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과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알게 된 사이다. 한두 살 차이가 나지만 따지지 않고 친구로 지내는 사이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적금을 붓고 알뜰히 모아서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이 한 푼도 없다는 게 공통분모였다. 

  다섯 가족은 오래전부터 여름엔 바다를, 겨울엔 눈꽃 산행을 떠나곤 했다. 콘도 하나에 스무 명 넘는 식구가 한 지붕 아래서 밤을 지새웠다. 아이들은 저희들대로 즐거웠고 어른들은 아이들 보는 재미에 행복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막내들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떠나자고 돈을 모았다. 그 첫 여행지가 태국이었다. 젊은이들처럼 인터넷으로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정하고 가이드 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첫날은 바나나 보트며 제트스키 파라세일링을 탔다. 산호섬에서 수영복을 입고 파도에 휩쓸려 몸을 맡기기도 했고 햇살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저녁 무렵에 ‘새벽 사원’에 올라 일몰의 아름다움에 충만한 기쁨도 누렸다. 나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오 일째 되던 날 아유타야를 찾기로 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며 어디에 목적을 두고 여행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마침 아유타야를 들어가는 입구에서 책자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여행 목적도 정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일정은 불상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보리수나무 찾기였다. 이곳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서 받은 책 한 권이 우리의 발길을 그리로 이끌었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던 보리수나무에 둘러싸인 불상이 나 찾아보란 듯 양쪽으로 눈을 치켜뜨고 흘겨보았다. 귀신에 홀리듯 우리는 그곳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던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  

  나무 그늘 아래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에게 달려갔다. 표지의 그림을 보여 줬더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방향을 제시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무와 유물과 건축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세심하게 살폈지만 아무리 찾아도 불상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넓은 길을 걷다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보리수나무 대신 연리지를 만났다. 팻말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나무의 모양새가 특이해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세밀하게 관찰했다. 두 나무가 엉켜서 한 나무로 자라고 있었다. 버드나무와 멀구슬나무였다. 멀구슬나무줄기에 버드나무가 업혀 있었다. 밑둥치부터 다른 나무가 서로를 붙들고 자랐으니 그때부터였을까. 두 나무는 한 몸이 되어 부부로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참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부부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서로 다른 한 인격으로 살다가 부부라는 연을 맺으면서 수십 년째 동반자로 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인연인가. 성격 차이로 맞지 않는다며 헤어지자고 하던 한 부부는 몇 년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아옹다옹하다가 아이들이 커가자 마음을 바꾸었다. 서로 양보하고 조율하면서 수습이 되었다. 높이 솟은 나무를 보다가 그 친구와 눈을 맞추니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음을 날렸다.   

  오전 내내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고 배도 고팠다. 오솔길을 벗어나자 냇물이 유유자적 흘렀고 벚나무들이 울창했다. 그때 자전거에 아이스크림을 싣고 다니며 우리에게 내미는 젊은이가 보였다. 허기가 느껴졌다. 우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행복해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게 눈 감추듯 후딱 사라졌지만 더위와 배고픔에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왓 프라 시 산 펫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눈앞에 커다란 황금불상이 안치된 모습이 보였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우리 일행은 각자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어디를 가든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은 겸허해 보였다. 앞에 보이는 저 여인은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할까. 자식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일까. 저 옆에 서 있는 젊은 부부는 무엇을 위해 손을 모을까. 아기를 원한다는 기도일까. 나도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 행복을 위해서 두 손을 모았다. 

  일행은 또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에 상쾌했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붉은 건축물이 바쁜 우리들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었다. 종 모양의 전형적인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었다. 특이한 건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정오가 한참 지나서야 마침내 우리가 찾던 보리수나무를 찾았다. 저 멀리서도 나무의 자태가 드러났다. 불상의 머리를 안고 있는 나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포기할 즈음 눈에 뜨인 것이다. 아유타야 왕조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미얀마는 불상의 목을 치고 건축물을 파괴시켰다. 잘려 나간 불상의 머리를 보리수나무뿌리가 안고 있고 건축물의 흔적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전쟁의 황폐한 모습은 눈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무뿌리가 잡고 있는 불상의 머리는 섬뜩하게 느껴졌다. 보리수나무는 안쓰러운 마음에 잘라나간 목을 휘감아 당겼을까. 나무뿌리에 박힌 불상의 얼굴은 실눈을 뜨고 웃고 있었다. 옆 친구는 우는 모습이라 했고 다른 친구는 화난 표정이라고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웃고 울고 화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의 삶은 보리수나무를 찾듯이 보물찾기가 아닐까. 보리수나무가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자리를 지켰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리. 산 넘고 물 넘어 아름다운 삶의 무지개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환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5일간의 여행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아유타야를 빠져나오니 오후의 햇살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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