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자유기고가)
  아름다운 보수의 자기희생
  프랑스를 점령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거세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다. 그러나 측근들의 조언으로 마음을 바꾸어 명령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지만 6명을 뽑아라!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6명 뽑기에 다양한 대안을 숙의하던 시민 앞에 목에 밧줄을 메고 자루옷(처형 때 입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칼레 시장과 변호사, 갑부, 의사 등 칼레 지도층 6명이었다.
  칼레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던진 6명의 지도층은 처형 직전 영국 필리파 왕비가
 “이들을 처형한다면 임신 중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닥칠 수 있다.”
  라고 설득하여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다.
  그 후 6명의 지도자는 ‘상류층의 기득권에 대한 도덕성의 의무’ 실천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사건의 정확한 역사적 진실을 따지기 이전에 보수는 그들의 행위모범으로 생각하고 따르고, 소개하고, 배우려 한다.

 

 

  전체보다 내가 우선인 한국 보수
  전체보다 우선하는 보수 국회의원 개인의 욕심을 보수 언론마저 비판한 글을 읽었다.
어떤 언론보다 보수적인 중앙일보의 김춘식 칼럼의 일부이다.

 【나에게 도움 준 착한 사람은 등질 수 있지만, 괴롭히는? 잔인한 사람을 등지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후환은 다음의 몇 가지를 상상할 수 있다.
  첫째, 저 무서운 자는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즉시 반격을 가해 올 것이다. 무서운 자의 평소 행동과 성질, 그리고 능력을 볼 때 반드시 배신 이상의 반격을 할 게 분명하다. 무서운 자가 죽어야 한다면 배신하는 자도 죽어야 할지 모른다. 소위 ‘너 죽고 나 죽는’ 경우다. 최악이다.
  둘째, 무서운 자의 신공이 배신하는 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상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무서운 자는 독종이다. 저 독종은 절대 맥없이 저 혼자 죽지 않는다.
  셋째, 정말 철저하게 배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지만 저 무섭고 질긴 자는 최소한 함께 진흙창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라고 하며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서청원, 최경환 의원 세 사람에 대해 사실상 출당 조치를 결행한 것을 반발하고 비난하는 친박을 지적했다.
  칼럼은 예상대로 친박의 반발은 역시 ‘너 죽고 나 죽기’식 ‘진창에서 같이 구르기’식이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친박을 경고하고 글을 맺는다.
 【안 그래도 보수 정치 세력의 행태에 진저리치는 국민들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는 한국당의 퇴행을 다시 비웃기 시작했다.
  차라리 당에 잔류하겠다는 이유가 보수 세력의 재건이나, 아니면 “오해가 있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당에 남아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하는 데 일조하겠다"라는 등 손톱만 한 대의명분에 기대려고만 했어도, 황당하기는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허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못 나가겠다는 이유가 고작 “성완종·…”을 들먹이며 ‘겨 묻은 개, X 묻은 개’ 수준의 타령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싸우는 당에 희망을 걸 국민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계파 보스에 대한 의리보다 국민에 대한 의리가 우선이다. 국민에 대한 의리보다 보스에 대한 의리를 우선하는 자는 정치꾼이자 사기꾼일 뿐이다. 같이 죽든, 중상을 입든, 진창을 구르든, 쇄신의 시도가 여기서 중단되는 것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자,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무서운 자는 바로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던 친박들이 자신들의 문제에는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는 것을 비판하는 글이다.
 ‘너 죽고 나 죽어 보수가 망해도 된다.’ ‘저질 싸움으로 당이 중상을 입어도 나만 살면 된다.’ ‘최소한 너도 진흙탕에 빠지게 하겠다.’는 그들의 각오가 가련하기까지 하다.

  보수를 기다린다.
  언론들이 진보와 보수의 상생을 말한다. 거기서 한국 정치 발전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언론의 ‘진보와 보수 상생론’을 의심하는 것은 보수 개념의 차이에서 온다.
  그들이 지금 말하는 일반적인 보수는 부정의(injustice)이다. 보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부정의를 정의롭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 후 정의들이 모여 진보와 보수를 말해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에 밧줄을 메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향하는 상류층의 발걸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참 보수를 기다린다.
  그날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 좌우의 날개로 훨훨 나는 아름다운 정치의 비행을 보게 된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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