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  미  숙
ㆍ[수필문학 신인상] 등단
ㆍ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경산문협 회원
ㆍ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
ㆍ원종린 문학상 수상
ㆍ수필집 [배꽃 피고 지고] 2011
ㆍ수필집 [나는 농부다] 2014
ㆍ2014 대구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회 창작지원금 수혜

  새해 첫날, 페루의 리마 거리는 여유롭고 한산하다. 사방으로 뻗은 도로에는 차들도 사람들도 느긋하게 움직인다.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운 다음 기사한테 휴대폰에 깔린 공원의 지도를 내민다. 기사는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에 있는 ‘아모르 공원’에 내려준다. 
  아모르 공원은 키스하는 연인 상으로 유명하며 공원의 명물이다. 수십 년 전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서 만든 조각상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페루 조각가 빅토르 돌핀이 조각한 남녀 키스하는 조형물이 눈에 확 띄었다. 그 조형물을 중심으로 여행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공원을 둘러싼 형형색색의 타일 담이 꽃길처럼 이어진다. 담 사이사이로 키스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웨딩 촬영하는 신혼부부들의 미소도 보인다. 우리보다 연세가 많은 어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도 아름답다. 아모르 공원은 사랑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 모습들은 남편과 내가 젊었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남편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직장에 다녔다. 그이의 등하굣길과 나의 출퇴근이 겹치면서 자주 맞닥뜨렸다. 첫눈에 마음이 끌려 우린 자주 만났다. 학생이었던 그와 사회 초년생인 나는 주머니가 빈약해서 데이트 비용을 아끼느라 두류 공원을 자주 거닐었다. 데이트 비용일 아끼기 위해서였다. 공원은 숲이 울창했다. 봄이면 철쭉꽃이 담장을 가득 메웠고 여름엔 매미 소리가 우렁찼다. 가을엔 낙엽을 밟으며 걸었고 겨울엔 흰 눈을 맞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공원의 순환도로를 걷다 보면 민족 시인 이상화의 동상과 현진건의 시비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무렵 문화시설을 한창 정비했었고 편의 시설인 휴게소와 매점, 음수대와 벤치 등이 이곳 저 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을 하던 5월 초였다. 그이는 졸업을 앞두고 농업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다른 날보다 퇴근이 빨랐던 나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두류공원에 도착해서 그를 기다렸다. 한 번도 약속 시간을 어기지 않았던 그가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먹구름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많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반해 나는 허둥대다 비를 옴팍 맞고 말았다.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마침 새로 짓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그리로 뛰어갔다. 아직 지붕이 완성되지 않았던 건물이지만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삼십 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났다. 야전잠바를 입은 그가 저만치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그를 기다리던 내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소낙비를 맞은 탓에 새파란 입술로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나를 향해 그는 기습 키스를 퍼부었다. 차가웠던 내 입술은 어느새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는 가슴만 두방망이질 해댔다. 
  그 무렵이었다. 가까운 친척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한 달 동안 캠프에서 선거 운동을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쓰고 투표하는 요령에 대한 글을 써서 가정으로 보내거나 필요한 물건과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 관리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분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자 내게 비서라는 직함으로 일을 계속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분의 부탁을 단번에 거절했다. 어머니는 안 가겠다고 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국회의사당 사무실로 갔다.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내일부터 당장 출근을 하라며 호통을 치셨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서울에서 살아야지 평생 시골에서 살려고 하냐며 꾸짖었다. 머무를 곳이 없다고 핑계를 댔다. 아파트에 문간방 하나가 있으니 아무런 걱정 말고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라며 야단치다가 타이르기를 반복하셨다.  
  나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저울질해 봐도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소나기가 내리던 날, 두류 공원에서 그와의 첫 키스 때문에 그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새파란 입술로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줬던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다. 열녀 났다며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한테 왜 그렇게 집착을 하냐고 했다. 그는 무뚝뚝하고 잔정도 없었지만 마음만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늘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연애 기간 오 년에 결혼 삼십 주년이 지나도 늘 한결같았다. 
  새해 아침, 아모르공원 내 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이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춤을 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어울려서 춤을 춘다. 그 모습은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우뚝 솟아있는 키스하는 연인의 조형물은 내가 광장 밖으로 나올 때까지 자꾸만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기자명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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