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필에 목숨을 걸다

  말타기와 활쏘기라면 어떤 장수와 대적해도 뒤지지 않던 왕,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고위 관료, 궁녀, 내관 등을 대동하여 사냥을 나갔다. 사냥터에 도착해 말에서 급히 내리다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창피하다고 느끼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뱉은 첫마디가 “사냥터까지 사관이 왔는가? 내가 말에서 떨어진 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관은‘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사초에 기록해 태종실록에 남기고 말았다.

  지금 생각으론 웃어넘길 수도 있고, 쉽게 기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지만 당시의 권위나 위세로 보면 이렇게 기록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의 사관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중앙부처와 지방 공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숨김없이 꼼꼼히 기록하였고, 붓끝의 진실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다.

  실제 사초에 기록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처형당한 사관들도 있었다. 그러나 압력이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그 후로도 사관들의 직필은 계속되었다.

  또한, 임금도 사초를 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사초의 내용을 발설하는 관리는 그 후손들도 관리로 채용하지 못하게 하는 엄벌에 처했다.

  조선의 임금과 정승, 고위관리들은 사관이 무서워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못했다. 바른 소리가 더 어려운 시대, 큰 뜻으로 직필을 주도한다.

  바른 소리를 내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언론은 권력에 맞서 싸웠다. 그런 언론인들은 해고도 되었고 감옥에도 끌려갔다.

  온갖 탄압에도 멈추지 않았던 언론인들의 ‘바른 소리’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의 탄압에 더하여 자본의 억압에도 맞서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위탁하던 ‘언론에 재갈 물리기를’ 직접 나서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로 붓끝을 무디게 하고, 접대로 언론인들의 눈을 가린다. 공직이든 기업의 자리든 온갖 자리를 제안하며 언론을 타락시키고 급기야 언론사를 스스로 만들거나 간접 지배해 버린다.

  무딘 국민들은 이런 언론의 외피를 뒤집어 쓴 권력과 자본의 말을 앵무새같이 되풀이하는 종편 등의 보도에 차츰차츰 세뇌되어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다.

  18년을 한결같이

 ‘자주 발행되지 않는다.’‘기자가 많지 않다.’‘한 분이 운영한다.’‘언론 같지 않다.’‘돌발적이다.’는 등의 말은 경산자치신문을 두고 세간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안타깝게도 신문의 논조나 기사의 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평가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언론이 가져야 하는 기본에 충실한, 즉,‘날카로운 비판과 시민들에게 토론거리를 제시’하는 지역신문은 경산자치신문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 한다.

  지역 언론의 현실은 대구ㆍ경북을 근거지로 하던, 경산을 근거지로 하던 해당 지자체의 동정 정도를 알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대다수이다.

  시민들이 고민하고 토론할 논거를 던져주는 기사가 없고, 더구나 자치단체 등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는 신문한부를 꼼꼼하게 뒤져봐도 없다.

  지자체나 그 장에 대한 동정이나 칭찬도 꼭 필요하거나 칭찬 받을 만한 내용이 특별히 없는, 요즘 말로‘영혼 없는’부끄러운 칭찬 일색이다. 역설적으로‘지방 언론들에게는 잘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드는 기사들뿐이다.

  언론은 앞서 언급했듯이 권력과 자본, 이 둘과 싸우는 이중고를 겪고 있고 지방 언론들은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서 힘이 부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언론들의 역할 방기를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경산자치신문이 여러 가지 부족한 면과 개선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기적인 발행은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경산자치신문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누구도 꺼려하는 바른 소리를 서슴없이 기사화하며 언론의 기본자세를 18년이나 유지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을 이끌어온 사관들의 목숨 건 언론관을 새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를 사는 언론인들은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바른 소리, 건강한 비판으로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 온다’며 언론인들을 피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오히려 기자들을 찾아가 억울하고 힘든 것을 함께 의논하는 사회, 희망 사회를 언론인들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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