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란 코끼리의 위턱에 길게 뻗은 두 개의 앞니를 이르는 말이다.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정적(靜寂)하고 고고하게 사는 사람이나 그 삶을 나타내며, 성모님을 상아탑이라고 부른 것은 세상에서 혼자만이 유독 고고하고 정숙한 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 근거하여 상아탑은 속세를 떠나 오로지 고일(高逸)한 학문이나 예술 부문에 잠기려는 경향을 나타내며, 학구 생활에 몰두하는 대학의 아카데미즘을 일컫기도 한다
한마디로 상아탑이란 고고한 품위로 한 사회의 지적 보고 역할을 하는 곳으로 흔히 대학을 지칭한다. 따라서 그 나라의 대학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행정수반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대학을 찾아 강의하고 토론하는 것을 주요 일정으로 잡는 이유도 그 나라의 최고 지성들과 같이 호흡하며 미래를 토론하는 진취적인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젊은 지성이 사회를 배워가는 아카데미즘 상아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문제로 연일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최저인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점심값도 지불하지 않는 노동 착취를 한다. 그래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점심값과 최저임금을 요구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비참한 요구다. 이런 요구조차도 거슬린다며 집단해고를 시키기도 한다. 최저임금법을 피하기 위해 하루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6.5시간으로 줄인 대학도 있다. 혹시 자문을 법대교수에게 받은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대단한 상아탑이다.

  교육부가 대학의 주식투자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보다 효율적인(?) 재정 사업에 나설 전망이다. 또 쇼핑몰 운영 등 각종 수익사업이 허용되면서 대학의 사업화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허용된 대학의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인해, 캠퍼스에 호텔이 들어오고, 마트가 들어오고, 영화관이 들어올 수도 있다. 복지관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상업시설의 캠퍼스 진입이다.

  벤처기업 같이 실험적이거나 창의적인 것도 아닌 이러한 수익 사업의 캠퍼스 내 진입이 왜 필요하며 어떤 의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대학에 교육중점교수라는 이상한 교수들이 생겨났다.

  교육중점교수는 2년마다 다시 계약해야하는 소위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교수보다 더 많이 강의하고 반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교수회의도 참석하지 못하고 노조 가입도 못하며 대우도 정규직 교수와 너무 다르다.
교육전임교수, 강의교수, 교육중점교수 등이 여기에 해당 된다.

  놀라운 것은 교육부가 대학 재정지원 등에 ‘전임교원 확보율’을 주요 지표로 보기 때문에 이 점을 이용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에도 정규직여부는 따지지 않고 교육중점교수를 교수로 인정하고 있으니 이 틈새를 ‘진리의 상아탑’이자 우수 두뇌의 집결지에서 절대 놓치지 않는 약삭빠름을 보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행위를 대학의 품위를 유지하고 이끌어야하는 재단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 교수들이 의도적으로 눈감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아탑이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다. 어쩌면 왠만한 수술로 치유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대학은 고도의 지적 문화를 전승하고 창조·발전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풍의 집결체로서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연구하여 교수한다.

  또한, 대학은 국가사회의 기능을 담당할 사회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을 주요 사명으로 삼고 있다. 세계 각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대학 교육제도를 발전시켜 그들의 전통과 사회현실에 맞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야 한다. 이런 중차대한 역할을 수용해야하는 대학이 또한 젊은 지성을 지도해야 할 교수가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퇴행을 눈 감고 있다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불의와 편법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대학과 교수라 하면 학생은 물론 사회에서도 대단한 존경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 여운은 남아있다. 다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과 교수는 불의에 저항하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정도에 따라 국민은 응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국민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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