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문학 신인상] 등단 · 대구문인협회, 대구시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경산문협회원 · 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  · 원종린 문학상 수상
 ·  [수필문학 신인상] 등단 · 대구문인협회, 대구시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경산문협회원 · 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  · 원종린 문학상 수상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 앞에서 멈추어 선다. 신발을 벗으려 할 때 집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가 입시 공부에 매달려 매일 어깨가 처져 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피아노를 치고 있다.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 못 박힌 채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옆집에 놀러 갔다 온 후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건반을 두드리는 친구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었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배움의 진도는 느렸다. 몇 년을 연습했지만 바이엘에 머물러 있었다. 학원에 다니기 싫거든 그만 다니라고 했더니 오히려 피아노를 사 달라고 했다. 집에 피아노가 있으면 연습도 많이 하고 눈에 띄게 잘 칠 수 있다고 졸랐다. 남자아이라서 계속 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배운다면 사 주겠다며 달랬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꾸준하게 악보를 들고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약속대로 생일 선물로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 무렵 아이는 클라리넷까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피아노에만 집중하라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피아노 연주를 했고 밤새도록 클라리넷 연습에 몰두했다. 이삼 년이 지나자 클라리넷을 다루는 동작이 예술가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듬해 벚꽃이 피는 봄날이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선생님은 결혼식 날 합주를 해 줄 수 있냐고 하셨다. 아이는 친구들과 몇 날 며칠 연습을 해서 식장이 떠나가도록 연주를 했는데 선생님은 너무나 만족해하셨다.  

  아이는 음을 듣는 청각이 뛰어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률을 듣고 좋다 싶으면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서 바로 연습을 하곤 했다. 오랫동안 연습이 끝나면 내게 들려줬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만학도로 대학을 다니면서 초등학교에서 독서지도를 할 때였다. 시골 학교에서 처음 시도하는 독서 수업이어서 전교생이 다 몰려왔다. 수업 경험이 없었던 나는 가르치는 노하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틈을 내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용 전달을 위해서 공부하다 보니 늘 파김치가 되었다.

  그날도 어깨가 처져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면 기가 다 빠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져서 녹초가 되었다. 그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충혈된 나의 눈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피아노의 맑은 울림이 방안에 가득 퍼졌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다. 잔잔한 음악소리에 감동이 일었다.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자니 순식간에 허기가 사라졌다. 서너 살 적 피우는 재롱을 보면서 평생 받을 보상을 다 받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는 또 한 번의 감동을 주었다.

  아이는 수능 준비생이지만 내가 조금만 힘든 모습을 보여도 음악의 소리로 나에게 재롱을 피운다. 피아노를 치던 녀석이 힐끗 돌아본다. 현관 앞에서 귀 기울이고 있던 어미를 의식한 모양이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내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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