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가는 세월이 놀랍도록  빠르다고 느껴지니 필자의 나이도 이제 노년기에 들어선 모양이다. 최근의 유엔보고서는 18세~65세를 청년, 66세~79세를 중년, 80세~99세를 노년 그리고 100세 이상을 장수노년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최근에 이르러는 간간히 나이를 자주 의식하게 되는 것은 필자 스스로가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는 듯 하다. 근래에 세월의 속도 얘기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60대는 60킬로, 70대는 70킬로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에 거역 없이 받아들인다. 

  새해가 되고 새봄이 왔는가 싶었는데, 벌써 여름의 한 가운데로 들어섰다. 여름은 더위를 주지만 생명의 풍성함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청통농원의 과수밭에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자두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옆집 전업농부 자두밭에는 자두가 듬성듬성 달려있는데, 우리 밭의 자두는 가지를 쓰러뜨릴 정도로 아주 풍성하게 자두 알이 달렸다.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겨울 옆집 밭 주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과수 밭에 퇴비를 제대로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농사는 정성이며 정직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현상이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듯이 농사는 뿌린 대로 정직하게 거둔다. 그래서 한겨울 건강 때문에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옆집 자두밭은 결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적당한 슬기가 필요하다. 생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은혜요, 축복이지만, 그것을 향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일정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노동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은퇴 후 취미로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노동의 적절한 관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퇴직 후 농촌 생활을 좀 더 멋있게 하기 위하여 10여 년 전에 미리 자두나무 40여 그루 심었다. 그중 몇 그루는 정리했고, 남은 나무들이 요즘 결실의 절정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해마다 노력한 것 이상의 충실한 보답을 주고 있다. 익은 자두를 골라 따서 한 박스 만들어 우선 용인에 사는 아들 집으로 부쳤다. 건강을 생각해서 농약을 최소한으로 치고, 일손 여유가 없어, 적과도 못해 자두 알이 좀 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공해 산물이니 흡족하게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두를 따며, 모두 자가소비로 끝낼 생각이다.

  과수나무를 제대로 잘 가꾸지 못해, 더러 충실하지 못한 나무도 있지만 근 30주에 족하니 집안 식구, 친척, 친지들이 나누어 먹는 데는 충분하다. 한때는 자두 수확량이 너무 많아 영천 공설 직판장에 몇 박스를 팔아 농비 보충도 했었지만, 올해부터는 아예 자가소비로 끝낼 생각이다. 1,000 평의 농지를 200평 정도를 대지로 변경해서 집을 짓고, 계사가 80평 정도 되니 실제로 농사짓는 땅은 600평 남짓한 셈이다. 그중 300평은 자두밭, 나머지 소채와 잡곡밭이 300평 정도 된다. 사실 그것도 농사를 잘 지으려면 아마추어 농군에게는 적은 농사가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 농사일을 하며 학창을 보내던 시절이 그리워 그저 현상 유지 정도의 최소한의 일을 하며 농원을 꾸려 갈 뿐이다. 그리 넓지 않은 텃밭이지만, 고추, 참깨, 들깨, 호박, 감자, 고구마, 오이, 토마토, 배추, 무, 상추 등 대부분의 농작물이 채소밭에서 자란다. 골고루 조금씩 심어 식단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생각에서이다. 

  과수 종류는 복숭아, 살구가 몇 그루 있고, 대부분 자두나무다. 자두는 전원생활에서 가장 노동력이 적게 드는 경제적인 과수나무이다. 그러니 초보 농부가 농사짓기 가장 좋은 과수이다. 우선 일손이 다른 과수에 비해 월등히 덜 간다.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 등을 조금씩 재배해 보았지만, 모두가 자두의 배이상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가장 경제적인 과수가 살구와 자두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도 좋고, 지역에서 대중적 인기도가 높은 자두나무를 심었다. 닭을 키우는 것도 같은 이치다. 경제성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닭은 가축 가운데 가장 사육이 간단하고, 관리가 용이하다. 멋진 진도개 강아지를 키워보라고 무료분양을 권유하는 지인도 있었지만, 필자는 거절했다. 평생 개를 길러 보지도, 좋아해 보지도 않았지만, 개 사육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니 개는 기본사육비가 월 몇십만 원씩 든다고 한다. 그래서 개는‘비능률의 경제학’이라는 생각을 한다. 

  상대적으로 닭은‘저비용과 효율의 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룟값이 올라 닭도 영업으로 기르기는 힘들어졌지만, 농촌에서 취미생활로 닭을 기르는 것은 일석이조의 유익이 있다. 우선 닭을 기르면 매일 적정량의 계란을 얻는다. 우유와 함께 가장 완벽한 단백질 공급원인 신선한 계란을 꾸준히 공급받는 일은 전원생활의 특권이다. 또한 청명한 닭 우는 소리는 농촌의 살아있는 생명력의 표상이다. 그리고 닭은 기르면 자연의 생동감을 느낀다. 매년 예쁜 병아리를 키워 성조가 되는 생명의 순환과정을 지켜보는 그 자체가 삶의 생기를 준다. 필요시 가끔 몇 마리씩 잡아서 접대도 할 수 있고, 건강을 위한 단백질 보충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닭은 잡식성이라 무엇이든지 잘 먹는다.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포함해서, 풀과 모든 과일과 씨앗 그리고 채소 찌꺼기 등은 닭이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다. 필자는 약 40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데 장기간 집을 비울 때는 4개의 사료통에 가득 사료를 채워 두면, 열흘은 충분하게 사료가 유지된다. 닭은 과식을 하지 않는 동물이다. 물은 수도물 호스를 연결하여 약하게 수도꼭지를 틀어 놓으면 한겨울 이외에는 걱정할 일이 없다. 동물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은 생활공간에 생명력을 느끼며 살게 해서 더욱 좋다. 살아있는 생명과 호흡하는 전원생활은 행복의 엔돌핀을 배가시킨다. 그래서 전원에서 닭을 키우는 일은 일거다득의  슬기로운 행복경제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생명과 호흡하면서 산다는 것은 건강과 축복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고, 때를 알며, 일할 때와 작물을 가꾸어야 할 시간을 앎으로써 자연의 지혜와 고마움을 느낀다. 전원은 하늘의 뜻을 알고 순응하는 가운데서 겸손과 인내의 미덕을 알게 한다. 전원생활은 자연의 힘과 법칙을 체험하며 그것으로부터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한다.

  농업은 생명 산업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새겨본다. 자연은 삶의 근원이며, 농업은 자연과 함께하는 산업이다. 오래전 재직시절 북경대학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이 세미나에서 북경대의 어느 교수는 인간은 지금 이상사회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이상사회는 90%가 농업인 사회라고 언급했다. 누구도 인간의 이상사회에 대하여 결코 완벽하게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필자의 은퇴 생활의 철학은 농촌 생활을 통해서 자연을 느끼며,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 문명이 인간에게 준 역작용을 최소화시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인간은 자연이 아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의 참다운 행복을 실현해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은퇴자의 농촌 생활은 선택 가능한 최고의 선택이며, 최후의 행복 경제학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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