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양력으로 새해가 시작되고 근 한 달이 지나니 또 우리 민족의 대명절 구정 연휴가 시작된다. 음력으로 신년이 되는 구정은 이름하여 '설날' 로 불리워진다. 옛부터 설날은 우리 민족에게 일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현재도 구정연휴는 삼천만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민족의 대명절이다. 설은 아직도 어김없는 우리 민족 최대의 이름난 날이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설 분위기는 옛날과는 많이 변했다. 농촌인구가 줄고 시골에 젊은이가 없다 보니 설 문화를 즐길 집단적 에너지가 줄은 탓이다. 옛처럼 전통을 숭상하고 순수를 즐기는 농촌의 젊은이들이 없다보니 명절의 열정이 식어졌다는 느낌도 든다. 요즘 도시 사람들의 설 풍속은 이미 옛날의 그것과는 정서적 측면에서 순수와 감동이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필자가 어린 시절 농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설명절은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는다. 당시의 농촌 사람들이 느끼는 전통문화로서 설명절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설 명절의 분위기는 아예 정월 대보름까지가 휴가기로이어져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길고 푸근한 마음으로 설명절을 지긋이 즐겼다.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을 크나큰 축복의 날로 받아들이고 마음껏 놀면서 기대에 찬 새해를 준비했다.

  물론 설의 의미는 '낯설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새해가 되니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고 낯이 설다'라는 뜻이다. 또는 '섧다'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통설은 '낯설다'가 옳다는 생각이다. 추운 겨울 속에 새로 시작하는 새해 설은 아직까지 가보지 않는 모든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설은 새 세계로의 꿈을 설계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처음 출발하는 날이다. 새해를 여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새날을 잘 보내야 한다는 다짐과 두려움이 함께 했었다. 그래서 정초, 정시, 원단 등으로도 표현되는 설날은 모든 행동에 신중하고 경거망동을 삼가하며, 행실을 조심하라고 일컬었다. 

  설날에 대한 조심스런 자세는 새날에 닥칠지도 모르는 악재와 실수를 막고 새날의 축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경건했던 마음자세와 그에 따른 언행의 실행을 담은 결과였다. 설 명절이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큰 기쁨이자 희망이었지만, 당시의 어른들에게는 조상님을 모시고 자식들 키우며 살아가는 한 해 한 해가 쉽지 않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듯이 좋은 날 좋은 일에는 자칫 마음이 들떠 생각지도 못할 큰 실수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같은 재앙을 대비하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로 옛 선조들은 집안에 큰 일을 두고 생각이 깊었던 측면이 많았던 것 같다. 중요한 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가벼운 처신으로 입을 화를 염려하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음을 예로 여겼다. 시대적 특성이지만 요즘은 사실상 말과 행동이 그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사회의 유명인들도 이런 시류를 편승하여 품행에 실 수를 해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 모이고 명절의 기쁨을 함께 즐기는 설연후기간에는 조금씩 감정을 자제하고 잘 분별하는 생활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농경사회에서 설명절의 연휴분위기는 오래 갔다. 정초에는 살펴야할 이웃 어른들, 멀리있는 친지들과의 인정을 나누는 일도 대개 정월 대보름까지 지속되었다. 이미 오랜 세월을두고 꾸준이 지내온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기에 옛날의 어른들은 의관과 복식을 깨끗하게 차려 입었고, 어린 아이들은 꼬까옷과 색동 저고리를 갖춰 입기도 했다. 좋은 옷 갖춰 입고 제사가 끝나는 오후가 되면 동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ㅤㅇㅠㅈ놀이, 널뛰기, 재기차기 등의 전통민속놀이를 하며 동네가 시끄럽도록 명절을 즐겼다. 모둠 밥도 해먹으며 일년 동안 농삿일로 고달팠던 마음을 서로가 위로하고 느긋하게 보름간을 여유를 갖고 이웃들과 친화를 도모했다.

  이득하던 필자의 국민학교 시절, 그때 아이들은 설이 오기를 모두가 참으로 손꼽아 기다렸다. 여러 형제들이 긴 겨울밤을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설 이야기로 가슴이 설랬다. 설이 가까워지면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낡아 헤어진 왕골 돗자리는 새 것으로 바꾸며, 찢어진 벽지는 새 종이로 바르고, 집안 뒤안을 포함해서 마당, 거름태미 주변을 깨끗이 쓸고, 복판자리로 쳐올려 온 집주변을 환하게 청소했던 기억이 난다. 궁벽한 산골마을이었지만 나름대로 공동체 생활의 인간미가 녹아 있던 추억서린 설명절 분위기였다. 

  어른들은 동네 윷을 놀때는 돼지 한 마리를 잡고, 형편되는 집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푸근함도 있었다. 옛날의 설은 농촌문화를 살리고 영육에 끼인 한 해의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마을의 대향연이었다. 아이들에게 명절을 즐겁고 따뜻하게 지내라고 사주는 새 옷과 새 양말 등 설 선물은 아이들의 마음을 한량없이 기쁘게 했다. 또한 설빔을 준비하는 온 가족들은 기대와 정성으로 협력하며 마음을 한데 모았다. 떡국 준비, 제과상 준비, 손두부 만들기, 술담기, 전부치기, 인정미 절편 등 떡만들기로 어른들의 일손은 바빴고, 설빔 준비 일들을 위해 아이들은 잔심부름은 모두가 즐겁고 꿈이 서린 신나는 일이었다.

  설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어른들은 명절 준비로 바빴다. 소죽 끓이던 따뜻한 부엌 아궁이 앞에서 솥두껑 뒤집어 데운 물에 세수를 하고, 간밤에 챙겨둔 새 옷과 새 나이롱 양말을 찾아 신고 먼저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난 후, 이어 동네 친척 대소가를 찾아다니며 이른 아침부터 세배로 예를 배우던 어린 시절, 설은 조상과 어른들에게 예다함을 익히고 스스로 즐거위 하던 살아 있는 예절 문화의 교육장이었다. 옛날의 설은 오랫 만에 온 친척들이 다같이 집안을 돌아가며 함께 제사지냄으로써 대가족 공동체의 상부 상조하는 마음과 조상을 섬기는 마음, 그리고 서로간에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마음의 행복경제 공동체였다. 

  설날에는 예나 지금이나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문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른들이 집안의 아이들에게 설 돈을 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은근히 설 돈을 기대하며 또 설돈 많이 받는 것을 자랑이자 기쁨으로 여겼다. 누구나 돈을 받는 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특히 아이들이 설날에 받는 설 돈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모두 풍요롭게 하는 행복경제 실천의 행위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이던가?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는 설 돈은 일거 양득의 행복경제이자 삶의 엔돌핀이다. 돈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지만 특히 명절에 가족들간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징표로서 용돈의 수수행위는 베품의 실천이자 나눔의 행복경제학이다. 따라서 설과 같은 좋은 날에는 서로가 적절한 돈을 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명절을 보내는 또 하나의  에티켓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설 돈을 받고 즐거웠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설돈의 의미는 지불된 돈 이상의 기쁨과 잉여가치를 낳는 명절의 행복경제라고 생각한다. 가족간에 얼마의 돈을 나누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가정형편, 개인의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느낌에서 적정한 수준의 돈이면 충분하다. 

  새해가 시작되는 민족의 대명절 설날에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자 행복이다. 좋은 날, 좋은 자리에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과 가족들 서로를 생각하며 배려하고 격려하는 설날의 만남은 더없이 귀하고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슬픔은 함께 하면 반이 되고,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된다는 마음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명절 자축을 위한 합리적 경제행위로 행복경제를 잘 관리하는 설연휴를 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잡다한 소식들이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불편케 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귀한 가족들이 함께하는 설명절 연휴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마음 경제를, 돈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행복경제를 실천하는 복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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