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자인면 교촌리에 소재한 자인향교(전교李熙文)에서는 2024. 3. 14(목) 10:30에 석전대제(釋奠大祭) 춘향제를 봉행하였다. 자인, 용성, 남산, 진량 등지의 향내 유림 약60여 명과 다수의 내빈이 참석하여 엄숙하고 성대한 제례행사가 봉행되었다. 이날 석전봉행 행사에 참여한 내빈은 경산시청 류진열 문화복지국장, 김동필 문화관광과장, 김인수 경산시의원, 류한상 자인면장과 4·10총선 국회의원 각 입후보 등 다수가 함께 하였다.

  천기찬(千基燦) 성균관 장의의 지도에 따라 초헌관에 조현일 경산시장, 아헌관에 유학 손병한, 종헌관에 유학 정태묵, 분헌관에 유학 이상정, 김상신, 집례는 유학 김상해, 대축은 유학 최선교 선생이 맡았다. 알자는 유학 김유환, 찬인은 유학 임성규, 유학 이종원, 판진설은 유학 남성래, 윤재필, 봉로는 유학 김재암, 봉향에 유학 임채관, 봉작에 유학 천성룡, 전작에 여성인 유학 정귀선 선생이 맡았다. 여성 유림이 전작(奠爵)을 맡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준은 유학 최기자, 김미숙, 직일(直日)에 유학 전명수 선생이 맡았으며 그 외 유학 김성식 외 다수의 유림이 학생의 이름으로 제례에 동참하였다.

  석전 봉행의 순서는 행례(行禮)에 이어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분헌례(分獻禮), 음복례(飮福禮), 망료례(望燎禮)를 거쳐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석전대제 봉행 행사는 처음부터 차분하고 엄숙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예년과 달리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여 행사의 분위기는 조용하였으며 향내 모든 유림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자인향교의 대표자인 이희문 전교와 집례, 각 헌관 및 대축관은 관복을 착용하였으며 그외 유림은 각자가 준비한 도포를 착용하였다.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의 지방 공교육기관을 말한다. 유교 교육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2 가지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의 중등 교육기관이나 지방의 공립대학에 해당된다.

  자인향교는 명종 17년(1562)에 경주부윤 이정(李楨)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4년(1612)에 도천산 아래에 옮겼으며 영조 4년(1728)에 현 위치에 다시 이건(移建)하였다. 1900년부터 1924년까지 대성전과 명륜당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부터 교육 기능이 쇠퇴하여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자인향교에는 외삼문인 모성루(慕聖樓)가 서 있는데 팔작지붕에 3문으로 이루어진 2층 누각이며 2층에는 마루를 깔아놓았다. 향교 입구에 대·소인을 막론하고 모두 말(馬)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외삼문의 오른쪽 문인 동문을 들어서면 명륜당(明倫堂)이 서 있고 그 앞마당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향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교실이라 하겠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측면 2칸의 이익공, 다포계 건물로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명륜(明倫)이란 말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동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 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기숙사와 같은 건물이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강학 공간이라 한다. 명륜당 동편에는 관리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 뒤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내삼문이 서 있고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은 전면 3칸, 측면 2.5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 주심포 건물이다. 자인향교는 외삼문인 모성루,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전학 후묘(前學後廟) 형태이다. 대성전 동편 모퉁이에는 문묘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서 있고 대성전 전면 좌측에 전사청(典祀廳)과 제기고(祭器庫)를 겸한 3칸의 건물이 서 있다.

  전국 대부분의 향교에서 음력 2월 상정(上丁)일과 8월 상정(上丁)일에 각각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있다. 석전대제의 시초는 후한 명제 때이고, 당나라 태종 때는 중국 전역에 문묘(文廟)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성종 때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종 때는 전국에 학교를 세우고 공자를 모시게 하였다. 충렬왕 때 국자감(國子監)을 성균관(成均館)으로 바꾸고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향교의 건립은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기인하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234개의 향교가 설립되어 있으며 경산시에는 경산, 자인, 하양 등 3개의 향교가 세워져 있다.

  자인향교 대성전(大成殿) 안에는 중앙에 대성지성 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의 위폐가 봉안되어있으며 그 양옆에 연국 복성공 안자, 성국 종성공 증자, 기국 술성공 자사, 추국 아성공 맹자 등 5대 성현의 위폐가 봉안되어있다. 동쪽 벽에 홍유후 설총, 문성공 안유, 문경공 김굉필, 문정공 조광조, 문순공 이황, 문성공 이이, 문원공 김장생,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준길, 서쪽 벽에 문창후 최치원, 문충공 정몽주, 문헌공 정여창, 문원공 이언적, 문정공 김인후, 문간공 성혼, 문열공 조헌, 문정공 송시열, 문순공 박세채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폐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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