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호 완
(대구대 명예교수,삼성현연구소)
  봄은 왔으나 길림의 용담산성(龍潭山城)은 아직도 겨울인 듯, 그러나 얼음장 덮인 송화강 아래서도 눈녹은 봄의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찾았을 때 보이던 고구려 고성지라는 안내글이 보이지 않았다. 더러 배고픈 듯 한 까마귀 울음소리만 을씨년스럽게 들려온다. 그냥 옛 성터라고만 적혀 있다. 새로이 만들어 세운 돌비가 확연하다. 질척거려 조금씩 녹는 산성의 미끄러운 길을 돌아 용담이 보이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 덮인 용담의 못가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만 보인다. 못의 위쪽으로는 허술하나 제단으로 보이는 단처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동명성왕이 산제사를 올리고 겨렝의 번영을 다짐하였을 것이다.

  눈 쌓인 제단으로 올라가 맨손으로 줄을 하고는 용담을 한 바퀴 돌아 눈산을 기어올랐다. 용담산성, 송화강이 휘돌아 나가는 곳 이 산을 달리 녹산(鹿山) 혹은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녹산은 사슴 산인데 사슴(鹿)을 만주말로는 푸후(puhu) 곧 부여와 같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여의 중국어로도 푸위(pu?)라고 하기에 그렇다는 것. 그럼 여기가 단군이 나라를 처음으로 세웠다는 아사달이란 말인가. 이곳은 흔히 동명제가 도읍을 하고 부여를 통합한 곳으로 알려져 온다. 동명제는 고주몽이다. 그는 유화(柳花)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면 유화는 새인가. 아니다. 새가 아니라 새조(鳥) 자 조이족의 여성으로 보아야 온당하다. 하나의 토템이니까. 이러한 난생설화는 우리 옛적의 역사에는 많이 등장한다.

  김수로나 박혁거세, 김알지나 고주몽이 그런 경우이다. 알을 낳는 주체는 새인데, 이는 새를 토템으로 하는 원시신앙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사서인 사기(史記) 오제본기에 순(舜) 임금을 설명하는 부분에 조이(鳥夷)가 나온다. 진(晉) 나라의 황보밀이 지은 제왕세기(帝王世紀)를 보면, 태호제(太昊帝) 포희(疱犧)씨의 성(姓)은 풍성(風姓)이다(太昊帝疱犧氏風姓也)라고 적고 있다. 풍(風)은 봉(鳳)과 통한다. 특 히 갑골문의 풍(風)은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럼 태호와 복희는 모두가 조이족(鳥夷族)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조이는 구이(九夷)의 뿌리가 된다. 송 나라 시기 나필(羅泌)의 로사(路史)에는‘복희가 구이에서 태어났다(伏犧生於九夷)’라 적고 있다.

  또한 괄지지(括地志)에는‘조이(鳥夷)는 옛 숙신(肅愼)이다’라 함을 보면 적어도 복희(伏犧)씨는 조이의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의 홍산문화는 용과 봉(鳳)으로 상징된다(심백강(2014) 우리역사 참조). 이른바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조이족이었고 고조선의 문화의 주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이의 조(鳥)는 우리말 새(sai)인데, 지역에 따라서는 세, 시, 쌔, 사이(소이)로도 말한다. 조이족의 얼굴은 단연코 삼족오(三足烏)라 할 수 있다.

  쌍영총(雙楹塚)의 벽화는 물론, 도처에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유적과 지명(太陽鳥山, 朱雀山 817m)에 삼족오가 드러남은 조이족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르자면 삼국유사의 사금갑(射琴匣)이나 일본의 아스카(飛鳥)문화의 뿌리라 할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한편, 예맥족의 예(濊)의 고대한자음이 쉐이-수에이-세-예의 대응성됨이 있다. 한마디로 조이는 예족(濊族)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일찍부터 쇠(鐵,소이>조이)를 씀으로 하여 높은 농업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강력한 전쟁능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신앙적으로는 태양 곧 해-새를 숭배하던 민족이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시기에 요하문명을 주도했던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더러 소도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신앙적으로는 해 곧 태양숭배이고 물질로는 쇠를 상징하는 문화코드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고주몽도 조이족이고 원주민격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주민들을 통합하여 고대 국가의 체제를 형성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길림성 송원시(松源市)는 송화강과 눈강(嫩江)이 만나서 퇴적평야를 이룬 곳으로 부여국이 웅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송원에는 백금보(白金寶) 문화라 하여 그 유적이 있다. 이 지역을 조원(肇源)이라 함을 보아도 그렇다. 조원의 조(肇)-는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뜻이기에 그럴 개연성을 갖고 있다. 일행은 산성을 내려오고 있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어깨 너머로 들린다. 살펴가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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