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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육의 新古文眞寶
곽종육의 新古文眞寶
  • 서예가
  • 승인 2016.10.11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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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石亭
               李珥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화석정
                 이이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산토고윤월 강함만리풍
새홍하처거 성단모운중

화석정에서
숲 속 정자에는 벌써 가을이 깊어져
시인의 생각은 무궁하여라
강물은 멀리 푸른 하늘과 이어져 흐르고
서리 맞은 단풍잎은 해를 향해 붉다
산은 외로이 둥근달을 뱉어내고
강은 만리의 바람 머금었네
큰 기러기는 변방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지
그 소리가 저물녘 구름 속에서 그치네

화석정: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가에 있는 정자.

서예가 곽종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관료 대학자 사상가로 호가 율곡栗谷이며 본관은 덕수이다. 13세 때 진사초시에 장원급제를 시작으로 29세 때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9차례나 장원급제하여 사람들은 그를 구도장원공이라 칭하였으며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원수와 문인 화가였던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주의 본가에서 자랐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임신하였을 때 흑룡이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태어난 방을 몽룡실이라 불렀으며 아이 때의 이름을 현룡으로 지었다가 뒤에 이로 바꾸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렸다고 하며 효성이 지극하여 11세 때는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칼로 자신의 팔을 찔러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넣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이듬해 하산하여 자경문을 지었으며 이후로 다시 유학에 정진하였다. 조정에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주장한 10만 양병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학계에 기호학파를 형성하여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성학집요 격몽요결 동호문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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