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진 -


  그는 내 직장 선배였다. 보험회사에 입사하여 울산 영업국으로 발령을 받았을 땐 그는 이미 입사 4년 째 근무 중이었다. 그는 그 어느 동료 보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눈과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몸매에 얼굴엔 늘 핏기가 없이 며칠을 앓다가 나온 사람처럼 보였지만 얼굴은 항상 자신 만만해 하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자칭 '멋쟁이 소장'이라고 했지만 직장 동료들은 허풍을 잘 떤다고 하여‘강대포’라고 불렀다.‘멋쟁이 소장’- 그 말은 다소 일리가 있었다. 늘 반짝거리는 구두와 고급 장신구를 착용하고 다녔고 주부 설계사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그들과의 비밀스런 스캔도 나돌았던 것이다.

  강대포는 그가 맡은 ??영업소에서는 사이비종교 교주였다. 30여명이나 되는 주부 사원들은 그의 지시라면 무조건 복종이었다. 그의 명령은 곧 법이요, 신의 계시였다. 그의 지시를 자기 남편 말보다 더 무겁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점이 늘 궁금하게 생각되었다. 사람 잘 다루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영업소는 20여개나 되는 영업국 내 점포 중 영업실적이 단연 1위였다. 당시 영업실적이 하위권에 맴돌던 나로선 오랫동안 수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그가 너무 부러웠다. 강소장은 우수한 영업실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매일 점포장회의 때는 국장님이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지만 영업 실적이 좋지 않았던 대다수의 소장들에겐 그 시간이 피 마르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였으므로 그의 점포 경영기법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회식에서도 인기 최고다. 보험회사 영업생리상 한달에 2-3회 정도 회식이 있게 마련인데 그 때마다 그는 연예인 뺨칠 만큼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여이 강소장, 뭐해?... 박수가 부족한 모양인데, 자 우리 박수 한번 칩시다.”
사회를 맡은 동료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는 못이기는 척 무대로 향한다. 화려한 조명 사이로 그는 양 다리를 벌린 채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한 판 신명나게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다.“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아~~ 사랑스런 젊은 그대…….” 노래가 이 쯤 진행 될 무렵이면 지켜보던 동료직원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김수철의 ’젊은 그대‘는 강소장의 18번곡이다.

  노래 자체도 경쾌한 편이지만 그가 잘 소화하는 것 같았다. 강소장이 부르는 ‘젊은 그대’를 듣노라면 색다른 묘미가 있다. 김수철이 부르는 그 노래가 경망스럽고 촐랑거린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가 부르는 그 노래는 중후한 느낌이 들었다.

  표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에겐 그늘이 많았다. 그는 초등학생 딸 하나를 둔 30대 초반의 이혼남이다. 중등교사였던 아내와 한때는 몇 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형수님은 뭐 하세요? 요즘 맞벌이 부부도 많던데…….” 그가 홀아비라는 사실을 모를 당시 이렇게 묻자 “ 우리 집사람? 미국 유학 갔어.” 라고만 짧게 대답을 했다. 유학이라는 사실이 좀 의아하게 들리기도 했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렸는데 알고 보니 이혼 2년쯤 되었다고 했다. 딸은 부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성격 차이로 인해 자주 티격태격 하다가 헤어진 모양이다.

  그는 2년째 회사 부근의 여관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일정한 퇴근 시간이 없었다. 퇴근 후 늦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술집으로 전전하다가 자정이 가까이 되어서야 텅 빈 여관방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하루 한두 끼 거르기가 일쑤였고 거의 매일을 술과 벗하며 세월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의 얼굴은 점차 거무스레하게 타들어 갔다. 아침 회의에 불참한 그를 동네방네 수소문 해 본 일이 있었다. 국장님은 그의 소재를 알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오후 3시 경이 되어서야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지만 국장님은 그리 심하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에겐 특별 대우였다. 만약 다른 소장이 그랬다면 사표를 운운했을 테지만.

  칭찬 받는 얼굴, 능력 있는 회사원으로서의 모습과 가정 파탄 후에 고뇌에 지친 그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봤던 나로선 부러움과 연민이 뒤엉겨 내가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모습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회사동료였던 정소장의 결혼식에 가서야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퇴직한 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간질환으로 6개월간 휴직을 했고 병원 치료 후 복직하여 부산의 어느 영업소로 전보 발령이 나서 울산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를 떠올리면 현란한 불빛이 휘청대는 주점에서 흥겹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생각난다.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애써 감추려는 듯 마이크를 잡고 신명나게 흔들어대던 그의 몸놀림과는 아이러니하게 감추려던 묘한 슬픈 표정이 떠오른다. 그에 대한 연민일까?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에 젖어드는 애잔한 그리움 때문일까? 요즘 회식 장소에서 누가 노래를 하라고 하면 ‘젊은 그대’를 부른다.

  어느 해, 수학여행에서 그 노래를 불렀더니 버스에 탄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한 판 신명나게 따라 불렀다.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멋쟁이 선생님으로 보였을까? 그늘을 애써 숨긴 채 미소 짓는 밀랍인형처럼 보였을까?

허남진
     프로필

  ▶ 경북 경주 출생
  ▶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문예사조로 등단
  ▶ 경산수필, 경산문협 회원
  ▶ 현재 자인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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