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 구(자유기고가)


  평범한 중년의 3,000리 길 고행

  식당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던 중년 한 분과 생업을 접어둔 또 한 분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군 특수부대원들도‘지옥훈련’이라 칭하는 천리행군의 세 배가 되는 3,000리를 걷고 있습니다.

  발은 물집으로 성한 곳이 없고 한 발짝 한 발짝 옮기기가 눈물겨운 사투입니다. 아스팔트도 고무처럼 녹이는 여름, 10리 길을 걸어도 탈진해 쓰러지기 충분한 한여름의 염천 아래, 그들은 2,000리를 걸어 팽목항에 도착 했습니다. 쉬지도 못한 다음날 또 1,000리를 걷기 시작합니다.

  8월 15일, 교황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십자가를 메고 대전을 향한 그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승현?김웅기 군의 아버지 이호진ㆍ김학일 씨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유가족의 아픔은 조금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합니다.

  상당수의 지인들은‘이제는 세월호를 잊어야 한다’며 세월호의 피로감을 말하곤 합니다. 혹자들은, 세월호에 빼앗긴 경제를 이야기하며,‘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세월호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관련 경기침체란 취소된 행사 관련 업체들에 국한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세월호’는 국민들에게 잊어져 갑니다.

  큰 참사가 일어나면 많은 이들은 뜨겁게 분노하며, 같이 슬퍼하고, 함께 애도합니다.

  그러나 다소의 시간 차이가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은 고스란히, 십자가를 메고 고난의 3,000리를 걷는 유가족들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얼마 뒤 대참사는 다시 일어나고, 같은 순서대로 반복됩니다.

  정부는 시늉만 하고, 국민은 바쁘고 지친 일상으로 깊이 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참사에 대한 아무런‘반성과 해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우셨나요? 왜 분노했나요? 대통령께선 왜 눈물을 흘리셨나요?

  세월호 사건 직후,‘내가 이렇게 웃어도 되는가?’‘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잘 먹어도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 국민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국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며 애도의 기간을 가졌고, 눈물 한 번 훔치지 않은 이는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보고 왜 우셨나요? 왜 분노하셨나요? 대통령께서는 왜 또 눈물을 흘리셨나요?

  순간 느낀 단순한 슬픔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 그 눈물은 안타까움과 분노와 원망이 어우러진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나온 ‘뜨거운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그 뜨거운 눈물을 무엇을 해결하는데 섰고, 어떤 진상이 밝히는데 흘렸습니까? 그 눈물로 무엇이 개선되고, 어떤 예방책이 마련되었습니까?

  아무런 답이 없는데 정말‘이제는 세월호를 잊어야 할 때’인가요?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300여명의 학생들이 국민들의 눈앞에서 바다에 수장되었고, 이에 대한 최소한의 진상규명도 없는데 말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밝혀내겠다던 정부와 정치권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와 정치권은 수많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은 눈물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며, 총리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공표했습니다.

  더하여,‘국가를 개조’하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정치권은‘세월호 특별법’은 물론이고 이 기회에 나라의 적폐를 없애겠다고 분노하는 듯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국가 대개조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힘이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님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라는 말을 내걸고 지방선거에서의 지지를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말 중 무엇 하나 실행된 것이 있습니까?

  어느 것 하나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정말‘이제 세월호를 잊어야’합니까?

 ‘우리 애들이 왜 죽었는지 바로 아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편한 대로 말하는 정치권의 실언보다 유가족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대학 특례입학’과‘의사자 지정’‘특별 보상’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자기들끼리 선심 쓰듯 이야기하고, 국민들은 마치 이것을 유가족이 요구한 것처럼 비난합니다.

 “우리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돈 몇 푼 더 받아서 무엇 합니까!”“우리는 우리 애들이 왜 죽었는지 진상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애들 같은 억울한 희생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우리 애들이 왜 죽었는지 바로 아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요”

  인문학이 죽은 사회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본문제를 탐구하는 정신과학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확립해야 하며, 사람 관계는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가를 논리적 상상력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인문학의 반대편을 기술과학이나 경제학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죽은 사회란, 경제적 부를 성취하기 위해서 기술과학의 발전만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인문학이 죽은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의 크기는 권력과 경제 수준에 비례합니다. 다시‘자본주의적 계급사회’로 회귀한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층과 서민들이 엄격한 계급으로 구분 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연간 교통사고 사상자 수와 비교’하거나‘조류독감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어처구니없는 비유를 하며,‘가난한 애들이 제주도는 왜 가느냐?’라며 인간 본성까지 차별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사회는‘인문학이 죽은 사회’로 빠져들고 있고 개인은‘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정부와 정치권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국민이 나서야 하고, 국민이 분노해야 합니다.

  잊지 않을 것은 잊지 않아야 합니다.

  타인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나서지 않으면, 내가 불의를 당했을 때 아무도 나서주지 않습니다.

 “소수 인간을 겨냥한 불의의 행동은 결국 모든 인간에 대한 불의이기 때문에, 정의를 수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다 함께 나서야 한다.” 넬슨 만델라의 말입니다. 아직은 세월호를 잊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하루빨리 치유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최소한의‘진상규명’을 하는데 국민의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이 함께 분노해야 합니다.

  차갑게 분노해야 합니다. 금방 식어버리는 뜨거운 분노가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새기며 오래 기억하는,‘차가운 분노’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팽목항 소나무에 목을 맨 강민규 교감 선생님의 유서를 떠올려 봅니다.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저작권자 © 경산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