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그랬으면

최 수 근
  사직서를 썼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속된 말로 철밥통 이라는 공직사회에서 이십년 이상을 근무하며 겨우 기반을 잡은 상태에서 사표를 쓰고 그만 둔다는 것은 어려운 결심이었다.
지나간 일들이 앨범 속에 꽂아둔 낡은 필름처럼 흐릿하면서도 아련하게 스쳐 간다. 처음 입사한 일 년 동안은 수많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 소방공무원의 근무여건이 너무나 열악하여 24시간을 근무하고 하루를 쉬는 2교대 근무였는데 그나마 쉬는 날도 순찰근무니, 경계근무니 하여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날이 태반이었다. 아마 동기들 중에서 삼분의 일은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간 것으로 기억된다. 나또한 마찬가지로 그만둘까 말까를 매일 고민하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온듯하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새로운 시작 앞에서 약간의 설렘과 함께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들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참 어중간한 나이다. 그러나 이 어중간함의 기회조차 놓쳐버리고 사표를 철회한다면, 60세에 정년퇴직을 해서 대개의 공무원이 그렇듯 정해진 연금을 받으며 정해진 적당한 편안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도시에 산다면 노인대학에 입학해서 또래의 노인들과 게이트볼을 치며 오전을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는 고상한 붓글씨를 쓰거나 탁구를 치던가 하며 여생을 보낼 것이다. 아니면 시골 공기 좋은 곳에서 전원주택 한 채를 지어서 텃밭이나 가꾸며 한가로운 생을 보낼 것이다.
남천강변을 혼자 걷는다. 날씨는 잔뜩 비를 머금은 듯 흐리고 또 흐리다. 하늘을 보니 나의 미래가 꼭 저 구름 속에 갇혀 있는듯하다. 누구나 미래를 볼 수 없으니 항상 앞서간 선구자들은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라고 충고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지인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좋은 직장에 휴직을 하고 뉴욕이라는 먼 곳으로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있던 자리에서 떠난다는 건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오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새롭게 느낀다. 어느새 남천강변의 산책로 끝을 지나 다시 언덕으로 오른다. 한 생각이 지워지면 새로운 생각이 꼬리를 무는 참 어지러운 발걸음이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사표를 쓰며 두 가지 계획을 세워 보았다. 첫 번째는 경산에 있는 대경대학교 요리학과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이년정도 서양요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졸업 후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조그만 가게를 얻어 파스파와 피자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파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아침에 일어나 밀가루에 버터와 이스트를 녹여 반죽하는 일! 김치로 파스파를 만들어 볼까. 아니면 고등어로 한 번 만들어 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또 실현해보며 하루를 보내는 일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두 번째로 생각해본 것은 자연양계이다. 자연, 사람, 동물이 모두 하나라는 마음으로 친환경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전남 장흥군이나 경북 봉화에서 비싸지 않은 임야를 하나 매입하여 자연방사 유정란을 생산하는 것이다. 천 마리 정도의 산란계를 키우면 힘에 부치지도 않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천 마리면 계란을 800개정도 생산할 것이다. 문제는 알을 생산하는 것보다 판매일 것이다. 농장에서 수십 킬로 내외에 있는 아파트나 주택가 등지에 꾸준히 광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험농장 형태를 만들어서 가족들이 주말에 농장을 견학하게 하면 홍보효과가 배가되어 꾸준히 주문이 들어올 것이다.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시간이 행복하게 흘러가고 눈뜨는 아침이 즐거워진다면, 출근의 스트레스와 술과 담배에 지친 나의 육신도 평안한 안식을 찾을 것이다.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루의 일상을 끝내고 저녁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지친 그림자를 위로받을 수 있다면….

갑자기 누군가가 내 몸을 세차게 흔든다. 아내다.“ 당신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이야. 일요일 주간근무잖아 ”
현실이다! 미래의 삶은 알 수 없으므로 사람은 현재에 충실해야한다고 앞서간 선구자들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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