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풍경 / 전명숙


가로수 길들이 노란 언어로 시끄럽습니다
노을에 젖은 풍경처럼, 잘 빚은 밀주처럼
푸르름을 깊게 들이킨 시간이
저리도 붉은 유서를 남기는
맘 아픈 가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열린 노란 은행들이
눈물처럼 툭, 떨어질 때
내 믿음도 흐트러질까, 흠칫 놀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수다처럼 뿌렸던 씨앗이라든지
풋내 나는 열매들이
어설픈 노질로 강어귀에 닿을 때쯤이면
내 안에 그대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뒤따르는 금빛 물살로 뒤채며
내 중심 안으로 길을 내겠지요

단풍진 노란 길을, 함께 걷는 마음으로
한 발씩 내딛습니다
따사로운 늦가을 볕이
탱자나무의 담벼락을 걸어가는 길목에서
그 향기를 손에 물들도록 비비면서
나이테를 새겨 만듭니다
뗏목을 만들려고 베어낸 밑둥치,
그 나이테의 판에 바늘을 살짝 올리면
온 거리로 울려 퍼질 것 같은 노랫가락이
그대 만날 수 있는 따뜻한 겨울로
길을 열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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